오늘 하루종일 비가 추적추적내리고 날씨도 쌀쌀해서 그런지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번 현역때 복무했던 곳들과 동네의 위성사진을 뒤져봤는데 묘한 기분이 드네요. 혹시 모르기 때문에 최소한의 보안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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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미널. 제가 있을때는 이제 막 새로운 고속도로가 뚫린 덕분에 편도 3시간까지 줄어든 서울까지 점프뛰자는 농담도 자주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점프뛴 미친놈들도 있었을 겁니다.
외박나왔을때 구심점이기도 했습니다. 군장점, 식당, PC방, 전통시장, 모텔 등등... 불행히도 저는 나중에 쓸 이유로 인해 외박을 가족과 한번 펜션에서 머문것 외에는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을때만해도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햄버거를 파는 가게인 롯데리아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요즘에는 근처에 맘스터치에 CGV까지 생겼나봅니다.
그리고 사단 의무대. 옛날에는 온통 흙바닥이었는데 요새는 잔디와 콘크리트로 포장해서 헬리패드를 제대로 만들어놨네요. 그런데 오늘보니 생각보다 시내에 가까워서 놀랐습니다.
허리문제로 인해 자주 들렀고 입원도 여러번 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창문너머로 비치는 상가의 전깃불을 보면서 왜 난 이곳에 갇혀있어야 하는지 생각했던 곳이기도 하고, 실제 이 지역에서 뉴스에도 실렸을만큼 큰 사고가 났을때 의무대의 모든 장교, 부사관, 기간병들이 전부 달려나와 피묻은 셔츠에 쌓인 부상자를 후송헬기에 싣고가는 모습을 창 너머로 보기도 하고, 시내를 아주 낮은 고도로 날면서 GAU-8 기총소사와 회피기동을 연습하던 A-10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허리통증을 핑계로 수면제를 타서 나중에 여자한테 먹이겠다는 ㅆㅅㄲ를 본 곳이기도 합니다. 군병원에 오래있다보면 온갖 인간군상을 보게 됩니다.
6주동안 신병교육을 다 마친 뒤에 처음으로 배치됐던 곳은 여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좋지못한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구름이 올라오다가 땅에 걸려 안개비를 뿌리고, 하루에 4계절이 전부 다 느껴지고, 스케쥴상 24시간이 8-8-8로 쪼개지지만 현실은 하루에 6시간 잘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분대장과 부분대장은 맨날 싸우기 일쑤였고, 밥은 맛있는데 그걸 느낄 정신이 없었고, 실탄과 무전기는 생각보다 무겁고 거치적대고, 망할 코스는 힘들어 죽을판이고, 적은 70년대 이후로 한번도 넘어온 적이 없는데 간부들은 맨날오니까 맨날 뒤나 보고 앉아있어야했고, 눈꺼풀은 무겁고...
비가오면 번개가 바로 옆에 치곤해서 벙커로 들어갈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끔찍한 한기가 어찌할 바 없이 스며들어서, 이때 이후로 지금까지 비가 오면 한기를 느끼곤 합니다. 여기서는 생각보다 짧게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온 곳은 여기였습니다. 몇가지 변한게 있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중대내에서 가장 학력이 좋은 편이기도해서 중대 보급계원으로 있었습니다. 보급온거 있으면 받고, 밥이든 물이 든 말통이건 보급할거 있으면 두돈반에 싣던 직접 들고가던 중대원들한테 주고, 장구류들 실황을 늘 파악해 연대정보통신체계와 일치화시켜가면서 낡은건 연대본부에 반납하되 전장비나 검열이라도 오면 장구류 수량들을 다른 중대와 교환을 하건 뭘 하건간에 '적당히 관리'하고....
아무튼 직속상관인 행보관님과는 정말 고마울 정도로 사이가 좋았지만 막상 같은 중대본부 선임과 동기들과는 결코 좋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계기가 있었고 저 자신도 너무 어렸으니까요. 너무나도 말입니다.
선임 한명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 선임이 스스로 자신이 왜 현역인지 모르겠다 말할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달장애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어린아이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맞선임이기도 하지만 어쩌다보니 제가 그 선임을 전담마크해서 <관리하는> 포지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또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했지요.
안타까운 후임도 있었습니다. 같은 중대본부는 아니고 같은 생활관을 쓰던 3소대 신입이었습니다. 20대 후반에 뒤늦게 입대한 증권계쪽에서 일했다고 하던 이등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후임이 적응장애를 일으켜서 반쯤 폐인같은 상태가 됐습니다. 그때 마침 저도 디스크 판정을 받고 하루종일 생활관에서 누워있을때였는데, 제 선임이 그 광경에 여러가지가 겹쳐서 잠깐 울더군요. 저는 계속 자는척했습니다.
어느날부터 허리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단 의무대에 가보았지만 근육통이라는 진단을 받고 붙이는 파스와 멘소래담을 바르며 그냥 생활하다가 결국은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휴가를 쓰도록 중대장이 조치해주어서 바깥에서 MRI를 찍어보니 L5-S1 추간판 탈출증으로 판독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모 국군병원에 가서 신경성형술받고 최대 입원가능한 한달동안 입원했지만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 만큼의 상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에게 또다시 남은 정기휴가를 쓰도록 조치받아서 바깥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복귀하였고, 사단 의무대에서 가료하다가 사고가 일어나 또다시 바깥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는 결국 원대복귀하지 못하고 사단 의무대와 다른 국군병원들을 최대 입원기간까지 전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뭐랄까... 허리가 매일같이 통증을 전달하지만 그래도 움직여주고 있으니 써먹고 있는 상태랄까요. 벌써 그렇게 살아온지 딱 10년 됐네요.
아무튼 그 모든 여정은 바로 이곳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름을 대면 바로 어디인지 특정되는 곳입니다. 현장에 가보면 정말 멋있긴 멋있는 곳입니다. 사진에 보시면 파란색의 영역들이 보이는데 물이 아니라 인삼천이라고 부르는 파란색 비닐들입니다. 네, 인삼밭이 정말 드넓게 펼쳐져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현대 정주영씨에 관련된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이곳은 정말 멋진 놀이터가 될 겁니다. 세계 제일의 놀이터 말입니다.
저의 2년이 채 안되는 모험은 바로 여기서 끝났습니다. 바로 국군대전병원입니다.
솔직히 제가 대전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과시간에 TV를 못보는 것을 빼면 정말 좋았습니다. 이전에 들렀던 수도병원은 그저 내가 케어를 받아야하는 입장인데 간부들이랑 병실이 섞여있는 탓에 내 쪽에서 간부들을 케어해 줄 필요가 있어서 너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대전병원은 기본적으로 간부와 병사들을 분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병실의 사이즈에서부터 가이드 레일이 붙어있는 화장실에 식사까지 모든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저는 사단 의무대에 새로 부임오신 신경외과 군의관님의 배려덕분에 국군대전병원의 재활치료과로 입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때쯤에 후임 한명이 저와 마찬가지로 허리 디스크로 사단 의무대에서 치료받다가 나중에 저와 같은 병실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저를 배려해주어서 고마운 후임이었습니다).
대전병원에서 저는 매일 재활운동시간이 아니면 침상위에 누워서 지냈습니다. 사실 자대에서도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상당한 수고가 드는데 제가 사고쳐서 병원에서 쫓겨나면 행보관님께 정말 큰 배신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절대 사고치지 않기 위해 병실 사람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책을 보거나 누워서도 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자작해서 혼자놀거나, 그마저도 너무나도 괴로우면 병실 창문의 방충망들을 뜯어다가 꼬아다가 안테나를 만들어서 몰래 TV를 보곤 했습니다.
일과가 끝나는 5시부터 저녁점호인 9시까지는 마음껏 TV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를 보내는데 가장 큰 관건은 바로 오후 5시까지 어떻게 무사히 버텨내는가 였습니다. 대전병원까지는 도서관은 없고 작은 서가하나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거의 모든 책들을 금새 다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대전병원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오후 5시까지 버텨내기 훨씬 수월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가 막판에 대전병원에서 신경성형술을 받고 만기전역했습니다. 병실 사람들에게 특히 같이 온 후임에게 인사라도 했어야하는데, 그때의 저는 너무나도 방어적이었고 넋이 빠져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인사도 없이 부모님의 부축을 받으며 퇴원했습니다. 그리고 1년정도 집에서 더 쉬다가 복학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비록 전역 몇일전에 그 후임과 다른 같은 병실 사람들 몇 명이랑 같이 PX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그 후임에게는 정말 인사하고 갔어야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동안 세상은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변했더군요.
그리고 올해에도 뜻밖의 인연으로 인해 저에게 변화가 생길거 같습니다.
첫댓글 군에서 고생 많으셨네요. 제 주변에도 여기저기 다쳐서 나온 친구들 보면 참 뭐라 할말이 없더군요.
주변에서 말도 안되는 국까론 설파하는 놈이 있으면 가능한 좋은 말로 이 나라가 잘되야 왜 너한테도 좋은지 설득하려는 편인데, 군대가서 고생한 애들 앞에선 정말 할 얘기가 없어요.
마지막은 김해쪽 신도시 지역인가봅니다. 아마 부산쪽 통근자들을 대상으로 조성됐겠죠?
개인적으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잘 되서 어느정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서울보단 수도권 외곽이나 광역시권 쾌적한 신도시에서 자리잡고 싶습니다. 결혼 한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제가 보기애도 신도시같아 보입니다. 비록 제가 새로 자리잡을 곳이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변화가 될거 같습니다.
군대에서 허리디스크라니..안타까운 이야기군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