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집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 그리고 기독교 나눔 정신 실천
경주 최부자집(경주시 교동校洞 69번지)은 부자이면서도 존경 받은 집안이었습니다.
1600년대 초부터 1900년대 중반까지 조선시대 300년과 한국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12대를 내려 오는 동안 9대의 진사를 배출한 만석꾼 집안이었습니다.
세상을 보면 더 큰 부자도 많은데 쌀 만 석 자체가 대단하거나 큰 자랑은 아닐 것입니다.
만 석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12대 동안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만석꾼 집안이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부자로서 어떤 특별한 철학과 정신이 있었다는 점이지요.
더구나 일제 강점기에는 드러나지 않게 독립운동자금도 냈다고 하니 역사의식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경주 최부자집은 요즘 흔히 말하는 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Noblesse oblige)의 개념을 이미 오래전부터 실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하는 말로 보통 부나 권력이나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즉 재력이나 학문이나 권력 혹은 대단한 명망(名望)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일수록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높은 도덕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정신은 집안을 이끌어가는 정신을 담은 경주 최부자 집의 육훈(六訓)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육훈(六訓)'
- 진사(進士)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권력욕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는 교훈이지요)
- 만 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 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이지요)
- 흉년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마라, (흉년에 내몰려 파는 땅을 헐값에 사는 것은 반드시 파는 사람에게 원
한을 줄 경우가 많지요)
- 과객(過客)은 후히 대접하라,
-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이는 며느리를 의도적으로 길들이거나 고생 시키려는 게 아니라, 없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케 하려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흉년에는 곳간의 양식을 풀어라)
경주 최부자집은 집안을 이끌어가는 정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집안 구성원이 바른 품성을 지니고 살아야 함을 육연(六然)을 통하여 대대로 가르쳐 왔습니다.
'육연'(六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자처초연:自處超然),
-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 (대인애연:對人靄然),
- 일이 없을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을 당해서는 용감하게 대처하며 (유사감연:有事敢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득의담연:得意淡然),
-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행동하라 (실의태연:失意泰然)다.
성서 역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더불어 사는 이웃 사랑의 실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혹은 안식일이나 안식년이나 희년처럼 제도적으로 실천하라고 힘주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여라”(신명 15;4) 경주 최부자집 후손처럼 이웃과 더불어 사는 실천으로 혹은 복음 전도를 통하여 신앙인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물질적, 영적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때입니다.
최상석 신부 (성공회 워싱턴 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