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에 중국역사의 틀을 세운건 당연히 역사학자들이겠지요.
하지만 그 역사를 일반 대중들 머리속에 콕콕 심어주고 불변의 진리인양 만들게 한 인물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무협지소설을 쓴 작가들입니다.
그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서 쓴 것은 아닐꺼고, 그 당시의 시류와 흥미에 맞춰서 얼추 비슷하게 진짜역사인것 처럼 때려맞춰서 쓴 소설이 나중에 가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인양 회자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나관중의 삼국지가 그렇고 요새 우리나라 사극도 마찮가지이죠. 선덕여왕이나 대조영 몇 편보고 우리나라 고대사 다 알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 정말로 고대사에 대해서 의심이 가고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수백배는 많을껄요.
더구나 일본애들이 만든 코에이사 '삼국지'란 게임은 뭐 할말을 잃게 만들죠. 한반도도 조조의 위나라로 나오는 실정입니다.
우리야 아니깐 혀를 차지만 지금도 우리나라 수백만이 넘는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학교서 배우는 역사보다 게임이나 무협지에 나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게 거짓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현대 중국에서 무협지로 가장 이름을 떨치고 영향력이 큰 사람중에 김용 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쪽 발음으로는 진융이라고 한다죠. 홍콩에서 신문사 명보를 차린 사람인데 지금까지 1955년부터 1972년까지 15개 시리즈를 책으로 냈습니다. 자기 신문에 연재하던것을 틈틈이 모아서 무협지소설을 출간한겁니다. 뭐 이정도만 따지면 별거 없는 얘기인데
무협지들이 읽어보면 잼있죠. 중국역사도 배우게 되고요. 물론 그 역사란게 한족은 대빵, 최고의 민족이고 한족을 공격하고 침입한 이민족들은 나쁜넘 되겠습니다. 본인은 힘의 정의, 정, 의리 어쩌구 저쩌구 얘기하지만 기본 줄거리는 반청복명입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첫번째 처녀작인 서검은구록은 청나라 초기 건륭제 얘기를 다룬거죠. 숨겨진 서역의 여인 향비가 있었고 뭐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향비가 죽고 반청의 기치를 든 무사들이 있었다는걸 잊지마라가 중요한 줄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김용의 삼부작 사조영웅문은 송나라때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이 금나라의 침입을 막아내고 마지막 의천도룡기에서는 원나라 말기 에 주인공이 명교 교주(? 주원장은 주인공 부하)까지 이어질 정도로 이민족침입에 대항하는 정의롭고 의가 가득찬 한족얘기가 주 이야기 입니다.
유명한 동방불패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원작 소오강호는 거란에 대한 얘기입니다. 거란의 장수아들이 부모의 원수도 모르고 한족 밑에서 자라서 자신이 의기백배한 한족인줄 알았는데 결국 자신이 거란족이라는 처지를 알게 되지만 복수는 안하고 조용히 아무생각없이 살고자하지만 사람들이 어느편에 설꺼냐 강요하자 걍 자살합니다. 허무합니다.
초창기에는 반청복명을 얘기하다가 1972년작 마지막 소설인 녹정기는 다시 청나라 시절로 돌아가서 강희제 얘기를 다루는데 만주, 시베리아 지방은 청나라꺼고 청나라는 중국꺼이니 그 쪽은 다 현 중국땅이라는거가 핵심입니다. 반청복명도 은근슬쩍 얘기하지만 후반에 가면 청나라도 중국꺼가 내용입니다. (이미 그 때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
그의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복수입니다.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에 대처하는 한족얘기죠. 반청복명 이걸로 다 설명됩니다.
그의 소설은 홍콩, 대만쪽에 널리 퍼졌으며 전세계 화교들이 있는 곳으로 퍼졌습니다. 국내에는 1980년대 중반 고려원(지금은 김영사)에서 번역서를 냈는데 그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많이 읽게되었죠. 중국본토에서는 오히려 개방후 90년대부터 본토사람들이 많이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소설은 그 당시(홍콩, 대만, 화교들) 사람들에게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기존의 무협지소설과 달리해서 신무협이란 장르가 나왔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물론 양우생, 고룡이 있지만 김용이 없었다면 신무협이란 장르가 과연 생겼을까요?) 심지어 금학(진학)이라고 해서 그의 무협지 세계를 역사적으로 풀이하는 역사학자들도 나올 정도 입니다.
제가 김용에 대해서 잠깐 글을 썼는데 궁금한거는 김용이 왜 무협지를 썼냐 이겁니다.
무협지 소설가도 아닌 사람이 신문사 먹여살릴려고 무협지를 쓴걸까요? 아니면 뭐땜에 무협지를 썼을까요?
무협지가 좋아서 썼으면 계속 써야지 본격적으로 쓴건 10여년 남짓이고 때려칩니다. 안써요. 왜 썼는지도 궁금한데 절필한것도 궁금합니다. 왜??? 이유가 몰까요?
그가 무협지란 소설을 쓴 1955년 - 1972년에 중국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난걸까요?
1955년이면 53년 625남북전쟁이 휴전된 후 중국은 소련과 결별하고 열심히 죽의 장막을 칠 시기이군요.
1958년에는 마우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시작됩니다. 무수한 아사자가 생기고 인세지옥이라 할정도로 엄청나게 죽어갔죠.
1959년은 티벳을 침공하네요. (운남지역 대리단국에 대한 얘기를 쓴 천룡팔부는 1963년 작품이네요)
1966년은 그 유명한 문화혁명으로 또다시 중국천지가 다 뒤집어지네요. 지식인들은 깡끄리 죽여나가고요. 또 베트남 전쟁도 시작되고요.
1971년은 핑퐁외교라 일컸는 미중간에 교류가 놓인 시기입니다.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국이 철수하고 1976년 마우쩌둥이 사망하면서 문화혁명이 끝납니다.
문화적으로는 60년대 포스트 모던이 극성하던 시기네요. 프랑스 68혁명으로 유럽도 한바탕 했던 시기이고요.
이렇게 보니 냉전이 극성이던 시절에 쓰기 시작해서 중국이 죽의 장막을 치던시기에만!! 소설을 썼네요.
1972년 문화혁명도 다 뒤집어서 거의 끝나가고 베트남전쟁도 접을려고 하던때고 미국과 중국이 화해를 하니 딱 절필하네요.
물론 그가 이후에 전세계에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문화적인 영향력은 정말 엄청나다고 볼 수 있겠죠.
우리나라만 따져도 하다못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한번 읽어본 학생보다 김용 소설을 본 학생이 수백배는 많을테니깐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요... 가히 문화적 파급력에 있어서는 1인군단이라고 할 만 합니다. 한류는 비교도 안되죠.
왜 그는 소설을 썼을까요? 왜 그는 이민족에 대한하는 한족 얘기를 모티브로 잡았을까요?
더군다나 자신의 처음 소설과 마지막 소설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왜 '반청복명'으로 잡았을까요?
P.S 무협얘기, 구파일방이니 하는 얘기는 논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깐요.
다음은 위키백과에서 김용에 대해서 검색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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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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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중국어: 金庸, 병음: Jīn Yōng, 1924년 2월 6일 ~)은 중국의 무협 소설 작가이며 언론인이다.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서 진융이라고 표기되고 있는 김용의 본명은 자량융(중국어: 查良鏞, 병음: Zhā Liángyōng, 사량용)으로 1924년 2월 6일 중국 저장 성(浙江省) 하이닝 현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에 홍콩의 일간지인 《밍파오(明報)》를 창간하여 1993년 은퇴할 때까지 주필로 근무했다.
김용은 1955년부터 1972년 사이에 15권의 무협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그 중 일부는 《밍파오》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의 무협소설은 동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어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해도 1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 또한 그의 무협소설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영화와 비디오로 제작되었으며 컴퓨터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김용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대륙에 널리 알려져 김학(金學)이라는 그의 소설을 연구하는 학문이 생길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
김용의 무협 소설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