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신비의 왕국
그리고,
고구려도 발해도 모두 자기들의 지방정권이니, 중국의 역사이며 같은 민족이라 주장한다.
당연히 영토는 말할 것도 없다.
지방정권이라니,
지방정권이란 그 지방을 관리할 자를 왕이나 황제가 직접 임명하여야 한다.
직접 임명하려면 임명자를 직접 대면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지방의 통치권을 임명자에게 수여 授與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멀리 떨어진 곳 즉, 먼 지방에 파견할 고위 관리인데 얼굴도 모르고, 충성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는 전혀 모르는 자에게 어떻게 자신의 영지 領地를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역대 중국의 황제 중에서 고구려나 발해의 왕들을 한 번이라도 대면한 일이 있었는가?
미안하지만,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먼 발치에서 조차도 본적이 아예 없다.
졸본부여의 계통을 이은 고구려 900년(중국 사서기록)간의 긴 역사 동안 중국 황제들과 단 한 번도 서로 마주 본 적이 없었다.
발해도 마찬가지다.
태조 대조영을 시작으로 발해의 왕들도 단 한 번도 중국의 황실에 입조 入朝한 사실이 전혀 없다.
고구려와 발해는 군사를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공격한 기록은 여러 번 있지만, 왕이 입조한 사실은 없다.
그런데 지방정권이라니.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내 스스로 힘들여 만든 나의 나라고 내가 직접 다스리는 나라인데 왜 멀리 떨어진, 그 먼 곳의 다른 나라의 수장에게 임명을 받아야 할까?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분명한 독립 국가다.
인종 자체가 틀린다.
하화족들은 신체가 왜소하다, 태어날 때 몽골 반점도 드물다. 키도 동이족들에 비해 한뼘 정도 차이가 난다. 덩치가 작으니 힘도 약하다.
종족 자체가 다르니, 서로 간에 나라가 망해가면서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지 않았었나.
그런데 억지를 쓰고 있다.
또한,
무슨 지방정권이 국경선을 그어 놓고 한쪽에서는 만리장성을 쌓고, 또 다른 편에서는 천리장성을 쌓고 정예 군사들을 성벽에 배치하고 서로 대립하고 있었나?
지방정권을 토벌하는데 백만 이상의 군대를 여러 번이나 동원하는 나라도 있었나?
원정군 백만 명이란 인원은 한나라(一國)가 전쟁에 동원한 기록으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무후무한 대단한 기록이다.
그리고 지방정권이란,
중앙정권이 존재한다는 가정하 假定下에 사용할 수 있는 한정되어있는 조건부 단어다.
그런데,
자신들이 주장하는 중원의 중앙정권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고구려가 7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 내려오는 동안,
중원은 전한 前漢, 신 新, 후한 後漢, 삼국시대(위 촉 오), 진 晉, 서진 西晉, 동진 東晉, 오호십육국 五胡十六國, 남북조 南北朝, 수 隨, 당 唐. 등이다.
중원에서는 이 왕조 저 왕조가 생겼다가 멸망하고, 내분으로 서로 간에 분탕질을 하며, 늘 상 외침 外侵을 당하여 수십 개의 나라로 쪼개어져, 이민족(동이 계열의 선비족)의 지배를 계속 받아왔다.
유사 이래 有史以來,
고구려의 지배를 지속적으로 받아오던 선비족들이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던 북방의 고구려를 우회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중국 대륙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 다시 봉합시킨 누더기 같은 지리멸렬한 역사를 가진 자들이 오히려 중앙정권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에 이러한 중앙정권이 어디에 있나!
이는 마치 하늘 위의 달과 태양을 보고
“너희들은 우리의 지방정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억지를 써도 너무나 과하다.
그러면 자신들이 이때까지 떠받드는 최고(最古, 最高)의 역사 서적이라 자랑하는 사마천의 ‘사기’ 史記는 뭐가 되냐?
사기에는 분명, 중원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나라는 야만족이라 하면서 그 위치와 지역에 따라 친절하게 명칭까지 하나하나 작명하여 호칭하고 있지 않았었나?
남만 南蠻, 서융 西戎, 북적 北狄, 동이 東夷라면서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 놓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어있나?.
남쪽의 벌레라고 조롱하던 남만이라는 사천성과 운남성,
서융이라는 티벳트,
늑대와 같다고 북적이라고 부르며 무시하였던 위구르와 내몽골,
동이족이라는 동북 삼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모두들 철권통치로 짓누르고, 이제는 자신들의 민족이고 역사며,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까지 호시탐탐 虎視眈眈 넘보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서기 2,000년 초까지도 자기네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회복해야 할 영토’라며 한반도를 지도 위에 올려놓고 다른 색깔로 표시해 놓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웃 나라를 정복하라’며 전쟁을 부추키는 비이성적인 못난 행동들이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 사학자들은 못 본 척 말 한마디 없다.
한편,
홍산 문화를 발굴하고 이어 중국은 ‘중화 오천 년’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역사의 기원을 기존보다 1,000~1,500년 상향 조정하고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역사적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알려진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및 티그리스 강, 이집트의 나일 강, 인도의 인더스 강,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빠른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존재했다고 발표한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문명을 일구었다는 요하문명 발굴지역은 분명히 동이족의 시원지 始原地이며 고조선의 고유 영역이다.
아니, 지나족 자신들이 자기들 입으로 글로서, 자기들의 영토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고, 배타 排他시키고 있었던 지역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하 지역에서는 단군 조선보다도 빠른 시기 즉,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경에 이미 고대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국가를 ‘신비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하긴 중국 입장에선 ‘신비스런 왕국’이 맞다.
동이족의 ‘배달 倍達’ ‘신시 神市’를 그들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없다.
동이족 ‘배달의 민족’을 그들은 ‘신비의 왕국’이라고 포장한다.
당연하다.
하화족들이 관중이나 중원 땅에서 야만인 차림으로 원숭이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을 때, 홍산지역에서는 동이족이 이미 나라의 틀을 잡고, 국가를 경영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한 자신들은 의미도 제대로 몰랐던 룡 龍이나 봉황 鳳凰같은 상징물들과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 文子의 시원 始原을 밝혀줄 유물들이 그곳에서 무더기로 출토되고 있었으니, 신비롭기 그지없다.
* 그림 - 홍산 문화의 전파경로.
중국의 역사학자 소병기 교수가 주장하는 Y 벨트도 실은 허상 虛像이다.
Y 벨트의 중심은 태원의 북방인 험준하기로 유명한 여량 산맥이다.
그 높은 태항산 太行山과 여량산맥에 무슨 고대 문명이 존재하였는가?
Y 벨트의 중심지에서 가장 큰 고을이 겨우 태원 太原에 불과하다.
홍산 문명이 관중 關中으로 전파된 것을 희석 稀釋시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홍산 문명이 앙소 문명의 시원지 始原地다.
홍산 문명에서 수십 대에 걸쳐 태어난 손자가 앙소 문명이다.
저들 스스로 그렇게 인정하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하노선 南下路線’이니, ‘북상노선 北上路線’이니 하면서
‘동등 同等하다’라는 식으로 그림을 그려 놓았다.
철 없는 어린 손자가 2천 년 된 할아버지와 같이 놀자고 한다.
어이가 없다.
단순하게 ‘홍산문명의 남하’라고 하면 간명하다.
일방통행 一方通行이다.
그러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이리저리 어지럽게 공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소롭기 그지없다.
모두가 허상 虛像이다.
또 다른 춘추필법 春秋筆法에 입각한 그림이다.
저들의 구겨진 자존심을 이렇게나마 스스로 위로해보는 추상적인 그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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