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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의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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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유 로 운 글 스크랩 북한산성 복원 이대로 좋은가?
山사랑 추천 0 조회 15 08.09.04 11:1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북한산성 복원에 대해서 ! ~

 

북한산성 축성연대

북한산성은 절벽 등 천연요새 지역을 방벽삼아 여러 봉우리를 돌로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보존가치가 높아 사적으로

지적하였다.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개루왕 5년인 서기 132년 북쪽에

쌓은 성곽이다.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구실을 했으며,근초고왕의 북진정책 하에서는 북쪽을 정벌하려는 북정군(北征軍)

의 중심요새지가 되기도 했다.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개로왕 21년인 서기 475년 고구

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이 전사함으로써 국력이 폐퇴한 백제는 웅진성(熊津城)으로 도읍을 옮겨야 했다.

그 뒤 553년(진흥왕 14년) 신라가 한강 하류까지 진출하여 북한산성을 차지하고서 진흥왕순수비를 여기에 세웠다. 신라

진평왕 25년인 서기 603년 고구려군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포위했으나 격퇴 당했다. 또 무열왕 8년인 서기 661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20여 일 동안 포위 공격했을 때 성주 동타천(冬陀川)이 성 안의 주민을 동원해 끝

까지 성을 지켰다. 고려시대에는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고려 태조의 시신이 담긴 관인 재궁 (梓宮 )을 옮긴 일이 있

는데  이때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고종 19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1387년(우왕 13년) 개축했다. 조선시

대에는 양 난을 겪은 뒤 한양 외곽에 있는 도성을 강화하여 외적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1711

년(숙종 37년)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둘레 7,620보(3,716m)인현재 형태의 석성을 완성시켰다.건축물로는 대서

문(大西門)·동북문·북문 등 13개의 성문,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등의 장대(將臺),130칸의 행궁,140칸의 군창(軍倉),중흥

사(重興寺)를 비롯한 12개의사찰, 26개소의 저수지, 99개소의 우물이 있었다. 현재 삼국시대 토성의 흔적이 간간히 남아

있고,대개는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이다. 기단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개축한 것이다.

 

북한산성을 왜 쌓았을 까?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국난을 당 할 때마다 도성을 한 번도 방위하지 못한 조선왕조의 조정에서는 그 동안

믿었던 남한산성과 강화도도 위급 시 신속한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판단아래 새로이 북한산을 중요시하게 됐다. 그러

나 병자호란 이후 청과의 약조로 성곽 하나 마음대로 쌓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던 숙종은 드디어 숙종37년(1711) 북

한산성 축성의 실마리를 풀게 된다.중국 연안에 출몰하던 해적이 점점 강성해지자 청나라로부터 이에 대비할 것을 요청

해 왔기 때문이다. 숙종은  "도성은 넓고 커서 수비하기가 어렵고,남한산성은 나루를 건너가기 어려우며, 강화도는 얼음

얼어 버리면 그 험한 것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 오직 북한산만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고

자 하면 군량 등 물자를 모으는 일도 다른 과는 달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축성을 재촉했다. 그로부터 불과

6개월만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공사가 진행되어 대체으로 완공을 보게 되었다.성은 북한산의 험난한 지형을 살리기

위하여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원효봉, 영취봉등연결하여 쌓으니 길이가 약 9.5km에 이르렀다.      

 

6개월만에 성곽을 쌓았으나 민관군이 함께 지구항전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여러기능을 갖춘 성내시설물의 건립이 불가피

했다. 위급시 왕의 피난처가 될 행궁(行宮), 장수의 지휘본부로 쓸 장대(將臺), 산성을 관리하는 관성소(官城所), 군사무

보는 유영(留營), 군량을 비축하기 위한 창고(倉庫) 그리고 병사들의 숙소로 쓸 성랑(城廊) 등을 숙종 39년(1713)까지

건립했다고 한다  (자료출처: 국립공원,문화재청 홈페이지) 

 

 

의상능선 가사당암문의 성벽 ~

 

   

 

만경대 스타바위 상단의 바위사이에 쌓은 성벽

 

 

문수봉 국기봉에서 칠성봉으로 연결되는 성벽

 

 

축성연대를 보여주는듯 한 성벽, 위 아래가 다르다.

 

 

산성 주능선의 복원한 성벽들~

 

 

 

 하얀 띠처럼 주능선을 넘어가는 복원한 성벽들~

 

  

 

 

대성문의 여장

 

 다른곳의 여장과는 달리 문루여장은 모든 성문에 큰 화강석 하나로 설치한 것이 어색해보인다.

  

 

 의상능선의 옛 성벽과 무너진 여장의 총안,

 

 

 

 

원효봉을 오르며 나오는 성벽, 근래 개축을 한 성벽으로는 자연스럽게 설치되었다.

 

 

원효봉 성벽, 좌측 앞부터~염초봉, 좌측의 높은곳이 정상인 백운봉, 중간이 만경대, 우측으로 노적봉

 

 산성 주능선과 의상능선을 돌고, 염초봉을 넘어 백운대, 우측의 만경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한바퀴 돌아 설치된 성벽들

 

 

 백운대 정상에서 보이는 염초봉의 자연성능과 원효봉의 성벽들~

 

 

백운대 북쪽과 서쪽의 깎아지른 절벽들은 그대로 자연성능이 되고~

 

 

  

 위문에서 백운대 오르는 곳의 새로 쌓은 성벽들~

 

 

기초석 하나 옛것이 없는데 굳이 아름다운 조망을 해치며 꼭 이렇게 주택가 블럭담 쌓듯이 해야만 하는지?

 

 

백운대를 오르면서 우측으로 인수봉이 바로 보이며 상계동 아파트 단지가 훤히 보였는데~

 

 

 시계를 막아놓아 아름다운 조망을 망쳐놓았다.

 

 

 만경대 스타바위를 오르며 본 백운대 성벽길~

 

설사 이자리에 옛 성벽이 세월의 때를 간직한체 저런 모습으로 있었다해도 이 부분 만큼은 헐어내서라도 이 주변의

빼어난 아름다음을 관망하며 느끼게 하는것이 현재나 후손들을 위해 더 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인지?

 

 

다음은 북한지(北漢誌)에 나오는 축성방법에 관한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북한산성의 성벽은 방비에 유리한 자연적인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는데, 지형조건을 적절히 살려서 고축, 반축, 반반축,

지축여장으로 나누어 쌓았다. 즉 편탄한 평지부분은 비교적 높게 쌓았으나 산지의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높이를

낮추거나 자연암반에 그랭이질만 하여 성벽을 쌓기도 하고 아예 자연암반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성곽을 쌓지 않기도

하였으며, 정상부에는 여장만 설치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성벽의 전반적인 규모는 고축(高築:10척~14척) 2,746보, 반축

(半築: 6척~7척) 2,906보, 반축의 반인 반반축(半半築: 3~4척) 511보, 그리고 체성을 쌓지 않고 직접 성가퀴 (城堞)를 축조

한 형태의 지축여장(只築女墻)이 1,457보의 형태였으며, 여장(높이 4척, 너비 3척)은 2,807첩에 이르렀다. 

 

위와같이 높고 가파른 산지로 올라가며 높이를 낮추거나 아예 쌓지 않기도 하는데, 성벽 내부에 있는 병사는 외부에서 침입

하는 적을 쉽게 물리치도록 여장 아래로 비스듬히 설치해 쉽게 다니도록 한  다른곳의 성벽과는 달리 담장처럼 높게 쌓은것

은 근거를 무시하고 쌓은것은 아닌가?

 

 

 성벽을 끊어 계단처럼 쌓아 그 위로 등산로를 설치한 어색한 모습,

 이런 엉터리 성벽을 복원하기 위해 더 좋은 자연경관을 해치며 없던 성벽을 쌓았단 말인가?

문화재청과 해당 관리청에서는 굳이 없어도 될 곳에 쌓은 이런 성벽을 지금이라도 헐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만경대에서 바라본 인수봉, 거대한 돌산의 아름다움은 북한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북한산의 경관이 근거도 없이 설치한 상단의 성벽으로 빛을 잃었다.

 

  

자연암반에 조망을 막으며 복원한 성벽~

성벽이 없던 자리에 이런 형식적인 모습으로 꼭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필자가 컴퓨터그래픽으로 성벽을 쌓기전의 풍경을 재현해보았다

 

관계자들은 백운대 오르는 상단 성벽의 문제점을 다시한번 검토하여 지금이라도 철거하기를 바랍니다.

 

 북한산성 12성문 종주기 보기 클릭

http://blog.daum.net/85876/1540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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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06 18:58

    첫댓글 도심의 성곽은 동양에 있어 필수적인 방어수단이었기에 이해한다고 하고......복원까지 이해한다고 하지만......고증을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쌓아 버린다면 이미 그 성은 죽어있는 피조물에 불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것을 복원하되 현실적적으로 복원하지 않을 곳은 다른 시설물로 대체하면 좋은텐데...그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닙니까? 좀 씁습하네요~~

  • 작성자 08.09.08 10:46

    북한지에도 나와있듯이 깍아지른 절벽에 저와같은 성벽을 쌓을일이 없다생각합니다,한쪽에선 방어를 위해 성벽위를 쉽게 올라야하는데, 평지에 쌓듯이 해놧으니 문제인거죠~관련학자나 문화재청에 질의를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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