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履歷而文字香 (인생의 이력에서 글씨의 기품이 드러난다) 최길하
글씨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품격이 비친다. 특히 그 사람 일생의 황혼녁 글씨는.
삼성 창업회장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의 글씨 한 점이 1억 원에 팔렸다. 어제(2026년 7월 21일) <K-옥션(미술품 경매회사)>에서.
월간 '샘터'가 소장하던 이 회장의 글씨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나는 이 작품과 인연이 깊다. 15년 전 쯤 월간<샘터시조> 심사위원을 할 때다. 1년에 한번 샘터상 시상식 때 김재순회장(전 국회의장) 샘터 집무실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차담(茶談)을 나누곤 했다.
이 작품은 천경자화백등 샘터畵稿와 함께 사무실에 놓여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울림이 있어 글씨를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내게 김재순 발행인께서 말했다.
"그 분의 삶과 글씨가 비대칭적이잖아요?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아주 잘 어울리는" “하늘 天 하고 바로 땅 地 하면 하늘과 땅 차인데 댓귀가 기가 막히게 어울리듯”
"그리고 글씨를 파고 새기듯 진심과 정성을 다해 정자로 썼어요. 한석봉 서체처럼 살집이 있어 풍덕하고 여유와 안정. 덕 있는 부자 글씨가 느껴져요"
기교도 자랑도 없어요. 참 정직해요. 인상 깊어요"
"재미난 스토리가 있어"
"어느 날 이병철회장이 샘터를 방문하셨어요".
"그때는 000기업 박회장이 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가 있었어"
"유심히 보시더라고. 최선생처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저 글은 회장님이 써야 울림이 클 것 같다 했지"
"아무 말 없어"
"그러구 일 년이 지난 추석 밑에 우편물이 왔어"
"이병철 회장이 "공수래공수거" 2장을 보내셨더군"
"그래서 답례차 집으로 방문했지"
"그때 하시는 말씀이"
"내 그때 김 회장 말 듣고 이 글을 썼지. 그런데 영 모양이 안나. 획수가 다 적잖아.
그러니 숨을 데가 없어. 한눈에 다 드러나버려.
특히 손(手)자가 제일 어렵더군. 글씨나 실천이나 참 어려운 글자야.
그래서 꼬박 일 년 걸렸어. 수백 장 쓰고 버렸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보면 반듯하다.
먹이 깊숙이 돌을 뚫고 새겨진 듯하다.
"空"자는 악기가 울릴 빈 배(腹)나 피리 천공이 느껴지기도 했다.
"手"자는 허리를 약간 굽히고 공수(空手)하는 느낌이다.
"手"자가 둘, "空"자가 둘 합장을 하는 듯 대칭적이다. 문장 끝 “去”자의 마지막 획 '厶'획은 익룡이 독수리 같은 발고리로 돌을 움켜쥐며 비상한 듯하다.
글씨의 보법이 움푹움푹하다.
목계(木雞)가 이렇게 걸어가고 있다. 3대 째 世步다.
그때 이 작품을 본 평을 13년 전 나는
[불교신문/2013년6월29일자] 칼럼에 이렇게 썼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님을 뵐 일이 있었다. 사무실 한켠에 붓글씨로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를 또박또박 쓴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병철 전 삼성회장님의 글씨였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글귀를 또박또박 쓴 것이 참 울림이 컸다. 한참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더니
“저 글씨 일화가 있지.” “그 분이 내 사무실에 방문하셨어. 그때 일중선생의 글씨와 박 모 회장의 글씨 ‘空手來空手去’가 있었어.”
“한참 보시더군”
그때 내가 “저 글귀는 그래도 이 회장님이 써야 울림이 크지 않겠습니까? 그랬지.”
“그로부터 꼭 1년 후 저 글씨 2점을 보내주셨어.” “고맙다고 전화를 드리고 찾아뵙지”
“그때 김 의원 말 듣고 글씨를 쓰는데 참 모양이 나지 않아.” “획수가 적으니까 써도써도 영 마음에 차질 않더군. 특히 ‘手’자가 어렵더군.” “手-깍지처럼 생긴 글자인데, 이병철이가 깍지처럼 돈만 긁어모아서 깍지 같다 하지 않겠나?그래서 1년이 걸린 거네.”
아, 1년을 무수히 썼다. 획수가 적으니 더 힘들더라. 특히 깍지처럼 생긴 手자가 제일 어렵더라.
그후 나는, 수많은 파지를 내며 마음에 새긴 공수래공수거의 의미가 글씨 너머 큰 메아리가 됐다.
“자네 악수 한 번 할까?” 테이블 위에 손을 떠 놓은 브론즈를 들더니 나와 악수를 청하신다. “좀 차지?” “네? 아 네에” “이 손도 일화가 있어. 인도가 독립하고 네루가 수상이 됐을 때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독립기념으로 네루 수상에게 선물을 하나 보내. 그것이 뭔가 하면 노예해방을 시킨 링컨 대통령의 손 브론즈를 선물한 거야. 서울대 총장을 하신 장리욱 선생님이 주미대사로 계시다 오셔서 내 사무실에 오셨어. 그 때 문득 트루먼 대통령이 네루수상에게 선물한 그 손이 생각나더군. 그래서 홍대 조소과 교수를 불러 장리욱 선생의 손을 떠놓은 거야. 그러니까 지금 자넨 장리욱 선생님하고 악수를 한 걸세.”
90세가 넘으신 어르신은 40년 이상 월간 <샘터>를 매월 10만 부를 발행했다. 법정스님을 비롯해 피천득 선생님, 이해인 수녀, 최인호 작가의 가족, 천경자화백 장영희 선생님 등 샘터의 필진이 펼친 말씀들은 많은 사람들의 샘터가 되고 샘물이 됐다.
손!(手) 손은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꽃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을 헤치고 도둑질을 하는 검은 손이 될 수도 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아낙네들의 손은 얼굴만 하다. 전쟁 후 폐허 속에서 가족들의 생명줄을 이은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평생 거친 일만 하신 아버지의 손이 내 얼굴을 만지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추사의 글씨 중에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이란 글씨가 있다. 의역하면
글씨란 손재주 기교가 아니다. 수만 권의 책을 읽고 그것이 가슴에 회오리치고 마음에 스며있어야 글씨를 쓰면 비로소 글씨에 향기(울림)가 난다는 것이다.
삼성 창업회장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의 황혼의 글씨에서 나는 그 분 일생의 서사를 읽는다.
호암(湖巖) 선생은 두 글귀를 많이 쓰고 남겼다.
木鷄(목계)와
空手來 空手去(공수래 공수거)다.
"목계"는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로서 자기 경계와 좌우명이었을 것이며
"공수래 공수거"는 생자필멸 회자정리라는 인생의 한계에 따른 경종과
그 천명을 알고 겸허함을 잃지 않으려는 경계였다고 나는 본다.
"공수래공수거"는 금강경이기도 하다.
보는 것, 듣는 것, 향기, 맛, 살에 스치는 촉감, 이 모든 감각이 오온계공(五蘊皆空=마음의 그림자. 허상)이라는.
이는 또한 현대과학의 정점인 양자이론이기도 하다.
아니, 벽에 부딪치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면 피가 나고 아픈데....
전자구름의 고밀도가 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양자역학은 말한다.
다 전자구름의 조화 속이 삼라만상 세상이란다.
人生履歷而文字香(인생이력이문자향)
"인생의 이력에서 글씨의 기품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높은 가격에 낙찰됐을까? 이병철 회장의 공수래공수거는 수십 점 존재한다. 몇 년 전만해도 몇 백만원 정도였다.
이 작품은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김재순의장이 처음 공수래공수래를 쓰시란 말을 했으며... 등등 스토리텔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爲 샘터 사장 김재순"이 이 작품의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爲 샘터 사장 김재순"이 없는 "공수래공수거"라면 훨씬 못 미치는(1천 민원 정도) 가격일 것이다.
우리 대통령도 살아온 서사가 입혀져 더욱 감동적이지 않은가? 나 같은 사람도 이 작품에 서사를 보테니 작은 울림이라도 점점 커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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