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시환혼(借屍還魂)
죽은 시체를 살려낸다는 뜻으로 국면을 전화시켜 주도권을 쥐는 계책이다.
대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사람이 왕왕 다른 사람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차시환혼 계책은 적이 생각지 못한 방법을 동원해 주도권을 쥐고자 할 때
구사하는 계책이다. 차시환혼은 원나라 악백천(岳伯川)의 잡극
〈여동빈도철괴리(呂洞賓度鐵拐李)〉에서 나왔다. 민간에 나도는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이 희곡에 따르면 옛날 이현(李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교에서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숭상하는 노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장생불사의 비술을 배웠다.
어느 날 그의 혼이 태상노군을 따라 하늘의 끝으로 유람을 떠나게 되었다.
이현은 제자에게 세상에 남아 있는 자신의 육체를
간수하라고 부탁하고는 이레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엿새째 되는 날 제자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는
황급히 그의 시체를 화장한 후 떠나갔다.
이현의 영혼이 돌아와서 보니 들어갈 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방금 객사한 거지의 몸으로 들어갔다.
흐트러진 머리와 때가 낀 얼굴에 다리를 절며
머리가 벗어진 철괴(鐵拐)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현이 거지가 집고 다니던 대나무 지팡이를 향해
선수(仙水)를 한 모금 뿌리자 대나무 지팡이가
문득 쇠지팡이로 변했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쇠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이씨라는 뜻의 ‘철괴리’로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차시환혼 성어가 나왔다.
이는 훗날 낡거나 폐기된 물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준다는 뜻으로 전용되었다.
《삼십육계》의 차시환혼은 곤경에 처했을 때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국면을 전환시키는
전술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왕조교체기 때 차시환혼의 사례를 대거 접할 수 있다.
패망 위기에 몰렸거나 이미 패망한 왕조의 황자(皇子)나 황족의
일원을 자처하며 무리를 모을 때 흔히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시황의 급서 직후에 일어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이다.
《사기》 〈진섭세가〉에 따르면 진나라 2세 황제 원년(기원전 209) 7월,
지금의 하남성 등봉현 동남쪽에 있는 양성(陽城) 출신 진승과 지금이 하남성
태강현인 양하(陽夏) 출신 오광이 차시환혼의 계책을 활용해 지금의 안휘성
숙주시 동남쪽인 기(蘄) 땅에서 반기를 들었다.
진승과 오광은 자신들의 신분이 미천해 사람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백성의 존경을 받고 있는 진시황의 큰 아들 부소(扶蘇)와 초나라 명장 출신
항연(項燕)을 사칭했다. 당시 사람들은 부소와 항연이 이미 죽은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이들의 계책은 그대로 적중했다. 진나라의 패망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자가 섭(涉)인 진승은 원래 머슴 출신이다.
하루는 밭두둑 일손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던 가운데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만일 부귀하게 되면 서로를 잊지 말도록 합시다.”
머슴들이 비웃었다.
“당신은 남의 머슴으로 있는 주제에 어찌 부귀를 이룬다는 것인가?”
진승이 탄식했다.
“아! 연작(燕雀)이 어찌 홍혹(鴻鵠)의 뜻을 알겠는가!”
‘연작’은 제비와 참새 등의 작은 새로 곧 소인을 상징한다.
‘홍혹’은 봉황과 유사한 전설상의 새로 영웅을 뜻한다.
당초 진승과 오광은 부역에 징발된 900명의 백성을 이끌고
지금의 북경시 밀운현 서남쪽인 어양(漁陽)으로 가던 중이었다.
이들이 지금의 안휘성 숙현 남쪽인 대택향(大澤鄕)에 이르렀을 때
마침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길이 끊기게 되었다.
당시 기한을 어긴 자는 모두 참수형에 처해졌다.
모두들 기한을 넘기게 되었다며 크게 두려워했다.
진승과 오광이 장위를 죽인 뒤 무리를 모아놓고 이같이 선동했다.
“그대들은 모두 기한을 넘긴 까닭에 참수되고 말 것이다.
참수되지 않을지라도 수자리를 서다 죽는 자가 10명 가운데 6, 7명은 될 것이다.
하물며 장사(壯士)로 태어나 죽지 않으면 그뿐이나
이왕 죽을 것이라면 큰 이름을 내야 할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어찌 씨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무리가 모두 찬동했다.
곧 대택향을 공격해 점령하자 백성이 호응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진승과 오광이 차시환혼의 계책을 구사해 부소와 항연을 사칭하며
천하의 인재와 백성을 그러모으기 시작한 단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차시환혼을 잘 구사하면 단순히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미 소용이 없거나 생명이 다했다고
여기는 인물이나 물건에 주의를 기울이며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한고조 유방이나 명태조 주원장도 처음에는
시정의 건달이나 거리의 탁발승에 불과했다.
글쓴이:Pau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