備 忘 錄 (갖출 비/ 잊을 망/ 새길 록)
- 錄과 記는 같은 뜻이나 備忘記는 備忘錄와 쓰임이 다름 -
최규하 전대통령이 남겼을지 모르는 備忘錄의 존재 여부에 세인들의 관심이 주목된 적이 있었다. 그의 재임기간동안 12.12사태, 5.17, 518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으나 정작 당사자인 그는 이제껏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일절 함구해왔기 때문이다.
亡者(망자)는 말이 없으나 亡者가 남기는 備忘錄은 생생한 역사적 증언이 된다. 備忘錄이 비록 개인이 자신이 겪은 일을 사사로이 적어두는 것이기는 하지만, 備忘錄을 남기는 사람들은 대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던 이들이므로 그가 남기는 備忘錄 역시 공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는 현재에도 備忘錄을 공식 문서로 인정하고 있다.
備忘錄은 기억할 만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적는 것이 통례이므로 일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율곡 이이가 조정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석담일기]나 김성일의 막료였던 이로가 임진왜란 당시의 일을 기록해둔 [용사일기]도 일종의 備忘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날짜별로 적고 또 사건 중심으로 적었다 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기록자가 史官(사관)이고, 직책 수행을 위해 공적으로 적은 기록물들은 備忘錄이라 하지 않는다.
실록을 보면 備忘錄과 한자의 뜻이 거의 같은 備忘記(비망기)가 자주 보이는데, 이는 임금이 승정원을 통해 내리는 명령으로 備忘錄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備忘錄과 비슷한 말 가운데 聰明記(총명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남에게 물건을 보낼 때 그 물건의 목록을 적어두는 것이다. 이밖에 控帳(공장)이라고 불리는 기록물 역시 오늘날의 備忘錄에 해당된다.
忘의 亡은 ‘없어지다’는 뜻이므로, 忘은 마음속의 기억에서 없어져서 잊혀진다는 뜻이 된다. 근심을 잊게 한다는 뜻에서 술을 지칭하는 忘憂(망우), 사색에 잠겨 자신마저 잊었다는 뜻의 忘形(망형)의 忘이 그러하다. 혹 방탕한 사람을 일러 忘八(망팔)이라고 하는데, 이는 孝(효) 悌(제) 忠(충) 信(신) 禮(예) 義(의) 廉(렴) 恥(치) 등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잊고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忘과 부수의 위치만 다른 忙은 ‘바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備忘錄과 備忘記는 전혀 다른 뜻이지만, 錄과 記는 같은 뜻이다. 잡다한 기록이란 뜻의 ‘雜記’를 ‘雜錄’이라고도 하며, 날마다 기록한다는 뜻의 ‘日記’를 혹 ‘日錄’이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밖에 錄에는 ‘錄用’(녹용)의 경우처럼 ‘취하여 쓰다’는 뜻도 있다. 錄用되어 무엇을 맡는 것 역시 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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