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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 / 창세기 2:4-17
사람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머리카락 십만분의 일 크기의 나노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우주선을 만들어서 달나라도 가고 별나라도 갑니다. 저는 사람이 짓는 건물을 보면서 사람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은 63빌딩입니다. 63빌딩의 높이는 약 250m입니다. 대단하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63빌딩과는 비교가 안 되는 빌딩이 두바이에서 지어지고 있습니다. 삼성에서 짓고 있는 버즈두바이는 무려 160층이며 높이가 819m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두바이에서 1000m가 넘는 세계 최고의 빌딩 건조가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빌딩은 200층이 넘을 것이고 실제 높이가 1140m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빌딩에 사용될 엘리베이터는 매초 16.85미터로 승강하며 최상층까지는 약 1분정도가 소요될 예정입니다. 꼭대기 층은 지상에서 과연 보일지 의문입니다. 날씨가 맑은 날이 아니면 구름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듯합니다. 인간의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사람에게 이런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창조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창조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창조는 유에서 유의 창조로 무에서 유를 창조 하시는 하나님과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만드셔서 에덴동산에 두신 내용입니다.
6일 동안 세상의 온갖 것을 미리 만들어 두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마네킹처럼 뻣뻣하던 사람의 몸에 생기를 넣으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있었고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에덴은 굉장히 풍성한 곳이었습니다. 에덴에는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바닥에는 정금과 보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본질은 흙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이 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본질이 흙이라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아도 쓰러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이 몸에 들어가도 휘청거리고 죽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으면 죽든지 바보가 됩니다. 사람은 자기가 만든 자동차에 부딪혀서 장애자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흙이라 흙과 친합니다. 그래서 땅을 좋아하여 부동산 투기를 하고,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전쟁도 하는가 봅니다. 옛날에는 하늘인 남편이 땅인 아내에게 큰소리를 치고 살았는데 요즘에는 땅 값이 비싸서 하늘이 맥을 못 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성경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우리는 흙으로 변합니다. 흙으로 변한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약 4:14을 보면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합니다. 아침에 안개가 가득할 때는 굉장합니다. 비행기도 뜨지 못합니다. 서해안교속도로에 해무가 가득할 때 운전을 해보니 바로 앞 차선도 자동차도 안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안개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영원히 살 것 같아도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교만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가타(Vulgate) 성경을 번역한 제롬(St. Jerome)이 재미있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자마자 예수님께 “나 또 죽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 또 죽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나사로는 일생을 고지방에 가서 전도하며 헌신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병들어서 고침을 받아도 결국은 죽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어도 다시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약 5분 정도의 짧은 단막극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열심히 사는 주인공 청년이 무대에 서 있는데, 집배원이 와서 "편지요!"하며 편지를 던져 주고 갑니다. 얼마 전에 응시한 고등고시에 합격했다는 합격 통지서입니다. "야!"하며 좋아하는데, 또 집배원이 와서 편지를 던져줍니다. 청년이 짝사랑하는, 꿈에도 그리던 아가씨의 편지입니다. 아가씨도 청년을 좋아하니 결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또 집배원이 옵니다. 아들도 딸도 없는 큰 재벌인 삼촌이 모든 재산을 청년에게 준다는 편지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등고시에 합격했지요, 꿈에도 그리던 아가씨가 결혼을 하자고 하지요, 재벌이 되었지요. 그래서 흥분해 있는데, 또 집배원이 편지를 가지고 옵니다. '이번에는 또 무언가?' 하는 기대를 갖고 편지를 뜯어봅니다. 며칠 전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그 결과를 보냈습니다. 무서운 병에 걸려서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청년이 자기 머리를 뜯으며 "나는 망했다! 나는 망했다!"라고 합니다. 그때 연극이 막을 내립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경쟁을 합니다.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기뻐하며 그것으로 큰 자랑을 삼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은 절망하고 슬퍼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도, 재벌회장이 되어도 죽습니다. 경쟁에이긴 사람도, 경쟁에 진 사람도 다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죽음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자랑이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도 지혜의 삶이란 곧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는 말하지 못합니다. 철학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시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시어 영원히 사는 길을 여러분과 제게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음을 극복하고, 죽음을 준비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예수님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바꿈표였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은 마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땅의 삶을 접고 저 하늘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바꿈표의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겸손입니다. “나는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나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라는 겸손입니다.
사람은 흙입니다. 겸손 합시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 할지라도 본질이 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하나님 의지합시다.
2. 하나님의 손에 잡히는 것이 복입니다.
흙은 흔하디흔한 재료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잡히니 최고의 작품이 되고, 만물의 영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들이 많지만 사람만큼 위대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짐승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사람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면 너무나 연약하여 기가 죽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그 당시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손에 잡히니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쓸모없는 조약돌이 다윗의 손에 잡히니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도구가 되었듯이 하나님께 잡히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아주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를 하려고 하는데 지휘봉이 없어져서 나무젓가락으로 지휘를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지휘자가 잡은 것이 지휘봉이 아니라 나무젓가락이라고 단원들이 지휘자의 지휘를 거부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비록 나무젓가락이지만 지휘자의 손에 잡혀 있기 때문에 지휘자의 손에 잡힌 나무젓가락의 놀림에 따라서 연주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사용되면 내가 비록 나무젓가락 같은 인생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는데 흙으로 지어진 그 사람은 마네킹, 조각품에 불과했습니다. 백화점의 마네킹을 보십시오. 크고 날씬한 몸매에 몇 천만 원짜리 밍크코트를 걸치고 몇 백만 원짜리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아무리 멋있게 모션을 잡아도 별거 아닙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권력을 가졌어도 그 영혼이 죽어 있다면 그 사람은 마네킹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흙만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모양은 사람이지만 아무 의식도 없고 호흡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흙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후~” 하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들어가니 진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후에 사람의 영혼은 죽었습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말은 영혼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마네킹과 같은 흙덩어리인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불어넣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손에 잡히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들어가야 영생하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후~”하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힘을 얻어서 일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다니엘서 10장에 보면, 힘이 빠져 말할 기운도 없는 다니엘에게 인자 같은 분이 오셔서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라고 말씀하시니 다니엘은 힘이 솟아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옆에 계셔서 힘이 되시고 도와주실 뿐 아니라 친히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강한 힘을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업이 밑바닥에 있고 가정이 밑바닥에 있고 모든 것이 밑바닥에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힘을 주시면 우리는 일어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힘들고 고독할 때가 언제인지 설문 조사를 했더니 대부분이 대답하기를, 집에 가서 “엄마!”하고 불렀는데 엄마의 대답이 없을 때라고 했답니다. 시험을 못 친 때도, 배고픈 때도, 몸이 아픈 때도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의 대답이 없을 때 가장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배부르고 건강하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 있어서 그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공간은 오직 성령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고래는 한 시간에 한 번 수면 위에 올라와 산소를 들이키지 않으면 죽습니다. 고래는 물속에서 살기 때문에 바다 위의 세계에 대하여 아는 바는 없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다 위의 세계를 반드시 접촉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고래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하늘의 세계를 접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접촉해야 영적으로 힘이 생기고 행복한 것입니다. 성령님을 경험하는 것은 하늘의 세계를 접촉하는 것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셔서 사막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마 7:11에 보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히 11:6에 보면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에덴’의 뜻은 ‘큰 즐거움’입니다. ‘에덴동산’은 ‘큰 즐거움이 있는 삶의 터’입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수 강이 하나만 흘러도 좋은데 네 개나 흐릅니다. 그 네 강의 이름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얼마나 풍성한지 바닥에는 순금과 보석이 깔려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은 한 마디로 아름답고 즐겁고 모든 것이 갖추어진 지상 최고의 곳이었습니다. 70인 역에 보면 낙원(The Paradis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땅을 우리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만 주신 분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이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가 되니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좋은 에덴동산을 주셨지만 사람들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인하여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에 두지 않았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일이 없었을텐데...”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것은 우리가 로봇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아내가 로봇이면 어떻겠습니까? 집에 가면 녹음테이프를 켜 놓은 것처럼 아내가 늘 같은 음성으로 “어서 오세요. 저는 당신만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루 이틀은 재미있겠지만 10년, 20년 계속해서 어떻게 그 기계와 살겠습니까? 로봇이 아닌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는데,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를 따 먹고 싶은데 “나는 주님을 사랑해.”하며 주님 때문에 따 먹지 않을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욕망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기도회 시간에 찬양을 하는데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녔습니다. 제 근처에 앉으면 잡을텐데 제 앞을 싹 지나가서 멀리 앉아 있으니 찬송 중에 일어날 수도 없고 해서 가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은혜를 사모해서인지 설교 시간에 강대상 주의를 맴돌더군요. 설교를 하는데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설교자 마시라고 놓아둔 꿀컵에 들어갔습니다. 달콤하니까 컵 윗부분에 붙어서 먹더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더니 결국 컵에 빠져서 나오질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망했던 아담과 하와처럼 우리도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4. 하나님은 사람을 일 해야 행복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일이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동산에서 경작하며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의 뜻은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듯이 동산을 가꾸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낙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일을 하지 않고는 행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땅콩을 뽑으면 수십 개의 땅콩이 줄기째 딸려 나옵니다. 고구마를 뽑아도, 감자를 뽑아도 한 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몇 개씩 딸려 나옵니다. 이렇듯 일하면 기쁨, 보람, 축복, 물질이 다 따라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5:17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일하시는 분이시고,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살후 3:10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굶어 죽게 하라.’라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일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올 때도 기쁨으로 와야 되지만 회사에 출근할 때도 기쁨으로 출근해야 됩니다. ‘아, 일이 축복이지. 에덴에도 일을 주셨지. 감사합니다.’하며 열심히 일해야 됩니다. 일이 있으니 수입이 있는 것입니다. 일이 없으면 굶든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학생은 학교에 갈 때 기뻐야 됩니다. 학교 가서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잘 준비하면 더 밝고 풍성한 미래에 살게 될 것입니다.
직장생활도 자기 일처럼 하십시오. 그래야 좋은 결과가 있고 그래야 행복하고 그래야 전도도 되는 것입니다. 내가 종업원이라도 직장 일을 내 일처럼 하면 사장님도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인 집사님이 예수를 믿지 않는 남편에게 교회 가자고 졸라댔습니다. 교회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물었겠지요. 교회가면 천국에 간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교회 다니고 예수 믿으니까 천국에 가겠네”, “물론 천국에 가지요”, “나도 교회 다니면 천국에 가서 당신하고 살겠네”, “그럼요”, “그럼 나는 교회 안가” 그러더랍니다. 그 아내 집사님이 평소에 하는 것을 보니 천국 가서 아내와 또 만나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던가봅니다. 아내가 평상시에 잘 살았다면 아내를 봐서라도 교회에 갈겁니다. 여러분이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의 동료들에게 “예수 믿고 나하고 함께 천국 갑시다”라고 말했을 때 여러분의 동료들이 “천국이 당신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나 예수 믿어야 겠네요”라고 해야지, “당신하고 같이 천국가야 한다면 나는 안 갈래”라고 한다면 곤란합니다. 직장 일도 교회 일처럼 하고 교회 일도 직장 일처럼 하십시오.
일은 축복입니다. 일은 우리의 꿈을 실현 시키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꿈이 있어도 일하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꿈일 뿐이지 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키타라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릴 때 그의 아버지가 가출했습니다. 어머니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마키타, 너는 대학에 가야 한다. 엄마가 지금부터 네 대학 등록금을 예금하고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라. 그리고 돈을 벌어서 너랑 나랑 세계 일주를 하자.” 어머니가 그렇게 꿈을 불어넣어 주니 마키타도 세계 일주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벽에 “엄마와 나는 세계 일주를 한다”라는 글을 써 놓고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장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이모에게 말했습니다. “이모, 과자를 팔아서 돈을 모아 엄마랑 세계 일주를 할 거예요”, “그러면 가난한 동네에 가지 말고 부자 동네에 가서 팔아라. 그래야 많이 팔 수 있다”, 그는 이모의 말대로 뉴욕에서 제일 부자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 가서 오후에 두 시간 동안 매일 과자를 팔았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는 이 과자를 팔아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갈 거예요. 과자 한두 통만 팔아 주세요.” 어린 소녀가 여행을 가기 위해 과자를 팔고 있으니 얼마나 귀엽습니까? 부자들이 과자를 많이 팔아 주어서 그는 5년 동안 4만 2천 통을 팔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어머니와 함께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이것이 특집으로 방영되고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IBM 회사에서 그 어린 소녀를 불러 특강을 하게 했습니다. 특강을 하고 난 그는 거기에서 또 과자를 팔았습니다. 뉴욕에 본사를 둔 보험회사에서도 영업 실적이 좋은 세일즈맨 오천 명을 모아놓고 그에게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특강 후 강의를 한 기념으로 과자 한 통씩을 팔아 달라고 했습니다. 굉장한 아이입니다. 또 그는 무엇이든 잘 파는 방법에 대해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불티나게 팔려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화 되었습니다. 가난한 식당 종업원의 딸이지만 꿈을 갖고 최선을 다하니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자기의 본질을 알고 겸손합시다. 흔하디흔한 흙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잡히는 것이 가장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삽시다. 하나님은 사람을 일 해야 행복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일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서 주신 비전을 현실로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