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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여성시의 사적 고찰 1970년대
1970년대 한국현대여성시의 전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970년대의 한국문학이 보여주는 역사적 특성은 크게 두 가지 시가에서 이해된다. 하나는 거시적인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미시적인 시각이다. 전자에 따르면 70년대의 우리 문학은 이른바 해방 이후의 문학에 포함된다. 권영민 교수는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 단계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로 개화기시대, 둘째 단계는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로 일제식민지시대, 셋째 단계는 20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로 해방이후의 시대로 불린다. 이에 의하면 해방 이후의 우리 문학은 시대적 삶고 직접 대응하는 특성을 보여주며, 다시 해방에서 6.25에 이르는 시기에는 민족문학의 재확립, 50년대 초기부터 60년대 중반까지는 문학과 현실의 분열, 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문학적 자기발견과 사회인식이라는 특성을 보여 준다. 70년대의 우리 문학이, 거시적인 시각에 의하면 해방 이후의 문학에 포함된다는 말은, 좀더 부연하면 이 시대 문학의 특성이 해방 이후의 문학적 과제, 곧 분단적 상황과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시각인 미시적 시각에 따르면 70년대 우리 문학은 그 앞 시대인 60년대의 우리 문학을 배경으로 거느린다. 따라서 70년대 우리 문학의 특성은 60년대의 특성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60년대의 그것을 전제로 70년대 우리 문학의 특성은 과연 어떻게 규정되는가. 권영민 교수에 의하면 60년대 우리 문학의 특성은 한글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해 소시민적인 삶과 그 내면의식에 대한 추구작업을 전개한 점,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 자기 존재를 발견한다는 점으로 요약된다. 이에 비해 70년대 우리 문학의 특성은 이 시대의 정치적 상황변화와 산업화경향에 따라 더욱 첨예한 문학정신의 대립을 노정한다. 구체적으로 민족문학론의 재론, 리얼리즘 정신, 민족문학론, 분단논리에 대한 도전, 산업화의 부산물로서의 문학의 대중화현상, 사회적 계층의 빈부 격차와 그 갈등이 문학적 관심사로 등장하고,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같은 계간지를 중심으로 한 비평활동이 이 시기의 문학론의 방향을 주도한다. 시의 경우에는 언어적인 해체와 일상적 경험의 획득, 소설의 경우에는 분단현실과 상황문제를 포괄하면서 창조적 확대가 가능케 된다.
60년대와 대비되는 70년대 우리 문학의 이런 특성들은 다른 이론가들에 의해서도 지적된바 있다. 예컨대 신동욱 교수는 소설을 중심으로 70년대 우리 문학의 개성을 산업사회로 문제점을 제기한 것으로 요약한 바 있고, 조남현 교수는 시를 중심으로 70년대 우리 문학의 특성을 역시 산업사회적 속성에서 읽고 있다. 그에 의하면 70년대의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그에 따른 지식산업의 확대를 자져왔고, 현실에 대응하는 시의 역할 내지 기능을 재정립한다. 이런 재정립의 방법 가운데 하나로 전통 단절의 개념이 제기된다. 그것은 시형식의 개방을 모색하는바, 시어와 일상어의 동일시, 시의 산문화경향을 통해 무절제의 미학을 추구하게 된다.
70년대의 우리 문학이 보여주는 이런 현상들은 문학의 역사가 가치관의 갈등을 원동력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필자는 70년대의 우리 문학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성을 민족문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 이에 곁들인 민중문학의 확산, 산업시대적 특성, 새로운 실험문학의 개화 등으로 정의한 바 있고, 이런 특성은 모두가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다음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갈등을 일으킬 때 문학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다. 70년대 우리 문학의 역사적 특성을 규명하는 일은 앞 시대의 가치관과 다음 시대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수평적 관계, 나아가 같은 시대 속에 드러나는 여러 가치관들이 충돌하는 수직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70년대의 우리 시가 보여주는 일반적 경향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60년대의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며 나아가 변증법적으로 종합. 지양되는가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이런 측면에서 조남현 교수는 이 시대의 우리 시가 토대로 하는 원형질을 김춘수. 김수영, 박목월, 서정주로 잡은 바 있다. 이 가운데서도 70년대 우리 시의 역사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에 기여한 원형질은 김춘수의 시와 김수영의 시이다. 60년대의 이른바 순수/참여의 대립이 70년대에 오면서 어떻게 발전되며, 종합. 지향되는가 하는 문제는 구체적으로 김춘수류의 시와 김수영류의 시가 안고 있는 시적 성과나 한계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70년대는 삼선개헌의 여파와 유신체제에 의한 정치적 불안과 긴장 속에서 시작된다. 70년대 우리 시의 새로운 목소리는,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가치관의 갈등을 앓던 새세대들에 의하여 새로운 시적 특성들을 보여준다. 김재홍 교수에 의하면, 60년대 말부터의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사회. 경제적 모순과 부조리가 드러나면서 인간적인 평등과 소회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따라서 이 시대의 우리 시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민주화문제와, 사회. 경제적인 평등의 실현문제에 관심을 둔다. 7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민중시. 리얼리즘시는 70년대 민족문학론의 발전개념으로 나타나는 민중문학의 한 장르로서, 이른바 참여시의 새로운 양식으로 정립된다.
70년대의 우리 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성으로는,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할 때, 이른바 도시적 감수성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민중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새세대의 시인들이 민중이데올로기, 곧 소시민적 한계자각, 민중적 토대지향, 반민중적 세력에의 공격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지배당함으로써 시적 형식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됨에 비해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세대들은 그런 이데올로기로부터 한결 자유로운 상태에서 산업시대의 모순을 형상화한다. 70년대에 선을 보이는 김승희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특성들이 그렇다.
70년대의 새로운 세대들이 펴보이는 두드러진 특성으로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경향, 곧 민중지향성과 도시지향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경향을 강조한 것은 크게는 해방 이후의 우리 문학이 제기하는 이른바 분단문학적 속성, 작게는 70년대적 사회상황으로 규정되는 산업시대적 속성, 나아가 정치적 억압 등이 70년대의 우리 시가 놓이는 역사적 위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특성들은 60년대의 시세계와 대립되거나, 그것이 변증법적으로 발전된 현상으로 간주된다. 70년대의 우리 시, 그것도 새로운 세대의 시 가운데는 전통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것들도 많다. 전통적 감수성이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대체로 내용과 형식, 의식과 기법에 걸쳐 두루 보수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경향 속에는 우리 시의 전통을 변혁시키려는 의지보다 그것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앞선다. 전통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세대의 시인으로는 강은교(68)를 들 수 있다.
많은 시는 그동안 슬픔을 승화시키고 고독을 해체하여 처연한 서정성의 평화적 지평을 열어 주고 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여성 시인들은 구원과 화평의 시를 통하여 독자들의 처절한 정신적 황폐함과 시대적 아픔을 치유해 왔다.
김현자는 한국의 여성시를 ① 전통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 ② 지성적 명상적 자아탐구를 추구하는 시, ③ 사물 중심의 언어 감각을 특성으로 하는 시, ④ 일상서의 도입과 문명비판적인 시각의 시, ⑤ 현실과 사회, 역사적 수용을 중요시하는 시의 갈래로 나누었다.
그동안 시문학은 개인적, 주관적 성향이 뚜렷한 서정시 계열과 보다 지성적이며 절제와 함께 객관적 성향을 보여 주는 시로 발전되어 왔으며 여성시인들은 감정이나 정서의 환기를 주로 하는 시를 선호해 왔다. 또한 전통적인 한국 정서와 그 풍물에 적합한 민중정서, 특히 한국적 여성의 삶에 여성시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의 김승희, 강은교에 오면서 지성적이며 서구적인 단단한 서정과 비판의식 속의 섬세한 감각이 노래되었다. 1970년대의 새로운 시문학의 반란자요, 지극히 차가운 지성적 논리와 예리한 감수성으로 존재와 사회를 파괴해 온 김승희는 데뷔 이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의 미학을 통하여 절망과 죽음 속에서 탈출과 부활을 꿈꾸는 시인이다.
그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의 시 <그림 속의 물>로 등단하여 그동안 시집 <태양미사>(고려원,1979), <왼손을 위한 협주곡>(문학사상사,1983), <미완성을 위한 연가>(나남,1987), <달걀 속의 생>(문학사상사,1989),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세계사,1991)의 시집과 시선집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미래사,1991)를 발간하였다.
김승희는 ‘천재와 광기를 분별 있게 소유한 시인으로 이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노골적인 자기 고백으로 전위적, 파괴적, 해체적 시법을 일관되게 지켜 왔으며 고통과 낯선 것, 아주 생소한 것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비정함을 드러내며 슬픔의 뒤엉킴, 파괴의 현장, 아픔의 소리들로써 평화와 안식이 추방된 무너지는 삶과 불안, 전율, 공포 등의 시를 써 온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시에서 보이던 희랍적인 우주관과 서구 지향적 감수성에 경도된 이국적인 관념의 분위기는 두 번째 시집부터 엷어지면서 시대와 사회의 수평적인 삶 속의 대중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는 당당하고도 날카로운 예지의 시인으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였고 번뜩이는 재치와 예리한 분석, 넓게 자리한 지성으로 수필은 물론 최근에는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타페로 가는 사람>으로 소설 당선의 집념까지 불태운, 이야기가 많은 시인이다. 광기와 야성, 그리고 전율과 공포, 파괴와 분노, 고통과 고독의 절규를 통하여 일상의 삶을 부수고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며 부활을 열망하는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에서는 대부분의 시에서 만날 수 있는 위안과 평화가 추방되어 있다.
지성적인 재치가 번뜩이는 그의 시는 비판적 성찰을 닿아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 나타난 주제를 요약하면 ① 야성과 파괴, ② 광기와 현실비판, ③ 존재인식과 부활, ④ 탈출과 해방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기 파괴적 지성이라는 진솔한 자기내부의 증언을 통하여 문명적 부조리와 탈출에의 용기 없는 현대인을 비판하고 있으며, 자아 중심의 깨달음에서 탈출은 시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 시인으로서의 강렬성을 가지고 있다. 첫 시집 <태양미사>에서 보여지는 그리스 로마신화 에 대한 영향은 김승희의 창작과정에 깊이 관련되어 첫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에서는 개인사적인 고통과 절망 속에 문명비판과 현실비판을 노래하였으며 세 번째 시집 <미완성을 위한 연가>에서도 비극적 인식은 파괴와 부정의 정신으로 향하고 네 번째 시집 <달걀 속에 생>에 오면 뿌리 상실이 단독자로서 존재인식과 부활을 꿈꾸고 다섯 번째 시집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에서는 자아성찰을 출구로서 기존의 제도와 질서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산문집이 그러하듯 철저한 자기 해부적 증언을 통하여 광기와 파괴와 아이러니는 결국 새로운 삶과 세상 만들기의 선행과정이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투명하지만 따뜻한 정서를 거부하지 않는 가운데 허무의 시인으로 평가받아 온 강은교 시인은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허무집>(70년대 동인회,1971),<빈자의 일기>(민음사,1977), <소리집>(창작과 비평사,1982), <바람노래>(문학 사상사,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실천문학.1989), <벽 속의 편지>(창작과 비평사,1992)가 있고 시선집으로는 <풀잎>(민음사,1974), <붉은 강>(풀빛,1984), <우리가 물이 되어>(문학사상사,1986), <그대는 깊디깊은 강>(미래사,1991)이 있다.
그의 초기 시의 세계는 삶의 허무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낯설어 보인다. 놀라운 가운데 생동하는 상상력의 율동이 그 특성이 되고 있으며, 무속적 주술성이 고요한 광기로 세련되게 절제되어 있다. 삶과 세계 속에 묻혀 있는 허무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고 해명하는 그의 독특한 문학의 세계는 차츰 개인의 관념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작은 것에 보내는 애정과 공동체의식으로 확대되는 사회성을 가진다. 허무와 어둠, 세상보기의 객관성, 평정성, 여유 그리고 생명과 삶에 대한 인식은 진실과 공동체의식을 엮는 사회와 현실인식으로 확대된 것이다. 보잘 것 없고 부질없는 작은 생명에 보내는 뜨거운 관심과 애정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역동적인 삶과 사회에 대한 시인의 특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시는 무한한 상상력의 확대 속에 절제되고 품격 높은 투명함을 부여 주었으나 최근에 오면서 그는 수사적 장치를 거부한 채 철학적인 증언의 잠언으로 흐르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뛰어난 비유법에서 담담히 이 세상과 사람들을 노래하는 직설적 압축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강은교 시의 세계는 허무와 어둠을 바탕으로 하는 주술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의 허무는 바른 세상살기의 한 장치였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세상보기의 객관성과 평정성으로 공동체 삶의 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허무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인식하는, 살아 있는 자의 탈욕망의 가지를 늘어뜨리고 허무의 무성한 잎들을 즐거이 쳐다보는 시각 속에는 생명과 사랑에 대한, 특히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에 보내는 애정이 유별나다. 따라서 그의 허무는 생명과 사랑에 도전하는 치열한 세상 살기의 한 방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의 시는 산업사회의 경제적 발전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문명비판적 경향과 전통적인 여성적 정한의 세계에 내면의식과 인간실존의 문제를 그 내용으로 하는 부류, 동양의 습관적인 윤리와 묘사에 대한 자연의 질서에 대한 순응주의의 기교적인 묘사와 쉽게 격하거나 쉽게 수그리지 않고 사물의 양상에 대한 느낌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표현해 간 경향 등의 다양성을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승희는 정적표현보다 동적이며 지적인 표현이 그 특성을 이룬 가운데 직감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감각적 시각적 실리를 현실인식 속에서 심도있게 구현하고 있다. 그외 1970년대 활발한 활동을 한 시인들로는 노향림, 이해인, 황성이, 추명희, 전인순, 신효정, 박정남, 임영희, 이욕희, 고정희, 조정자, 조숙자, 이영춘, 국효문, 김승희, 배경란, 정혜승, 조남순, 황량미, 진경옥, 박송죽, 김수경 등이 있다.
노향림은 1970년 <월간문학>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이후 <역촌동 입구> <신생아실> <어떤 죽음> 등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은 <역사> <유년> <여름밤> <바람부는 날 > <교외> <1950년 여름> 등이다. 국효문은 197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기공>이 입선하여 문단에 등장했다. 임영희는 1973년 <풀과 별>에 <겨울국화>와 <기도문>이 추천되었다. 대표작으로 <겨울국화> <빈혈증> <병실> <식탁아 둘러앉아> <사군자> <기도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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