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金正恩)과 세 번째로 가진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 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에 합의하여 발표한 뒤 20일 서울로 귀환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은 서울 동대문 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귀환회견에서 “과거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이행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라면서 그것은 '정권 교체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 정부들이 들어선 뒤 10·4 선언을 이행할 의지가 없어서 제대로 안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6·15 선언’과 ‘10·4 선언’에 관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터무니없이 엉뚱한 주장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무엇이든지 잘못된 일은, 도나 개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이전 정권, 즉 직전의 박근혜(朴槿惠) 정권과 그 이전의 이명박(李明博) 정권이라는 두 보수·우익 정권의 탓이라고 비난하는 작태(作態)를 보이면서 소위 ‘적폐청산(積弊淸算)론'으로 이를 포장해 온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이번 소위 ‘6·15 선언’과 ‘10·4 선언’에 관한 그의 발언도 같은 맥락의 상투적인 '무조건 전 정권 탓하기' 발언의 하나이다.
우선, ‘6·15 선언’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자. 2000년 ‘6·15 선언’ 때의 정권은 김대중(金大中) 정권이었다. 그런데 2003년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 정권은 노무현(盧武鉉)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도 정치 성향이 더욱 친북·좌경 정권이어서 심지어 ‘종북’ 정권 소리를 들었던 정권이다. 그리고 그 노무현 정권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문재인 씨가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 때는 문제의 ‘6·15 선언’에 담긴 5개 항목의 ‘합의 사항’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행되거나 실천된 것이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20일 DDP 회견에서의 발언은 ‘6·15 선언’이 이행되지 않은 것이 “노무현 정권이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6·15 선언’을 이행하지 못한 책임은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권에게 있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 씨가 김정일과 합의한 ‘10·4 선언’의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책임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게 전가(轉嫁)하는 것도 천만 부당하다. ‘10·4 선언’은 ‘6·15 선언’보다도 더 원천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결정적인 하자(瑕疵)가 넘쳐나는 문건이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씨는 자신의 남은 임기를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강행한 평양 방문을 통해 소위 ‘10.4 선언’을 탄생시킨 데 이에 이어서, 이미 자신의 후임자를 뽑기 위한 제17대 대통령선거 운동이 이미 시작된 시점인 그해 11월14일 남북총리회담을 무리하게 강행 개최하고 여기서 엄청난 액수의 국민부담을 초래할 것이 분명한 ‘대북 경제협력 보따리’를 담은 ‘총리회담 합의서’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담긴 대북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타당성 조사도 되지 않은 것들이었고 이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는데 들어갈 국민부담 액수에 대한 현대경제연구소의 추산은 112억 달러 이상이었지만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비용 부담을 강요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무리한 행동에 대한 노무현 씨 자신의 설명은 “전임 CEO의 입장에서 일단 어음을 발행여 일을 저질러 놓음으로써 후임 CEO가 거절하지 못하고 이를 지불하게 만들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2007년12월17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당시) 후보 이명박 씨가 530만 표의 큰 표차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당시)의 정동영(鄭東泳)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권교체를 실현시킨 것은 맞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는 2008년2월25일 대통령 취임 이전인 21일 <동아일보>·<아사히신문>·<월스트리트저널> 등 3개 신문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소위 ‘10·4 선언’의 이행 문제에 관하여 솔로몬의 판결을 무색하게 하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이 회견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10·4 선언’에서 노무현 씨가 김정은에게 약속한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에 대하여 자신은 “4개의 기준(① 북핵 문제의 해결, ② 경제적 타당성, ③ 재정 부담 능력 및 ④ 국민의 동의)에 입각하여 프로젝트별로 심사하여 세 개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처리하겠다”는 복안(腹案)을 제시한 것이다. 즉 “①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실천하고, ②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시간을 두고 실천하며, ③ 타당성이나 경제성이 없는 것은 실천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복안’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모범답안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대북 경제협력 프로젝트들은 다른 것은 고사하고 계속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거듭된 제재 결의와 거듭된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로 인하여 햇볕을 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졌다. 북한은 2006년부터 도합 여섯 차례(2006.10.9., 2009.5.25., 2013.2.12., 2016.1.6., 2016.9.6., 2017.9.3.)에 걸쳐서 지하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대하여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11건의 대북 제재 결의(1695, 1718, 1874, 2087, 2094, 2270, 2321, 2356, 2371, 2375, 2397)를 채택하여 북한에 대한 일체의 경제협력을 봉쇄했다. 이 동안 북한은 금강산관광객 총격 살해 사건(2008.7.11.), 천안함 폭침(2010.3.26.), 연평도 포격(2010.11.23.) 등의 무력 도발을 자행하여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5·24 조치’를 단행하도록 만들었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소위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이행되지 못한 책임은 북한에 있었지 대한민국에 있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보다 원천적인 책임은 도저히 이행될 수 없는 엉터리 내용의 ‘합의서’들을 서로 결탁하여 우격다짐으로 만들어 낸 북의 김정일(金正日) 정권과 남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게 함께 묻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6·15 선언’과 ‘10·4 선언’은, 특히 대한민국 헌법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을 수용한 ‘6·15 선언’ 제2항 때문에 다 같이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違憲) 문건이라는 결정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헌적인 ‘6·15 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다짐한 ‘9·19 평양선언’ 또한 같은 이유로 해서 위헌 문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불량품(不良品)’을 상품화하여 북한의 핵 사기극을 도와주는 ‘방물장사’ 행각을 벌이기 위하여 평양 방문에서 돌아 와서 숨도 돌리지 않은 채 뉴욕으로 유엔총회 나들이 길에 나섰다. 그의 모순된 행각이 과연 미국과 국제사회에 의하여 받아들여질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