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군자는 사물에 대해 반드시 자신의 성정에 만족한 뒤에 취한다.
만일 그 사물이 마음에 들어 취하게 되면 그것을 이름으로 삼지 않는 경우가 없다. 예를 들어 소나무로 오솔길의 이름을 짓고 대나무로 헌(軒)의 이름을 짓고 회화나무로 당(堂)의 이름을 짓고 규화(葵花)로 서재의 이름을 짓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그 밖에 잡다한 풀과 이름 없는 나무 역시 매우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하물며 유아(幽雅)하고 담박(澹泊)하며 찬란히 홀로 빼어나서 영균(靈均)이 먹은 것과 팽택(彭澤)이 뜯은 것과 소릉(少陵)이 향기를 맡은 것과 소자첨(蘇子瞻)과 장흠부(張欽夫)가 읊은 것과 유몽(劉蒙)과 범지능(范至能)이 족보로 만든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속세를 벗어나 홀로 자유롭게 노니는 사람이 완미하여 마지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덕수(德叟)가 국화를 스스로 호로 삼은 까닭이다.
국화는 그 색이 누렇다.
이를 통하여 옹(翁)이 중정(中正)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국화는 또 그 냄새가 향기롭다. 이를 통하여 옹의 덕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가리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안다. 국화꽃은 봄에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에 피니, 봄날 햇볕이 화사할 때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려 한기로 서늘할 때 핀다.
이를 통하여 옹은 지조가 굳고 행실이 독실하여 시류에 혼탁하게 휩쓸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국화의 특성은 달고 부드러워 매우 맛이 좋다. 복용하면 허한 기운을 보충해 줄 수 있고 술에 띄우면 근심을 잊을 만하며, 주머니에 넣어 베고 자면 두풍(頭風)을 치료할 수 있고 물에 담가 마시면 불로장수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옹이 정신을 잘 길러 더욱 오래 살리라는 것을 안다.
내가 들으니, 그대는 목이 말라도 탐천(貪泉)의 물은 움켜 마시지 않고 더워도 악목(惡木)의 그늘에서는 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덕수가 이것을 버리고 장차 무엇을 좇겠는가. 그윽이 혼자 있을 때와 정숙하게 지낼 때에 여기에서 노닐고 여기에서 쉬며, 여기에서 머물며 시를 읊조린다면, 그 농염하고 화려한 꽃들이 고관대작과 부귀한 사람의 눈앞에서 현란히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과는 그 기상이 같지 않을 것이다.
옹의 성은 신(辛)이요, 휘는 윤조(潤祖)요, 영산현(靈山縣) 사람이니 덕수는 그 자이다. 아버지와 형은 모두 문덕(文德)으로 벼슬이 재추(宰樞)에 이르렀다. 옹 역시 청렴과 부지런함으로 여러 번 현달한 관직을 역임하였다. 지난 갑오년(1474, 성종5)에 제용감 첨정(濟用監僉正)으로 있다가 보성 군수(寶城郡守)로 나가게 되었다. 옹이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늘그막에 향리의 소아(小兒)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벼슬하지 않고 은둔하여 마침내 국화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