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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말씀/ 고린도전서 15:34-58 요절/ 고린도전서 15:51,52 | 2023. 4. 16 | |
부활절 특강 제 2 강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무너지고 우리의 믿음은 헛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가르쳐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이 부활의 영광을 보고 사망권세를 이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혹시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며 신자의 부활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죽으면 시신은 썩고 분해되어서 앙상한 뼈만 남습니다. 뼈조차 갈아서 강물에 뿌리기도 합니다. 사고로 인해서 신체가 산산조각이 되거나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죽으면 우리 몸은 해체되어서 흩어집니다. 이런 몸이 부활할 수 있을까요? 태아로 죽은 사람도 있고 어릴 때 죽은 사람도 있고 청년의 때에 죽은 사람도 있고 늙어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죽는데 부활하게 되면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될까요? 부활의 몸이 있다면 혼란이 있을 것 같아 부활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부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땅에 뿌리는 씨의 비유를 통해서 몸의 부활을 설명합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땅에 뿌린 씨앗은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뿌린 씨앗이 죽어서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순간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옵니다. 그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어서 몸이 해체되어 흙으로 바뀌어도 그 생명은 우리의 영혼 속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잠자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땅에 씨앗을 뿌릴 때는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입니다. 씨앗만 보면 장차 어떤 형체를 가질지 알 수 없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앗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납니다. 누가 호박씨에서 호박꽃이 피어날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아주 작은 겨자씨에서 큰 나무가 나올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작은 씨에서 꽃을 피우고 큰 나무가 나오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에는 장래 형체를 보장해주는 DNA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에 씨앗이 떨어지면 전혀 다른 형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 뜻대로 각 종자에게 새로운 형체를 주십니다.
우리 몸의 부활도 씨앗의 원리와 똑같이 작용합니다. 부활 때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완전히 다릅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몸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운동선수의 몸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발레리나의 몸을 선택하겠습니까? 성형수술을 할 때에는 연예인들의 얼굴과 몸매를 선택해서 그 모습대로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 때 우리의 몸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신비스럽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화학자들에 의하면 7년 주기로 우리 몸의 분자 구성이 완전히 바뀐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합니다. 몸은 변해도 한 인격체로서 ‘나’라는 본질적인 존재는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몸으로 부활해도 각 사람의 존재와 기억과 개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알아볼 수 있고 가족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와 동료와 후배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서로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래 부활의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내면의 모습과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부활의 형체를 주시되 이 땅에서 어떤 성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형체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며 깨어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체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큰 머리와 긴 팔과 섬세한 손과 튼튼한 다리를 주셨습니다. 짐승에게는 잘 달릴 수 있도록 네 다리를 주셨습니다. 새에게는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셨습니다. 물고기에게는 물에서 헤엄치며 살 수 있도록 비늘과 지느러미를 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는 빛을 발하는 해와 달과 별들을 가리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 또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영광이 각각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릅니다.
죽은 자와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부활할 때에는 우리 몸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변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서 부활할 때의 영광도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북두칠성처럼 빛날 것이며, 어떤 사람은 보통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인간의 모습과 부활 후의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42-44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이 있느니라.” 이 땅에서의 우리 몸은 썩고 욕되고 약한 몸, 육의 몸입니다. 사실 우리 몸은 시간이 갈수록 썩어가고 있습니다. 전라도에서 상대방에게 욕할 때 ‘썩을 놈’이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이 말대로 인간은 썩을 존재입니다.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피부관리를 하고 보톡스 주사를 맞고 성형수술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젊음을 유지하고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잠시 노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자연법칙을 따라서 조금씩 해체됩니다. 탄력 있는 몸매는 느슨해지고 배는 나오고 피부에는 기미와 주름이 생깁니다. 단단했던 뼈와 근육은 약해져서 풀어지고 구부러집니다. 결국에는 늙고 쇠약해져 한 줌 흙으로 사라집니다.
또한 현재 우리 몸은 욕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서 영광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욕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인생을 소망하지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부끄러움과 허물 뿐입니다. 내가 왜 그때 그랬는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죄의 소욕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작심삼일이고 많은 시간을 게임에 허비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 몸은 약합니다. 우리 몸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약합니다. 헬라인들은 훈련을 통해서 완벽하게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을 자랑했습니다. 다비드상, 비너스상과 같은 몸매를 만들고자 애를 썼습니다. 오늘날에도 남성들은 초콜릿 근육을 만들어서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런 남성들도 감기만 걸려도 기침하고 누워서 신음합니다. 40세가 넘어가면 하루 밤만 잠을 못자도 다음 날 직장에서 졸고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현재 우리 몸은 육의 몸입니다. 육의 몸을 가진 우리는 육의 지배, 본성의 지배를 받습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목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합니다. 몸의 욕구를 끊임없이 들어주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육의 몸을 가지고 있기에 한계에 갇혀 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을 가지게 됩니까? 썩고 욕되고 약한 몸, 육의 몸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됩니다. 그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항상 탱탱하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기미나 검버섯이 나지 않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상처도 나지 않습니다. 부활의 때에는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영광이 충만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강철처럼 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병원이 없습니다. 또한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면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임영웅처럼 노래를 잘 할 수 있고, 장구의 신 박서진처럼 장구도 잘 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되면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5-49절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우리가 어떻게 부활의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첫 사람 아담은 성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첫 조상이 된 것처럼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이 먼저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입니다. 첫째 아담이 둘째 아담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있었습니다. 먼저 육의 사람을 거친 후에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 아담은 땅에서 나고 흙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죽을 운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났기 때문에 그 분은 영원한 분이십니다.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흙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저 하늘에 속한 사람의 속성을 몸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됩니다. 새로워진 모습이 그 얼굴에 잘 나타납니다.
우리는 썩어질 외모보다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이들수록 더욱 진실하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지혜롭고 용기 있고 유머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먹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생명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 때 노년이 되어도 생명력이 넘치고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때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온전히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하나님 나라에 살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 날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혈과 육을 지닌 인간의 몸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다자인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썩기 때문에 이런 몸으로는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살려면 반드시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51,5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비밀을 전해줍니다. 그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영적인 잠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영적인 잠을 자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때 천군천사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을 불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었던 성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서 부활의 새로운 몸으로 홀연히 변화됩니다. 그 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됩니다. 그 날에 우리는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몸을 입게 됩니다. 그 날은 믿는 자들에게는 승리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최후심판의 날입니다. 큰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성도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이 땅에서 함부로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어떤 말씀이 이루어집니까? 54,55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을 때 이사야 25장 8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말씀이 성취됩니다. 또한 호세아 13장 14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때까지 사망은 인류 위에 왕 노릇해왔습니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모든 인간은 사망이 쏘는 죄의 세력에 넘어지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죄는 율법의 힘을 등에 업고 우리를 억누르고 정죄와 무력감과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죽음 권세를 박살내셨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마다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모든 악의 세력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시련과 문제와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5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흔들리기 쉽고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장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자기 일에는 열심이지만 주님의 일에는 인색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과 염려로 인해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장차 부활의 몸을 이루는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죽으면서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유언했습니다. 사람은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할 일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힘써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목자들은 자녀들로부터 교회 일보다 가정 일에 더 힘써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동안 주의 일에 충성했으니 이제부터 가정에 더 충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르신 날까지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것은 주의 일이요 생명구원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청년의 때 뿐만 아니라 장년의 때, 몸에 기력이 떨어질 때에도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이야말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요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유산을 남겨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주님께서 맡기신 영혼들을 돌보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데 더욱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