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선집은 나는 처음으로 본다. 청계천의 어느 서점에서 쌓여있는 헌책들을 보다가 눈에 띈 고서이다. 청록파 시인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과 더불어 서정주의 4인 공동시집이다.서정주는 청록파 시인이 아니다. 청록집이 1946년에 간행되면서 청록파 시인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제3권이라고 되어있는데 그 이전에 제1권과 제2권이 있다는 결론이다. 한국현대시선집을 내면서 시대별로 나눈 시선집일 것이다. <산우집>이라는 표제명은 바로 조지훈의 시선집 표제이다. 산우집은 귀한 책임에 틀림없다. 시중에 쉽게 유통되는 책이 아니다.
서정주는 <밀어>라는 표제로 문둥이, 화사, 대낮, 정오의 언덕에서, 고을나의 딸, 봄, 부흥이,살구꽃 필 때, 설음의 강물, 바다, 서풍부, 멈둘레꽃, 소곡, 만주에서, 수대동시, 귀촉도, 거북이에게, 꽃, 노을, 목화, 골목, 견우의 노래,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부활, 밀어, 저녁 노을처럼, 신록, 다시 풀리는 한강가에서, 무제, 추천사, 국화 옆에서
조지훈은 <산우집>이라는 표제에 봉황수, 고풍의상, 승무, 향문, 율객, 석문, 낙화, 파초우, 완화삼, 피리를 불면, 고목, 정야, 영, 마을, 달밤, 호수, 산, 고사, 앵음설법, 밤, 창, 풀잎단장, 암혈의 노래, 눈오는 날에, 꽃그늘에서, 바램의 노래, 불타는 밤거리에(27편)
박목월은 <구름밭에서>라는 표제로 산색, 나그네, 사슴, 청노루, 삼월, 간이역, 밭을 갈아, 산이 날 에워싸고, 산, 수선, 모춘저음, 안타까움, 임1, 임2, 축령산, 불국사, 도화, 가을, 길처럼, 윤사월, 연륜, 산 그늘
박두진은 <청산도>라는 표제에 햇볕살 따실 때에, 해, 훨훨훨 나래 떨며, 들려오는 노래 있어, 해의 품으로, 향현, 별, 흰 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푸른 하늘 아래, 설악부, 묘지송, 어서 너는 오너라, 장미의 노래, 샘이 솟아, 청산도, 청산에, 산아, 도봉, 비들기, 하늘, 오월에, 나무처럼, 바다 1, 해수, 바다 2 등이 실려 있다.
한편 조지훈은 시선집 <산우집>을 내면서 서문을 붙였는데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요즘 저윽이 생각하는 바 있어 흩어지는대로 버려 두었던 지난 날의 시를 모아 한 권의 책을 엮고 <산우집>이라 이름지었다. 이는 고달픈 영혼을 이끌고 방황하던 나의 모습이 비오는 산길을 홀로 가는 나그네와 같이도 느껴지기 때문이니, 이 아득한 한 줄기 羈旅의 情調에 내 시의 고향이 있었던가 보다. 이 책은 내 시의 연륜을 헤아리기 위해서 편서를 작품연대순으로써 정하고 詩境의 변동이 있을 때마다 금을 그어 오부에 나누었다. 그 가장 오래된 것은 열아홉 때 처녀작으로 지은 古風衣裳이오. 그 가장 새로운 것은 해방후 작품으로 단 한 편을 넣은 <불타는 밤거리에>이다.
스스로 돌아보아 초라한 시편일망정 여기 내 인간성의 슬픈 얘기가 숨어 있기에이 27편의 시를 결국 1938년부터 1945년까지 8년간의 나의 서글픈 역사일 수 밖에 없다. 최근 몇 해 동안의 작품을 편외에 둔 것은 따로이 한 권 엮을 날을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己丑(1949) 첫 겨울 趙芝薰 씀
조지훈 시인의 대표작 <승무>를 보자.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臺에 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煩惱는 별빛이라
휘여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은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合掌인 양 하고
이 밤사 귀뜰이도 울어 새는 三更인데
얇은 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