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제향 아헌관을 마치고
한증막에 들어온 듯한 무더위가 새벽부터 온 세상을 뒤덮었다.
이처럼 무더운 날, 아버지 영조대왕과의 오랜 갈등 끝에 뒤주에 갇혀 여드레 만에 생을 마감하신 사도세자의 제향에 아헌관으로 제수되는 영광을 안았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성군 정조대왕을 낳으신 국본(國本)의 부모이시다. 두 분을 모시는 제향에 직접 참례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자 무거운 책임이었다.
예행연습에 늦지 않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목욕재계한 뒤 융릉으로 향하였다. 제향 절차는 우리 문중의 제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국가 제향답게 규모가 웅장하고 참여 인원이 많아 한층 더 엄숙한 분위기였다.
특히 제단에 오르기 전 계하에서 오랫동안 꿇어앉아 대기하는 시간은 쉽지 않았다. 끈적한 땀이 제복을 몸에 달라붙게 하여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불편하였다. 엄숙한 의식 속에서 아헌관으로서 그 불편함을 감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떠올랐다.
나는 비좁은 뒤주 속에 여드레 동안 갇혀 계셨던 사도세자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분께서는 무더위보다도 인간으로서 겪으셨을 모멸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견디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의 신체적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고, 끝까지 의식을 정성껏 수행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다. 이씨왕조 부원군댁을 대표하여 참례한다는 사명감과, 풍산홍씨 후손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사히 제향을 마칠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
돌이켜보면 이처럼 국가의 큰 제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더욱 겸손한 마음과 낮은 자세로 황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처신하고, 풍산홍씨의 명예를 드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2026년 7월 12일
풍산홍씨대종회총무이사 홍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