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장 1-8절. 바울이 죄수로 배를 타고 로마로 출발함. 요약설교
1절.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우리’란 바울과 함께 로마까지 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즉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와 2절에 말씀한 ‘아리스다고’를 포함한 바울의 동행자들을 가리킵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로마 감옥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습니다( 골 4:10, 몬 1:4)
2.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가이사랴 부대는 ‘군단’(legion)인데 총독이 ‘군단장’으로서 6천 명의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총독 밑에는 6명의 천부장들이 있었고, 천부장들 밑에는 10명의 백부장들이 있었습니다. 3. <다른 죄수 몇 사람>이란 바울과는 다른 종류의 형사적인 범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죄수들은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으로 처형당할 죄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수들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모두 구원받게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1. 아시야 해변 각처로 가려하는 아드라뭇대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이 ‘아드라뭇대노’ 배는 ‘알렉산드리아’ 호처럼 곡물 수송선 같은 큰 배가 아니고, 여행객들만을 아시아 해변 각처로 실어다 주는 여객선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시아 해변 각처’란 가이사랴 항구에서 북쪽으로 에베소 항구까지 소아시아 서쪽 해변에 위치한 항구 도시들을 가리킵니다.
지중해로 말하자면, 동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들을 말합니다.
이전에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자유의 몸으로 이 해변 도시들을 거쳐서 남쪽으로 가이사랴까지 갔으나, 이제 27장에서는 죄수의 몸으로 이 해변 도시들을 북쪽으로 지나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2.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이란 마게도냐 지방(province)의 데살로니가 도성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그 후로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서 전도하던 중, 아데미 우상숭배자들이 큰 폭동을 일으켰을 때, ‘가이오’와 함께 바울 대신에 폭동의 현장인 연극장으로 끌려가서 죽을 뻔했던 사람입니다(행 19:29).
그 후로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까지 갔다가 사도행전 20장 4절에 기록된 대로 거액의 구제 헌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에까지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이후에도 ‘아리스다고’는 로마 감옥에까지 바울과 동행했습니다( 골4:10).
그러므로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함께 약 5년간이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55-60년경).
3절.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1. 이튿날 시돈에 대니
가이사랴에서 출발한 배가 북쪽으로 약 90킬로를 항해하여 시돈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랴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배가 온종일 항해하여 시돈 항구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 ‘시돈 항구’는 ‘두로 항구’와 더불어 한 때는 지중해 해상 무역을 석권했던 유명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는 두로가 멸망할 때, 모든 나라 왕들과 상고들과 선원들이 놀라서 울고 탄식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겔 27:2, 28:2).
이처럼 시돈 항구는 큰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여객선인 ‘아드라뭇대노’ 배가 이곳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예부터 한 나라로서 ‘베니게’ 즉 페니키아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바알 우상 숭배의 본거지로서,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친정 나라 도성이었습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의 본고장이었던 두로와 시돈 지역도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예루살렘 핍박을 피해서 도망간 성도들이 전도해서, 시돈에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시돈에 도착하자 시돈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을 영접하고 대접을 했습니다.
이 시돈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할 때, 그 핍박을 피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성도들이 가서 전도하고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 부근의 두로 교회와 돌레마이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돈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을 무지하게 핍박했던 바울을 사도로서 만나게 되어, 바울을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2.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원래 죄수는 흉악범이기 때문에, 항상 군사들이 도망을 못 가게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경우에는 죄 없는 죄수라는 것을 백부장 율리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백부장 율리오는 가이사랴에서 재판할 때, 벨릭스 총독 재판, 베스도 총독 재판, 아그립바 왕의 재판을 통해서 바울이 죄 없는 죄수임을 잘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총독이 황제에게 보내는 상소문에도 바울이 형사적인 죄를 범하지 않았고, 오직 종교 문제로 황제에게 호송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율리오는 바울이 훌륭한 인격자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시돈 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오라고 자유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돈 교회 성도들도 과거에 예루살렘 교인들을 핍박했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변화되어 전도자가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하여 얼마나 많은 이방인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던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돈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위하여 죄수가 된 바울을 통해서 은혜의 말씀을 듣고, 또 바울을 잘 대접했던 것입니다.
4절.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1. 바울 일행이 시돈 항구에 도착하여 백부장 율리오의 호의로 시돈 교회 성도들을 반갑게 만나본 후에, 다시 시돈 항구를 떠나서 배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시돈 항구에서 북쪽으로 항해하려는데, 서북쪽에서 맞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이 바람은 보통 바람이 아니고, 추분이 지나면 북쪽의 히말라야산맥에서 차가운 북서풍이 남쪽으로 지중해를 향해 엄청난 위력으로 불어닥쳤습니다.
그런데 이 바람은 북쪽의 높은 히말라야 산맥을 타고 남쪽의 낮은 지중해 바다로 내리치기 때문에, 중간에 진공 현상이라는 푄(phoen) 현상이 생겨서 지중해 바다는 높은 물결이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겨울이 다가오면 지중해는 항해하기가 매우 위태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는 추분이 막 지났으므로 북쪽에서 불어닥친 맞바람을 맞아서 북쪽으로 항해하기가 어려우므로, 구브로 섬의 해안을 의지하여 항해하려고 구브로 섬 남쪽으로 바람을 피해 항해해 갔습니다.
이 구브로 섬은 안디옥의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서,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군사기지로 유명한 키푸로스(Cyprus) 섬입니다.
5절.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1. 구브로 섬의 북쪽에는 길리기아 지방의 앞바다와 밤빌리아 지방의 앞바다가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탄 배는 구브로 섬 동쪽 연안을 지나서 북쪽의 길리기아 앞바다와 밤빌리아 앞바다를 지나서 더 북쪽의 루기아 지방의 무라 항구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무라’ 도성은 사도행전 21장 1절의 바다라 항구에서 동쪽으로 80킬로 떨어진 곳입니다.
이 바다라 앞바다에는 ‘로도’ 섬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배는 원래 바다라 항구에 가고 싶었을 것이나 북서풍 때문에 바다라까지 가지 못하고 ‘무라’ 성에 정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아드라뭇대노 배는 무라 성에서 더 북쪽으로 바다라-로도-고스-밀레도-사모-기오-미둘레네-앗소-드로아까지 운행하는 여객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솔자 율리오 백부장은 무라 시에서 로마로 가는 배로 갈아탔습니다.
6절.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1. 무라 항구 도시에서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들을 로마 황제에게 인솔해 가야 하기 때문에, 여객선 아드라뭇대노 배에서 내려 이탈리아로 가는 대형 곡물 수송선인 ‘알렉산드리아’ 배로 바꾸어 타도록 했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배는 애굽의 최대 도성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중해 각처로 곡물을 수송해서 파는 곡물 수송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배로서는 가장 큰 배에 해당했고, 곡물뿐만 아니라 276명이 승선할 수 있는 큰 배였습니다.
7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1. ‘알렉산드리아’ 배가 무라 성에서 출발했으나 북서풍이 휘몰아쳐서 여러 날이 걸려서야 비로소 니도 맞은편에 도착했습니다.
이 ‘니도’는 로도 섬 북쪽이고, 바다라보다 더 서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배는 원래 서쪽으로 항해해야 하는데, 당시에 북서풍이 너무나 강하게 불어서 원치 않는 니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배는 니도를 떠나서 간신히 그레데 섬으로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그레데’ 섬은 헬라 반도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서 옛날에 크레타 문명으로 유명한 섬이었습니다.
원래 블레셋 사람들이 이 그레데 섬에서 팔레스틴으로 이주해왔는데, 일찍이 철기 문화가 발달해서 사울 시대까지 팔레스틴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배는 북서풍이 휘몰아쳐서 정상적인 항해를 하지 못하고, 간신히 그레데 섬의 동쪽에 있는 살모네 항구를 지나서 남쪽 연안으로 피해서 ‘미항’이라는 곳에 정박할 수 있었습니다.
8절.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1. ‘미항’이라는 항구는 그레데 섬의 남쪽 중간 지점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여기서 ‘미항’이란 원문(Καλοὺς Λιμένας)에 <칼루스 리메나스>로서 ‘아름다운 항구’라는 의미로 미항(fair havens)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라새아’는 살모네 항구와 미항 중간에 있는 도성이었는데 미항에 더 가까왔습니다.
그런데 이 미항이라는 곳은 알렉산드리아 호와 같이 큰 배가 머물기에는 비좁은 항구였습니다.
배가 정착하기도 비좁고 또 27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숙박하기도 비좁은 항구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영적 선견지명으로 미항에서 겨울을 나야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율리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뵈닉스’ 항구로 가려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죄 없는 죄수로 로마로 호송되어 가면서,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에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바울이 아시아 해변 각지와 시돈 교회를 심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늘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불신자들조차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고 인정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