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나체들
정리 글김광한
책소개
<일식>으로 일본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천재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얼굴 없는 나체들』. 인터넷 사회의 본질과 현대인의 정체성을 파헤친 이 작품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기묘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남자와 육체관계를 맺는 지방도시의 중학교 교사 요시다 기미코. 평범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내심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그와의 관계에 점점 빠져든다. 어느 날 그녀는 성인 사이트에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진 자신의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한낮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세상을 경악시킨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도 사진 속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는데….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가
1975년 6월 22일 아이치 현 출생.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신세대 작가이다. 명문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1998년 문예지 '신조'에 투고한 소설 '일식'이 권두소설로 전재되고, 다음해 같은 작품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再來’라는 파격적인 평과 함께 일본 열도를 히라노 열풍에 휩싸이게 하며 출간 직후 일본 내에서만 40만 부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9년 메이지 시대를 무대로 젊은 시인의 탐미적인 환상을 그려낸 두번째 소설 '달'을 발표한 이후 3년여 동안 침묵을 지키며 집필을 계속해, 2002년 19세기 중엽의 파리를 배경으로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을 그려낸 대작 '장송'을 완성한다. 같은해 특유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시각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바라본 산문집 '문명의 우울'을, 2003년에는 이윽고 작품의 배경을 현대 일본으로 옮겨 젊은 남녀의 성을 세심한 심리주의적 기법으로 추구하는 등 실험적인 형식의 단편 네 편을 수록한 '센티멘털'(원제:다카세가와)을 발표한다. 2004년에는 더욱 심화된 의식으로 전쟁, 가족, 죽음, 근대화, 테크놀로지 등 현대사회의 여러 테마를 아홉 편의 단편으로 그려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을, 2006년에는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소재로 삼아 현대인의 정체성을 파헤친 '얼굴 없는 나체들'을, 2007년 소설집 '당신이, 없었다, 당신'을 잇달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문단의 젊은 천재 히라노 게이치로의 새로운 파격!
1999년 장편소설 『일식』으로 일본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화려하게 데뷔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또다른 문제작 『얼굴 없는 나체들』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일식』 『달』 『장송』의 ‘로맨틱 3부작’으로 이루어진 제1기에 이어 실험적인 형식의 작품집 『센티멘털』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 등을 발표하며 주로 단편 창작에 매진했던 제2기의 정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대낮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한 기묘한 사건을 제3자의 시선에서 기술하는 형식으로, 인터넷상과 현실 사이에서 한 개인이 겪는 괴리, 그 속에서 표류하는 인격과 성의식, 나아가 성에 눈뜨기 전 미숙한 사춘기 시절의 심리까지 되짚어가며 다소 파격적인 묘사와 필치로 ‘얼굴과 익명성’이란 주제와 현대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린 나체, 옷으로 몸을 가린 얼굴
이성과 욕망의 두 가지 얼굴,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가?
지방도시의 중학교 교사 요시다 기미코는 우연찮은 계기로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가타하라 미쓰루라는 남자를 알게 되어 육체관계를 맺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는 내심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그와의 관계에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성인 사이트에 모자이크로 얼굴이 가려진 자신의 나체 사진과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목격한다. 얼굴 없는 나체, 수많은 익명의 파도로 가득한 인터넷을 부유하는 사진을 보고도 사람들은 그녀의 정체를 몰랐다. 한낮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세간을 경악시킨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얼굴 없는 나체들』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인간의 본능과 가장 가까운 남녀의 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세계에서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영위하는 한편으로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억눌린 욕망을 발산하려 하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파헤친다. 이런 시도는 이미 전작 『방울져 떨어지는 시계들의 파문』에 수록된 「마지막 변신」에서 부분적으로 이뤄진 바 있으며, 뒤이어 발표한 장편 대작 『결괴』(2013년 국내 출간 예정)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히라노 작품세계의 큰 줄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마치 르포라이터나 논픽션 작가가 과거의 사건을 되짚어 설명하는 듯한 구성을 취해, 두 주인공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미친 심각하고도 우스꽝스러운 파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술하며 현대사회의 한 자화상을 그려내기도 한다. 3인칭 시점의 담담하고 건조한 문체는 오히려 등장인물과 사건의 성격을 한층 극명하게 보여주며, 특히 여주인공이 막 2차성징을 맞아 자신의 여성성을 자각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등에서는 호기심과 열등감이 미묘하게 뒤섞인 십대 소녀의 심리를 적확하게 그려내어 공감마저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