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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권 물산지(物産志) 총론(總論)
○ 마한(馬韓)에는 별다른 진보(珍寶)는 없으며, 금수(禽獸)와 초목(草木)은 대략 중국과 같다. 《삼국지》
○ 한양(韓羊), 한토(韓兎), 한계(韓鷄)는 본디 그 법이 한국(韓國)에서 만든 데에서 나왔다. 이는 술[酒]을 말하면서
의성료(宜城醪)니, 창오청(蒼梧淸)이니 하는 따위와 같은 것이다. 《석명(釋名)》
○ 《문선(文選)》에 나오는 조식(曹植)의 악부(樂府)에, “한별과 구운 곰발바닥 요리[寒鼈灸熊蹯]”라 하였는데, 그에
대한 이선(李善)의 주에, “유희(劉煕)가 지은 《석명(釋名)》에 ‘한양(韓羊), 한계(韓鷄)는 본디 그 법이 한국에서 만든
데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寒) 자와 한(韓) 자는 옛날에는 통용하여 썼다.” 하였다.
○ 이광려(李匡呂)가 지은 《자가록(資暇錄)》에 이르기를, “한별(寒鼈)은 지금의 돼지고기[䐗肉]로, 대개 한국(韓國)
에서는 음식을 만들면서 석육(腊肉)하는 법을 숭상한다.” 하였다.
○ 부여는 산과 구릉지와 넓은 연못이 많으며, 오과(五果)는 생산되지 않는다. 《삼국지》
○ 백제는 토지가 낮고 습하며, 기후는 따뜻하다. 오곡(五穀)과 각종 과일, 채소 및 술, 음식, 반찬, 약재 등은 대략 중국
과 같으나, 오직 낙타, 당나귀, 노새, 양, 거위, 오리 등은 없다. 《후주서》
○ 백제에는 오곡이 있고, 소, 돼지, 닭이 있으며, 사람들은 대개 화식(火食)을 하지 않는다. 《수서》
○ 백제의 풍토와 산물은 대부분 고구려와 같다. 《구당서》
○ 신라의 오곡과 과일, 채소, 짐승 등 물산은 대략 중국과 같다. 《수서》
○ 신라는 가축 가운데 양은 없고, 나귀는 비쩍 말랐다. 《신당서》
○ 《현람(玄覽)》에, “신라에는 양이 없고, 물길(勿吉)에는 소와 양이 없다.” 하였다.
○ 고려에는 양, 토끼, 낙타, 물소, 노새가 없다. 지역은 춥고 산이 많으며, 토질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하고,
잠사(蠶絲)가 적다. 《송사》
○ 고려는 산을 의지하고 바다를 굽어보고 있으며, 토질은 척박하고 돌이 많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곡식 종자, 삼을 길러
길쌈하는 이익, 소나 양 등의 가축을 기르기에 마땅하고, 여러 가지 좋은 해산물이 있다. 《고려도경》
○ 조선에는, 강동(岡桐)과 은주(銀朱)가 없다. 《현람(玄覽)》
○ 조선에는 날짐승으로는 꿩, 비둘기, 참새, 메추리가 많고, 들짐승으로는 고라니, 사슴, 노루, 포(麅)가 많다.
해산물로는 곤포(昆布), 해의(海衣), 여방(蠣房), 거오(車敖)가 있고, 생선으로는 금문(錦紋), 이항(飴項), 중진(重唇),
팔초(八梢), 잉어, 붕어 등이 있다. 특이한 물산으로는 필관(筆管), 산장(酸漿), 자근(紫芹), 백호(白蒿), 수료(水蓼)의 싹,
당귀(當歸)의 싹이 있고, 과일로는 배, 밤, 대추, 감, 개암[榛], 잣[松], 살구, 복숭아, 밀감[柑], 귤, 매실, 오얏, 석류,
포도가 있고, 가죽으로는 호피(虎皮), 표피(豹皮), 균피(麕皮), 녹비(鹿皮), 호피(狐皮), 학피(貉皮), 예피(皮), 초피
貂皮)가 있고, 꽃으로는 장미, 철쭉, 작약, 모란, 도미(酴釄), 정향(丁香), 산반(山礬), 앵두꽃, 오얏꽃이 있다.
○ 조선국의 토산으로는 금(金), 은(銀), 철(鐵), 석등잔(石燈盞), 황칠(黃漆), 과하마(果下馬), 장미계(長尾鷄), 봉밀
(蜂蜜), 초피, 예피, 장피(獐皮), 녹비(鹿皮), 해표피(海豹皮), 팔초어(八梢魚), 여방(蠣房), 귀각(龜脚), 죽합(竹蛤),
해조(海藻), 곤포(昆布), 메벼[秔], 기장[黍], 보리, 삼[麻], 송(松), 인삼(人葠), 백부자(白附子), 복령(茯苓), 유황(硫黃),
개암, 배, 밤, 핵도(核桃), 귤, 매(梅), 죽(竹), 차(茶), 목단(牧丹)이 있다. 《대명일통지》
○ 《청일통지》에, “조선의 토산으로는 백저포(白紵布), 면주(綿紬), 목면포(木棉布), 오조룡석(五爪龍席), 잡채화석(雜
彩花席), 백추지(白硾紙), 미(米), 녹비(鹿皮), 달피(獺皮), 칼[刀]이 있는데, 이상은 모두 조공(朝貢)으로 바친다.
또 금(金), 은(銀), 철(鐵), 석등잔(石燈盞), 수정(水晶), 소금[鹽], 낭미필(狼尾筆), 유매묵(油煤墨), 접선(摺扇), 황칠
(黃漆), 과하마(果下馬), 장미계(長尾鷄), 봉밀(蜂蜜), 초피(貂皮), 예피(皮), 홍표피(紅豹皮), 팔초어(八梢魚), 반어
(斑魚), 여방(蠣房), 귀각(龜脚), 죽합(竹蛤), 해조(海藻), 곤포(昆布), 메벼, 기장, 삼, 송(松), 인삼(人葠), 복령(茯苓),
유황(硫黃), 개암, 배, 밤이 있다.” 하였다.
○ 고려의 곡식 이삭은 화홍색(火紅色)으로, 계관화(鷄冠花)와 같다. 《성경통지(盛京通志)》
[주D-001]의성료(宜城醪)니 …… 따위 : 의성(宜城)과 창오(蒼梧)는 모두 중국의 지명이며, 요(醪)는 탁한 술을 가리키고
청(淸)은 맑은 술을 가리킨다.
[주D-002]문선(文選)에 …… 악부(樂府) : 조식이 지은 명도편(名都篇)을 가리키며, 《문선》 권27 악부 상에 나온다.
[주D-003]석육(腊肉) : 생강이나 계피 등의 양념을 섞어서 말린 고기포를 말한다.
[주D-004]오과(五果) : 복숭아, 오얏, 은행, 밤, 대추이다.
[주D-005]강동(岡桐) : 유동(油桐)을 말한다. 유동은 이른 봄에 담홍색의 꽃이 잎보다 먼저 피며, 열매가 크고 둥근데,
오동나무 기름을 짠다.
[주D-006]은주(銀朱) : 안료(顔料)의 이름으로, 주사(朱砂)를 정제하여 만들기도 하고,
혹 유황(硫黃)을 수은(水銀)에 섞어서 가열하여 만들기도 한다.
[주D-007]포(麅) : 큰 사슴을 말한다. 《조선부》 자주(自注)에, “포는 노루와 같은데,
뿔이 하나이고 그 고기는 매우 맛있다. 산에서는 포가 나지 않는다.” 하였다.
[주D-008]곤포(昆布) : 《조선부》 자주에, “곤포는 종려나무 잎과 같이 생겼는데, 녹색이다.” 하였다. 《재물보(才物譜)》 권7 물보(物譜) 2에는, “동해에서 나는데, 잎의 크기가 손만 하며, 황흑색이다. 우리말로 ‘곤포’라 한다.” 하였다.
[주D-009]해의(海衣) : 김이다. 《조선부》 자주에, “해의는 자채(紫菜) 즉 김과 같은데, 크다.” 하였다.
《재물보》 권7 물보 2를 보면 “해의는 자채(紫菜)의 속명(俗名)이며, 우리말로는 ‘짐’이라 한다.”고 하였다.
[주D-010]여방(蠣房) : 굴을 말한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돌에 붙어서 자라는데, 돌이 쌓여 있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방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였다.
[주D-011]거오(車敖) : 대합조개를 말한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껍질은 자색이며 반점이 있다.
우리말로는 ‘큰죠개’라 한다.” 하였으며, 《물명고》 2에는 “껍질은 자색이며 반점이 있다.
이것은 조개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우리말로는 ‘대합조’라 한다.” 하였다.
[주D-012]금문(錦紋) : 《조선부》 자주에 “금문은 쏘가리[鱖]와 비슷한데, 몸이 둥글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뇌례
(牢禮)를 행하고 길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거기에 있었다.” 하였다.
[주D-013]이항(飴項) : 《조선부》 자주에, “이항은 피라미[鰷]와 같은데, 바싹 마른 것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뇌례를 행하고 길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거기에 있었다.” 하였다.
[주D-014]중진(重唇) : 《조선부》 자주에, “중진은 중국의 붉은눈고기[赤眼鯶]와 같은데, 입술은 말코와 같고 살은
매우 맛나며, 새끼는 석수어(石首魚)와 같은데, 작고 또 많다.” 하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동월(董越)이 말한 중진은 바로 눌어(訥魚)이다.” 하였고,
《재물보》 권7 물보 2에는 “우리말로는 ‘눕치’라 한다. 꿩이 변화해서 못 속에 살기 때문에 이렇게 명하였다.” 하였다.
[주D-015]팔초(八梢) : 문어를 말한다. 《조선부》 자주에 “바로 강절(江浙)의 망조(望潮)이며, 맛이 그리 좋지 않고,
그 큰 놈은 길이가 4, 5자가량 된다.” 하였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동월이 말한 팔초는 바로 문어(文魚)이다.”
하였으며, 《물명고》 2에서는 “오징어와 비슷한데 아주 크며, 여덟 개의 수염이 있다. 우리말로는 ‘문어’라 한다.”
하였고, 《재물보》 권7 물보 2에는, “장어(腸魚), 즉 낙지와 비슷한데 크다. 우리말로는 ‘문어’라 한다.” 하였다.
[주D-016]잉어, 붕어 : 《조선부》 자주에, “청천강(淸川江), 대정강(大定江), 임진강(臨津江), 한강(漢江)에 모두 있다.
붕어는 길이가 한 자나 되는 것도 있다.” 하였다. 대정강은 박천강(博川江)을 말한다.
[주D-017]필관(筆管) : 멸을 말한다. 멸은 삼백초(三白草)의 예스러운 말로, 삼백초과에 딸린 다년초(多年草)이다.
키가 15~35cm가량 자라며, 한방(韓方)에서는 중약(重藥)이라고 부르는데, 땅속줄기와 잎을 말려서 이뇨제나 구충제로
쓴다. 《조선부》 자주에 “필관은 싹을 먹는데, 맛이 미끈하고 달다. 그 잎은 알 수 없는데, 혹은 황정(黃精) 즉 둥굴레의
싹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지봉유설》에는 “동월의 《조선부》에서 말한 필관은,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살펴
보건대, 즙(蕺)을 필약(筆藥)이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중국 사람이 잘 모르고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주D-018]산장(酸漿) : 꽈리이다. 《조선부》 자주에, “산장은 잎이 뾰족하고, 줄기는 푸르거나 붉으며, 맛은 달고 시다.”
하였다.
[주D-019]자근(紫芹) : 미나리이다. 《조선부》 자주에, “왕도와 개성 사람들은 모두 집의 작은 못에 미나리[芹]를 심
는다.” 하였다.
[주D-020]백호(白蒿) : 물쑥이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연못가에서 자란다. 2월에 싹이 나고, 잎은 여린 쑥과 같
으며, 가지는 가늘고, 줄기는 적색이거나 혹은 백색이다. 잎의 표면은 청색이고 뒷면은 백색이며, 뿌리는 백색으로 약
하다. 뿌리와 줄기를 채취해서 날로나 익히거나 절이거나 말리거나 모두 먹을 수 있다. 우리말로는 ‘물쑥’이라 한다.”
하였다.
[주D-021]수료(水蓼)의 싹 : 물여뀌이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여뀌[蓼]의 한 종류라고 하면서, “물가에서 자라며,
잎은 마료(馬蓼) 즉 물여뀌와 비슷하고, 줄기는 붉다.” 하였다.
[주D-022]당귀(當歸)의 싹 : 《재물보》 권7 물보 2에, “우리말로는 ‘승엄초’라고 한다.” 하였다.
[주D-023]배, 밤, 대추, 감, 개암[榛] : 《조선부》 자주에, “배, 대추, 개암이 아주 많아서 어디를 가나 있다.” 하였다.
[주D-024]밀감[柑], 귤 : 《조선부》 자주에, “밀감[柑]과 귤은 전라도에서 난다.” 하였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밀감나무는 귤나무와 같으나 가시가 적다. 우리말로는 ‘감쑥’이라고 한다.” 하였다.
[주D-025]균피(麕皮) : 노루 가죽이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균은 큰 노루[獐]의 별명이다.” 하였다.
[주D-026]학피(貉皮) : 담비 가죽이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우리말로는 ‘담부’라 한다. 모양이 작은 여우와 같으며,
털 빛깔은 황갈색이고, 잠자기를 좋아한다.” 하였다.
[주D-027]예피(皮) : 들고양이 가죽이다. 《조선부》 자주에, “조선 사람들은 예피를 모른다.” 하였다.
[주D-028]초피(貂皮) : 담비 가죽이다. 《조선부》 자주에, “조선 사람들은 초피를 돈피라고 한다.” 하였다.
[주D-029]도미(酴釄) : 《물명고》 4에, “가지와 잎과 꽃의 모양이 모두 금사(金沙)와 아주 비슷한데, 가시가 많다.
흰 꽃이 4월 초에 피며, 향기가 짙어 정원에 심기에 좋은 꽃이다.” 하였다.
[주D-030]정향(丁香) : 우리나라의 특산종으로, 목서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이다. 키가 10m가량 자라며,
꽃봉오리는 약재로 쓰인다. 《재물보》 권7 물보 2에, “나무는 밤나무와 비슷하고, 꽃은 매화꽃과 비슷하며, 열매는
대추씨와 같다. 또 꽃이 자백색이라고도 하고 황색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정향이 아니다.” 하였다.
[주D-031]산반(山礬) : 《재물보》 권7 물보 2에, “나무의 키는 1자가량 되고, 잎은 치자나무와 비슷하며, 열매는 광택이
나고 굳고 단단하며, 우툴두툴하다. 겨울철에도 시들지 않으며, 정월에 꽃이 피는데, 꽃이 많이 피어 희기가 눈과 같다.
여섯 개의 누런 꽃술이 나오며, 매우 향기롭다. 열매는 크기가 가래만 하며, 익지 않았을 때에는 청흑색이다가 익으면
황색으로 된다.” 하였다.
[주D-032]백추지(白硾紙) : 《재물보》 권4 인보(人譜) 3에, “바로 백면지(白綿紙)인바, 고려에서 난다.” 하였다.
백추지는 신라 때에 만들어져 사용되던 종이로, 고려에 들어와서는 질이 더욱 세련되었다. 기록으로 보아 백추지는 순저
(純楮)로 만들어진 종이이며, 흰빛이 나고 질이 아주 훌륭하였다. 백추지로 된 서적으로는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가 있다.
[주D-033]낭미필(狼尾筆) : 《조선부》 주(注)에는 “《일통지(一統志)》에 조선의 소산(所産)으로 낭미필이 실려 있는데,
붓대는 작기가 화살과 같고, 붓털의 길이는 한 치 남짓하며, 붓끝은 뾰족하면서도 둥글었다. 물어보았더니 그것은 족제비
털[黃鼠毫]로 만든 것이지 여우 꼬리[狼尾]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하였다.
[주D-034]유매묵(油煤墨) : 법유(法油)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든 참먹을 말한다. 유묵(油墨)이라고도 한다.
[주D-035]접선(摺扇) : 접첩선(摺疊扇)을 말한다. 대나무나 상아를 가지고 부챗살을 만들고, 종이나 비단으로 부채면을
만들어 접을 수 있게 한 부채이다. 접는부채, 쥘부채라고도 한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금(金), 옥(玉), 주(珠), 석(石)
황금(黃金)
○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芮悉弗)이 말하기를, “황금은 부여(夫餘)에서 나고, 가(珂)는 섭라(涉羅)에서 납니다.” 하였다.
《후위서》
○ 생금(生金)을 단련하지 않고 사람이 먹을 경우 사람이 죽는다. 고려에서는 그릇을 만들어 이를 단련하여 익히는데,
먹을 수가 있다. 《명의별록(名醫別錄)》
○ 고려 홍주(洪州)의 동원산(東源山)에서는 금이 생산된다. 《고려도경》
○ 과자금(瓜子金)은 크기가 참외씨만 하고, 부금(麩金)은 밀기울 조각과 같이 생겼다. 《본초강목》
은(銀)
○ 은은 각처에 모두 있으나, 괵주(虢州)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고려에서 첩(帖)을 만드는 자들이 이르기를, “은광
(銀鑛)에서 나는 것이 아니나, 색깔이 푸르러서 괵주의 것만 못하다.” 한다. 《당본초(唐本草)》
○ 은은 외국의 것으로는 네 종류가 있는데, 신라(新羅)의 은, 파사국(波斯國)의 은, 임읍(林邑)의 은,
운남(雲南)의 은이 모두 정련되어서 좋다. 《보장론(寶藏論)》
○ 원 세조 지원(至元) 26년(1289, 충렬왕15)에, 고려국에 은이 많이 산출된다고 해서, 공인(工人)을 그 지역으로 파견
하여 근방의 백성들이 제련하는 것을 도와 관부(官府)로 실어 보내게 하였다. 《원사》
동(銅)
○ 신라의 동으로는 종(鍾)을 만들 수 있다. 《본초강목》》
○ 고려의 땅에는 금과 은은 적고 동이 많다. 《고려도경》
○ 《제동야어(齊東野語)》에, “평원군(平原郡) 왕씨(王氏) 집안의 생황(笙簧)은 반드시 고려의 동을 사용해서 만든다.”
하였다.
○ 주(周)나라 현덕(顯德) 5년(958, 광종9)에 고려의 땅에서 동이 생산되자, 상서 수부원외랑(尙書水部員外郞) 한언경
(韓彦卿)을 파견하여, 비단 수천 필을 가지고 가서 고려에서 동을 사다가 돈을 주조하게 하였다. 《오대사》
○ 고려의 사신 곽원(郭元)이 말하기를, “본국에서는 민가의 기물을 모두 동으로 만듭니다.” 하였다. 《송사》
○ 《금사》에, “명창(明昌) 5년(1194, 명종24)에 유사(有司)에게 유지(諭旨)를 내려서, 고려로 사신 갔다가 돌아오는
사신들이 구해 오는 동으로 만든 그릇을 모두 다 사들이게 하였다.” 하였다.
○ 조선의 땅에서 나는 동이 가장 단단하면서도 색깔이 붉다. 밥그릇과 수저는 모두 이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고려동(高麗銅)이라 이르는 것이다. 《조선부 주》
철(鐵)
○ 진한국(辰韓國)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한(韓), 예(濊), 왜(倭)가 모두 와서 사 간다. 또 두 군(郡)에도 공급한다.
《삼국지》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위성(位城)의 철(鐵)이다. 《신당서》
○ 원 중통(中統) 3년(1262, 원종3)에 고려에다가 철을 제련하는 곳을 설치하였다.
○ 지원(至元) 21년(1284, 충렬왕10)에 사신을 파견하여 고려에서 생산되는 철을 가져왔다. 《이상 모두 원사》
옥(玉)
○ 부여(夫餘)에서는 적옥(赤玉)이 산출된다. 《후한서》
○ 당(唐)나라 무종황제(武宗皇帝) 회창(會昌) 원년(841)에 부여국(夫餘國)에서 화옥(火玉) 3말을 조공하였다.
화옥은 색이 붉고 길이가 반 촌이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둥글다. 빛이 수십 보나 비치어, 이를 쌓아 두면 연등(燃燈)
과 같으며, 안에다 두면 난방을 할 필요가 없다. 《두양잡편(杜陽雜編)》
주(珠)
○ 부여에서는 큰 구슬이 산출되는데, 마치 대추[酸棗]와 같이 생겼다. 《후한서》
○ 막난주(莫難珠)는 일명 목난(木難)이라 하는데, 색이 황색이며,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에서 난다. 《고금주(古今注)》
○ 대흥(大興)에 사는 시랑(侍郞) 이석당(李奭棠)의 동생 아무가 허서(許墅)의 관문(關門)을 나가 주모(珠母) 1매(枚)를
사 왔는데, 크기가 5, 6촌(寸)가량 되었다. 안에는 진무(眞武)의 형상이 있어서 단정히 의자 위에 앉아 있었는데, 오른손
은 의자 아래로 드리우고 있고, 왼손은 -원문 3자 빠짐- 거북과 뱀이 그 발을 받치고 있었고, 영관(靈官)이 창을 잡고
눈을 부릅뜬 채 모시고 있었으며, 운기(雲氣)가 주위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4명의 신장(神將)이 은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 조개의 뒷면에는 “고려국왕이 자금으로 만든 궤에 담아서 올렸다.
[高麗國王進匵以紫金]”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는 대개 대궐 안에 있던 물건이 민간(民間)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이모(李某)가 그것을 10민(緡)을 주고 샀는데, 수(隋)나라 문제(文帝)의 바닷조개로 만든 부처[蛤蜊佛]나 송(宋)나라
조무구(晁無咎)의 돼지 이빨로 만든 흰 부처[猪齒白佛]보다도 더욱 기이하다.
주모(珠母)는 진주조개이다. 조물주의 솜씨가 참으로 교묘하기도 하다. 《잠운루잡기(簪雲樓雜記)》
호박(琥珀)
○ 호박은, 고려와 왜국에서 생산되는 것은 색이 짙은 붉은색인데, 벌이나 개미, 송지(松枝)가 들어 있는 것이 더욱 좋다. 《격고론(格古論)》
백수정(白水晶)
○ 주(周) 현덕(顯德) 6년(959, 광종10) 11월에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어 백수정 20과(顆)를 조공하였다.
《책부원귀(册府元龜)》
석유리(石琉璃)
○ 석유리는 고려에서 생산되는데, 칼로 쪼개어도 변하지 않는다. 색은 백색이고, 두께는 반 촌가량 되며,
등불을 붙일 수가 있는데, 쇠뿔[牛角]보다도 더 밝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송풍석(松風石)
○ 무종(武宗) 효창(孝昌) 원년(525)에 부여(夫餘)에서 송풍석을 바쳤는데, 돌의 크기가 사방 1장이며, 투명하기가
옥과 같았다. 그 안에 나무 모양을 한 것이 들어 있었는데, 마치 고송(古松)이 누워 있는 것과 같았으며, 서늘하게 부는
찬 바람이 그 안에서 나왔다. 한더위가 되면 상(上)이 이를 전(殿) 안에 두게 하였다가, 가을바람이 살살 불면 즉시
철거하게 하였다. 《두양잡편(杜陽雜編)》
유황(硫黃)
○ 고려는 산이 깊어서 유황이 산출된다. 《고려도경》
석등(石燈)
○ 고려의 백석(白石)은 등(燈)을 만들 수 있다. 《만보전서(萬寶全書)》
○ 《영남잡기(嶺南雜記)》에, “백석은 고요(高要)의 칠성암(七星庵)에서 산출된다. 원주민들이 고려(高麗)에서 만든
것을 모방하여 등(燈)을 만드는데, 아주 밝다.” 하였다.
○ 조선의 석등잔(石燈盞)에는 홍색과 백색 두 종류가 있다. 《명일통지》
석유(石油)
○ 맹화유(猛火油)는 고려의 동쪽 수천 리 밖에서 나는데, 해가 돌을 뜨겁게 달구면 나오는 액체이다. 이것은 오직 진짜
유리로 만든 그릇으로만 저장할 수가 있다. 물에 들어가면 물방울이 일어나면서 몹시 맹렬하게 불꽃이 일어나며, 타고
남은 힘이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모두 죽는다. 변방 사람들이 적을 막는 데 쓴다. 이는 석뇌유(石腦油)이다.
《작몽록(昨夢錄)》
○ 황충(黃衷)의 《해어(海語)》에, “맹화유는 고려에서 나온다. 한 여름에 해가 처음 뜰 때 돌을 달구어서, 돌이 아주
뜨겁게 달구어지면 액체가 나오는데, 다른 물체가 여기에 닿으면 즉시 불에 탄다. 그런데 이 맹화유는 그렇지가 않으니,
아마도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津液)인 듯하다.” 하였다.
○ 석유(石油)는 고려에 있다. 석암(石巖)으로부터 흘러나오는데, 샘물과 서로 뒤섞여 솟아 나오며, 미끄럽기가 고기
기름과 같다. 그 지방 사람들이 풀에 적셔서 항아리 속에 보관한다. 색이 검어서 자못 옻칠[漆]과 같으며 웅류기(雄硫氣)
를 만든다. 그곳 사람들이 대부분 이것으로 등불을 밝히는데, 아주 밝다. 물과 만나면 더욱 맹렬하게 타며, 먹을 수 없다.
그 연기가 아주 짙어서 그을음을 긁어모아 먹[墨]을 만드는데, 광택이 나면서도 옻처럼 검어 송연묵(松烟墨)보다 좋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주D-001]예실불(芮悉弗) : 위(魏)나라 정시(正始) 연간에 사신으로 갔다.
[주D-002]가(珂) : 색깔이 흰 마노(瑪瑙)를 말한다.
[주D-003]섭라(涉羅) : 제주도를 말한다.
[주D-004]생금(生金) : 정련하지 않은 황금을 말한다.
[주D-005]홍주(洪州) :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이다.《국역고려도경 209쪽 주》
[주D-006]임읍(林邑) : 지금의 안남(安南)에 있었던 나라 이름이다. 진(秦)나라 때 임읍현(林邑縣)을 설치하였고,
한나라 때 상림현(象林縣)으로 고쳤다. 후한 말기에 구련(區連)이란 자가 중국이 어지러운 틈을 타서 현령을 죽이고
자칭 임읍국왕(林邑國王)이라 하였는데, 수나라 때 이를 격파하고 임읍군(林邑郡)을 두었다. 당나라 때에는 다시
임읍국(林邑國)이라 하였고, 그 뒤에 임읍을 점(占)으로 옮겨 점성국(占城國)이라 하였다. 그 뒤 안남(安南)에 의해
멸망되었다.
[주D-007]두 군(郡) :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을 가리킨다.
[주D-008]위성(位城)의 철(鐵) : 위성은 중경현덕부(中京賢德府)에 소속된 철주(鐵州)의 속현(屬縣)으로, 지금의 두만강
(豆滿江) 하류로 생각된다. 철주란 명칭도 이 위성의 철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大陸關係史 古代篇, 李龍範》
[주D-009]막난주(莫難珠) : 보주(寶珠)의 이름으로, 《광지(廣志)》에는 “막난주는 색은 붉으며, 동국(東國)에서 난다.”
하였고, 《본초(本草)》 보석(寶石)에는, “보석으로, 서번(西蕃), 회골(回鶻) 지방의 여러 갱(坑)에서 나며, 운남(雲南)과
요동(遼東)에도 있다.” 하였다.
[주D-010]목난(木難) : 원문에는 ‘水難’으로 되어 있는데,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에 의거하여 ‘木難’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1]허서(許墅) : 소주(蘇州)의 성 서쪽에 있는 지명이다.
[주D-012]주모(珠母) : 진주조개를 말한다.
[주D-013]진무(眞武) : 북방을 맡은 신(神)인 현무(玄武)로, 도가(道家)에서 이를 받들어서 진무대제(眞武大帝)라고
한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을 하고 있으며, 검은 독(纛)과 검은 기(旗)를 잡고 있다.
[주D-014]영관(靈官) : 선관(仙官)을 말한다.
[주D-015]조무구(晁無咎) : 무구(無咎)는 조보지(晁補之)의 자(字)이다. 송나라 철종(哲宗) 때 사람으로, 학문을 좋아
하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서화(書畫)에 뛰어났다. 저서에는 《계륵집(雞肋集)》이 있다.《宋史 卷444 晁補之列傳》
[주D-016]고요(高要) :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현(縣) 이름이다.
[주D-017]황충(黃衷) : 원문에는 ‘黃裏’로 되어 있는데, 《중문대사전》에 의거하여 ‘黃衷’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8]석암(石巖) : 원문에는 ‘古巖’으로 되어 있는데, 《사고전서(四庫全書)》 권772 《본초강목》 권9에 의거
하여 ‘石巖’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9]웅류기(雄硫氣) : 웅황유(雄黃油)로, 석유(石油)를 말한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포백류(布帛類)
포(布)
○ 진한(辰韓)은 겸포(縑布)를 짠다. 《후한서》 ○ 살펴보건대, 《석명》에, “겸(縑)은 겸(兼)의 뜻으로,
실이 가늘어서 몇 개의 실을 겹쳐서 포(布)나 견(絹)을 짜는 것이다.” 하였다.
○ 신라는 토지가 비옥하여 뽕나무와 삼[麻]이 많으며, 겸포를 짠다. 《북사(北史)》
○ 살펴보건대, 신라는 본디 진한의 지역이므로 물산(物産)이 진한과 같다.
○ 변진(弁辰)은 폭이 넓은 세포(細布)를 짠다. 《삼국지》
○ 예(濊)에는 마포(麻布)가 있다. 《상동》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현주(顯州)의 포(布)이다.
○ 후당 동광(同光) 3년(925, 발해 애왕25)에 발해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황명세포(黃明細布)를 조공하였다. 《책부원귀》
○ 고려의 흑마(黑麻)는 하포(夏布)를 짤 수 있다. 《만보전서(萬寶全書)》
○ 조선의 포(布)는 삼[麻]으로 짜는데, 모시[紵]라고 이름하는 것은 대개 잘못 전해 들은 데서 나온 것이다. 촘촘한 포는
세밀하기가 명주와 같다. 《조선부 주》 ○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는 마포(麻布)와 저포(紵布) 두 종류가 있다.
목면포(木綿布)
○ 현도(玄菟)의 산에는 꽃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것을 따다가 짜서 포(布)를 만든다. 《원중기(元中記)》
○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목면(木綿)의 종류이다.
○ 조선에서는 목면포(木綿布)가 생산되어 조공으로 바친다. 《청일통지》
○ 《엄주별집(弇州別集)》에, “고려포(高麗布)는 영락(永樂) 2년(1404, 태종4)에 주왕 숙(周王橚)에게 20필을 하사
하였고, 13년(1415, 태종15)에 영국 장공주(寧國長公主)에게 5필을 하사하였고, 14년(1416, 태종16)에 촉왕 춘(蜀王椿)
에게 1백 필을 하사하였고, 천순(天順) 3년(1459, 세조5)에 경왕(慶王)에게 20필을 하사하였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고려포는 바로 목면포이다. 우리나라의 목면포는 명나라 초기부터 이미 공물로 바쳤다.
첩포(氎布)
○ 원나라 지원(至元) 20년(1283, 충렬왕9)에 고려의 왕이 첩포를 조공하였다. 《원사》
저포(紵布)
○ 고려에는 사잠(絲蠶)이 적어 비단[羅] 1필당 값이 은 10냥이나 되므로, 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마포(麻布)와 저포
(紵布)를 입는다. 《계림유사》
○ 고려는 그 나라에서 스스로 모시와 삼을 심어, 사람들이 대부분 베옷을 입는다. 가장 좋은 것을 시(絁)라고 하는데,
희기가 옥과 같으며 폭이 좁다. 왕과 귀신(貴臣)들이 다 이것을 입는다. 《고려도경》
○ 탐라국(耽羅國)에서는 해마다 모시포(毛施布) 1백 필을 조공으로 바친다. 《원사》
○ 살펴보건대, 지금 방언(方言)에서는 저(紵)를 모시(毛施)라고 한다.
○ 조선의 저포(紵布)는 흑색과 백색 두 가지 색의 포가 있다. 《명일통지》
○ 《청일통지》에는, “조선에서는 백저포(白紵布)가 나는데, 조공으로 바친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엄주별집(弇州別集)》에, “홍무(洪武) 19년(1386, 우왕12)에 고려에서 흑백포(黑白布) 1만 필을 조공
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저포(紵布)이다.
면(綿)
○ 마한(馬韓)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 알며, 면(綿)과 포(布)를 짠다. 《후한서》
○ 삼가 살펴보건대, 《후한서》 예열전(濊列傳)에, “예(濊)는 삼을 심고 누에를 길러 면과 포를 짠다.” 하였는데,
대개 면은 비단[繭綿]이고 포는 마포(麻布)이다.
○ 예는 누에를 쳐서 면(綿)을 짠다. 《삼국지》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옥주(沃州)의 면(綿)이다. 《신당서》
주(紬)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용주(龍州)의 주(紬)이다. 《신당서》
○ 당나라 개원(開元) 11년(723, 성덕왕22)에 신라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조하주(朝霞紬)와 어아주(魚牙紬)를 조공하였다. 《책부원귀》
○ 조선에서는 면주(綿紬)가 나는데, 조공으로 바친다. 《청일통지》
○ 《운선잡기(雲仙雜記)》에, “장균(張均)의 기생 다려(多麗)가 비파곡(琵琶曲)을 타는데, 정수리 위에 고려사(高麗絲)
를 묶은 것이 있었다. 조시(趙詩)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다투다가 손가락 두 개를 다쳤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고려사는 바로 면사(綿絲)이다.
○ 표주(表紬)는 중국 및 조선 땅에서 나는데, 무늬 없는 비단[綾]과 비슷하나 두껍고 질기다. 또 무늬 있는 소주(素紬)
가 있다. 이들은 모두 광택이 없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용초(龍綃)
○ 원재(元載)가 설요영(薛瑤英)을 맞아들여서 희(姬)로 삼았는데, 몸이 가냘퍼서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였다.
이에 신라국에서 용초를 구해다가 입게 하였다. 《전당시(全唐詩) 주(注)》
능라(綾羅)
○ 고려는 누에치기에 서툴러서, 사선(絲綫)과 직임(織紝)을 모두 다 장사치를 통하여 산동과 민절(閩浙)에서 사온다.
자못 좋은 문라화릉(文羅花綾)이나 긴사(緊絲), 비단[錦], 모직물[罽]을 짜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북로(北虜)의 항복한
졸개들 가운데 공기(工技)가 아주 많아서, 더욱더 기묘하게 짜고 염색도 전보다 더 좋다. 《고려도경》
○ 《원사》에, “질손(質孫)의 여름철 복장은 고려의 아청운수라(鴉靑雲袖羅)를 입는다.” 하였다.
○ 《화한삼재도회》에, “일본(日本)에는 고려금(高麗錦), 훈금(暈錦), 간금(錦), 연금(軟錦), 양면금(兩面錦) 등의
명칭이 있다.
염자(染紫)
○ 고려는 염색을 잘 하는데, 홍색(紅色)과 자색(紫色)이 더욱 기묘하다. 자초(紫草)는 큰 줄기가 모란과 같은데,
갈아서 즙을 내어 비단[帛]에 물을 들이면 아주 선명하다. 《계림지》
[주D-001]겸포(縑布) : 겸은 비단의 일종으로, 물이 새지 않을 만큼 촘촘하고 섬세하게 짠 견직물이며, 포(布)는
마포(麻布)를 말한다.《韓國學基礎資料選集 古代篇, 471쪽 주》
[주D-002]현주(顯州) : 중경현덕부(中京賢德府)에 속하는 주로, 지금의 길림성(吉林省) 성(城)의 서남쪽으로 추정된다.
[주D-003]하포(夏布) : 모시나 삼으로 짠 포로, 여름옷을 만들기에 적당하므로 하포라고 한다. 중국의 강서(江西), 호
남(湖南), 광동(廣東) 등지에서 생산된다.
[주D-004]우리나라에 …… 것이다 : 목면은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인도(印度)에서부터 재배되기 시작하였으며, 13세기
경에 이르러서 중국 양자강 이남에서 재배가 성행하였다. 원나라에서는 목면을 전매품으로 지정하여 목면 종자의 해외
유출을 엄금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는 늦게 전래되었다. 목면 종자의 전래는 공민왕 13년(1364)에 이공수(李公遂)의
원나라 사행(使行)에 수행하였던 문익점이 종자를 숨겨 가지고 온 데에서 비롯되었다.
[주D-005]첩포(氎布) : 명주같이 고운 모직물을 말한다.
[주D-006]옥주(沃州) :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의 속주(屬州)로, 옥저(沃沮)의 옛 땅에 있었다.
[주D-007]용주(龍州) : 원문에는 ‘龍舟’로 되어 있는데, 《신당서》 권219 북적(北狄) 발해조(渤海條)에 의거하여 ‘龍州’
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용주는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수주(首州)로, 장백산(長白山)의 동북쪽 오루하(奧婁河)
일대에 있었던 홀한성(忽汗城)이 있던 곳에 있었다.
[주D-008]원재(元載) : 당나라 대종(代宗) 때의 사람으로, 자는 공보(公輔)이다. 중서 시랑(中書侍郞)으로 있으면서
권세를 휘두르며 뇌물을 마구 받아들이다가 황제의 명으로 자진(自盡)하였다.《新唐書 卷145 元載列傳》
[주D-009]긴사(緊絲) : 매듭을 만들 때 쓰는 실 같은 것을 말한다.
[주D-010]질손(質孫) : 몽고어(蒙古語) jisun의 음역으로, 안색(顔色)의 뜻이다. 중국말로는 일색복(一色服)을 뜻하며,
지손(只遜)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원나라 때 궁중에서 연회를 할 때 연회에 참석하는 자들이 모두 같은 색깔의 의복을
입었는데, 이를 질손이라 한다. 질손은 여름철과 겨울철에 입는 옷이 각각 다르다.
[주D-011]자초(紫草) : 지치를 말하며, 뿌리는 동상이나 화상, 습진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이고, 자색의 물을 들이는
염료로도 쓴다. 자지(紫芝), 지초(芝草)라고도 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는, “줄기는 붉고, 마디는 푸르며,
꽃은 자색이나 백색이다. 뿌리를 채취하여 자색을 물들인다. 우리말로는 지초이다.” 하였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곡류(穀類)
기장[黍], 조[粱], 보리[麥], 깨[胡麻]
○ 고려 땅에는 황량(黃粱), 흑서(黑黍), 한속(寒粟), 호마(胡麻), 보리와 밀[二麥]이 많다. 《고려도경》
○ 《송사》에, “고려에는 메벼[秔], 기장[黍], 삼[麻], 보리[麥]는 있으나 차조[秫]가 없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호마(胡麻)의 속명(俗名)은 ‘검은 참깨’이다.
○ 고려에는 오곡(五穀)이 모두 있는데, 조[粱]가 가장 크다. 《계림유사》
○ 신라는 백제(百濟)의 동쪽에 있는데, 장안(長安)에서의 거리가 9800리이다. 그곳 사람들은 보리를 먹는다.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벼[稻]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노성(盧城)의 벼[稻]이다. 《신당서》
○ 고려는 쌀 가운데 메벼는 있으나 찰벼[稬]는 없으며, 쌀알이 매우 크고 맛이 달다. 《고려도경》
○ 삼가 살펴보건대, 쌀 가운데 차지지 않은 것을 갱(秔)이라 하고, 차진 것을 나(稬)라 한다.
○ 조선의 멥쌀[秔米]은 색이 하얗고 맛이 향기롭다. 《조선부 주》
○ 조선의 쌀은 강미(江米) -살펴보건대, 바로 갱미(秔米)이다.-, 도미(稻米) 두 종류가 있어서 조공으로 바친다.
《청일통지》
콩[豆] 메주[豉]를 붙임
○ 낙랑(樂浪)에는 협검두(挾劒豆)가 있는데, 꼬투리[莢]가 비스듬하게 자라나 마치 사람이 칼을 차고 있는 것과 같다.
《유양잡조(酉陽雜俎)》 ○ 살펴보건대, 지금의 속명(俗名)은 동부[東豆]이다.
○ 고려에는 흑두(黑豆), 연두(鷰豆), 비두(豍豆), 대두(大豆)의 종류가 있다. 《농정전서(農政全書)》
○ 살펴보건대, 흑두는 지금의 흑대두(黑大豆)이고, 비두는 바로 완두(豌豆)의 별명으로, 완두의 속명은 원두이다.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책성(柵城)의 메주이다. 《신당서》
○ 살펴보건대, 메주는 《설문(說文)》에 “소금과 배합해서 따뜻한 곳에다 놓고 띄운다.” 하였다.
삼씨[麻子]
○ 가우(嘉祐) 연간에 둔라도(屯羅島) -살펴보건대, 바로 탐라(耽羅)이다.- 에서 표류해 온 배 안에 여러 가지 곡식이
있었는데, 오직 삼씨만이 크기가 연적(蓮的)만 하였다. 《몽계필담(夢溪筆談)》
○ 살펴보건대, 마자의 속명은 ‘삼씨’이다.
밥[飯]
○ 조선 사람들은 밥을 잘 짓는다. 낱알이 깨끗한데, 부드러우면서도 향기롭고 기름지다.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술[酒]
○ 고구려(高句麗)는 술을 잘 빚는다. 《삼국지》
○ 고려국에는 찹쌀이 없어서 멥쌀[秔]을 누룩[麴]과 섞어서 술을 만든다. -《계림유사》에는, “고려에는 찹쌀이 없
어서 멥쌀[粳米]로 술을 만든다.” 하였다.- 술의 빛깔은 짙고 맛은 독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왕이 마시는 것을 양온(良醞)이라 하는데, 좌고(左庫)의 맑은 법주(法酒)이다. 법주에도 역시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질그릇으로 만든 술병[瓦尊]에 담아서 황견(黃絹)으로 봉해 둔다.
대개 고려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좋은 술을 얻기는 어렵다. 일반 서민의 집에서 마시는 술은, 맛은 싱겁고 빛깔은
짙은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마시면서 모두들 맛있게 여긴다. 《고려도경》
○ 옥계생(玉溪生)의 시(詩)에 “신라의 술 한 잔 마시니, 차가운 서리 기운 녹는 듯하네.[一盞新羅酒 凌霜恐易銷]”라
하였다. ○ 주(注)에, “고려에서는 멥쌀로 술을 만드는데, 신라의 술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 조선의 술은 수수쌀[秣米]을 쓰지 않는다. 술맛이 뛰어나 산동의 추로백(秋露白)과 비슷하다. 빛깔과 향기도 똑같다. 《조선부 주》
○ 조선에는 주암(酒巖)이 있는데, 술이 있어서 그 아래로 흘러 나온다. 《언폭담여(偃曝談餘)》
○ 삼가 살펴보건대, 주천(酒泉)이 원주(原州)의 학성현(鶴城縣)에 있는데, 고구려 때에는 주연현(酒淵縣)이었고, 신라
와 고려 때에는 주천현(酒泉縣)이었다. 현의 남쪽 길가에 바위가 있는데, 모양이 마치 반쯤 부서진 석조(石槽)와 같다.
임려장(林慮醬)
○ 고려국에 임려장이 있다. 《주소사(酒小史)》
○ 《청이록(淸異錄)》에, “후당(後唐) 장종(莊宗)이 편전(便殿)에서 고려의 사신(使臣) 한신일(韓申一)을 소대(召對)
하였는데, 새로 조공한 임려장을 꺼내어서 그 자리에서 하사하였다.” 하였다.
떡[糕]
○ 고려의 밤떡[栗糕]은 밤알이 많고 적음에 구애됨이 없이 껍질을 벗겨서 그늘에서 말린 다음 빻아서 가루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가루 3분의 2에다가 찹쌀가루를 넣어 반죽하고 꿀물을 바른 다음 쪄서 익혀 먹는다. 흰설탕을 섞어 넣으면
아주 묘한 맛이 난다. 《식품(食品)》
○ 조선에서는 소나무의 겉껍질을 벗겨 내고 그 속에 있는 희고 부드러운 껍질을 취하여 멥쌀과 섞어서 찧어 떡을 만
든다. 산삼(山蔘) 역시 취해다가 멥쌀과 섞어 찧어서 지져서 떡을 만든다. 삼월 삼짇날에 연한 쑥잎을 뜯어서 멥쌀가루와
섞어 쪄서 떡을 만드는데, 그것을 쑥떡[艾糕]이라고 한다. 《이상 모두 조선부 주》
[주D-001]한속(寒粟) : 원문에는 ‘寒栗’로 되어 있는데, 송징강본(宋澂江本) 《고려도경》 권23에 의거하여 ‘寒粟’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2]호마(胡麻) : 원문에는 ‘胡栗’로 되어 있는데, 《고려도경》 권23에 의거하여 ‘胡麻’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3]노성(盧城) : 중경현덕부(中京賢德府)에 영속(領屬)된 노주(盧州)로 보이는데, 지금의 해란하(海蘭河) 유역의
평야 지대로 추정된다.
[주D-004]협검두(挾劒豆) : 《재물보(才物譜)》 권8 물보(物譜) 3에는 “이것은 동부의 종류가 아니라,
일찍이 호남성(湖南省)에 심은 것을 보니, 바로 붉은팥[赤小豆]의 종류였다.” 하였다.
[주D-005]책성(柵城) :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말하며, 예(濊)의 옛 땅이다.
[주D-006]고구려(高句麗) : 원문에는 ‘高麗驪’로 되어 있는데, 《삼국지》 권30 위서(魏書) 제30 고구려전(高句麗傳)에
의거하여 ‘高句麗’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7]양온(良醞) : 본디 맛있는 술이란 뜻인데, 술에 관한 일을 맡은 관서명으로도 쓰였다. 고려에는 양온서(良醞署)
가 있었는데, 양온서에는 좌고(左庫)와 우고(右庫)가 있었다. 왕이 마시는 술을 양온이라 한 것은, 양온서에서 감독하여
빚은 술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된다.《국역고려도경 182쪽 주》
[주D-008]옥계생(玉溪生) : 당나라의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의 별호(別號)이다.
[주D-009]추로백(秋露白) : 중국의 산동 지방에서 나는 명주(名酒)이다.
[주D-010]산삼(山蔘) : 《조선부》 주에, “산삼은 약재로 쓰는 산삼이 아니다. 그 길이는 손가락만하고,
모양은 무[蘿蔔]와 같이 생겼는데, 요동 사람들은 그것을 산무[山蘿蔔]라고 한다.” 하였다.
제26권 물산지(物産志) 초류(草類)
인삼(人葠)
○ 인삼은 백제(百濟)의 것을 중하게 치는데, 형체가 가늘고 단단하며 희다. 기운과 맛은 상당(上黨)에서 나는 것보다
박(薄)하다. 다음으로는 고려의 것을 쓰는데, 고려는 바로 요동(遼東)으로, 형체가 크고 허(虛)하며 연(軟)하여 백제의
인삼만 못하다. 백제는 지금 고려에 신속(臣屬)되었는바, 고려에서 바치는 인삼에는 두 가지 종류가 겸해 있으니,
어느 것을 취에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쓰기에는 모두 상당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명의별록(名醫別錄) 주(注)》
○ 인삼은, 지금 쓰는 것은 모두 하북(河北)의 각장(榷場)에서 교역해 온 것인데, 이는 모두가 고려에서 나는 인삼으로,
대부분 허하고 연하며, 맛이 박하다. 그러므로 노주(潞州)나 상당(上黨)에서 나는 인삼이 맛이 후하고 몸체가 통통해서
쓰기에 근거가 있는 것만 못하다. 《본초연의(本草衍義)》
○ 인삼 중에 하북(河北)이나 민절(閩浙)에서 온 것을 신라삼(新羅蔘)이라 하는데, 모두 상당(上黨)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본초도경(本草圖經)》
○ 양만리(楊萬里)의 ‘어떤 사람이 자단삼을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다[謝人寄紫團蔘]’는 시에, “신라삼과 상당삼이
종(宗)과 지(枝)가 다른바, 두 명의 증삼이 있으니 시비를 가릴 수 있겠나.[新羅上黨各宗枝 有兩曾參果是非]”라 하였다.
○ 신라국에서 조공하는 인삼은 손과 발이 있어서, 모양이 마치 사람과 같으며, 길이는 1자 남짓 된다. 삼(杉) 나무를
양편에 대고 붉은 비단으로 쌌다. 《해약본초(海藥本草)》
○ 백제의 인삼은 희고 단단하면서도 둥근데, 이를 백조삼(白條蔘)이라고 하며, 속명(俗名)은 간각삼(芉角蔘)이다.
요동(遼東)의 인삼은 누렇고 윤택이 나며 가늘고 길면서 수염이 있는데, 속명으로는 황삼(黃蔘)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인삼은 자색에 가까운 빛이 나며 몸체가 허하다. 신라의 인삼은 옅은 황색이며 맛이 약한데, 사람 모습에
가까운 것이 신기한 효험이 있으며, 닭다리[鷄腿]와 같이 생긴 것이 효험이 크다. 《본초몽전(本草蒙荃)》
○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토산품으로 인삼을 진공(進貢)한다. 《신당서》
○ 고려 인삼의 줄기는 한줄기로 자라나며, 어느 지방에나 있는데, 춘주(春州)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또한 생삼(生蔘)과 숙삼(熟蔘) 두 종류가 있다. 생삼은 빛깔이 희고 허(虛)한데, 약에 넣으면 그 맛이 온전하다.
그러나 여름을 지나면 좀이 슬기 때문에, 오래 둘 수 있도록 쪄서 익힌 숙삼만 못하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숙삼의
모양새가 납작한 것은 고려 사람들이 돌로 삼을 눌러서 즙을 짜내고 삶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지금 물어보니, 그
때문이 아니라 삼을 찐 것을 뿌리를 포개어 다듬었기 때문이며, 인삼을 달이는 데에도 그에 따른 법이 있다. 《고려도경》
○ 소화급(邵化及)이 고려 왕을 위하여 약을 처방하고는 말하기를, “인삼은 아주 단단하여 도끼를 가지고 쪼개었는데,
향기가 온 전(殿)에 진동하였다.” 하였다. 《담원(談苑)》
○ 살펴보건대, 《고려사》를 보면, 문종(文宗) 33년(1079)에 송나라에서 의관(醫官) 소화급(邵化及) 등을 파견하여
보내왔다고 하였는데, 소화급의 말은 과장된 것이다.
○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는 지금 모두 조선에 속하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인삼을 중국으로 가지고 와 교역한다.
역시 씨앗을 거두어서 10월에 씨를 뿌리는데, 채소 씨 뿌리는 것과 같이 한다. 추동(秋冬)에 채취하는 것은 단단하고
실하며, 춘하(春夏)에 채취하는 것은 허하고 연한데,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서 허하고 실한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 조선의 오엽삼(五葉蔘)은 바로 《본초강목》에서 말한 신라 인삼(新羅人蔘)이다. 《조선부 주》
○ 《잠미집(蠶尾集)》에, “강희(康煕) 38년(1699, 숙종25)에 우성룡(于成龍)에게 인삼 1근(觔)을 하사하였다.” 하였다.
○ 조선의 인삼은, 조선의 북쪽 달단(韃靼)의 남쪽 경계 지점에 큰 산이 있어서 이름을 백두산(白頭山)이라 하는데, 여기
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인삼이 최상품이다. 그 잎과 꽃은 일본의 인삼과 서로 비슷하나, 열매가 달라서 처음에는
푸르다가 익으면 붉게 되며, 둥글어서 남천(南天) 열매와 같다. 그 뿌리는 호나복(胡蘿葍)과 비슷한데 백색이다.
감초(甘草)의 즙으로 쪄서 말린 것이 황색이 나면서 맛이 진하다. 머리 부분에 가로무늬가 있으며, 몸체가 무겁고 실하
면서 중간 부분에 황색이 도는 것이 상품(上品)이며, 여러 해 묵은 것이 더욱 좋다.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은 1백 근 가운
데 한두 뿌리가 있는데, 이것이 비록 신묘한 효험이 있다고는 하나 아주 좋지는 않다. 함경도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윤기가 흐르고 흰색이 나면서 투명한 것이 최상품이다.
○ 조선의 인삼 가운데 가짜는 모두 더덕[沙蔘], 잔디[薺苨], 도라지[桔梗]의 뿌리로 인삼을 만든다.
근래에는 인삼의 즙을 먼저 짜내어서 자신이 마시고, 햇볕에 말려 다시 팔아먹는다. 그것을 일러 위삼(渭蔘)이라고 하
는데, 약재로 쓸 수가 없다. 《이상 모두 화한삼재도회》
토사자(菟絲子)
○ 토사자는 조선의 시냇가나 들판에서 자라는데, 여름에 실과 같은 싹이 나, 초목의 위로 뻗어 나간다. 6, 7월에 열매를
맺는데, 아주 작아서 누에씨와 같으며, 토황색(土黃色)이 난다. 9월에 열매를 채취하여 햇볕에 널어 말리며, 술과 섞으
면 더욱 좋다. 그 열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색이 누르면서 작은 것은 적강(赤綱)이라 하고, 색이 옅으면서 큰 것은
토류(菟虆)라고 하는데, 그 쓰임새와 효험은 모두 같다. 《명의별록 주》
○ 토사자는 조선에서 많이 난다. 《본초몽전(本草蒙荃)》
○ 발해의 풍속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태백산(太白山)의 토(菟)이다. 《신당서》
백부자(白附子)
○ 백부자는 본디 고려에서 나는데, 지금은 양주(涼州) 이서(以西)에서 난다. 모래가 쌓여 있는 낮고 습한 지역에서 자라
나는데, 줄기가 하나로 뻗어나 서미초(鼠尾草)와 비슷하다. 가느다란 잎이 빙 둘러서 나는데, 이삭 사이에서 나오며,
뿌리의 모양새는 천웅(天雄)과 비슷하다. 《당본초(唐本草)》
○ 백부자는 독이 없어서 약에 넣어 구워서 복용한다. 신라에서 나는 것이 좋다. 《제가본초(諸家本草)》
○ 백부자는 신라국에서 나는데, 싹이 부자(附子)와 서로 비슷하다. 《남주이물기(南州異物記)》
○ 백부자는 신라백육(新羅白肉)이라고 한다. 《약보(藥譜)》
○ 고려 나주도(羅州道)에서는 백부자가 난다. 《고려도경》
오미자(五味子)
○ 오미자는 지금 고려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살이 많으면서 시면서도 달다. 《명의별록 주》
○ 오미자는 고려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잎은 살구나무와 비슷한데 끝이 둥글고, 꽃은 작은 연꽃 같은데 황백색이며,
덩굴은 붉으면서 길다. 시렁이 없으면 위로 뻗어 올라가지 못하며, 혹 나무 줄기를 타고서 올라가기도 한다. 열매는 오동
나무 열매같이 크며, 떨기지어서 가지 사이에 달려 있는데, 처음에는 푸르다가 익으면 붉어져 앵두와 다르지 않다.
뿌리를 나누어서 심으면 그해에 즉시 성하게 열매가 열리며, 씨를 심은 것은 다음 해에 비로소 열매가 열린다.
《화경(花鏡)》
구기자(枸杞子)
○ 조선의 구기(枸杞)는 가지와 잎과 꽃이 모두 일본의 구기와 같으며, 열매 역시 일본의 구기와 같다. 《화한삼재도회》
산삼(山葠)
○ 조선의 산삼은 약에 넣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이는 손가락만 하며, 모양새는 무[蘿葍]와 같은데, 요동 사람들은 이것을
일러 산나복(山蘿葍)이라고 한다. 이를 채취해서 멥쌀과 섞어서 찧어 떡을 만든다. 《조선부 주》
왕과(王瓜)
○ 황토과(黃菟瓜)는 바로 토과(土瓜)이다. 세속에서는 신라갈(新羅葛)이라고 부른다. 《정씨이아(鄭氏爾雅) 주(註)》
○ 고종(高宗)이 장부절차략(張府節次畧)에 행행하였을 때, 신과자(新菓子) 1행(行), 조화밀전(雕花蜜煎) 1행, 체향
함산(砌香醎酸) 1행에 모두 신라갈(新羅葛)이 있었다.
○ 서원문(西苑門) 남쪽 화원(花園)에 왕과(王瓜) 가운데 고려의 종자가 있는데, 모양이 향연(香椽)과 같고 색이 황색
이다. 《금오퇴식필기(金鰲退食筆記)》
○ 살펴보건대, 왕과는 일명 토과라고 하며, 세속에서는 ‘쥐참외’라고 부른다.
남등근(藍藤根)
○ 남등근은 신라국에서 난다. 뿌리가 세신(細辛)과 같으며, 맛이 시고 따스하며 독이 없다. 기(氣)를 주관하는 약으로,
건기침[冷嗽]이 날 때 쓰는데, 달여서 먹는다. 《본초습유(本草拾遺)》
○ 살펴보건대, 남등근은 지금의 남칠(藍漆)이 그것으로, 세속에서는 ‘가사새’라고 부른다.
여여(䕡茹)
○ 여여는 지금 고려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 꽃은 황색이며, 뿌리는 무와 같고, 껍질은 적황색이며, 살은 백색이다.
처음 자를 때 즙이 나와 검게 응고되는 것이 칠(漆)과 같으므로 칠두(漆頭)라고 한다. 《명의별록 주》
박하(薄荷)
○ 신라의 박하는 줄기와 잎이 깨와 같은데 뾰족하면서 길며, 겨울을 나도 뿌리가 죽지 않는다. 여름과 가을에 줄기와
잎을 채취하여 햇볕에 쬐어 말린다. 신라 사람들은 이를 차(茶)로 만들어 마신다. 《본초도경(本草圖經)》
세신(細辛)
○ 세신은 지금 동양(東陽)과 임해(臨海)에서 나는 것을 쓰는데, 형체가 커서 좋다. 그러나 맵고 뜨겁기가 화양(華陽)
이나 고려(高麗)의 것만 못하다. 《명의별록 주》
형개(荊芥)
○ 신라의 형개는, 세속에서는 호형개(胡荊芥)라 부른다. 《본초도경》
○ 살펴보건대, 속명은 ‘정가’이다.
필관(筆管), 산장(酸漿)
○ 조선의 특이한 산물(産物)로는 필관과 산장이 있다. 필관은 싹을 먹는데, 맛이 미끈하고 달다. 그 잎은 알 수 없는데,
혹은 황정(黃精)의 싹이라고도 한다. 산장은 입이 뾰족하고 줄기는 푸르거나 붉으며, 맛은 달고 시다. 《조선부 주》
○ 살펴보건대, 필관은 일명 즙(蕺)이라고 하며, 세속에서는 ‘멸’이라고 부른다. 산장은 세속에서는 ‘꽈리’라고 부른다.
만화석초(滿花席草)
○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영영(英英)을 위하여 채방관(采芳館)을 경화도(瓊華島) 안에다 짓고는 당인(唐人)의
만화석(滿花席)을 깔았다. 당인(唐人)은 고려에 있는 섬 이름으로, 만화초(滿花草)가 나는데, 성질이 부드러워서 꺾
어도 손상되지 않으며, 광택이 있어 아주 아름답다.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으로 짜서 방석을 만든다.
《원씨액정기(元氏掖庭記)》
○ 조선의 만화석을 만드는 풀은 색이 누렇고 부드러워서 꺾어도 부러지지 않으며, 소주(蘇州)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더 좋다. 《조선부 주》
○ 살펴보건대, 만화석초(滿花席草)는 바로 용수초(龍鬚草)로, 속명은 ‘장골’이다.
연초(烟草)
○ 강희(康煕) 연간에 고려 사람들이 담배 1만 갑(匣)을 바쳤는데, 상이 이를 거절하면서 “짐은 담배를 피지 않는다.”
하였다. 《서당여집(西堂餘集)》
○ 우통(尤侗)의 《간재권고(艮齋倦藁)》의 ‘담배 피는 것을 읊다[詠喫煙]’라는 시에, “단지 추위를 몰아 변경 문 밖으로
내보내기에 좋을 뿐인데, 어찌하여 좋은 집 방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물고 있나. 임금이 고려에서 바친 만 갑의 담배를
보고서는, 대궐 안으로 들여 지존 가까이에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네.[只好驅寒出塞門 如何華屋供晨昏 君看萬匣
高麗種 未許深宮近至尊]” 하였다.
○ 살펴보건대, 연초(烟草)의 속명은 ‘담배’이다.
[주D-001]인삼(人葠) : 인삼(人蔘)을 말한다. 인삼의 표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보통 인삼(人參)으로 표기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 이후로 인삼(人蔘)이나 인삼(人參)으로 표기한다.
[주D-002]상당(上黨) : 중국 인삼의 주요 산지(産地)로,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동남부 일대를 말한다. 중국의 기록에는
이곳에서 나는 인삼이 가장 좋다고 하였으나, 오늘날의 고증에 의하면, 이곳에서 나는 인삼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만삼
(蔓參)으로, 인삼이 아니라고 한다.
[주D-003]노주(潞州) :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장치현(長治縣)을 말한다.
[주D-004]자단삼(紫團蔘) : 자단산(紫團山)에서 나는 삼을 말한다.
[주D-005]두 명의 증삼 : 진짜 증삼과 가짜 증삼을 말한다. 옛날에 증삼이 비(費) 땅에 살 때 증삼과 이름이 같은 자가
있었는데, 그자가 살인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증삼이 살인하였다고 증삼의 어머니에게 고하자, 어머니가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나중에는 북[杼]을 내던지고 도망갔다.《戰國策 秦策2》
[주D-006]생삼(生蔘)과 숙삼(熟蔘) : 생삼은 흙에서 캔 삼을 그대로 말린 것이며, 숙삼은 가마에 넣고 쪄서 붉은빛이
나도록 한 홍삼(紅蔘)을 말한다.
[주D-007]소화급(邵化及) : 원문에는 ‘郡化及’으로 되어 있는데, 《고려사》 권9에 의거하여 ‘邵化及’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8]달단(韃靼) : Tataru의 음역으로, 중국 명나라 때 몽고의 부족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내몽고 일대에 살았다.
[주D-009]남천(南天) : 남천촉(南天燭)으로, 남천죽(南天竹)이라고도 한다.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관목으로, 초여름
에 흰색의 꽃이 피고 7, 8mm의 둥근 열매가 늦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붉은색이나 흰색으로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정원에 심는다.
[주D-010]토사자(菟絲子) : 새삼씨를 말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 “처음 날 때에는 뿌리가 있는데,
자라면서 그 뿌리가 저절로 끊어진다. 우리말로는 ‘새삼씨’라 한다.” 하였다.
[주D-011]왕과(王瓜) : 쥐참외를 말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 “우리말로는 ‘서외’이다.” 하였다.
[주D-012]형개(荊芥) : 명아줏과에 속하는 일년생초로, 독특한 냄새가 나 구충제의 원료로 쓰며, 잎과 줄기, 이삭은
한약재로 쓴다. 가소(假蘇)라고도 한다. 《재물보》 권8 물보 3에는, “원래는 야생이나 밭에서도 재배한다.
줄기는 방형(方形)이고, 잎은 가늘며, 작은 꽃이 이삭 모양으로 핀다.” 하였다.
[주D-013]필관(筆管) : 원문에는 ‘茟管’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부》 주에 의거하여 ‘筆管’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필관은 삼백초(三白草)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멸이라 한다. 멸은 삼백초(三白草)의 예스러운 말로, 삼백초과에 딸린
다년초(多年草)이다. 키가 15~35cm가량 자라며, 한방(韓方)에서는 중약(重藥)이라고 부르는데, 땅속줄기와 잎을 말
려서 이뇨제나 구충제로 쓴다. 《조선부》 자주에 “필관은 싹을 먹는데, 맛이 미끈하고 달다. 그 잎은 알 수 없는데,
혹은 황정(黃精) 즉 둥굴레의 싹이라고도 한다.” 하였다.
《지봉유설》에는 “동월의 《조선부》에서 말한 필관은,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살펴보건대, 즙(蕺)을 필약(筆藥)
이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중국 사람이 잘 모르고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하였다.
[주D-014]산장(酸漿) : 원문에는 ‘酸醬’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부》 주에 의거하여 ‘酸漿’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산장(酸漿)은 꽈리이다. 《조선부》 자주에, “산장은 잎이 뾰족하고, 줄기는 푸르거나 붉으며, 맛은 달고 시다.” 하였다.
[주D-015]황정(黃精) : 둥굴레를 말한다.
[주D-016]만화석초(滿花席草) : 만화석, 즉 여러 가지 꽃무늬를 수놓은 방석을 만드는 풀로, 골풀을 말한다. 골풀은
줄기가 원기둥형이고 1m 이상 자라는 풀로, 말린 줄기로 자리를 짠다. 등심초(燈心草), 석용추(石龍芻), 골속, 용수초
(龍鬚草)라고도 한다.
[주D-017]경화도(瓊華島) : 북경(北京)의 북해공원(北海公園) 안에 있는 섬이다. 예전에 연경(燕京)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로, 경도춘운(瓊島春雲)이라 칭하였는데, 영롱한 모양의 기암괴석을 쌓아 만들어 산봉우리가 아주 아름답다.
위에는 불전(佛殿)과 백석불탑(白石佛塔)이 있어서 백탑산(白塔山)이라고도 이름한다. 거기에 있는 돌은 송나라 때 간악
(艮嶽)의 유물(遺物)인데, 원나라 때 북경에다 도읍을 정한 뒤 변경(汴京)에서 실어 왔다고 전한다.
[주D-018]고려(高麗) : 여기에서의 고려는 우리나라의 통칭으로, 조선(朝鮮)을 말한다.
[주D-019]우통(尤侗) : 청나라 장주(長洲) 사람으로, 자는 동인(同人)이며, 호는 간재(艮齋) 또는 서당노인(西堂老人)
이다. 강희(康煕) 연간에 관직에 있었으며, 시와 고문사(古文詞)를 잘하였다.
《서당잡조(西堂雜俎)》, 《간재잡기(艮齋雜記)》 등의 저서가 있다.
[주D-020]경악전서(景岳全書) : 명나라 장개빈(張介賓)이 찬한 의서(醫書)로, 6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D-021]여송국(呂宋國) : 옛날의 나라 이름으로, 지금의 필리핀 군도 가운데 있는 루손 섬에 있던 나라이다.
남양(南洋) 교통의 요충지로, 송원(宋元) 이래로 중국의 상선(商船)들이 이곳에 가 무역하였다.
[주D-022]왕사진(王士禛) : 청나라 신성(新城) 사람으로, 이름을 세종(世宗)의 휘(諱)를 피하여 사정(士正)으로 고쳤
는데, 그 뒤 건륭(乾隆) 때에 사정(士禎)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문장이 뛰어나서 일대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주이존(朱彝尊)과 더불어서 주왕(朱王)이라고 칭해졌다. 저서에는 《대경당집(帶經堂集)》, 《지북우담(池北偶談)》
등이 있다.
[주D-023]보전(莆田) : 복건성(福建省) 선유현(仙遊縣)의 동쪽에 있는 현 이름이다.
[주D-024]왕숭간(王崇簡) : 청나라 세조(世祖) 때의 사람으로, 완평(宛平) 사람이며, 자가 경재(敬哉)이다. 저서로는
《청상당문집(靑箱堂文集)》이 있다.
[주D-025]한담(韓菼) : 청나라 장주(長洲) 사람으로, 자가 모려(慕盧)이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강희 연간에 수찬(修撰)
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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