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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신(德業日新)
덕을 세우는 사업이 날로 새로워진다
德 : 큰 덕(彳/12)
業 : 일 업(木/9)
日 : 날 일(日/0)
新 : 새 신(斤/9)
출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卷四 신라본기(新羅本紀) 第四
덕업일신(德業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德)은 즉, 인간이 스스로의 수양을 통해서 얻어지고 그것이 다시 실천을 통해 나타남을 말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하면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이름입니다. 하늘이 도를 행하면 하늘의 은혜가 나타나고, 땅이 도를 행하면 땅의 은혜가 나타나며,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천만 가지 도를 따라 천만 가지 덕이 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도(天道), 지도(地道), 인도(人道)에 따라 천덕(天德), 지덕(地德), 인덕(人德)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이 세 가지 덕 중에 제일 큰 덕은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에 헤매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덕인 것입니다.
그리고 업(業)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의업(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입니다.
이를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행위는 반드시 선한 쪽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만이 인간에게 씌워진 죄업의 굴레를 벗게 하여 참다운 행복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마오쩌둥이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 군대는 약탈과 강도,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이끄는 군대는 전투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기강도 엄격해서 물건을 사면 반드시 돈을 내야 하고, 빌린 물건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등의 규율을 말단의 병사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그 결과 국민은 마오쩌둥의 군대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공략하고자 한 마오쩌둥의 전략이 멋지게 성공한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탁월한 리더는 모두 상대방의 마음을 공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중국 고전에 대한 전문가로 알려진 모리야 히로시는 리더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德)으로 세상을 얻는 5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원망을 산다.
'논어'에도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원망을 사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지요. 언젠가 반드시 그에 대한 보복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런 행동을 계속한다면 결국 그 원망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각인될 것입니다.
둘째, 신의가 있어야 인심을 얻는다.
'삼국지'에서는 "무(武)를 통솔함에 있어 대신(大信)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제갈공명이 촉(蜀)의 군대를 이끌고 위(魏)의 영토로 진격했을 때였습니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5명 중 1명을 교대로 귀국시키며 항상 8만 명의 병력으로 싸우기로 했지요. 그런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참모들은 불안해하며 "적이 너무 강력해서 지금의 병력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으니 교대 요원의 귀국을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진언했습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군을 통솔할 때 '신의를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지금 상황이 곤란해졌다고 해도 이미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오."
그러자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병사들은 승상께서 우리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준다는 생각에 감격해서 귀국을 포기하고 싸우기를 청해 용맹하게 적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의는 통솔의 근본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인 것입니다.
셋째, 우직함으로 신뢰를 얻는다.
'한비자(韓非子)'에 "교사(巧詐)는 졸성(拙誠)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사(巧詐)는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등 교묘한 말로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졸성(拙誠)은 변변치 못한 정성, 즉 우직함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장의 성공 확률만 따지자면 교사가 더 높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속임수가 성공한다 해도 반발을 사거나 앙금이 남게 됩니다.
반면에 졸성은 속효성(速效性)은 없을지 몰라도 조금씩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더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교사로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없으며 주위의 신뢰도 얻지 못합니다. 교묘한 속임수보다는 변변치 못한 정성이 더 낫지 않은가요?
넷째, 위정자의 덕이야말로 나라의 지킴이다.
'사기(史記)'에 "만일 군주가 덕을 쌓지 않는다면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적이 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법서 '오자(吳子)'의 저자 오기는 정치가로서도 큰 치적을 남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기가 위의 무후를 섬길 무렵, 무후를 보좌해 배를 타고 서하를 내려가던 중 무후가 뒤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이 험준한 지형을 보게. 멋지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위의 보배일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오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나라의 보배는 지형이 아닙니다. 위정자의 덕이야말로 나라의 보배입니다. 군주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 배에 탄 사람들까지 모두 적국의 편이 될 것입니다." 위정자의 덕이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야말로 나라의 보물이며 지킴이 아닐까요?
다섯째, 인간의 길을 벗어나지 마라.
'맹자(孟子)'는 "한 가지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불고(不辜)를 죽여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해도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불의는 인간의 길을 벗어나는 것, 즉 비인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불고(不辜)는 죄가 없는 사람을 뜻하지요. 옛날의 훌륭한 리더들은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천하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날로 덕을 쌓고 좋은 업을 나날이 지으면 천하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탄핵의 사태는 위정자가 덕을 쌓지 못하고 나쁜 업을 지은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새해에는 '덕업을 일신'하여 온 천하에 큰 은혜가 나타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
'신라'의 이름은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에서 따온 말인데, 이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그물이 사방으로 펼쳐지듯 하라'는 의미이다. 신라는 진한 12국 중 한 나라인 사로국(斯盧國)에서 출발하였다. 출발 이후 국호는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서라(徐羅), 신라(新羅) 등과 같이 시대의 추이에 따라 어형이 약간씩 변모하였고, 또한 표기형도 상당히 변하였다.
'신라'라는 국명을 정한 것은 덕업일신(德業日新)의 '신(新)'과 망라사방(網羅四方)의 '라(羅)'를 합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조(條)와 삼국유사의 왕력(王歷) 기림(基臨) 이사금 조에 보이는 기사로서,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 이는 후세 유교사상의 영향 하에서 왕도사상을 강조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또 다른 견해로는 신라를 신국(新國) 곧 '새나라'의 의미로 해석하는 설이다. 이는 해동역사(海東繹史)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라는 국호의 사용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지증마립간 조에, 4년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혹은 사라(斯羅)라고도 칭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신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집니다. … 왕이 이에 따랐다는 기사가 있다.
이로 보아 지증왕 이전에는 신라 외에 여러 가지 칭호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실제 기림 이사금 10년(307)에 "나라 이름을 다시 신라라 하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이때의 기사는 여러 이름 중에 하나인 '신라'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증왕 4년(503) 부터 '신라'라는 단일화된 칭호를 사용한 것이다.
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정권은 정통성이 취약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강력한 개혁, 개방조치를 취해야 한다. 선진국 문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지지기반을 확보할수 있다.
지증왕(智證王)이 즉위 초기에 개혁조치를 과감하게 취한 것은 쿠데타 정권으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배권력 내부의 갈등을 딛고 권력을 잡았기에 지배층 내부보다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치를 적극 취했다. 민중과 손잡고, 지배집단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지증왕조에 행해진다.
지증왕은 집권 초기에 체제 정비에 나섰다. 개혁 군왕은 즉위 3년에 백성들의 말 못할 고통의 하나인 순장(殉葬)을 금지하고, 소를 몰아서 밭갈이(牛耕)하는 법을 개발해 농사를 권장했다.
아울러 지증왕 6년에 스므살 밖에 되지 않은 이사부로 하여금 동해 해상세력의 중심지인 삼척의 통치자로 보내고, 그해에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해 해양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한다.
4년 (503년) 국호를 신라(新羅)라고 정하고, 임금의 호칭을 왕(王)으로 정했다.
4년(503) 겨울 10월에 여러 신하들이 아뢰기를, "시조(始祖)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國號)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 부르거나 사로(斯盧)라고 부르고, 혹은 신라(新羅)라고도 말하였습니다. 신들이 생각하건대,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는 뜻이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살펴보건대, 예로부터 국가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 또는 '왕(王)'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시고부터 지금 22세(世)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方言)으로만 부르고 존귀한 호칭으로 바로 잡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여러 신하들이 한 뜻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호칭을 올립니다"고 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註)
▶시조(始祖)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國號)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 부르거나 사로(斯盧)라고 부르고, 혹은 신라(新羅)라고도 말하였습니다: 신라는 '신라(新羅)'를 국호로 획정하기까지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거나 기록되었다. 본서와 '삼국유사'에는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사라(斯羅), 사로(斯盧), 계림(鷄林 또는 雞林), 신라(新羅), 계귀(雞貴), 구구탁예설라(矩矩吒䃜說羅) 등이 국호로 사용되었다고 전하고,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등의 중국 정사와 대당서역구법순례행기(大唐求法巡禮行記), 양직공도(梁職貢圖)에서는 사로국(斯盧國), 설라(薛羅), 신로(新盧), 신라, 사라, 구구탁예설라 등이,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등 일본측 문헌에서는 신라, 신량(新良), 사라, 계림(鷄林), 지라기(志羅紀) 등이 신라 국호로 쓰였다고 전한다.
한편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에서는 '사라', 울진 봉평리 신리비에서는 '신라'라는 국호가 적혀 있다. 본서 권제1 신라본기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즉위년조에서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고 하였고,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서 혁거세가 나라를 건국하고 이름을 서라벌 또는 서벌, 또는 계림이라고 지었다고 하였다.
또한 본서 권제1 신라본기제1 탈해이사금 9년 3월조에 김알지가 탄생한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바꾸고, 이것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전하고, 본서 권제2 신라본기제2 기림이사금 10년조에 다시 나라 이름을 신라로 바꾸었다고 전한다.
3세기 중반의 사정을 전하는 삼국지 권30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한(韓)조에서 신라를 사로국이라고 표현하였고, 양서 권54 열전 제48 제이(諸夷) 동이(東夷) 신라조에서 "위나라(북위) 때에는 신로(新盧), 송나라 때에는 사라 혹은 신라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과 더불어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충주 고구려비(忠州 高句麗碑)에서 '신라', 503년 9월 25일에 건립된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에서 '사라'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건대, 신라의 국호는 대체로 서라벌(서벌)→ 사로→ 사라 또는 신라→ 신라의 순으로 변천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탈해이사금 때에 계림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고 전하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신라를 언제부터 계림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기 어렵지만, 중고기의 금석문에서 계림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는 정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중고기 말이나 그 이후 시기에 비로소 신라를 계림이라고 별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신들이 생각하건대,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는 뜻이니,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제15 기림이질금조에 "정축(307)에 국호를 신라(新羅)로 정하니,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四方)을 망라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는 지증왕, 법흥왕 치세(治世)의 일이라고 한다"고 전한다. 삼국유사 왕력편의 기록은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고, 본서 신라본기의 기록이 사실을 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지증왕 4년(503) 10월에 신라라는 국호를 획정한 것은 신라적인 천하관으로서 사방의식(四方意識)의 성립과 동시에 신라 영역 내에 존재하는 주민을 노인과 일반 민으로 차별하지 않고 모두 일반 민으로 대우하는 민에 대한 인식의 성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또한 '덕업(德業)'이 유교적인 표현이 분명하고, '망라사방'에서 '사방'도 마운령 신라 진흥왕 순수비(磨雲嶺 新羅 眞興王 巡狩碑)에 나오는 사방탁경(四方託境)과 마찬가지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왕도사상과 연결시킬 수 있으므로, 신라는 유교 정치이념을 수용하여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었다.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호칭을 올립니다: 지증왕 4년(503)에 건립된 포항 냉수리 신라비(浦項 冷水里 新羅碑)에서 사훼(沙喙) 지도로갈문왕(至都盧葛文王), 사덕지아간지(斯德智阿干支), 자숙지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 훼(喙) 이부지일간지(尒夫智壹干支), 지심지거벌간지(只心智居伐干支), 본피(本彼) 두복지간지(頭腹智干支), 사피(斯彼) 모사지간지(暮斯智干支)를 '일곱 명의 왕들[王等]'이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5세기 후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환두대도(環頭大刀)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이사지왕'은 금관총의 주인공인 왕족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두 자료를 통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왕족과 6부의 대표 및 훼부, 사훼부 핵심 지배층 역시 '왕'을 칭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에서 법흥왕을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 그의 친동생인 입종(立宗)을 '사부지갈문왕(徙夫智葛文王)'이라고 하였다. 적어도 524년까지 신라 국왕을 '매금왕', 부왕(副王)의 성격을 지닌 왕족을 '갈문왕'이라고 불렀고, 일반 왕족이나 부의 대표, 훼부와 사훼부의 핵심 지배층 역시 '왕'이라고 불렀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414년에 건립된 '광개토왕릉비'나 5세기 중반 또는 후반에 건립된 '충주 고구려비'에 신라왕을 '매금(寐錦)'이라고 불렀다고 전하고, 일본서기(日本書紀) 권9 신공황후(神功皇后) 섭정전기(攝政前紀) 9년 겨울 10월조에서 실성왕을 '파사매금(波沙寐錦)'이라고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503년 10월 이전까지 신라왕은 '마립간(麻立干)' 또는 '매금'을 칭하였고, 왕족 가운데 한 사람이 갈문왕을, 그 밖의 왕족이나 부의 대표, 훼부, 사훼부 핵심 지배층은 '왕(王)'이라고 칭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결국 503년 10월에 '신라국왕'이란 국호를 올린다는 것은 실제적으로는 이전까지 사용한 마립간 또는 매금이라는 칭호 대신 '매금왕'이란 칭호를 올린 것으로 봄이 합리적이다.
법흥왕 22년(535)에 작성된 울주 천전리 각석 을묘명(蔚州 川前里 刻石 乙卯銘)에 '성법흥대왕(聖法興大王)'이란 표현이, 539년(법흥왕 26)에 작성된 울주 천전리 각석 추명(蔚州 川前里 刻石 追銘)에 '무즉지태왕(另卽知太王)'이란 표현이 보여, 530년대에 법흥왕은 '매금왕'이 아니라 '대왕(태왕)'이라고 불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래에 매금왕에서 대왕으로의 왕호의 변천은 신라의 정치체제가 6부체제에서 국왕 중심의 집권적인 정치체제로 변화된 사실과 관련이 깊다고 이해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한편 국왕은 덕(德)의 담지자로 덕업교화(德業敎化)를 통해 사방을 망라하는 주체였고, 이것은 성현(聖賢)과 맥이 통하므로, 결국 503년 존호개정은 왕이 성현임을 선언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왕은 성현을 칭하는 존재로서 표위(標位)라는 마립간의 권한을 계승, 격상한 사실을 반영한다고 이해한 견해도 제기되었다.
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第四
智證麻立干
智證麻立干立.
지증 마립간이 왕위에 올랐다.
姓金氏, 諱智大路(或云智度路 又云智哲老).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혹은 지도로(智度路) 또는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奈勿王之曾孫, 習寶葛文王之子, 炤知王之再從弟也.
내물왕(奈勿王)의 증손이며, 습보(習寶) 갈문왕의 아들이고, 소지왕(炤知王)의 재종 동생이다.
母, 金氏鳥生夫人, 訥祗王之女.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鳥生夫人)으로 눌지왕(訥祗王)의 딸이다.
妃, 朴氏延帝夫人, 登欣伊飡女.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 등흔(登欣)의 딸이다.
王體鴻大, 膽力過人. 前王薨, 無子, 故繼位. 時年六十四歲.
임금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전 임금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가 왕위를 이어 받았다. 당시의 나이는 64세였다.
論曰; 新羅王稱居西干者一, 次次雄者一, 尼師今者十六, 麻立干者四.
사관이 논평하길 신라왕으로서 거서간이라 칭한 이가 한 사람, 차차웅이라 칭한 이가 한 사람, 이사금이라 칭한 이가 열여섯 사람, 마립간이라 칭한 이가 네 사람이다.
羅末名儒崔致遠作帝王年代曆, 皆稱某王, 不言居西干等.
신라 말의 이름난 유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에서는 모두를 왕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으로 칭하지 않았다.
豈以其言鄙野不足稱也.
혹시 그 말이 천박하여 칭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여겨서일까?
曰左漢, 中國史書也, 猶存楚語穀於菟匈奴語撑犁孤塗等.
역사책인데도 오히려 초(楚)나라 말인 곡오도(穀於菟), 흉노(匈奴) 말인 탱리고도(撑犁孤塗) 등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今記新羅事, 其存方言, 亦宜矣.
좌전(左傳)과 한서(漢書)는 중국의
신라의 일들을 기록함에 그 방언을 그대로 쓰는 것 또한 마땅하다 본다.
(三年)
三年, 春三月, 下令禁殉葬.
3년(서기 502) 봄 2월 명령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씩을 순장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게 된 것이다.
親祀神宮, 三月, 分命州郡主勸農, 始用牛耕.
임금이 몸소 신궁(神宮)에 제사 지냈다. 3월 주주(州主)와 군주(郡主)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이용한 농사를 하였다.
(四年)
四年, 冬十月, 群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4년(서기 503) 겨울 10월 여러 신하들이 아뢰길,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라 이름을 정하지 않아 사라(斯羅)라고도 하고 혹은 사로(斯盧) 또는 신라(新羅)라고도 칭하였습니다.
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 宜矣.
저희들은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羅)'는 '사방을 덮는다'는 뜻이므로 '신라'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또 옛부터 나라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나 '왕(王)'을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 지 지금 22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방언으로 칭하였고 존엄한 호칭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여러 신하가 한 마음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 이라는 칭호를 올리옵니다."
王從之.
임금이 이 말에 따랐다.
(五年)
五年, 夏四月, 制喪服法頒行.
5년(서기 504) 여름 4월, 상복(喪服)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시행하였다.
秋九月, 徵役夫, 築波里彌實珍德骨火等十二城.
가을 9월, 일꾼을 징발하여 파리(波里), 미실(彌實), 진덕(珍德), 골화(骨火) 등 열두 개 성을 쌓았다.
(六年)
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6년(서기 505) 봄 2월, 임금이 몸소 나라 안의 주(州), 군(郡), 현(縣)을 정하였다.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다.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冬十一月, 始命所司藏氷. 又制舟楫之利.
겨울 11월, 처음으로 담당관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 또한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였다.
(七年)
七年, 春夏旱, 民饑, 發倉賑救.
7년(서기 506),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어 백성이 굶주렸으므로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구제하였다.
(十年)
十年, 春正月, 置京都東市.
10년(서기 509) 봄 1월 서울 동쪽에 시장을 설치하였다.
三月, 設檻穽, 以除猛獸之害.
3월 함정을 만들어 맹수의 피해를 없앴다.
秋七月, 隕霜殺菽.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콩이 죽었다.
(十一年)
十一年, 夏五月, 地震, 壞人屋, 有死者.
11년(서기 510) 여름 5월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졌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冬十月, 雷.
겨울 10월 벼락이 쳤다.
(十三年)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 歲以土宜爲貢.
13년(서기 512) 여름 6월, 우산국(于山國)이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 或名鬱陵島.
地方一百里, 恃嶮不服.
우산국은 명주(溟州)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은 사방 백 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伊飡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 謂于山人愚悍, 難以威來,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抵其國海岸.
이찬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가 되어 말하기를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다루기는 어려우니 계책으로 복종시켜야 한다"고 하고, 바로 나무로 사자를 가득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렀다.
誑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踏殺之.
이사부는 거짓으로 말하였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國人恐懼則降.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즉시 항복하였다.
(十五年)
十五年, 春正月, 置小京於阿尸村.
15년(서기 514) 봄 정월, 아시촌(阿尸村)에 소경(小京)을 설치하였다.
秋七月, 徙六部及南地人戶, 充實之.
가을 7월 6부와 남쪽 지방 사람들을 옮겨 그곳을 채웠다.
王薨, 諡曰智證, 新羅諡法, 始於此.
임금이 승하하고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는데, 신라에서 시호를 쓰는 법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 德(큰 덕/덕 덕)은 ❶형성문자로 悳(덕)의 본자(本字), 徳(덕), 惪(덕)은 통자(通字), 㥀(덕), 恴(덕)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悳(덕)으로 이루어졌다. 悳(덕)은 바로 보다, 옳게 보는 일이고, 두인변(彳)部는 행동을 나타내고, 心(심)은 정신적인 사항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德(덕)은 행실이 바른 일, 남이 보나 스스로 생각하나 바람직한 상태에 잘 부합하고 있는 일을 뜻한다. 본디 글자는 悳(덕)이었는데 나중에 德(덕)이 대신 쓰여졌다. ❷회의문자로 德자는 '은덕'이나 '선행'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德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直(곧을 직)자,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금문에 나온 德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德자는 사람의 '행실이 바르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直자는 곧게 바라보는 눈빛을 그린 것이고 心자는 '곧은 마음가짐'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길을 뜻하는 彳자가 있으니 德자는 '곧은 마음으로 길을 걷는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길'이란 우리의 '삶'이나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 德자는 곧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德(덕)은 (1)공정하고 포용성 있는 마음이나 품성(品性) (2)도덕적(道德的) 이상(理想) 또는 법칙(法則)에 좇아 확실히 의지(意志)를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人格的) 능력(能力). 의무적(義務的) 선(善) 행위를 선택(選擇), 실행(實行)하는 습관(習慣). 윤리학(倫理學) 상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임 (3)덕분 (4)어떤 유리한 결과를 낳게 하는 원인(原因) (5)공덕(功德) 등의 뜻으로 ①크다 ②(덕으로)여기다 ③(덕을)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④고맙게 생각하다 ⑤오르다, 타다 ⑥덕(德), 도덕(道德) ⑦은덕(恩德) ⑧복(福), 행복(幸福) ⑨은혜(恩惠) ⑩선행(善行) ⑪행위(行爲), 절조(節操: 절개와 지조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⑫능력(能力), 작용(作用) ⑬가르침 ⑭어진 이, 현자(賢者) ⑮정의(正義) ⑯목성(木星: 별의 이름) ⑰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상,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클 태(太)이다. 용례로는 덕이 높고 인망이 있음을 덕망(德望), 어질고 너그러운 행실을 덕행(德行), 덕행과 선행을 덕선(德善), 좋은 평판을 덕용(德容),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귀는 벗을 덕우(德友), 덕행으로써 교화함을 덕화(德化), 덕이 두터움을 덕후(德厚), 덕의를 갖춘 본성을 덕성(德性), 덕으로 다스림을 덕치(德治), 잘 되라고 비는 말을 덕담(德談), 남에게 미치는 은덕의 혜택을 덕택(德澤), 어질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덕량(德量), 도리에 닿은 착한 말을 덕음(德音),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도덕(道德), 아름다운 덕성을 미덕(美德), 여러 사람을 위하여 착한 일을 많이 한 힘을 공덕(功德), 집안을 망치는 못된 언동을 망덕(忘德), 사람이 갖춘 덕 또는 사귀어 서로 도움을 받는 복을 인덕(人德), 아름다운 덕행을 휴덕(休德), 이랬다저랬다 변하기를 잘하는 성질이나 태도를 변덕(變德), 착하고 바른 덕행을 선덕(善德), 항상 덕을 가지고 세상일을 행하면 자연스럽게 이름도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을 덕건명립(德建名立), 덕행이 높고 인망이 두터움을 일컫는 말을 덕륭망존(德隆望尊), 덕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뜻으로 마주치는 환경이나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수행에 도움이 됨을 이르는 말을 덕무상사(德無常師),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덕이 뿌리가 되고 재물은 사소한 부분이라는 말을 덕본재말(德本財末), 덕이 있는 사람은 덕으로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 따르게 하므로 결코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덕불고(德不孤),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좋은 행실은 서로 권장하라는 말을 덕업상권(德業相勸), 덕망이 높아 세상 사람의 사표가 된다는 말을 덕위인표(德爲人表),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덕필유린(德必有隣) 등에 쓰인다.
▶️ 業(업 업)은 ❶상형문자로 㸣(업)은 통자(通字), 业(업)은 간자(簡字)이다. 글자 전체가 옛날 악기인 종이나 북을 거는 도구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특히 그 윗부분의 가로 판자를 일컬으며 나중에 큰 널빤지에서, 기록하는 널빤지로, 그리고 문서에서 일의 뜻으로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業자는 '일'이나 '직업'을 뜻하는 글자이다. 業자는 木(나무 목)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業자의 금문을 보면 톱니 모양의 걸개와 받침대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종(鍾)이나 석경(石磬)을 걸어 사용하던 악기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業자는 악기를 들고 다니며 생업을 이어가던 모습에서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인 것이다. 業자에 아직도 '위태롭다'나 '불안하다'라는 뜻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당시 악사들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業(업)은 (1)직업(職業) (2)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所行). 이것이 미래(未來)에 선악(善惡)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함 (3)전세(前世)에 지은 선악(善惡)의 소행(所行)으로 말미암아 현세(現世)에서 받는 응보(應報). 갈마(羯磨) 등의 뜻으로 ①업(業: 직업. 부여된 과업) ②일, 직업(職業) ③학업(學業) ④기업(企業) ⑤산업(産業) ⑥공, 공적(功績) ⑦기초(基礎) ⑧선악의 소행(所行) ⑨순서(順序), 차례(次例) ⑩판자(板子), 장식판(裝飾板) ⑪두려워하는 모양 ⑫이미, 벌써 ⑬시작하다, 창시하다 ⑭잇다, 계승하다 ⑮일하다, 종사하다 ⑯업으로 삼다, 일삼다 ⑰위태롭다, 불안하다 ⑱높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과보를 이끄는 업인의 큰 힘을 업력(業力), 직장에서 의무나 직분에 따라 맡아서 하는 일을 업무(業務), 불교에서 선악의 행업으로 말미암은 과보를 업보(業報), 사업이나 직업에 딸린 일을 업사(業事), 악업의 앙갚음으로서 받는 재난을 업액(業厄), 전생에서 지은 죄로 이승에서 받는 괴로움을 업원(業冤), 집안에서 재수를 맡아 도와준다는 신을 업위(業位), 선악의 과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행위를 업인(業因), 영업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주인을 업주(業主), 같은 산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사회를 업계(業界),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을 업소(業所), 직업이나 영업의 종류를 업종(業種),사업의 형태 또는 실태를 업태(業態), 어떤 사업이나 연구 따위에서 이룩해 놓은 성과를 업적(業績), 사업이나 기업의 주체를 업체(業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사업을 기업(企業),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단결하여 노동을 하지 않음을 파업(罷業), 일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지속적인 비영리적 활동을 사업(事業), 취직으로 직업을 얻음을 취업(就業), 생산을 하는 사업을 산업(産業), 학업이나 기술을 가르쳐 줌을 수업(授業), 생계를 세워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일을 직업(職業),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를 가지고 일을 함 또는 그러한 일을 작업(作業), 불교에서 제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제스스로 받음을 이르는 말을 자업자득(自業自得), 편안히 살면서 생업을 즐김을 일컫는 말을 안거낙업(安居樂業), 키와 갑옷이라는 뜻으로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사업을 이르는 말을 기구지업(箕裘之業),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나라를 세우는 일과 나라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창업수성(創業守成), 같은 업은 이해 관계로 인하여 서로 원수가 되기 쉬움을 일컫는 말을 동업상구(同業相仇), 높은 덕과 큰 사업 또는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힘을 일컫는 말을 숭덕광업(崇德廣業), 어떤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일컫는 말을 창업수문(創業守文), 자손에게 뒤를 이어 이루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수성지업(垂成之業) 등에 쓰인다.
▶️ 日(날 일)은 ❶상형문자로 해를 본뜬 글자이다. 단단한 재료에 칼로 새겼기 때문에 네모꼴로 보이지만 본디는 둥글게 쓰려던 것인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日자는 태양을 그린 것으로 '날'이나 '해', '낮'이라는 뜻이 있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의 껍데기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둥근 모양을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日자가 비록 네모난 형태로 그려져 있지만, 본래는 둥근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갑골문에 나온 日자를 보면 사각형에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을 두고 태양의 흑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먼 옛날 맨눈으로 태양의 흑점을 식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日자는 태양과 주위로 퍼져나가는 빛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태양은 시간에 따라 일출과 일몰을 반복했기 때문에 日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시간'이나 '날짜' 또는 '밝기'나 '날씨'와 같은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日(일)은 (1)일요일(日曜日) (2)하루를 뜻하는 말. 일부 명사(名詞) 앞에서만 쓰임 (3)일부 명사(名詞)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날의 뜻을 나타내는 말 (4)날짜나 날수를 셀 때 쓰는 말 (5)일본(日本)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날 ②해, 태양(太陽) ③낮 ④날수 ⑤기한(期限) ⑥낮의 길이 ⑦달력 ⑧햇볕, 햇살, 햇빛, 일광(日光: 햇빛) ⑨십이장(十二章)의 하나 ⑩나날이, 매일(每日) ⑪접때(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 앞서, 이왕에 ⑫뒷날에, 다른 날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달 월(月)이다. 용례로는 그 날에 할 일을 일정(日程), 날마다를 일상(日常), 날과 때를 일시(日時), 하루 동안을 일간(日間), 해가 짐을 일몰(日沒), 해가 돋음을 일출(日出), 그 날 그 날의 당직을 일직(日直), 직무 상의 기록을 적은 책을 일지(日誌), 하루하루의 모든 날을 매일(每日), 날마다 또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를 연일(連日),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일을 쉬고 노는 날을 휴일(休日),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 있는 날을 가일(佳日), 일본과 친근함을 친일(親日), 일본에 반대하여 싸우는 일을 항일(抗日), 일이 생겼던 바로 그 날을 당일(當日), 일정하게 정해진 때까지 앞으로 남은 날을 여일(餘日), 날마다 내는 신문을 일간지(日間紙), 일상으로 하는 일을 일상사(日常事), 날마다 늘 있는 일이 되게 함을 일상화(日常化),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뜻으로 학업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보함을 이르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힌다는 뜻으로 늙고 병약하여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모도궁(日暮途窮),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무언가 바라는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더해짐을 이르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한낮에 그림자를 피한다는 뜻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중도영(日中逃影), 해가 서산에 가깝다는 뜻으로 나이가 들어 죽음이 다가옴을 이르는 말을 일박서산(日薄西山), 같은 날의 두 번의 만조 또는 간조의 높이가 서로 같지 않은 현상을 일컫는 말을 일조부등(日照不等), 날로 달로 끊임없이 진보 발전함을 일컫는 말을 일진월보(日進月步),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점차 이지러짐을 일컫는 말을 일월영측(日月盈昃), 날마다의 생활을 이르는 말을 일상생활(日常生活), 해와 달과 별을 일컫는 말을 일월성신(日月星辰), 아침 해가 높이 떴음을 일컫는 말을 일고삼장(日高三丈), 항상 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일상다반(日常茶飯), 날마다 달마다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말을 일취월장(日就月將),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말을 일구월심(日久月深) 등에 쓰인다.
▶️ 新(새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근(斤; 도끼)部와 木(목)과, 음(音)을 나타내는 辛(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辛(신; 바늘)과 木(목; 나무)으로 이루어진 진(榛; 개암나무, 잡목숲)의 옛 글자에 斤(근; 나무를 베는 도끼)을 더한 글자이다. 나무를 베어 땔나무를 하는 일을 말한다. 나중에 나무를 하다가 되었다. 땔나무의 뜻은 초목(草木)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를 더하여 薪(신)이라 쓰고, 新(신)은 베다, 새롭다, 새롭게 하다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新자는 '새로운'이나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新자는 辛(매울 신)자와 木(나무 목)자,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新자를 보면 辛자와 斤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辛자는 발음요소이고 斤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木자가 더해지게 되면서 지금의 新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新자는 본래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든다는 뜻이었지만 후에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라는 뜻이 확대되면서 '새로운'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新자가 '새롭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艹(풀 초)자를 더한 薪(섶나무 신)자가 '땔감'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新(신)은 (1)어떠한 명사(名詞) 뒤에 붙이어 새로운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중국(中國) 나라 이름의 하나. 왕 망(王莽)이 전한(前漢)을 쓰러뜨리고 세운 나라. 주례(周禮)에 따라 복고적인 개혁(改革)을 했으나, 적미(赤眉)의 난으로 망(亡)하여 광무제(光武帝)의 후한(後漢)으로 바뀜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새, 새로운 ②새로, 새롭게, 새롭게 다시 ③처음, 처음으로 ④새로움, 새것, 새로운 일 ⑤새해, 신년 ⑥새롭개 안 사람 ⑦새로 개간(開墾)한 땅 ⑧나라의 이름 ⑨새로워지다, 개선되다 ⑩새롭게 하다, 새롭게 고치다 ⑪친하다, 친하게 지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옛 고(古), 옛 구(舊)이다. 용례로는 새로운 세계를 신세계(新世界), 예술계나 체육계나 어떤 사회에 새로 등장한 신진의 사람을 신인(新人), 관직 같은 데에 새로 임명됨을 신임(新任), 새로 지어 만듦을 신작(新作), 새로 들어옴을 신입(新入), 출판물을 새로 인쇄하여 내놓음을 신간(新刊), 새로운 물품을 신품(新品), 새로운 형을 신형(新型), 새롭고 기이함을 신기(新奇), 새로운 소식이나 비판을 신속하게 보도하는 정기간행물을 신문(新聞), 완전히 새롭게 어떤 일을 하는 일을 신규(新規), 새롭고 산뜻함 또는 채소나 생선 따위가 싱싱함을 신선(新鮮), 새로 설치함을 신설(新設), 새로 건축함을 신축(新築), 늦은 봄이나 초여름의 초목에 돋은 새 잎의 푸른 빛을 신록(新綠), 갓 결혼한 남자 또는 결혼하여 새서방이 될 남자를 신랑(新郞), 갓 결혼한 색시 또는 결혼하여 새색시가 될 여자를 신부(新婦), 일체의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함을 혁신(革新),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함을 쇄신(刷新), 모든 것이 개혁되어 새롭게 됨 또는 묵은 제도를 아주 새롭게 고침을 유신(維新), 취향이 매우 새로움을 참신(斬新), 옛 것을 고쳐 새롭게 함 또는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을 경신(更新), 가장 새로움을 최신(最新), 묵은 것을 새롭게 고침을 개신(改新),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새로운 것을 맞아 들임을 영신(迎新), 아주 새로워짐을 일신(一新),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읽기가 좋음을 일컫는 말을 신량등화(新凉燈火),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거나 들어서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신진대사(新陳代謝), 새로 정이 들어 얼마 되지 아니할 때를 이르는 말을 신정지초(新情之初), 새 것과 헌 것이 교대한다는 말을 신구교대(新舊交代), 새 것이 들어오고 묵은 것이 나간다는 말을 신입구출(新入舊出), 새로 두각을 나타낸 신인으로서 의기가 날카롭다는 말을 신진기예(新進氣銳), 땔감을 동나서 불이 꺼진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을 신진화멸(新盡火滅), 새봄 좋은 명절이라는 말을 신춘가절(新春佳節),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 짐을 일컫는 말을 개과자신(改過自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법고창신(法古創新),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뜻으로 세상에 대한 체면이나 명예나 사물의 모양이나 일의 상태가 완전히 새롭게 됨을 이르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