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할증요금
상강 절기를 하루 앞둔 시월 하순 화요일이다. 더위가 물러가지 않던 폭염으로 시달리기는 했지만 기상 관측에서는 엊그제 설악산 대청봉에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작년보다 이틀 빠르단다. 그곳에서 물든 단풍은 밤에도 쉬지 않고 남녘으로 불붙어 내려오고 있을 테다. 이즈음이면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친구들이 이번 일요일 떠나는 소풍 장소인 속리산을 물들이고 있으려나.
일 년 전 늦가을 초등 친구들 여남은 명이 베트남 남부 내륙 달랏과 해안 나트랑을 다녀온 적 있었다. 나는 고소 공포를 느끼고 해외로 나간 경험이 적었는데 친구들의 권유에 떠밀려 함께 떠나 즐거운 일정을 보내고 왔다. 짧은 여정을 마친 귀국 후 내게는 더 특이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지녔던 휴대폰이 현지까지 날아온 괴문자 부고를 열어본 결과 헤킹이 된 사건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헤커들은 이제 내 이름으로 된 부고장을 만들어 휴대폰에 등록된 전화번호로 뿌려댔다. 괴소식을 먼저 알게 된 가족과 주변 지인은 발칵 놀라 법석이었는데 나는 일일이 응대가 귀찮아 전원을 꺼 놓고 잠들었다 날이 밝아온 새벽부터 상황은 몹시 긴박했다. 해커들은 내 이름으로 보낸 부고장을 터치하면 개인 정보가 탈취되고 오염시키는 악성 앱을 깔아 곤혹스러웠다.
그 일로 금전 은행으로부터 손실은 없어도 오염된 폰을 초기화 시킨다거나 유출된 개인 정보가 회수될 리 만무했다. 후일 그 미심쩍은 부고를 열어본 몇 지인도 나와 같은 후속 절차를 똑 같이 밟았다고 해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 몰랐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일시 중지시켜둔 거래하던 은행 통장 비밀번호를 바꾸었고 주민등록증도 갱신 발급해 써야 했다.
스무날 전 이달 초였다. 문자로 지인 결혼식 청첩장이 와 직접 가지는 못해도 마음은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교직 말년을 보낸 거제에 사는 선배의 혼사였다. 예식이 내달 초라 시간 여유는 남아 느긋했는데 엊그제 미리 혼주 통장으로 적은 액수나마 축의를 전했다. 전화를 넣어 육성으로 그간 밀린 안부와 함께 축하 인사를 전해도 되겠으나 그냥 줄였고 문자도 나누지 않았다.
내게 온 문자는 010으로 온 청첩장인데, 누구로 딸 결혼식을 치르니 축하해 주십사면서 예식 호텔을 안내받고 혼주 계좌번호도 알게 되었다. 따님 성함이 특이해 언제 한 번 들어본 기억이 있고 그곳에서 유일한 오성급 호텔이라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다만 010인 번호는 내가 앞서 해킹당한 일로 지웠던 번호로 여기고 이름까지 입력해 새로 저장해놓았더랬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선배 혼사의 축의는 이미 전했는데 엊저녁 다른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한 건 왔다. 내용은 요즘 이상한 청첩장이 나돌고 있으니 주의하십사는 내용이었다. 그때야 앞서 보낸 축의금이 생각나 그 지인에게 전화를 넣으니 해커들 특유의 착신음이 들려와 이미 때는 늦었더랬다. 앞서 등록되지 않은 010으로 온 전화는 내가 지웠던 선배가 아닌 해커가 조작한 번호였다.
간밤부터 여름 장맛비보다 더할 가을비가 아침이 와도 그치지 않은 화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교를 도서관으로 나서고 싶었는데 지난밤 해커에 낚인 축의금 후속 절차를 알아볼 일로 은행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빗속에 찾은 농협 여직원은 늙수그레한 사내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농협간 자금 반환 청구신청서를 써놓았는데 사유는 상세 불명 문자로 온 청첩장 축의금이라 적었다.
반향이 있을 리 없을 서류 작성을 마치고 농협 창구를 나와 멀지 않은 재래시장 휴대폰 판매점을 찾았다. 연전 내가 폰을 구입했고 작년에 해커를 당했을 때 오염된 자료 초기화했던 매장이었다. 상담 직원은 단순 사고라 폰에 입력된 정보 유출이나 나로 인한 더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괴이쩍은 문자는 조심하십사는 얘기를 귓등으로 들을 일 아니었다. 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