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나는 감옥 독방에서부터 아무도 몰래
문신을 새겨가기 시작했다
고문의 악몽 때문이었다
고문 후유증은 밖으로 표명할 수 없는
나만의 공포, 나만의 치욕, 절망, 추락, 비명,
은근하게 기습하여 악랄하게 몰아대는
생생한 심신의 고통이었다
어느 날 나는 철근 토막을 숨겨 들여왔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하면
독방 시멘트 벽에 갈아대기 시작했다
탈옥을 준비하는 자처럼 은밀하고 끈질기게
백 일 밤을 갈아 바늘 침을 만들었다
손에 피가 맺히고 굳은 살이 박이고,
어느 밤은 이런 내가 미친 것만 같았으나
그래도 자살의 충동을 가라앉힐 순 있었고
그러나 고문의 고통을 갈아버릴 순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몰래몰래 내 몸 안쪽의
보이지 않는 곳에다 문신을 새겨갔다
한 땀 한 땀 피가 번지는 고통을 느끼며
처음엔 날 이렇게 만든 독재자와 고문자들을,
잊지 말아야 할 자들의 이름을 새기려 했다
그러다 핏줄을 찔러 얼굴에
검붉은 피가 뿜기는 순간, 알아챘다
그 더러운 이름을 내 몸에 담고 살 순 없다고
그들은 살아있어도 이미 죽어버린 자들이고
악의 칼잡이였으나 이미 내던져진 도구라고
진정한 복수는 다르게 살아 갚아주는 거라고
그리하여 나는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나를 살게 하고 내게 힘을 주고 나를 지켜주는
나보다 앞서 죽었으나 죽어서 살아있는 이들,
내 안에 눈물로 살아있는이름들을 새겨갔다
아, 내 몸은 하나의 묘비
내 살아있는 몸은 죽은 자들의 종묘宗廟
그이들이 죽는 최후의 순간까지 품어온
비명 같은 유언과 타오르는 불꽃의 성소
어둠이 깊어가고 아침이 밝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가
밤 사이, 내 몸의 검은 문신들이
흰 이부자리에 탁본처럼 새겨져 있다
그렇게 나의 하루 생이 시작되고
나는 그것을 받아쓰고 전해준다
오늘도 좌우 양쪽에서 돌이 날아들고
그 돌에 내 몸의 문신이 탁본되어
내가 갈어온 길에는 비림碑林이 서는구나
나는 또다시 추방되어 떠도는구나
국경 너머 분쟁과 가난의 땅에서
내가 만나고 안고 울어주는 아이들이
찰칵, 흑백 필름의 음화처럼
내 몸에 새로운 문신으로 남겨지는구나
오늘 밤 또 의로운 누군가 죽어가며
내 몸에 비명의 문신을 새기는구나
오래된 악과 새로운 적들에 맞서다
쫓기고 갇히고 밟히고 쓰러지는 이들이
내 몸에 비원의 문신을 새기는구나
이 깊은 한恨의 사랑은
이제 내 몸을 다 덮고도 모자라
내 피부는 검은 묘지, 검은 묘비,
검은 슬픔, 검은 상처의 몸이다
새볏 두 시, 몸을 씻고 잠자리에 눕는다
내 몸에 층층으로 새겨진 그이들이 일어나
세상에 타전할 말을 탁본으로 새겨간다
내 오랜 통증에 몸소리칠 때
꿈속의 비명이 휘몰아칠 때
악몽의 계시에 소스라칠 때
내 몸의 문신이 나를 호명하는 순간,
나는 깨어나 묵연히 홀로 앉아
전율하며 퍼지는 검은빛의 파동을,
저기 여명의 푸른빛을 바라다본다
아, 내 몸은 검어서 빛나는 밤
어둠 속에 빛이 오는 길이다
- 너의 하늘을 보아, 느린걸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