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웨딩홀 -1-
춥다 그냥 추울 정도가 아니고 아주 혹독하다 영하 15도라 하지만 두텁게 얼어있는 한강을 쓸고 오는 매서운 바람으로 인하여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훨씬 웃돌고 있다 두툼한 내복에다 오리털 파카 털모자에 목도리 마스크 까지 했다
옛날에도 이보다도 훨씬 추운날이 많았다 문틈을 파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으려고 방걸레로 틈새기를 막았다 자고 일어나니 걸레가 꽁꽁얼어 떼어내지 못하고 방맹이로 두들기어 간신히 떼였다 문을 열려니 문고리에 손이 쩍쩍 얼어 붙었고 허술한 수수깡 울타리는 쌓인눈에 이기지 못해 쓰러지고 사립문은 눈에 뭏히여 열수가 없었다 그래도 눈사람을 만들며 발목이 덮히는 십리가 넘는 학교길을 얇은 공책 두어권 주는 개근상을 바라보며 다녔다 낡은 고무신과 찟어지어 꿰맨 지렁이고무신은 그래도 고급이다 더러는 집세기 신은 애들도 있었다 내복도 없는 홑바지 저고리에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들락거렸고 양말은 발가락이 다나오고 발뒤끔치가 드러났다 반세기 하고도 사반세기 훨씬이전 상상하기 어려운 피비린내 나는 6.25를 겪고 베고픔에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보리고개를 지내면서 천지사방 먹을게 없어 풀뿌리를 뽑아 흙을 털고 씹기도 했고 나무껍질도 벗겨 진액을 빨기도 했다 배고픔을 참다못해 그걸 이기려고 시냇가에 물이나 논두렁에 물을 두손으로 웅켜쥐어 핥았다 요지음처럼 먹고 입을게 넘처나 쓰레기가 되고 하다못해 공중 변소까지도 난방이 잘되고 꼬리를 달고오는 교통이 좋은 천국같은 세상인데도 춥다고 난리이고 못살겠다 난리이다
"신부가 말을 갈아 탓대구먼" "어쩐지 곱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팔자가 드세구먼" "글쎄 말이여 그래두 신랑은 어디서 어린것을 만났구먼" 뒤돌아보니 여인들 몇몇이서 수군대고 있다가 나를보더니 주춤하며 얼른 입을 닫는다 왜 이좋은 경사스러운날에 남의 일을 이러쿵자러쿵 수군거릴가 말을 갈아 타다니 그 무슨소릴가 얼마를 지나고 나서야 말을 갈아탄다는 의미를 알았다 신부가 초혼에 실패하고 어리고 어린 동생같은 신랑을 맞는다고해서 나온말이였다 친구들 열댓명이 초등학교 동창인 문숙이의 딸이 시집가는 결혼식장을 찾았다 날씨 탓인가 인맥이 부실한 탓인가 생각보다 손님이 없으니 초라한 느낌이든다 " 이렇게 추운날 먼데서 오느라고 고생들했어 추운데 어디 따뜻한데가서 몸을 녹이며 한잔들해" 신부 어머니 문숙이가 내손에 봉투하나를 쥐어준다 금 일봉이다 듣기로는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한것 같다 소위 가장인 남편이란 작자는 오랜동안 놀고먹고 여자가 힘들게 벌어오는 것으로 먹고사는 물신선이라니 가이 짐작이 간다 저 멀리 신부석의 맨 앞줄에 앉아 계시는 신부 할아버지가 보인다 비록 백발이지만 어릴적 보아온 모습이라서 쉽게 알아볼수가 있었다
문숙이네 집은 학교가느라면 오고가는 길가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남녀가 유별하든 시절이라 문숙이 하고는 졸업할때 까지도 말한마디 건네고 받은 적이 없다 오늘처럼 추운날씨 학교에서 오는길에 문숙이 아버지를 만났다 그분은 내손을 잡아끌고 안으로 들어가시드니 아궁이를 뒤적이여 새카맣게 탄 커다란 고구마 하나를 꺼내주신다 배고팟던 김에 숯검정이 고구마 한개는 꿀맛이였다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비록 가난했지만 귀족대우를 받았고 도련님 이란 이름까지 달려 있었다 멀리는 조상님이 대대로 정승반열에 계셨고 이조때에는 조상님이 영의정으로 십여년을 독상하시였으며 판서 대제학 판윤등을 거치어온 귀족중의 귀족이니 나 또한 귀족이 아닐수 없다 세월이 바뀌어 오랜 시간이 지나 상반제도가 허물어진지 오래건만 그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어쩌다 학교가는길에 세덕할멈을 만나면 그분은 치마뒤폭으로 나의 코딱지를 닦아 주시며 차거운 나의 얼굴을 두손으로 꼭 녹여주시기도 했다 도련님 코딱지는 조금도 더럽게 생각지 않으시는 고마운 분이셨다 구부린 세덕엄마의 정수리에 희뜩희뜩한 머리는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문숙이 아버지께서도 좁은 시골에서 사시다 보니 나를 너무나도 잘알고 계셨던 것이다
날씨탓인가 모두들 집으로 가겠다며 그리도 좋아하던 2차고 노래방이고 돌아 보지 않는다 해도 얼었는지 뿌옇게 길을 내려다보는 2003년 1월 5일 일요일 한강 웨딩홀이였다 그옛날 세덕할멈이 코딱지 떼어주던 아이는 어느덧 이순耳順이지나고 환갑도 지났다 그리고 두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였고 시아버지이자 장인이 되였다 세월은 번개불에 콩을 구워먹듯 빠르게 빠르게 지나간다 아 ~ 그시절 ! |
첫댓글 글 구성지게 잘 쓰시네요.저보다 훨 연배이신 것 같습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어제 같은데.
많은 것들이 참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한편의 단편 소설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에서 문숙이 딸 결혼식까지 건너 뛰어 가는데도
물 흐르는 듯한 연결이 참 솜씨있네요.
만사가 이리도 술술 풀려 갔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옛날 일기를 훓어 보다가 2003년 1월 5일에 있었던 그리움이 떠오릅니다
까까머리에 단발머리들이 세월에 떠밀리어 쭉정이 같은 모습으로 만났슴니다
그래도 그날이 그리워오는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에게 이유가 있슴니다 주책이 서서히 드러나는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다는 말 이상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