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EBS와 캄보디아 방송국 합작으로 앙코르 와트-앙코르 톰 다큐를 봤는데, 지금껏 봤던 관련 서적들보다 훨씬 자세하더군요;; 그렇게 긴 다큐도 아니지만, 꽤 알짜배기 정보들만 모아놓은 느낌.
크메르 제국의 군사 편제, 복식에 대해서도 꽤나 재미있는 정보들이 있었습니다. 다큐에 나온 정보들과 제가 알고 있던 정보들을
합해보니 꽤나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더군요. 재밌을꺼 같아서 써봅니다. 뭐, 잡설인만큼 요점없이, 두서없이 편하게 써보겠습니다. 사실 다큐를 직접 보시는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중간까지 쓰고 점검하면서 보니 정말 다큐 보시는게 나을지도;;)
우선 무장상태 및 병종에 대해 말해본다면,
갑주를 착용하지 않았다는건 확실하더군요. 지위와 병종을 막론하고 동일합니다. 다만 고위지휘관들은 양산으로 화살을 막아냈던거 같긴 합니다. 투구의 착용도 고위지휘관들에 한정됬던거 같습니다. 그것도 투구라고 보기보단 관에 가까운 형식...
즉, 사실상 그냥 맨몸뚱아리로 무기들고 싸웠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건 당연히 기후문제 때문이긴 한데, 문화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봅니다. 반례도 있긴 있고, 크메르 제국이 제련술이나 철공급이 부족한것이 아니어서...
어쨌든 정말 전장이 살벌했을꺼 같군요...
주요 병종은 보병, 기마병, 전차병, 코끼리부대로 크게 나뉩니다.
보병의 경우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우선 검병이 있는데, 이들은 방패를 착용하고, 베기에 특화된 짧은 칼들을 사용했던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것이 기본 무장인지, 검병이 따로 편제되어 있었는지는 불명확합니다. 다큐에서는 검병이 주력이며, 따로 편제되어 있던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주력까진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약간 대치되는 자료가 있어서 그렇게 보긴 힘들고, 지휘관의 호위부대나 중보병의 역할을 했던 부대들의 무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앙코르 톰의 벽화나 제가 가진 자료에 의하면, 주력은 역시 창병입니다. 특별한건 없는데, 방패를 들지 않았다는 점이 특기할만합니다. 갑주를 착용한것도 아닌데 방패도 없는 창병이라니... 뒤의 자료를 보시면, 이 창병들이 정말 파리목숨이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운용되었을진 잘 모르겠군요...
마지막은 궁병인데, 어떤 활을 사용했는지는 좀 미지수입니다. 노 계열보다는 궁 계열을 썼던건 확실한데, 장궁처럼 큰 활을 썼다는 기록은 딱히 없습니다. 활의 형태는 미지수(적어도 제가 본 자료에서는;;)입니다. 다만 투사무기들이 활 하나만 활용된것도 아니었으며, 전반적인 투사무기의 활용이 상당히 잦고, 적극적이었던것으로 짐작됩니다. 전투에서의 비중도 상당히 높고... 일단 갑주 착용이 일체 없으니 당연했겠지요;;
기마병의 경우에도 갑주 착용같은건 일체 없습니다; 아무래도 워낙 더운 지역이라 그렇다고 생각은 하지만, 좀 지나친 감이 있네요; 어쨌든 무장상태 자체는 보병과 크게 달랐던거 같지 않습니다. 역시 창을 주로 썼습니다. 다만 특기할만한 점이라면, 말의 산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동남아시아는 말을 대규모로 사육할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크메르제국 초기의 유적에서도 기마병의 모습이 많이 부조되어 있어서 대체 어떻게 됐는가 궁금했었는데, 말은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왔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기마병도 상당히 유용하게, 그리고 매우 큰 규모로(대월과의 전쟁때는 2만 가까이 동원됐다는 기록이 있는) 운용됐던거 같습니다.
전차의 경우, 이 시기쯤에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완전히 사장된 병종입니다. 하지만 전차도 벽화에 기록된 비중이 꽤 높더군요. 이건 롬토탈워 바바리안 인베이션의 이동식 발리스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전차는 투사무기의 활용도를 극도화시킨 병종이었던거 같습니다. 아마 동시대의 어떤 지역보다도 동남아시아에서 투사무기의 중요성이 강조됐던거 같군요. 전차 역시 큰 규모의 전투에선 몇천대 가까이 운용되었습니다. 산지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전차의 운용이 용이했을 겁니다. 크메르인들이 숙련된 기마술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도 이유가 될지도 모르지요.
코끼리는 아주 중요한 전력 중 하나였습니다. 북아프리카나 인도에서도 코끼리가 전쟁에 동원된 사례가 있지만, 동남아시아만큼은 아닐꺼 같더군요. 다큐에서는 대월과의 전쟁에서 코끼리 만마리가 동원됐다고 하던데, 이건 좀 오류인거 같습니다. 아마 단위가 하나나 둘 정도 과장되거나 잘못된게 아닐까 싶고... 다만 천마리 가까이 동원할 능력은 충분히 있었던거 같습니다. 앙코르 와트의 건설에도 코끼리가 쓰였고, 다른 전쟁에서도 코끼리가 몇백마리씩 동원됐었다는 기록도 있기에..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부대편제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정보가 있는데, 한 부대는 60명의 방패검병과 코끼리에 탄 1명의 지휘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말 그랬을지는 여러 측면에서 의문이 들지만, 그만큼 코끼리가 말만큼이나 주요한 전쟁물자로 동원되고, 코끼리병이 확고한 병종으로 되어있었다고 볼수는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외에도 군대 구성에 있어서 특기할만한 점이 세 가지 더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용병들입니다. 앙코르 톰의 벽화를 보면, 중국인들의 모습이 꽤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당시 크메르제국-동남아시아가 중국(남송)과 활발히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겁니다. 시기상으로도 잘 맞아 떨어지지요.
어쨌든 전쟁벽화에서도 중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수 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찰갑에 투구, 철퇴까지 챙겨든 중보병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체 전력에서도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말한 예외사례인데, 이걸 보면 갑주 착용의 문제를 전적으로 기후로만 돌릴순 없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벽화의 모습으로 짐작컨데, 행군시 상당한 문제를 겪었던거 같기도 하고, 훈련상태나 사기는 그리 높았던거 같진 않습니다.
둘째는 대규모의 생구(화살받이)입니다. 특별히 공성전을 벌였던 것도 아닌데, 적의 포로를 화살받이로 삼는 장면이 굉장히 많더군요. 사람목숨이 사람목숨이 아니었던건지...어쨌든 불교의 영향력이 큰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양상이 굉장히 무자비하고 잔혹했던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사실 종교로 인해 전쟁양상이 온화(?)해진 사례라는게 있지도 않지만. 더 나아가면 무자비하지 않고 잔혹하지 않은 전쟁도 없긴 합니다만;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 어떤 전술로 포로들을 이용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적의 사기 저하를 위한건지, 투사무기에 의한 피해때문인지... 아무튼 특기할만한 사항.
셋째는 여군입니다. 특히 왕의 호위병들로 상당한 숫자의 여군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부분은 오히려 이해가 가는 것이, 열대지방이라 생산성이 워낙 높다는 점, 그리고 갑주 착용(;;)을 안 하니 완력이 부족한 여자들도 전쟁에서 활약할 여지가 좀 더 생겼다는 점이 있으니.. 뭐, 그렇다고 해도 종교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들도 있었을겁니다. 비교적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적은 사회이기도 했고..
또 다른 것은 전투의 양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데로 투사무기의 비중이 상당히 커보였는데, 그 외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전술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고...
다만, 수전의 비중이 대단히 높았다는게 특기할만합니다.
뭐, 동남아의 지리적 조건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수전'이란게 중요합니다. 육상전도, 해전도 아니라는거. 그 동네의 호수나 강은 우리와는 스케일이 다르며, 그렇다고 해서 바다하고도 같은것도 아닌지라 대단히 독특한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참고로 대월이 원나라를 물리친것 또한 수전입니다. 뭐, 사실 그냥 해전이라고도 하긴 하지만, 양상이 똑같진 않아서 수전이라고
표기하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수전은 크메르제국과 참파왕국이 결전을 벌였던 톤네삽 호수 전투가 있는데 이 전투를 묘사한 벽화에 재미있는 모습이 많습니다. 카누 수준의 작은 배들에 몇십명씩 타서 전투를 벌이는데, 갑판에는 병사들이 있고 바닥에는 노잡이들이 있습니다. 이 노잡이들은 때로는 적의 포로를 쓰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고대 지중해 해전과도 비슷하다 볼수 있는데, 좀더 투사무기의 비중이 높아보입니다. 그런데 벽화를 보면, 전투의 초반에는 참파가 더 유리하다가 후반에 특공대(!)들의 활약으로 크메르제국이 승리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크메르의 특공대들이 잠수를 해서 배에 구멍을 내고, 가라앉는 배에 뛰어들어서 승리를 하더군요..... 물로 뛰어드는 참파군을 물고기와 악어가 잡아먹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고..
현지에 가서 그 호수를 봤는데, 물이 더러운건 아니지만 잠수해서 뭔가를 찾을수 있는 물도 아닙니다; 50CM정도의 깊이도 전혀 안 보이는...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과장않고 물반 고기반이고 악어도 산다는 호수인데, 거기를 잠수해 들어가서 배에 구멍을 뚫다니; 이 근성가이들의 위용은 인류전쟁사에서도 손꼽힐만합니다;
음. 더 쓸게 있던가... 일단 떠오르는건 이 정도네요...ㅎㅎㅎ
첫댓글 꼬끼리가 활용된 좀더 다양한 전투를 알수는 없을까요? 근데 명에 안남이 조공을 바치던데(조공무역) 이것도 조선과 비슷한형식이였습니까요?(지식좀 나눠주셈)
코끼리가 활용된 좀 더 다양한 전투라는게 어떤 말씀이신지... 코끼리부대가 동원된 주요한 전투를 소개해달라 말씀하시는건지, 코끼리 부대의 전술적 움직임을 소개해달라 말씀하시는건지 잘 모르겠군요. 뭐, 어차피 어느 쪽이든 저도 잘 모릅니다만;; ㅎㅎㅎ 그래도 한마디만 더 해본다면, 코끼리 부대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선 확실히 여러가지 면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던거 같습니다. 큰 전쟁이 벌어지면 양쪽 모두가 코끼리 부대를 동원하기 때문에 코끼리 부대끼리 전투를 벌이기도 해서, 종종 코끼리 위에 탄 병사들이 대코끼리용의 거대한 노를 사용하기도 했던거 같습니다. 정글이 많아서 게릴라전(사실 게릴라 전이란 개념 자체는 근대
의 소산이지만, 당시 동남아의 정글전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기가 뭣하군요... 기억나면 바꾸도록 하겠습니다)을 벌일때, 게릴라전에 대응하는 쪽에서 시야확보나 길을 내는 용도로 지휘관들이 애용했던거 같고요. 그외에도 반드시 직접 교전이 아닐지라도 군수물자의 운송이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쓰였던거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라 사람목숨이 사람목숨이 아니었던건지..." -> 요 부분은 좀 지적할 필요가 있군요...^^; 동남아의 인구가 급증하는 것은 근대기의 일입니다. '베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인구밀도는 그닥 높지 않았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_^
예전에 동남아사를 연재하던 앨런비님 말대로 워낙 뻥이 심한 동네라서 과장이 많이 되었을겁니다.
제가보기엔 1/100으로 다운스케일하면 어느정도 들어맞을듯 합니다.
당시 인구도 많지않지만, 전투코끼리가 아니라 일반 코끼리일지라도 만마리를 유지하려면 나라가 휘청할껄요.
또, 중국도 말이 부족해서 몽골쪽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크메르가 만명이상의 기병을 유지할 정도로 수입해갈 여유가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그정도로 말이 필요했다면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기웃거렸을 가능성이 높고 기록도 남아있겠죠.
1/100까진 아니라고 봅니다. 말씀하신데로 코끼리 만마리는 말이 안되긴 합니다. 코끼리는 1/10 정도가 맞다고 보이고, 나머지 수치는 그다지 과장이라고 볼건 없는거 같네요. 당시 크메르의 수도 앙코르 톰의 인구가 중국 개봉과 맞먹었고, 루비와 금이 많아 산출됐으며, 중국보다 더 질이 뛰어난 비단의 산지였습니다. 중국인들이 무역하러 왔다가 팔 물건이 없어서 용병이 됐다는 기록까지 있으니 경제력은 상당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차 이용이 빈번했던 것을 볼때, 중국에서 수입한 말들은 중국 기준으로 보면 전마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런 면에서 중국에서 말을 수입했다는게 믿을수 없는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우리나
라는 당시에는 아예 말 산지가 아니었으니 수출하고 싶어도 수출 할수도 없었고... 물론 말씀하신데로 기마병이 2만기까진 아닐지도 모릅니다만, 전마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법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상인들이 보석과 금, 비단을 위해 전쟁물자를 남송정부보다 크메르에 전쟁물자를 우선적으로 팔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훨씬 이득이 컸을테니까요. 물론 이건 사료적으로 입증은 안 됐으니 추측만 하는거;
가장 큰 문제는 저런 대규모의 군대를 운용할만한 인구가 베트남을 제외하곤 없었다는거고 또 뻥이 심한 연대기류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기록이 부실한 곳이라 그만큼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거죠 (수치에 너무 연연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보기엔 말의 경우 그쪽 풍토에 적응한 말을 운남이나 베트남쪽에서 구한게 아닌가 싶네요. 사실, 그당시의 배로 중국에서 수입해가는게 만만치 않은데다가 동남아의 풍토에 적응하기 쉽지않아 손실이 클테니깐요.
그래도, 당시 동남아의 인구 등을 고려해보면 천명이상의 기병을 동원하긴 어려울 듯 합니다.
jyni// 인구 문제에 있어서 제가 아는 정보와 너무 달라서 당혹스러운데 자료 제시 해주실수 있을까요? 따지려는 의도보다도 제가 아는 것과 너무 달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한 기록을 그대로 믿자면 톤네삽 호수 전투에서 양쪽 합계가 3만 5000정도, 대월(베트남)과의 전투에서 양쪽 합계가 십오만 정도였는데, 당시 동남아의 인구가 이 정도는 충분했던걸로 알고 있거든요.
대월과의 전투는 크메르제국이 세를 완전히 회복해서 타이, 미얀마의 일부,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중남부를 가지고 있던 시절에 벌어진 총력전이었던걸 생각하면,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잘못된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동남아의 인구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동남아사에대해 제가 주워들은 풍월은 주로 여기서 연재하던 앨런비님의 글이라서.. 어짜피, 흘려도 되는 제생각이니, 너무 수치나 그런거에 민감하게 반응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제생각으론 크메르 전성기정도면 인구는 수백만정도 될것 같네요. 인구가 팽창하기 전의 동남아의 총인구를 약 3-4천만정도로 본다고하고 이중 베트남의 천만정도를 제외하면 버마,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합해 2-3천만정도니, 크메르의 전성기때는 수백만은 될듯하긴 하네요. 중앙집권도가 떨어져 병력동원이 쉽진 않겠지만, 잘하면 십만정도는 동원가능하긴 할것 같네요.
음.. 네, 잘 알겠습니다. 다만 정확해야 할 부분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크메르 전성기의 인구는 천만에 육박한다고 봐야 할겁니다. 현재의 캄보디아가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시 동남아에서 견줄만한 세력이라고 해야 동시대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슈리자바야 제국이 전부였습니다. 태국, 미얀마는 크메르의 세력에 눌러 현재보다 영토가 훨씬 작았고, 베트남도 북부의 대월과 남부의 참파로 나눠졌는데 참파는 크메르에 합병되다시피 했지요.
그리고 중앙집권도가 떨어졌다는건 정말 아닙니다. 프랑스 극동학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앙코르 와트 건설에 하루 25000명의 인부가 동원됐었다는
데,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구축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앙코르와트뿐만 아니라 현재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에 걸쳐 분포하는 크메르 시절 사원 유적들이 많고, 이는 모두 국왕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다만 처음에 지적하신 기병의 숫자 2만기가 정확한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다시 자료를 확인해보고 웹검색을 해보니, 제가 인용한 숫자 자체가 극동학회에 의해 보정된 숫자였습니다. 크메르 시절의 기록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크메르는 500만의 군인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이건 1/100로 다운스케일 하는게 맞겠죠;; 코끼리 만기는 보정되지 않은 숫자를 실수로 그대로 갖다 쓴거 같군요.
검색해보니, 앨런비님이 이글루에 인구팽정이전의 동남아 인구에대해서 대략 서술해놓은게 있네요.
한번 읽어보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http://hyukjunseo.egloos.com/m/3230304
음. 일단 그 자료는 19세기의 자료인데, 19세기의 캄보디아보다 11세기의 캄보디아가 훨씬 융성했습니다.
앙코르와트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 이유는, 19세기 캄보디아를 보고 앙코르와트와 같은 유적을 도저히 연상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 전체에서 개간지가 줄어들고 정글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요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도 일정부분 미스터리입니다. 뭐, 동남아 전체의 인구는 당시나 링크해주신 자료나 엇비슷했을거 같긴 하군요. 어설프게나마 추론은 할수 있겠군요. 캄보디아의 인구 문제를 일단 차치하더라도 남베트남의 300만, 태국북부의 150만, 라오스의 200만, 미얀마 일부를 100만 정도로 추산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당시 캄보디아 인구를 더한게 크메르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인구라고 봐도 크게 틀리진 않을겁니다. 동남아시아의 인구가 폭발한것이 19세기 이후이니...
물론 훨씬 적을수도 있을겁니다. 인구수라는게 현대처럼 시대에 따라 쭉 상승하던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전쟁이나 질병으로 급락하기도 했었으니 확답을 할수는 없겠지요.
동남아에서 무지막지한 인구팽창을 하던 베트남인이 포함된 남베트남쪽 인구를 팍줄이고 캄보디아쪽 인구를 조금 더 늘리면 전성기 크메르의 인구와 비슷할 듯 하긴 합니다.
남베트남을 200만정도로 줄이고, 캄보디아를 300만 정도로 놓으면 대충 맞을듯? 뭐, 다른 부분들도 조금씩 줄여서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이렇게 계산하면 천만을 약간 밑도는 정도로 볼수 있는듯...
2백만이상의 캄보디아인이 거주하고 있었다면 과연 베트남인들이 쉽게 이주했을리 없고, 근세 혹은 현재의 인구에서도 꽤 높은 비율을 차지했을텐데, 그렇질 않고 흡수된걸보면, 남베트남쪽의 크메르인이 백만이하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닙니다. 당시의 남베트남이나 태국 북부 사람들을 모두 '크메르인'으로 볼순 없겠죠. 다른 종족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는 말입니다. 남베트남의 참족이 크메르에게 패해서 세력을 잃고 병합됐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고, 크메르가 '왕국'이 아니라 '제국'이라 부르는게 합당한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뭐, 그리고 사실 국가가 아니라 종족 개념으로 따지면 동남아도 워낙 복합해서 인구수 산출이 좀 어려울겁니다...
참족만 해도 한때는 참파왕국을 세웠을 정도로 융성했지만 지금은 몇십만명 안밖의 소수민족이고, 그나마도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흩어져 살고 있거든요..
동남아의 경우는 기후적 환경 때문에 토양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근대 이전엔 베트남 빼곤 인구가 그닥..
정확하게 말하면 토양의 생산성이 떨어지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온대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좋습니다. 우기라고 해도 비가 어마어마하게 오는게 아니라, 꾸준히 조금씩 오기 때문에 벼를 삼모작 할수도 있고,그로 인해 토양의 생산성이 떨어져도 개미같은 곤충들의 활동이 워낙에 활발해서 몇년 안에 지력이 회복된다고 하더군요. 어떤 점에서는 그야말로 천혜의 땅입니다.
다만 정글을 개간하는 문제가 워낙 크고, 무엇보다 식수를 구하는게 어려워서 인구증가가 한정됐었다고 하더군요.농업용수는 풍부해도 마실 물이 없다는거죠. 크메르 제국이 몰락한 원인도 식수고갈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