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들녘에서
지난여름 폭염과 가을에 들어서도 더위에 지쳐 계절이 실종되지 않았을까 싶어도 절기는 상강을 맞았다. 엊그제는 여름 장마철보다 강수량이 더 많았을 비가 내리기도 했다. 상강답게 기온이 살짝 내려간 아침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이번엔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평소 얼굴을 익혀둔 칠십대를 짐작하게 하는 연로한 기사가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나면서 몇 승객이 타고 내려도 미니버스는 혼잡하지 않았다. 주남저수지를 지날 때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새로 들어서는 카페는 개업을 맞아 화환들이 줄을 지어 놓여 있었다. 근래 교외로 나가면 풍광 좋은 자리는 식당보다 찻집이 성업을 이루는 듯했다. 주남저수지는 철새도래지로 증축이나 고도가 제한되어서인지 낮은 건물에 통유리가 특징이었다.
2번 마을버스는 1번과 달리 장등에서 대산 일반 산업단지를 두르지 않고 상포를 거쳐 가술 거리를 지났다. 부동산 중개사무소로 나가는 한 아낙이 내리자 승객은 혼자 남아 유등 종점을 앞둔 유청까지 갔다. 유청마을 골목에서 강둑으로 올라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니 가로수 벚나무는 철 이르게 나목이 되어 있었다. 이른 봄 화사한 꽃을 피운 벚나무는 서리와 무관하게 낙엽이 졌다.
갯버들이 무성한 둔치에는 군락으로 자란 물억새가 이삭이 나와 바람이 불자 은빛으로 일렁거렸다. 둑길이 끝난 언덕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가 보였다. 제방의 가까운 길섶은 여름에 예초기를 짊어진 인부들이 풀을 잘라 놓았다. 이번에는 비탈진 둑 전면을 대형 굴삭기가 전동 칼날을 장치시켜 잡목을 비롯해 무성한 풀을 자르고 있었다. 인력으로 할 때보다 손쉽게 해결했다.
둑을 걸으면서 둔치 식생을 유심히 살펴보니 물억새 말고도 이즈음 계절감을 드러내는 야생화가 피어 눈길을 끌었다. 연보라로 물든 쑥부쟁이가 가득 핀 구역이 보였는데 수풀이 무성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피사체로도 삼지 못했다. 자전거길이 끝난 곳에서 동부마을로 내려서 들판을 지나 우암으로 향했다. 지난봄 우암을 지나다가 낯선 동네여도 골목에서 뒷동산을 올라가 봤다.
수령이 제법 되는 회화나무가 두 그루 자라는 언덕은 자연석으로 이룬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했는데 짐작대로 형상이 소 모양이라는 마을 지명 유래를 가진 바위였다. 들판이어서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바위가 있음이 특이했는데 홍수 시에 물난리를 피해 마을이 형성된 곳이었다. 들판에서 예닐곱 되는 자연마을을 거느린 우암리 본동에 해당했다.
덕현마을로 건너오니 아주 넓은 농지가 펼쳐졌는데 벼들은 익어 황금빛이었다. 그곳은 여름의 벼농사보다 겨울에는 수익이 더 좋은 비닐하우스에 당근을 가꾸었다. 추수를 마치면 곧이어 땅을 갈고 철골을 세워 비닐을 덮고 당근 씨앗을 뿌려 겨울을 넘겨 늦은 봄에 수확했다. 현지 농가는 생산까지만 농민이 했고 수확과 판매는 외지에서 일꾼을 데려온 업자가 뽑아 어디론가 싣고 갔다.
덕현에서 들판으로 형성된 낮은 월림산 등선을 배경으로 신곡과 용등이 펼치고 동편으로 동곡마을이 나왔다. 들판이 끝난 남쪽 금병산에 에워싼 곳은 진영으로 새로 들어선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덕현에서 들판을 가로지른 포장된 길을 따라 가술 국도로 향해 걸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넓게 펼쳐진 들판은 황금빛으로 눈부시었는데 이즈음 자연이 빚은 천연 색상이 신비롭기만 했다.
가술 국도변 국밥집에서 점심을 들고 인근 우체국에 들러 택배 소포로 책을 한 권 보냈다. 이후 행정복지센터 쉼터에서 ‘황금빛 들녘에서’를 남겼다. “어릴 적 집집마다 누구나 다 그랬다 / 흰쌀밥 고사하고 보리밥 빼때기죽 / 배곯지 않음만으로 기운 내서 놀았다 // 신중년 산책 나선 가술리 우암 들녘 / 자연이 빚어낸 색 저렇게 고울 수가 / 세상에 제일 눈부신 황금빛을 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