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산 아래
물가에 앉아 생각하였다.
많은 일들이
또 있겠지만,
산같이 온순하고
물같이 선하고
바람같이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사랑의 아픔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바람의 괴로움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
-『동아일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025.02.07. -
사람은 세상 없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타인의 도움이 없어도 살 수가 없다. 그렇지만 때로 세상의 시끄러움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야만 살 수 있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면 나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인생이 외부의 것들에 휘둘려 왔다는 말이다. 이제는 나를 회복할 때가 되었다.
게다가 2월이면 나의 아름다운 동굴에 갇히기 좋은 시절이다. 그러니 단군신화의 마늘처럼, 쑥처럼 이 시를 들고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라. 우리에게는 ‘나는 이런 생각을 오래 하였다’는 저 문장이 필요하다. ‘나’도, ‘생각’도, ‘오래’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주 귀한 것이니까.
조회수가 나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자격증과 명함이 나를 귀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것은 얼마나 사소한가. 사람은 쉽게 잊히고 명함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세상의 숫자와 타인의 반응은 순간이고 오랜 생각과 바람은 그것들보다 위대하다. 시인처럼 산과 물과 바람과 사랑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 시를 올해의 목표로 걸어놓고 내내 보리라.
〈나민애/문학평론가〉
J.S. 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Variatio 3 Canone all'Unisono. a 1 Clav. · Lang L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