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년대🌺 |
✿1485년 서거정(徐居正) 등, 신찬(新纂) 동국통감 완성
동국통감
역사서 동국통감이 1485년 7월 26일 완성됐다. 동국통감은 조선 성종때 서거정 등이 신라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사서로 활자본이며 56권 28책으로 구성돼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권근의 `동국사략`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고대사 서술이 부실해 이를 보완하라는 세종의 지시에 따라 1458년(세조 4년)에 편찬이 시작돼 1476년(성종 7년)에 고대사가 `삼국사절요`로 간행됐고 마침내 이날 `동국통감` 전체가 완성됐다. 여기에 사론(史論)을 보충한 56권의 `신편동국통감`이 1485년 간행됐다.
동국통감은 편년체로 단군조선에서 삼한까지를 외기(外紀), 삼국의 건국으로부터 신라 문무왕9년(669)까지를 삼국기, 669년에서 고려 태조 18년(935)까지를 신라기, 935년부터 고려말까지를 고려기로 나누어 편찬했다. 신화와 전설적인 내용은 배제했고 역사적 사실들을 발췌해 서술했으며, 고려기에서는 세가(世家)와 열전 부분을 강화시켰다. | |
| 🌱1900년대🌱 | |
| 🌲30년 흥진 이청천 등이 길림에서 한국 독립당과 함께 한국 독립군 조직. | |
🌲50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노근리 양민학살 현장인 충북 영동 인근 철교.
1950년 7월 26일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위에서 피난 중이던 영동읍 주곡-임계리 주민들을 전투기에서 총을 쏘아 사살했다. 피난민들이 철로 밑으로 피신하자 제1기갑사단 7연대 장병들이 뒤쫒아가 계속 사살했다.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인, 부녀자, 어린이들이었다.
미군의 기관포 탄환 자국들 앞에서 학살 당시를 설명하는 주민
이 사건은 미군에 의해 500여명이 사살된 베트남전 당시 ‘미라이 학살사건’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은 사건이었다. “피난민 중에 북한 군인이 위장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이들을 일단 적으로 간주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라”고 지시한 당시 미군사령부의 기록도 발견됐다.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최소한 12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이 사건이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정은용이 사건을 토대로 한 실록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하자 AP통신 등의 외신과 국내 언론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취재하여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유족들이 미국을 방문, 미 육군성은 사건의 대한 철저한 조사와 유족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밝혔고, 2000년 1월에는 미국에서 대책단과 자문위원단이 내한하여 충북 영동군 사건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증언과 요구사항을 들었다. 2001년 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여 사건의 실체를 인정했으나 피해주민 및 유족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은 미흡했다. | |
🌲56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
이집트에 국유화된 수에즈운하를 통행하는 선박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거행된 혁명 4주년 기념연설에서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희생하에 구축된 것인데 외국의 부당한 지배하에 있어 이제까지 착취를 받아왔다. 운하를 국유화하면 이집트가 얻을 수익은 연간 1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 원조를 얻지 않고도 애스원댐을 건설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라는 강력한 어조로 연설했다.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
군중은 나세르의 연설에 환호를 보냈지만 구미 각국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수에즈 운하 회사는 사실상 프랑스 소유였고 조차권도 아직 12년이나 남아 있었다. 나세르는 미국과 영국이 신애스원댐 원조를 취소시킨 보복으로 국유화를 선언했고 영국과 미국은 28일과 31일에 각각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자국에 있는 이집트의 재산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8월 9일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합동군 창설을 결정했다. | |
🌲57년 서울 여자경찰서 폐지하고, 청량리경찰서 신설 🌲70년 서울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지하 LP저장실 폭발 🌲71년 제8대국회 개원(의장에 백두진) 🌲72년 태풍 리타호 강타, 54명 사망 실종 | |
🌲77년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 우리나라 선수 전원 입상
1977년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우리나라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주최. 우리나라는 31개 전 직종에 출전해 금메달 22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 등 참가 선수 전원이 입상의 영예를 차지하며 또 하나의 업적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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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인도 국민단합회의, 동북아시아지역 국제단합상 수상자로 전두환 대통령을 선정 🌲82년 정부, 제5차 5개년 개발계획 기간 중 공공차관 49건에 79억 5600만 달러 도입하기로 🌲85년 이세기 통일원장관, 북한 인민회의 부의장 손성필 백두산 영토의 반쪽을 중공이 차지하고 있음을 시인 🌲85년 신민당이 단독 소집한 임시국회 조기 폐회 🌲85년 정부, 학원안정법의 대학 개학전 처리를 검토. 야권에서는 총력저지를 결의 🌲87년 상호신용금고 간부 횡령-임철순 전 민정당 정책위장 관련 🌲87년 수도권 지역에 또 집중 호우(∼27일) 🌲87년 소련 올림픽위원회 대표단 9명, 서울올림픽 준비상황 시찰 및 실무협의차 내한 🌲88년 전국 철도 파업-기관사들 근로조건과 수당인상 요구, 28일 정상운행 🌲8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양형섭 명의의 서한에서 올림픽참가 협상 용의가 있다고 밝혀 🌲89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평양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의 귀환에 동행하도록 문규현 신부를 평양에 파견 🌲89년 영산강유역 일부 범람, 사망ㆍ실종 100여명. 이재민 5만여명, 농경지 15만ha 침수 🌲89년 서울시교위, 전교조가입 공립 ㆍ중ㆍ고교사 485명을 8월1일자로 직위해제 🌲89년 전교조 가입교사 1516명 직위해제 전교조는 551명의 단식결사대를 조직, 명동성당서 단식 돌입 🌲90년 8ㆍ15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제2차 예비 회담(서울) 북측대표단, 판문점 통과직전 서울행을 거부 🌲90년 남ㆍ북한, 남북고위급회담 개최문제에 따른 일시ㆍ의제 등과 관련된 19개항의 최종합의서에 서명 🌲90년 영남대 박물관팀, 경북경산군경산읍 임당 고분서 청동기시대 순장된 인골 등 유물 2000여점 발굴 🌲90년 8.15 범민족대회 무산-정부-재야 입씨름 줄다리기 🌲90년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해 송한호(남쪽) 백남준 (북쪽) 대표는 판문점 판문각에서 제8차 예비회담. 🌲91년 납북 소설가 이광수,후퇴하던 북한당국에 의해 강계로 끌려가던 중 동상 걸려 만포 병원에서 사망-증언. 🌲9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유도 선수권대회 문지형 김미정선수 우승, 사상최초의 금메달 🌲92년 올림픽 제25회 바르셀로나-한국 금12개 세계 7위 🌲92년 여갑순 선수(여.서울체고)는 여자공기소충 제25회 올림픽 257개의 금메달 중 첫 금메달을 획득. | |
🌲93년 7월 26일..아시아나 여객기 전남 해남 야산에 추락해 66명 사망
아시아나 항공 소속의 보잉 737기 추락사고 현장
1993년 7월 26일 국내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사상 최대의 참사가 빚어졌다. 승객과 승무원 등 1백6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출발, 목포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아시아나 항공 보잉 737기가 오후 3시41분쯤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마천부락 앞산 골짜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기장과 승객 등 66명이 사망했다. 추락한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됐다.
추락사고 원인을 조사한 정부합동조사반 발표에 의하면 기장이 시계불량과 악천후에도 불구,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착륙접근 항로상에 있는 운거산(해발 1천63피트)은 넘은 것으로 착각, 비행고도를 정상(1천6백피트)보다 훨씬 낮은 8백피트까지 낮춰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항공기 추락후 1시간여가 지난 오후 5시20분쯤 생존 승객 가운데 한 사람이 인근 마을로 내려와 주민에게 사고사실을 알려 주민이 이를 다시 경찰에 신고,구조활동이 시작됐다. 신고를 받은 군경합동구조대는 군용 헬기 5대를 이용, 40여명의 승객을 목포 등지에 후송했으며, 날이 저물자 헬기구조작업을 중단한 다음 전등을 가설하고 철야 구조작업을 했다. | |
🌲93년 병무청, 95년부터 병적관리 제도를 거주지로 일원화하고 중고교사 예비군 동원훈련 면제키로 결정. 🌳93년 상공자원부, 무역진흥 특별회계(무역특계) 징수제도를 96년말 폐지,'무역진흥기금' 설치 | |
🌳94년 미국 하원에서 ‘화이트워터’ 사건 청문회 시작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인 화이트워터 스캔들(Whitewater Scandal)에 대한 의회 청문회가 1994년 7월 26일 시작됐다.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
하원 금융위원회가 26일과 28일, 상원 금융위원회는 오는 29일과 내달 1일 각각 이틀간씩 청문회를 열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의회 청문회는 첫날부터 증인 한 사람을 놓고 지루한 설전만 벌여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 |
🌲95년 김영삼 대통령, 미국방문중 양원합동회의 연설 🌲95년 교육위원 정수의 2분의1이상은 교육 또는 교육 행정경력 15년이상이어야 하던 것을 10년이상으로 하향조정. | |
| 🌺2000년대🌺 | |
✿2000년 미국 연방법원 온라인 무료 음악공유 사이트 `냅스터`(Napster) 잠정폐쇄 명령
냅스터의 창업자 숀패닝이 연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이 2000년 7월 26일 온라인 무료 음악공유 사이트인 `냅스터`(Napster)에 대해 저작권침해혐의로 잠정폐쇄 명령을 내렸다.
냅스터는 이용자들이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른 사람들의 컴퓨터에서 압축된 음악파일(MP3)을 검색, 그 중 원하는 것을 복사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회사다. 하지만 이틀뒤 항소법원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을 때까지 냅스터 사이트의 한시적인 운영을 허가한다고 판시, 냅스터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부여했다.
냅스터 창업자 숀 패닝 (source:latimesblogs.latimes)
소니, 유니버설 등 4개사와 함께 냅스터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소송을 제기한 베텔스만은 10월 31일 소송을 취하하고 냅스터와 공동으로 음악파일 제공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냅스터는 음악파일의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 |
✿2005년 7월 26일. 북한에 제공될 쌀 육로로 첫 수송
북측에 차관형태로 지원되는 쌀 40만t 중 국내산 쌀 10만t이 20일부터 주 4회 동해와 서해 육로를 통해 북측 개성과 고성지역에 수송. 육로를 통한 쌀 수송은 1995년 정부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이 시작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양측은 지난 14일 판문점을 통한 문서교환 방식으로 육로로 하루 동·서해 쪽으로 각 1000t의 쌀을 25t짜리 트럭 각 40대를 이용해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회 수송, 개성지역은 농업전문학교 앞마당에, 고성지역은 금강산청년역 앞마당에 하역하는 내용의 식량차관 제공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