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외 3편)
박상수
남자들은 뭐랄까
시시해
크기만 하고 시시하달까
두 번, 그리고 세 번 만에
난 알아버렸지
남자를 알다니 넌 참 어른이구나, 난 널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자주 넘어졌다 금방 더러워졌지 밴드를 한 통이나 다 써버렸는데도 계속 힐을 벗어야 했어 그리고 또 신었지 넌 날 부축해주지도 않고
목을 너무 빨면 기절해버리더구나
네가 가르쳐준 계단, 붉은 융단이 깔려 있었어 그 위를 올라가는 남자의 엉덩이는, 제발 엉덩이 말고 다른 쪽이 보고 싶은데
난 끝까지 빨아야 했어, 곯아버린 조갯살 냄새, 달리 할 일도 없고…… 욕실에서는 몸을 씻으며 울었단다(턱이 안 벌어져서 소리는 못 냈어)
정신이 얼빠지면 너 같은 건 금방 그렇게 돼
난 싫은데 그런 냄새 나는 이야기, 남자는 한 번 더 나를 안고 욕을 했어 나를 껴안은 채 쓸데없이 욕을 했다구 다시 껴안고 타오르면서 나한테도 욕을 시키고, 아무리 목을 빨아도
넌 아직 모르는구나 땀이 나니까 괜찮아 그렇게 같이 누워 있으면 뭔가 열심히 산 것 같잖아 땀이 나니까
아, 넌 나랑 마음이 통하니까 무죄, 종이 울리면 우리 아무 데나 나가버리자 팔짱을 끼고 더 멀리 가자, 그래 라면을 먹으러 가자 이렇게 너의 투명한 살과 쌍꺼풀을 보고 있으면 더 가까이 앉고 싶고, 내게도 소중한 게 생겨서, 지키고 싶은 게 생겨버렸다
교생, 실습
캐시미어 스웨터 속에서 익혀 나온 귓속말로
눈먼 얼룩말에게 각설탕을 녹여주듯이
꼭 다시 만납시다
밤에 출발해서 아침에 닿았어요
말들은 죽어가고
잠긴 반지가
생각만으로도 퉁퉁 붓는 호숫가에
(마지막 선물 상자를 풀다 끝내 등을 보이는 당신!)
오늘 젖은 빵을 나누어 먹으면 우린 정말 가족이 될 것 같아, 비로드 안감에 담겨서, 손을 잡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영원히 집에 가는 걸 잊어버릴 것 같아, 다시마 튀각처럼 부서지며 책상에 얼굴을 파묻을 때
가지 마세요 우릴 구해주세요
만국기가 펄럭이는 계주에서 흰색 바통을 놓쳐버린 것처럼
진한 당밀차가 캐러멜 색으로 마룻바닥 위를 흠뻑 적셔 나갈 때
운동장 스무 바퀴를 뛴 다음의
사향 냄새 감도는
가슴을 두 개나 가지고서.
쉽게 질리는 스타일
(기습 키스 시도 이후)
계속 그렇게 날 쏘아보다가는
눈이 뒤집혀버리지 않을까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난 생각에 잠겨보지만
선생님은 답이 없는 사람
"그럼 왜 연락한 거니?"
집에 가는 길에 버스는 오질 않고 아저씨들 담배 냄새에 속이 좀 뒤집혔어요, 나한테 지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갑자기 집에 가기 싫어졌달까, 그래도 저는 공중변기 레버는 꼭 발로 내렸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선생님을 위해 두 손을 모았어요, 라는 말 대신
"책도 내시고, TV에도 나왔으니까?"
"넌 내가 영영 실패할 줄 알았지?"
답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어째서 한번더 믿어보는 걸까요?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치어 죽을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모두들 건너가겠죠 선생님은 숨이 막혀서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죠 그건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때
—책을 한 권 읽으면 자랑할 수 있지만 두 권 세 권 늘어가면 머릿속이 흐리멍텅 복잡해져서는 언제나 뒷짐만 지고 세상을 보게 돼 그런 사람들만 책을 쓰는 거지 쓰다가 스스로가 무서워져서는, 또 다른 책을 쓰고 또 쓰고
"이 술 마셔. 그래야 날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가까이서 선생님의 코, 타버린 토스트 가루같은 블랙 헤드를 다 세어보는 건 처음, 너무 넘쳐서 자꾸만 숫자를 까먹어버려서
"마셔라, ……마셔줘"
이 사람, 조금만 더 있다가는 나를 엄마라고 부를 거예요 선생님의 보캐블러리 수준이 이 정도라면, 선생님도, 선생님들은……어쩜 이렇게.
숙녀의 기분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에겐
날개를
조금 먹고 조금 사는 금붕어에겐
알약을
종일 유리공을 불고 종일 금 간 유리공을 쓰고 돌아다니는 지구인들의 거리를 지나왔죠 난 자랄 만큼 자랐고 놀란 노루처럼 귀를 세울 줄도 아는데
비가 오는 날은 도무지 약이 없어요
기분은, 비단벌레들이 털실을 다 풀면 돌아올 테고 영원히 살지는 못하겠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오래된 그림책 위를 날아가네요, 꿀을 넣은 작은 홍차를 마실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모눈종이를 펼치면 난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가슴으로 자주 비가 스며들어온답니다 뢴트겐 씨를 부르고 심장을 얼린다면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거리를 유리온실로 덮어주고 내 기분은 다음달에 바다로 갔다가 화산을 구경하고 2층 버스를 타고 없어질 거예요 누가 뭐래도.
—시집『숙녀의 기분』(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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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2000년《동서문학》에 시, 2004년《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 시집『후르츠 캔디 버스』『숙녀의 기분』, 평론집『귀족 예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