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은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뜻에 나의 뜻을 올려놓게 하소서.
주님의 걸음 위에 나의 걸음이 첩 놓이게 하시고 주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이 겹쳐지게 하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거룩한 불구자의 삶이 된 것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 진정한 자족을 누리게 하소서.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며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 비록 죄의 걸림돌에 넘어졌으나 주님을 힘입어 담대하게 다시 일어나오니 나를 품어주소서.
오직 내가 나아갈 곳은 주의 품속임을 믿사오니 그곳이 나의 영원한 놀이터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사 51:1-11
제목 : 나의 구원은 이미 창세전 약속에서 확정되었습니다.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 나의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 속에서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느나고 절망하였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민족의 해방을 기다리며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선민들아,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가 원래 어떤 조상에게서 태어났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너희를 떼어 낸 반석과 파낸 구덩이를 생각해 보아라.
너희를 떼어 낸 반석은 곧 아브라함이지만, 그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그를 부르고 그를 창대하게 한 것은 바로 나 여호와 하나님이다.
또한 너희를 우묵한 구덩이에서 건져 낸 것은 곧 애굽에서 너희를 건져내었듯이 지금도 너희를 도울 것이다.
사라 역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생리가 끊어진 상태였지만 내가 그에게 아들을 주었고 그를 통하여 수많은 자손이 태어난 것을 너희가 지 않느냐?
나 여호와 하나님이 과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축복한 것처럼 현재의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동일한 복을 줄 것이다.
그것은 곧 사막을 에덴처럼,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처럼 할 것이며 거기서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사와 기뻐 뛰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4-6절은 의인의 집단인 선민을 부르시고 매래적인 대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수립하실 것과 확실한 구원을 약속하시는 내용이다.
이런 구원의 첫 번째 조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 곧 쉐마할 것을 강조하신다.
그들이 쉐마해야 할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서 그 언약 안에 머무는 언약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는커녕 우상을 섬기고 이방의 타락한 문화를 좇아 살았기에 이처럼 이방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쉐마할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인 메시야를 통하여 공의가 선포되며 열방 가운데 생명의 빛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가깝고 구원이 나갔다는 말은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이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해방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를 통하여 만민을 심판하실 것이며 이 심판을 통하여 공의가 세워지고 그 결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이런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이방 민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로 나아와 구원을 기다리며 소망할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너희가 구원을 바라며 하늘과 땅을 바라본다 할지라도 하늘은 연기 같이 사라질 것이며 땅은 낡은 옷 같이 해어지고 말 것이다.
또한 그것을 바라는 자들은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이지만 나의 구원은 영원하여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나를 믿고 의를 아는 백성들아, 너희 마음에 율법을 새기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의 말을 듣고 사람들의 비방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 것이다.
너희를 비방하는 자들은 좀이 옷을 갉아 먹고, 좀벌레가 양털을 먹는 것처럼 사라질 것이지만, 나의 공의는 영원하며 나의 구원은 세세토록 있을 것이다.
이제 이사야 선지자가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구원을 속히 이루어주실 것에 대하여 강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9-11절은 바벨론 압제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 달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간곡한 부르짖음이다.
주님의 강하신 능력과 주권을 노래하며 그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강력히 구하고 있다.
2절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셨음을 강조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그 숫자도 형편없이 적은 상태인데다가 그들이 해방되어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투정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큰 위로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보면 그는 아무도 없고 오직 그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러서 이렇게 큰 민족을 이루신 것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아내 사라는 생리가 끊어져서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사라에게 이삭을 낳게 하셨고 그 이삭을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자손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지금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쉐마하면 아브라함과 함께 했던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과도 함께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이다.
이스라엘에 비하면 나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연약하고 부끄러움 많으며 두려워하는 자이다.
그런 나는 존재감도 없고 죄를 밥 먹듯이 물마시듯이 하는 자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투정도 부릴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
그저 내가 지금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죽어도 벌써 죽었어야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워졌다는 것은 주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바울이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이 창세전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되었다고 고백함과 같이 나 또한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의 약속으로 인함이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렸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기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날 위하여 대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이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언약의 성취이다.
횃불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으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로써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패역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창세전에 약속하신 영생을 주신 것이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내는 그 모습이 이해가 간다.
그들은 자기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면 그런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런 현상을 보지 말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 곧 영생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이것이 내게 필요한 믿음이요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모습을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아 두렵고 떨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넘어 창세전 약속으로 나를 붙들고 품어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나는 여전히 패역하고 죄 가운데 넘어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런 나를 들어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린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묵상 후 기도
주님...
홀홀단신,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주님.
그 은혜를 알지 못했을 때, 나는 얼마나 헷갈리고 넘어져 허우적댔는지 모르나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크고 앞선 하나님의 약속, 창세전 생명의 약속인 영생을 주시마고 하셨던 은혜 앞에 이 죄인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니이다.
이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한 적이 없고, 할 수도 없었던 나이기에 그저 주님 앞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읍소할 수밖에 없나이다.
주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사 오늘도 주의 은혜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모습을 보지 말게 하시고 오직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보며, 창세전 아버지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도 주의 말씀을 쉐마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내 귀를 열어 주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