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연가 꽃길에서
유난히 무더웠던 날씨가 상강이 지나자 제자리를 찾아가는 시월 하순 목요일이다. 일교차가 커져 아침 기온이 제법 내려가 쌀쌀하게 느껴져도 한낮이면 다시 고온 현상이 나타날 듯하다. 자연 학교는 강가로 나가 생태 습지에 조성된 꽃길을 걸어볼 요량으로 이른 아침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 백로와 오리들은 먹이를 찾아 놀았다.
원이대로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를 둘러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충혼탑과 창원대로를 거쳐 명곡교차로로 돌아와 도계동을 지났다. 몇몇 승객이 타고 내려 주남저수지를 비켜 봉강을 거쳤다. 근교 들녘과 야산을 개간한 과수원 단감은 고물이 차 누렇게 착색되어 수확을 앞둔 때였다. 창원 북면과 동읍 일대는 단감 농사가 성해 이번 주말 축제를 열기도 했다.
본포에 내릴 때 남은 한 승객은 종점 마금산 온천장까지 타고 갈 듯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민물횟집을 거쳐 강둑으로 오르자 본포교가 드러나고 너울너울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강 언저리는 갯버들이 무성하고 강물 위 아침 해가 뜬 윤슬이 반짝였다. 연장이 1 킬로미터 넘는 본포교를 걸어 건너자 차를 타고 가는 이들은 감히 볼 수 없는 멋진 풍광을 혼자 보게 된 호사를 누렸다.
강을 건너간 북단은 창녕 부곡면 학포였다. 들판을 앞에 두고 산기슭으로 형성된 마을은 의령 남씨 단일 성씨로만 된 집성촌으로 유명하다. 마을에서 가까운 구산에는 50여 년 전 수도권 개발지에서 이장해 온 세종과 남매간인 정선공주와 부마 남휘 무덤이 있다. 그 곁에 비운의 장군 남이를 기리는 사당과 동상이 있는데 정선공주와 부마 손자여서 남씨 집안에서 예우를 다해 모셨다.
학포에서 밀양 무안을 거쳐온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건넜다. 초동면 반월로 가는 곳이라 반학교로 붙여진 다리였다. 마을 앞 원호처럼 에워싼 강둑을 따라 걸어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난 둔치 생태 공원으로 내려섰다. 강 건너 창원 본포나루와 마주한 반월지구는 습지 생태 공원으로 조성되었는데 초동 연가길로 알려진 데다. 봄에는 꽃양귀비가 화려하고 가을은 코스모스 꽃길이다.
반월 생태습지공원은 현지 주민들을 제외한 바깥과는 단절된 외진 곳이었다. 그러함에도 4대강 사업으로 생겨난 둔치에 꽃길을 조성해 외지 탐방객이 제 발로 찾아오게 불러들인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국토부 선정 아름다운 강변길 100선에도 들었다는 홍보 문구가 내걸리기도 했다. 내가 다녀본 낙동강 중하류 생태 복원지에서 꽃길만이 아니라 주변 경관으로도 풍광 좋은 곳이다.
반월 습지는 제법 긴 산책로였다. 여름날 무더위를 지나오며 누군가 손길이 닿아 가꾸어진 코스모스가 화사했다. 폭염으로 시들고 가뭄을 탈 때는 어디선가 호스로 물을 끌어와 주어 생기를 잃지 않도록 했지 싶다. 꽃길을 지나치면서 문득 퇴직 즈음 들어봤던 ‘꽃길만 걸으세요’가 떠올랐다. 남이 가꾼 꽃길을 걷는 데도 의미 있지만 아직 꽃을 가꿀 여력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긴 산책로가 끝나도록 탐방객은 드물게 만났다. 주차장에는 유력 자동차 회사가 협찬한 승합차를 타고 온 장애 어린이들이 보호자의 도움으로 꽃길을 걷고 차에 올랐다. 단체 이름이 ‘크레파스’여서 눈길을 끌었다. 승합차가 떠나는 뒷모습에서 안전하게 그들의 시설로 돌아가서는 하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오늘 본 코스모스를 예쁘게 그렸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둑길이 끝난 곳에서 반월 들판을 더 걸어 성북마을 냇가를 건너 지방도를 따라 곡강으로 나갔다. 하남읍 소재지 수산에서 가까운 초동면인데 수확한 단감이 가득 쌓여 상자에 포장되어 경매에 부쳐졌다. 밀양은 동북부 산간 얼음골 일대는 사과 주산지고 남부인 초동면은 창원 북면이나 동읍처럼 단감을 재배했다. 제1 수산교를 역시 걸어 건너 신성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술로 왔다. 2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