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박섬에 있는 조가비 언덕. 썰물 때 바닷길이 생기면 국화도에서 건너갈 수 있다.
국화도는 섬이지만 배로 금세 닿을 수 있는 여행지다. 당일 여행으로 섬 전체를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하얀 조개껍데기가 수북이 쌓인 조가비 언덕, 썰물 때면 드러나는 모래언덕 바닷길, 거칠고 기이한 모양의 암석이 깔린 해변 등 다양한 코스가 있는 탐험지이기도 하다. 마을 언덕 전망대에 서면 호수 같은 바다 건너편으로 뜨고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표주박이 정한 국화도의 현주소
당진 장고항에서 바라본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섬이지만 육지하고는 당진 장고항이 화성 궁평항보다 훨씬 가깝다. 국화도 주민들도 배로 10여 분이면 뭍으로 나올 수 있는 장고항을 주로 이용한다. 궁평항에선 국화도까지 배로 40여 분이 걸린다. 게다가 겨울철 평일에는 여객선이 거의 운항하지 않는다.
국화도의 마을
국화도가 화성시 주소를 갖게 된 사연이 재밌다. 화성시사에 따르면 국화도의 주소는 '표주박'이 정했다. 구한말 경기도지사와 충청도지사가 섬에서 표주박을 띄웠더니 그 표주박이 화성시로 떠내려와 경기도의 관할 구역이 됐다고 한다.
장고항에서 출발하는 국화도 여객선은 겨울철 비수기엔 아침 8시 30분, 11시, 14시, 17시로 하루 4번이다. 성수기에는 아침 8시부터 6번이다. 국화도 매표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전 성수기에는 주말 하루 여객선 이용객이 700~800명 가까이 됐지만, 현재는 200~250명 수준이라고 했다.
다양한 걷기 코스가 있는 국화도
국화도와 매박섬 사이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암석. 차별침식, 횡와습곡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겨울철 국화도는 한적하고 다양한 걷기 코스가 있는 섬이다. 반나절 만에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계획이 적당하다. 썰물 때면 바닷길을 걸어 남쪽으로 도지섬, 북쪽으로는 매박섬에 다녀올 수 있다. 해안은 모래와 자잘한 자갈이 섞여 있어 서해의 다른 지역과 달리 물이 맑다.
장고항에서 국화도로 가는 여객선
장고항에서 14시 배를 탔다. 겨울철 평일이라 승객은 10명도 안 됐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보고 싶어 숙소를 알아봤더니 비수기에는 펜션 4곳 정도만 운영한다고 했다. 국화도에 내린 뒤 마을 앞 포구를 따라 걸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식당은 거의 문을 닫았다. 펜션에 딸린 매점에는 라면, 햇반, 과자류 등이 있지만 물건이 많지 않았다. 같은 배를 탔던 아주머니 3명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호미와 망태기를 들고 조개를 캐러 바다로 갔다. 자주 왔다고 했다.
국화도의 남동쪽 갯가
국화도의 남동쪽 갯가를 따라 걸었다. 건너편에 장고항이 보였다. 자갈 해변 위에 농로처럼 어민들이 이용하는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이 놓여 있었다. 모래 해변에는 습곡, 차별침식의 흔적을 간직한 돌들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바다와 하늘은 회색빛이었지만 한겨울인데도 따듯했다. 간간이 사진을 찍으며 터벅터벅 걷기에 좋았다.
도지섬 남쪽 해변에 있는 바위들
본섬 끝까지는 20여 분이면 충분했다. 본섬에서 뻗어나간 육계사주에 도지섬이 딸려 있다. 바닷물이 빠진 지 몇 시간이 지난 육계사주는 모래, 흙, 자갈이 섞여 있어 그냥 육지의 길을 보는 듯했다. 모래언덕 바닷길을 300여m를 걸어 도지섬에 도착하니 모래등에 수많은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고, 사구 식물들도 보였다.
굵은 돌이 널려 있는 도지섬 서쪽 해변. 육계사주 맞은 편에 국화도가 있다.
도지섬 서쪽 해변에는 굵은 돌들이 일정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큰 각진 바위들과 그 위에 작은 석화, 따개비 등이 잔뜩 붙어 있는 암석 해안이 펼쳐졌다. 암석 해안은 조심조심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듯 다녀야 했다. 도지섬 끝에는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1m가 넘는 크고 네모난 바위가 마치 고인돌이나 건축물처럼 해변에 우뚝 서 있었다. 바다 건너편엔 당진의 왜목마을이 보였다. 장고항이 보이는 동쪽 해변으로 돌자 이번에는 잔돌과 모래가 섞인 해빈이 나타났다.
도지섬 조개껍질언덕에 오후 햇살이 비치고 있다.
자갈, 암석, 모래 해빈을 걸어 30여 분 만에 도지섬을 한 바퀴 도니 처음에 만났던 조개껍데기 언덕에 돌아왔다. 오후 햇살에 주황빛을 살짝 띠던 하얀 조개껍데기들을 관찰하다 국화도 본섬으로 발을 옮겼다.
해 질 무렵 국화도와 매박섬 사이의 육계사주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
국화도 본섬의 서쪽 바닷길은 암석해안에선 나무 데크길, 모래와 몽돌로 이뤄진 구간은 해빈을 따라 걸을 수 있게 조성돼 있었다. 당진으로 넘어가던 해는 국화도의 서쪽 해안에 붉은빛을 드리웠다.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입파도가 가까이 보였다. 해넘이를 보면서 천천히 걸어 매박섬과 연결되는 국화도 체험어장 지역에 도착했다.
국화도에서 바라본 당진화력발전소 야경
매박섬으로 넘어가는 육계사주는 바닷물이 거의 차올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양쪽에서 밀려온 파도가 모래등 위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해가 지자 바다와 땅 가까운 곳의 하늘에 낀 짙은 구름이 보랏빛으로 변했고, 당진 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는 수증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조가비 언덕과 토끼가 그리운 매박섬
국화항 해돋이
다음 날 아침 일출을 보려 국화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해는 평택 쪽에서 떠올랐다. 노란 등대 옆으로 짙은 구름을 뚫고 올라온 해는 잠시 붉은색을 띠었다가 금세 새하얗게 타올랐다.
국화도 숲길 끝에서 보이는 도지섬
매박섬으로 가기 전 국화도 항에서 가까운 해맞이 전망대 언덕에서 도지섬이 보이는 섬 끝까지 나 있는 산자락 길을 걸었다. 오르막 내리막이 조금 있긴 하지만 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흙길이라 발이 편했다. 그냥 걷기만 한다면 30분이면 충분히 왕복할 정도였다.
국화도에서 만난 시골견 '또보기
해맞이 전망대 3층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국화도는 바다가 아닌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여겨졌다. 숲길을 따라 걸을 때는 양옆으로 바다가 강물처럼 흘렀다.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마을에서 외환위기 사태 이후 국화도로 내려왔다는 김씨 할머니를 만났다. 누런 털의 시골견 '또보기'도 짖지 않고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할머니는 관광객들이 국화도에 다시오면 또 보자며 '또보기'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했다.
매박섬이 썰물 때 국화도와 육계사주로 이어져 있다
정오쯤이 되자 매박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바닷길이 완전히 이어졌다. 매박섬은 말을 메어 놓은 모양을 닮아 매박섬이라고 했다. 2003년에 어촌계장이 암수 토끼 5마리를 풀어놓으면서 토끼섬이라고도 불렀다. 김 할머니는 "배 타고 낚시하다 보면 토끼 열댓 마리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었지. 관광객들이 토끼몰이로 다 잡아먹었어"라고 말했다. 국화도에서 건너가며 매박섬을 보니 왠지 거북이를 보는 듯했다.
매박섬에서 볼 수 있는 조가비언덕
겨울 국화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매박섬의 작은 두 봉오리 사이 해변에 있는 조가비 언덕이다. 이곳은 하얗게 탈색된 석화, 바지락, 개조개, 대수리, 고둥 껍데기들이 비탈진 모래등을 온통 덮고 있다. 흰 모래사막 같기도 하고 소금 언덕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박섬 북쪽 끝에는 사자 모양 바위와 시 스택(파도에 깎여 수직 기둥 모양으로 남은 암석)도 여럿 있다.
조개 캐기, 고기잡이 체험으로 인기 있는 국화도
국화도 해수욕장의 아침 풍경
3월부터 11월 중순까지 국화도는 조개 캐기와 고기잡이로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섬이다. 바지락, 개조개, 대수리가 많다. 밤에 플래시를 켜고 갯가를 걸어 다니면 낙지도 잡을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바다에 '말장'이란 말뚝을 박고 그물을 두른 뒤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건강망' 체험이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국화도(오른쪽)와 도지섬을 이어주는 육계사주
특히 가을날 장고항에서 바라보면 국화도는 바다 가운데에 노란 들국화가 핀 듯했다고 한다. 육지보다 늦게 피고 져 만화도라 불리기도 했다. 국화도 마을 언덕에 사는 김 씨 할머니는 "지금 펜션들이 있는 곳에 예전엔 들국화가 가득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국화도 숲길을 따라 10월, 11월에 걸으면 들국화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