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난 오늘 100% 여자아이와 마주쳤고
말을 걸지 못했다.
난 내 인생에서 두번 다시 100% 여자아이와 조우하지 못하리라
어젯밤엔 단단히 결심을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씨디 플레이어와 노트만을 들고
도보 여행을 떠나기로 말이다
계획은 이러했다
무작정 아무 버스나 집어타고 종점으로 가서는
어디든 골목만 보이면 들어간다.
최대한 기억할수 없게 여기저기서 커브를 틀어가며
스스로를 미로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완전히 길을 잃었을때 그 동네의 특색이 잘 담긴 아주
오래되고 누추한 구멍가게로 들어가 캔맥주를 하나 사서
그 자리에서 마신다.
그리고 한적한 일요일 오전의 생전 처음 와보는 낮선 골목길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 재빠르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거리까지
도망을 가서 내 눈을 조용히 응시하는 고양이나
햇살을 듬뿍 머금은 일요일 아침의 펄럭거리는 빨래나
길게 늘어진 담벼락의 그림자 따위를 즐긴다는
그런 계획이었다. 기분이 내키면 가지고 간 노트에 스케치를
할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일요일이 그렇듯이
의자에 앉는 순간ㅡ내 의자는 창문 바로 옆에 있다
나른한 일요일의 햇살과 기분좋은 음악들과
달게 탄 커피가 날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 조금만 비비적 되다가 일어나도 별 상관은 없겠지."
라는 식의 궁색한 생각들이 푹신한 의자에
몸을 더욱 깊게 파묻게 만들었다.
결국 오후 6시까지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빈둥거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무엇이든 할수 있었던
가능성으로 가득찬 일요일의 해는 저멀리 저물고 있었다.
그 상태로 밤까지 빈둥거린다면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를 회상할때
정말 화가 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머리에 왁스를 바르고 일단 뛰쳐나갔다.
시내로 나가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티를 사면서
얼마전 영화채널에서 "영화를 볼땐 킷캣이죠"라고 했던 광고가
생각이 나서 그 초코렛 바도 샀다.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시카고였지만
솔로생활 1년째에 접어들 무렵
늘씬한 미녀들이 다리를 쫙쫙벌리는 영화를
보면 정신건강에 안좋을 것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마블캐릭터가 등장하는 데어데블을 보기로 결심했다.
일요일에 혼자 영화표를 끊는 고객이 흔하진 않겠지만
표파는 아가씨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듯
시간을 확인하세요라고만 말했다.
7시 30분. 지금이 6시 50분이니까 40분 가량 남았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남은 시간에 커피를 마실까 산책이나 할까하다가
그냥 소핑을 하기로 했다.
평소 사고 싶었던 엔지니어링 진을 보러 갔는데 예상했던 만큼
비싼 가격이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바지 왼쪽 다리부근에
갈색빛을 띤 얼룩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아가씨 이게 뭐죠? 라고 물으니
점원아가씨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허둥지둥
다른 직원과 상의를 하더니
"그냥 만원에 가져가세요" 라고 했다
오호라 살다보면 이런 행운도 있군.
데어데블은 참 멋있는 영화였는데
벤 에플렉이 영웅주제에 면도를 깔끔하게
하지 않고 나와서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영화를 다 보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루키의 단편
'100%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
을 참고 하길 바란다. 그 상황과 완벽하게 똑같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우스꽝스럽게 생겼긴해도
내 전화번호가 새겨진 명함 뒷면에
'당신은 저의 이상형입니다 언제 식사나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꼭 연락주세요'
라고 써서 건내주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내가 말을 걸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특별히 개방적인 눈빛을 보인것은 아니었다.
다만 용기가 있으면 말을 걸어보세요
별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면 바로 가버릴테니
라고 말하는 듯한 전형적인 아름다운 여자의 표정을 지을뿐이었다.
지금 차가운 맥주와 홈쇼핑에서 구입한 고등어구이를
먹으면서 생각을 해니까 말을 걸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그렇게 말을 걸지 않고 아쉬워하며
뒷모습을 바라볼때 비로소 100% 여자아이 일테니까 말이다.
다만 그녀가 집에가서 남자친구건 자기 동생이건 어떤 상대에게
"오늘 지하철에서 나를 100% 여자아이로 여기는 어떤 남자를 만났어."
라고만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굉장히 흡사한 체험을 하셨네요? ^^ 그 단편 제목도 그러한거 같은데..
저는 그 100%여자아이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요..누군가 나를 그렇게 봐주었음도 하구..후훗
저도 100%의 남자아이를 만나기 위해 주변모든 상황에 눈을 열어두고 있습니다.하지만 아직도 소극적인 여성의 굴레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부럽군요..어떤 느낌일까요?? 100%라는거..
짱 좋아요 ㅋ
시나리오로 쓰고 싶은 느낌이에요. 100% 여자아이^^
100%여자아이를 만나는일이라..궁금하닷..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