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신학을 졸업하고 무얼 하나 고민하였다. 뜨거운 가슴을 식히기 어려워, 노방 전도를 나서기로 했다. 나와 뜻을 같이한 홍순남이란 친구가 함께하였다. 그는 영어 전도지를 돌리고, 그 영어 전도지는 책방에서 샀다. 나는 한국어 전도지를 돌렸는데, 매주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해서 만들었다. 알라 모아나 비치를 다니면서 전도지를 돌리던 시절이었다.
1995년 여름 그날도 친구와 알라 모아나 공원과 비치를 걸어 다니면서 전도지를 돌렸다. 주변에 멋진 남자분이 한가롭게 보였다. 나는 주로 한가해 보이는 분에게 접근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도지를 주었다. 그에게 전도지와 주보를 주면서 우리 교회에 오면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니 찾아오세요, 했다.
그날 저녁 아들 목사(당시 우리 교회 목사님은 큰아들)가 전화가 왔다, “엄마가 그랬지요.” “무얼 말이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하고, 생각을 더듬거렸다. “엄마가 우리 교회 오면, 잠 재워주고, 밥 준다고 했지요” 하고 말했다. “아 그거, 미안해, 교회에 방이 있는 것도, 잠잘 곳이 없으면서, 그렇게 말을 했네, 그리 말해도 아무도 교회를 찾아온 분이 없었어.”
낮에 만남 멋진 남자분이 주보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이 교회에서는 잠 재워 주고 밥도 준다면서요, 하고 찾아왔으니, 아들 목사님은 난감하였던 것이다. 아들 목사는 미안하다, 사죄하고 그를 W M C 에 모시고 갔다고 했다. 아들 목사에게 인제는 거짓말하지 말라 단단히 훈계를 받고, 나는 안 그러겠다고 초등학생이 선생에게 불려가서 야단맞듯이 맞고, 단단히 약속했다.
그리고 알라 모아나 비치를 다시 갔다. 저 멀리서 그 남자가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거짓말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얼른 다른 곳으로 피했다. 그 남자는 매일처럼 비치에 나와 있었다. 한 달 동안 그를 슬슬 피해 다니다가, 한 달이 지나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남자는 나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잊은 건지, 그는 상당히 변해 있었다. 옷도 조금 남루하고, 얼굴은 그을었고, 수염도 길었고, 횡설수설하였다. 나는 그에게 자연스레 다가가서 그가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된장국과 김치로 밥도 해가고 약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자기 잠자리는 화장실이고, 식사는 쓰레기통이라며 본인이 말하였다. 여름에 만나 가을에 되니, 날씨가 쌀쌀해져서 이불도 갖다주었다. 그는 환청 환자였다. 그가 가끔씩 정신이 들 때, 누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그의 누나에게 연락을 했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환청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는 아들과 같이 다른 남자에게 갔다고 했다. 그와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누나는 동생이 어디서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네, 하고 울었다. 그녀는 천주교인이라며 매일 기도 했노라 말했다.
누나가 보내 준 돈으로,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옷을 샀다. 그를 데리고 마켓에 가, 멕시코의 챙이 넓은 모자를 샀고, 윗도리는 xx라지, 바지는 여자 쫄쫄이바지, 신발은 8문인데 발가락이 자라기 때문에 11문을 샀다. 사서 신고, 입으니 그는 가을 들녘의 허수아비 같았다. 그렇게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고 캘리포니아로 비행기 표를 끊어서 하와이 공항에 데리고 갔다.
그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너는 착한 것이 아니다, 너보다 더 착한 사람이 많다,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지, 내가 해달라고 한 적은 없다." 하면서 비행기 안으로 쏙 들어갔다. 마치 용용 죽겠지 하듯,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황망하고 어이가 없지만, 그는 아픈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했다.
몇 달 지나 남편이 그의 누나에게 전화를 받았노라 하였다, 찰리(그의 이름)는 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래서 병도 나았고, 예수 잘 믿고 잘 산다는 전화가, 그와의 인연이 좋았다.
어제는 미주 한국일보 열린마당에 글을 올렸다, 그가 댓글을 달아 놓았다.
"사비나님 혹시 하와이에서 어떤 한국, 혼자 있는 홈리스에게 음식 이부자리를 제공하지 않으셨는지요? 1995년도 알라 모아나 공원에서 말입니다"
내 글에 그때 그 사람이냐고 물어 왔다. 얼마나 감격이 오는지, 밤에 잠을 잘 때도 싱글벙글하고, 교회에 앉아서도 싱글벙글했다. 예배 후 식사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얼마나 좋은지, 행복하였다. 사실 그 사람이 그 후에 잘사는지 궁금했었다. 나로선 그 일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가 비행장으로 들어가면서 한 말이 더욱 머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을 할 때는 그의 말이 앞을 막기도 했다. 네가 하는 일이 선한 일인가 물어 왔다.
김사비나 savina kim
* 1974년 주부 백일장 “시” 입상 (한국) * 2001년 제 32회 한민족 통일 문예제전 일반부 외교부 통상부 장관 상 동화 ( 순이와 매워새 ) 재외 동포 문학상 가작 시 2022년 시 입상 2004년 문예 창조 (박화목 선생님 추천 등단) * 2003년 시집 “내안에 자리 잡은 사랑” 외 8권 (씨알 소리사) * 2005년 동화 집 “하늘로 간 동수” 외4권(씨알 소리사) * 2006년 수필집 “행복은 별건가요” 6권 (엣세이 출판사 ) 현 하와이 문인협회 회원 1975년 하와이 이주 해외 이민 48년년 (C)(808) 990-13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