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농에 적을까 하다 여기가 더 어울릴 것 같아 남깁니다.
지난 일요일,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결혼 전에는 혼자서도 종종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고, 다녀와서 이 공간에 글 남기고 했었는데
결혼하고, 16개월 아이의 아빠라, 혼자 여행은 이제 못하는 것이 되어 버렸네요.
올시즌 농구 직관을 한번도 한 적이 없어
KCC가 3-0으로 앞서고 있는 시점에 부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위의 이런저런 사정들로 못할 줄 알았는데.
때마침 장모님이 와 주셔서
당일치기 부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주말 SRT 표는 하루 이틀 전 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할 수 있습니다. 네?
구할 수 있습니다. 2좌석 이상의 연석은 안되지만
한 자리는 반드시 나옵니다. 하루 이틀 전 새로고침해서 한장 표를 구했습니다.
이제 농구장 티켓만 구하면 되는데,
사직은 이미 매진. 하지만 구할 수 있습니다. 네?
네 구할 수 있습니다. 한 자리는 어떻게든 나옵니다. 다만 1층의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체육관은 미국 체육관처럼 크질 않아서 제일 큰 잠실이든(아 이제 없군요)
사직이든 2층 혹은 3층이면 그럭저럭 볼 만 합니다.
표를 구했으니 출발합니다. 같이 가시죠.
제가 사는 곳에서 SRT로 부산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가는 길에 미뤄 둔 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픽사에서 나온 '엘리멘탈'
많이들 보신 영화고, 좋은 영화입니다.
픽사 영화들은 뻔한 메세지도 재밌고 세련된 방법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내랑 성격부터 취향까지 여러가지가 많이 다른데 영화 보면서
아내 생각도 많이 났고,
이민자들, 계급차이 등등도 많이 떠올랐습니다.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라 신선했고,
작품속 무수히 훌륭하고 따뜻한 대사들 중
' 네 빛이 일렁일 때 정말 좋더라'라는 대사가 가슴에 박혔습니다.
OST도 너무 좋았구요.
픽사의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작들 중
제게 가장 남았떤 건 '소울'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보다 펑펑 운 것도 소울이 처음이었는데
그 만큼의 작품이 제게는 아니었지만, 유쾌하고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객실 안 테블릿PC 화면이 아니라
영화관이었으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어 더 좋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좋았습니다.
영화 한편 보고 나니
부산역 도착
정말 오랜만에 부산역에 왔습니다. 20년도 넘게.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대학때 처음 만난 여자친구가 부산이 고향이라 2000대 초반 꽤 자주 와 봤는데
그때의 부산이랑 많이 다르더라구요.
부산역에서 사직 실내체육관이 있는 종합운동장역까지 환승 한번과 4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부산에 왔을때는 '서면'을 중심으로 2개의 지하철 라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되게 많아졌더라구요. 지하철 들어올 때 울리는 뱃고동 소리도 좋았습니다.
사직에는 야구장도 있습니다. 부산하면 당연히 야구팬들이 많아
역도 야구선수들의 소개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KCC의 배너가 있습니다. 반가워서 찍었구요,
종합운동장역 당도를 알리는 지하철 안내음성에 허웅과 허훈 선수가 직접 참여해 그것도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농구보러 가는 팬들이 정말 많았고, 소노 팬분들도 많이들 오셔서 반가웠습니다.
가는 길에 큰 홈플러스 매장이 있습니다. 요즘 홈플러스가 어려운데 여기는 정상 영업을 하더라구요.
시간대가 겹치지 않았지만 당일 야구경기도 있어 사람이 많았는데, 야구는 이미 경기가 시작한지 오래되어
농구팬들이 많았습니다.
농구 경기는 정말 재밌었습니다.
농구 경기에 대한 내용은 국농게시판에 있으니 저는 짧게만 몇 줄 적으면
- KCC가 우승하면 MVP 누구 줄거냐를 제게 묻는다면 저는 '허훈'
- 상대 에이스를 전담마크 하며 경기 운영까지.
- 경기장에서 허훈 선수 실제로 보면, 정말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게 전해집니다.
-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선수들 중 가장 큰 것 같습니다.
- KCC가 주전 선수들 능력치가 정말 좋고, 단기전이지만
- 그래도 경기중 선수 로테이션은 꼭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
- 시리즈 길게 보지 않고, 해당 1경기 안에서도 선수들이 퍼지는 게 전해집니다.
- 선수들이 뛰기를 원한다해도, 경기 출전 시간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고 재량인데
- 선수들 의견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체력 안배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야 4쿼터 승부처에 선수들이 제 컨디션으로 활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 직관한 경기에서 우승 세레모니 하는것도 좋겠지만
- 그냥 농구팬으로서 결승전 경기 더 볼 수 있어서
- 졌지만, 직관한 경험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도 우승은 KCC 렛츠 고
- 1만명 이상의 실내 경기장에서 응원하니 콘서트장 같은 기분이 들었고
- 상대팀이지만, 소노 팬분들 응원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동영상 첨부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요. 글 수정할 수 있으면 올려볼게요.
직관후 다시 부산역으로.
부산역 근처의 유명한 돼지국밥 집으로.
검색한 보람이 있을 만큼 맛있었고 깔끔했습니다. 노포 분위기도 좋은데, 혼자 여행하면 이렇게 깔끔한 분위기도 좋습니다.
부산 소주 대선도 한잔.
다시 사는 곳으로 기차 타고 올라오며
드라마를 봤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요즘 제일 좋아하는 구교환 배우가 나오고, 또 오정세 배우가 나오고, 또 고윤정 배우가 나옵니다.
그리고 정말 인상깊게 봤던 나의 아저씨의 작가의 작품입니다. 제게는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이고
지금 볼까, 나중에 완결되면 볼까 고민하다 올라오는 길에서 1,2화를 봤습니다.
나의 아저씨 + 나의 해방일지
섞은 느낌이 살짝 나구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나오고, 술 마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나의 해방일지처럼 주인공이 내뱉는
대사량도 많구요. 그리고 가슴을 쩌엉하고 때리는 깊고 찐한 대사들이 마구마구 등장합니다.
'하늘에 구름이 떠 있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한'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기억나는 대사들 만 적어봤습니다.
극 중 구교환은 마흔까지 자신이 준비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많이 내려간 상황입니다.
그걸 버티기 위해 쉬지 않고 떠들며 자기를 위안하고 있구요.
저 또한 30대 초반까지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 준비하며
그 비슷한 감정을 찐하게 느꼈던 시기가 몇 해 있었는데, 그러한 극 중 인물의 상황에 많이 몰입되어
작품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재밌게 보셨던 분이면 안 볼 이유가 없습니다. 1,2화만 봤지만 추천.
우리나라가 큰 나라는 아니지만,
두시간 반만 내달리면 완전히 다른 세상의 풍경이 펼쳐지는 경험.
그 곳으로 가면서 접하는 음악, 영화, 책. 그로 인해 일상에서 놓쳤던 생각들의 조각모음.
익숙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받는 떨림. 새로운 장소가 주는 설레임.
이런 감정들 몇 년 동안 잊고 살았는데
결혼 전 익숙했던 경험들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들을 수 있었네요. 감정들이 날아가기 전에
짧은 시간 급하게 적어봅니다.
농구는 곧 끝나지만, 다른 즐거움들이 올테죠. 그리고 몇달 뒤 다시 농구가 시작할 거구요.
KCC팬분들, 소노팬분들 우리 같이 즐겨 보시죠. 모두 축하드립니다.
첫댓글 정말 알차게 하루를 보내셨네요 ㅎ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행복해보입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재미지게 쓰는 분이셨어요?!
'구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는 김사부의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이 대사를 보는 것 같네요ㅎㅎ
응원팀이 아깝게 졌어도 이런 경기를 직관했다면 시간과 돈이 아깝지가 않죠.
즐거운 부산 여행이 되신 것 같아 저도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멋진 로망을 실현하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저도 부산사람이라 고양에 원정 응원 가고 싶지만 현실은 업무에 치여사는 직장인이라 언감생심 행복한 일탈을 꿈꾸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글 읽고 대리만족이 많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경험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