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임신년 삼 월(3월) 십육 일(16일) 법보재일 !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착한 일을 허는 것,
그건 참 악한 짓 헌 것 보다는 나어.
기왕 헐라며는 착한일 밖에는 헐 것이 없으나,
착한 일 했다고 해서 정말 마음 놓고 살 수는 없다
이거거든. 다 생사윤회의 원인에 불과해.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사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느냐?
착한일 허면서도 내 마음, 내 주인공을 찾어야 돼.
‘이 무엇고?’ 나의 이 주인공을 깨닫지 않고서는 영원한 행복은 없어.
가난한 사람에 돈을 주고, 병난 사람 병을
고쳐주고, 옷 없는 사람 옷을 주고, 고통 받는 사람을
고통을 덜어주고, 대단히 좋은 일이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여. 일이긴 허나,
그것 가지고 ‘내가 참 좋은 일을 했다’ 하고 안심헐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여.
그러헌 가운데에도 그것은 무주상으로 허고,
그런 좋은 일을 해도 조용허이 허고, 조용히 허면서
그 가운데 가면서 ‘이 뭣고?’ 하고 오면서 ‘이 뭣고?’ 하고, ‘대관절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뭣고?’여.
알아주거나 못 알아주거나오며 가며 일하며 착한일 허며 항상 ‘이 뭣고?’를 해야 하거든. ‘이 뭣고?’
이 몸띵이는 부모의 피를 받아서 이렇게 태어났지만,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은 부모한테 받아난 것이 아니여.
부모 뱃속에 훨씬 전에, 몇 억만년 전, 이 지구,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있었고 언제 생겨난 중도 모르고
앞으로 언제 없어질 기약이 없으나, 분명히 이 몸띵이
끌고다니는 주인공이 있어가지고 눈을 통해서 온갖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온갖 소리를 듣고, 이 몸띵이 사지
박... 백체(百體)를 움직거려. 착한일도 허고 악한 일도
하고. 그러헌 놈이 이 몸띵이 속에 들었다 그 말이여
이 몸띵이는
육칠십 년 , 칠팔십 년 살다가 낡으면 버리고 다시 또
새 몸을 받아나.
어째서 아무리 잘 맥이고 입히고 잘 가꾸어도 얼마
안가서 결국은 병들어서 죽게 될 이 몸띵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이 몸띵이를 끌고 다니는 참나, 이 주인공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색허냐 그거거든.
정말 이 몸띵이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 이 지수화풍
사대로 뭉쳐진, 언젠가는 무너져버리고 말, 언젠가는
그놈 때문에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건만, 수없이 많은
투자를 했건만
일시에 숨 한번 내쉬면 들어... 내생이여.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생(來生)이거든.
한 숨 쉴 동안에 배신허고 말아버릴 것이다 그 말이여.
그놈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정성을 쏟고 정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목숨까지라도 거기다 바쳐야 할 우리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그렇게 등한히 헐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
방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거든.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속이 상할 때 이 속상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
이 뭣고?’
슬플 때도 ‘이 뭣고?’
몸이 괴로울 때도 ‘이 뭣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이 뭣고?’
속상한 때도 그 속상한 일 생각허지 퍼떡 ‘이 뭣고?’를
생각허면 속상허는 생각이 스르르이 자최가 없어져.
일체 번뇌망상이 일어나고 눈에 무엇이 보이거나
귀에 무슨 소리가, 좋은 소리건 나쁜 소리건 귀에 들리거나 눈에 띄면 퍼뜩... 그리 따라가지 말고 퍼뜩 ‘이 뭣고,
이 뭣고?’ 저절로 되아지거든
차츰 차츰 저절로 되아 갈 때에 사람이 달라지는 법이여.
사람이 달라져.
옛날에 내나 그 사람인데, 주민등록에는 고 사람인데
영판 속 알맹이가 달라져요. 심술쟁이가 심술이 없어지고, 신경질 잘 내는 사람이 신경질을 잘 안 나게 되고,
탐심이 많던 사람이 탐심이 없어지고,
우선 스스로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스스로 자기가 대견스럽고, ‘
야, 내가 왜 진즉 이뭣고를 안했던가.’
옛날에는 집안 식구나 이웃이나 보면 모두 다 뵈기 싫고 나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 ‘이 뭣고?’를 열심히 허면
다 괜찮에. 그렇게 뵈기 싫던 며느리도 하 참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내가 무슨 복으로 그런 며느리를 만났던가.’
이 세상에 내가 왜 태어났던가.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 것을 왜 이러헌 고약한 세상에
태어나가지고 내가 이렇게 고생을 헌가. 어떻게 해야
내가 빨리 이 세상을 떠나까?’ 이러헌 속에서 생활허던
사람도,
‘이 뭣고?’를 열심히 허면,
‘하, 이 세상이 너무너무 좋은 세상이다.
내가 극락세계 갈 것이 없고 이 세상에서 이런 대로 좋다. 해도 고맙고 달도 고맙고,
그래서 부처님 눈에는
이 세상이 그냥 고대로 적광토요 극락세계인 것이고,
업이 두터운 죄 많은 중생에게는 오탁악세
자기의 마음에 따라서 세상은 극락세계도 되고
지옥도 되는 것이고, 자기가 ‘이 뭣고?’를 해서 자기 마음이 부처님 마음처럼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으로
보이는 것이고,
지 업, 업이 두터운 죄 많은 고약한 눈으로 보니까
모든 사람이 다 도독놈으로 보이고 모든 사람이 다,
다 때려죽일 놈으로 보인 것이다 그 말이여.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