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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6983410609
일본 고고학계를 뒤집은 후지무라 신이치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일본 열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떨어져 있기에
유라시아 대륙보다 역사가 상당히 늦게 시작되었다.
이러다보니 일본인들은 자국의 역사가 짧다는 컴플렉스에 시달린 나머지
이미 고대부터 '우리도 역사로는 한반도에 꿇리지 않는다' 라고 강조하기 위해
일본 최초의 역사서 '일본서기' 의 초반부 일부 사건들의 연도를 왜곡하기에 이른다.
학계에서는 일본서기의 연도 왜곡이 2주갑, 그러니까 120년 가량 올려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이렇게 연도가 왜곡된 사건들이 한반도 관련 기사들이라는 점에서
고대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굉장히 많이 의식한 게 아니었나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역사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열등감은
일제 강점기에 임나일본부설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으로 발현되었는데,
'우리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영향권으로 두었지
한반도가 우리 일본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다'
라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주장에 집착한 걸 보면
자신들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둔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가 짧다는 열등감이 꽤나 심해서
1970년대 고고학계가 유럽과 미국의 '그들만의 자화자찬 리그' 였던 시절
이런식으로 유럽과 미국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소리가 대놓고 나왔음에도
일본은 오히려 물개박수를 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시아가 잘 나가면 아시아에서 역사가 후달리는 자신들이 비참해지지만,
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열등하다고 하면 아시아 전체가 다 열등하니까
일본이 상대적으로 덜 비참하다는 시기심에서 나온 참 못난 발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면 일본 입장에선 그래도 덜 속상했을텐데
1977년 기존까지의 통설을 뒤집고 아시아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자기네들이 가장 의식하고 있던 한국에서 말이다.
미국 서부에서 고고학을 배우다 돈이 없어서 주한미군에 입대했던 그렉 보웬씨가
한탄강가를 '지나가다' 이런 세기의 발견을 하게 되자
유럽 우월주의에 입각한 기존의 통설이 뒤집어지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구석기 시대가 다시 씌여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일본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고고학계가 배우신 분들이 모여있다보니 그래도 교양있는 단어를 쓰긴 했지만,
당시 그분들이 돌려서 말한 걸 직설적으로 고쳐서 적으면 다음과 같은 뉘앙스였다.
'머리가 좋지 못해서 좋은 학교 나오지 못했고, 거기서도 장학금 받지 못해서 군대에 입대했는데
이런 사람이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걸 신뢰하기 어렵다.'
'그렉 보웬씨의 연인이 한국인이던데, 한국이 미인계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상아탑에 계신 분들이 객관적인 정황으로 해당 발견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런식으로 인신공격과 음모론을 꺼낸 걸 보면 배우신 분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 거 같긴 하다.
하여튼 한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
'그래서 그 때 그 사람들 이미 다 죽은지 언제인데 왜 지난 일을 들추냐' 고 하면서도
정작 현생 인류와 관계 없는 구석기 원인들의 유물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 보면
누구보다 논리적인척 하면서도 열등감을 숨길 수 없는 제식갤러들이 떠오른다.
다시 1970년대 후반 일본으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면
이렇게 한국에서 고고학계를 뒤엎은 발견이 나온 상황에서
일본 고고학계를 구원할 인물이 등판했으니 바로 후지무라 신이치 되시겠다.
원래 후지무라 신이치는 대학을 나오지 못한 아마추어로서
그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 초반에는
'대학도 안 나온 새파란 젊은 애가 무슨 고고학을 한다냐' 라고 무시당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만 나가면
일본의 고고학 역사가 새로 씌여지는 상황이라 모두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기에 이른다.
원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은 3만년 전 구석기 유적이었으나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을 하기 시작하면서
5만년, 10만년, 20만년, 30만년, 50만년된 구석기 유적이 나오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9년경에는 60만년된 구석기 유적을 발굴하는 쾌거를 올렸고
일본에서는 드디어 역사로 한국을 앞섰다고 기뻐했다.
뿐만 아니라, 60년 전 원시인들이 집을 짓고 종교적 제사를 지냈다는 걸 밝혀내자
그 전까지 통설을 뒤엎는 발견이라 인류학의 기본 개념을 다시 써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렇게되자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는 일본의 보물' 이라면서
아이들이 보는 교과서에다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한 유적들을 나열할 정도였고
버블 경제 당시 벌어들인 돈을 주체할 수 없던 좋았던 시절이었기에
세계 각지에 이러한 성과를 홍보하며
이러한 성과들의 의의를 연구해달라고 연구비를 주면서 지원한 결과,
1990년대 말에는 일본을 세계 5대 문명으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 북한 역시 세계 5대 문명으로 '대동강 문명' 을 주장하면서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던 고난의 행군 시기였음에도
나름 없는 살림에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줄테니 연구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유물로서 존재가 증명된 일본과 달리 아래 사진과 같은 반응만 나왔을 뿐이었다.
여하튼 이렇게 일본의 성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외국인 연구자들이 후지무라 신이치를 만나서 같이 연구를 하자고 제의하였으나
후지무라 신이치는 이러한 제의를 모두 거절하였다.
이에 대해 해외에서는 '혹시 뭔가 구린 게 있는 게 아니냐' 고 의문을 가지긴 했지만,
일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가 국민적인 영웅이었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혹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견한 유물들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음에도 아귀가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 있거나
구석기 시대에 주거시설이나 종교 의례를 행했다는 걸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감히 국민적 영웅을 폄훼하는 이들의 말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후지무라 신이치가 따로 대응을 하기도 전에 여론이 알아서 비국민이나 자이니치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후지무라 신이치의 발견이 무리수가 많아서 의심스러운 상황에 대해
자기의 양심에 따라 소신 발언을 했다가 저렇게 매장당하는 상황이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누군가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하는 현장을 몇 달 동안 염탐해서
후지무라 신이치가 연구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사진을 찍은 다음
이를 일본 주요 언론사에 제보했었는데
'국민적 영웅을 음해하는 이런 쓰레기 같은 제보는 읽을 가치가 없다' 라며
한 군데를 빼고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이니치 신문사의 경우 굉장히 오랜 시간 갑론을박을 한 끝에,
'음해로 보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이게 사실이면 특종 중 특종이잖아' 라며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하러 간다는 발굴 현장에 기자를 보내
증거가 될 만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으라고 시켰다.
그리고 기자가 수십 일을 기다린 끝에 다음과 같은 장면을 촬영하게 된다.
발굴하기 전에 이렇게 미리 가짜 유물을 구해다 아래와 같이 묻어버린 다음에
나중에 참으로 근엄한 표정으로 해당 자리를 '발굴' 하면서
"어 이럴 수가! 이번에도 내가 우연히 70만년 전의 유물을 발굴했다!" 라고 사기극을 벌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이니치 신문은 이러한 사진을 확보해 놓고도 바로 공개하지 않았다.
비록 후지무라 신이치가 사기극을 벌인 게 확실했지만, 아직 후지무라 신이치는 국민적인 영웅이었고
괜히 섣불리 그를 공격했다가 후지무라 신이치가 역으로 공격한다면
마이니치 신문이라도 매장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마이니치 신문이 섣불리 공개했다가
후지무라 신이치가 "여러분 저는 온갖 세력들의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누가 저를 음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짓을 벌였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누가 저를 음해 하고 계신지 아실 것입니다."
라고 언론 플레이를 하게 되면 이러한 증거가 '음해' 의 증거가 될 여지가 높았기에,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후지무라 신이치가 해당 '발견'을 발표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후지무라 신이치가 근엄한 얼굴로
"여러분 제가 이번에도 70만년 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고고학 유적을 발굴했습니다."
"이제 일본의 역사는 또다시 10만년이 늘어났습니다." 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에서
마이니치 신문에서 해당 사진을 공개하면서 빼도박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지무라 신이치는 당황했고
'제 얼굴이 왜 거기 있습니까?'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후지무라 신이치가 처음에는 어떻게든 부정해보고
권위에도 호소해보고 애국심에도 호소해 보았지만
논리적으로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라 궁지에 몰린 걸 인정하고
"제가 마가 꼈었나 봅니다." 라고 시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게 마이니치 신문 1면 헤드라인에 게재되고
일본 고고학계에서 조사한 결과
후지무라 신이치가 발굴했다는 지역의 90%는 애초에 유물이 존재할 수 없던 곳이었으며
나머지 10%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결과를 보고함으로서
그동안의 발견이 죄다 날조와 주작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일본 열도는 비탄의 수렁에 잠겼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고대사는 다시 70만년에서 3만년으로 후퇴하였고
이렇게 되자 일본이 자랑스럽게
'일본은 구석기 시대에도 세상을 이끌었다Desu' 라고
돈을 뿌리면서 한 작업들이 오히려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일본 고고학계는 한 동안 국제 학술회의에 초청받지 못했고
초청받은 다음에도 일본쪽 발제자가 발제를 하려고
"이렇게 우리 일본의 구석기 유적에 대해..."
라고 말을 꺼내기만 하면 연구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말이 있을 지경이었다.
근엄해야 할 학자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는 게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북한에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를 진지하게 부르는 꼴을 우리가 실시간으로 보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은 일본쪽 고고학계가 명함도 내밀지 못했고
자신들의 신뢰성이 쓰레기통에 처박힌 상황을 어떻게든 만회해 보고자
한국 학계에 자신들의 발견을 검증해 줄 수 있겠냐고 제안까지 했었을 정도였다.
국제적으로 한일 양국의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게 잘 알려져 있는 상황이니
일본을 우호적으로 볼 이유가 없는 한국이 검증해서 문제가 없다고 발표할 정도면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점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논란이 벌어진지도 사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더 이상 일본 고고학계가 그렇게까지 무시당하거나 그렇진 않지만
국익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날조와 조작을 검증하지 못하면
이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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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짜 유구하다 유구해 ㅋㅋ 그와 별개로 글은 너무 재밌어서 잘봤어!!
ㅋㅋㅋㅋㅋㅋㅋ 이런거 좀 교과서에 실어라ㅠ
근본없는 나라답다ㅠ
와 진짜 추하다 나라 전체가ㅋㅋㅋㅋ
쓰레기남자 윤서인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