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경영 vs 전문경영…정답은 `둘 다 맞다`
獨모범기업 젠하이저-보쉬…정반대 방식 `家業승계`
젠하이저 3세 경영인 형제인 다니엘 젠하이저(왼쪽)와 안드레아스 젠하이저.
# 1. 젠하이저(Sennheiser)는 독일 음향 전문업체다. 1945년 프리츠 젠하이저 박사가 회사를 설립한 이후 `프리미엄 음향업체` `유럽 내 부동의 1위 음향 전문 회사`라는 위치를 지켜왔다. 임직원은 2000명 남짓이지만 매출은 5억8440만유로(약 8700억원)에 육박하는 우량 기업이다. 대부분 프리미엄 음향 전문회사들이 스마트폰과 모바일 공세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젠하이저는 되레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역발상으로 모바일 음향기기 분야 절대 강자로 남았다. 여기에는 창업주 프리츠 젠하이저 박사 유지이자 철학인 `최고를 위한 혁신적 기업문화, 열정을 토대로 한 오디오의 미래 창출`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춰 모바일로 재빠르게 방향을 전환한 3세 경영인들이 있다. 바로 다니엘 젠하이저와 안드레아스 젠하이저 형제다.
# 2. 독일 자동차 산업의 숨은 주역은 바로 세계 최대 부품회사인 보쉬다. 매출 70조원이 넘는 거대 기업 보쉬는 자동차 업계 최대 영향력을 자랑한다. 보쉬 부품이 들어가지 않으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자동차 중 한 대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업계 영향력만이 보쉬를 `위대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소유와 경영을 `칼 같이` `완벽하게` 분리하며 창업주인 로버트 보쉬 가문은 오로지 사회공헌과 자선활동에만 매진하는 독특한 가족기업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타 기업에 모범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회사를 설립해 어느 정도 기업을 궤도에 올린 창업주는 어느 순간부터 고민에 빠진다. 내 자식에게 지분은 물론 경영권까지 물려줘 `가업`을 잇게 할 것인가, 아니면 지분에 대한 소유만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한국만 해도 전자를 택했을 때 온갖 흙탕물 싸움으로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례가 많았고, 후자를 택한 창업주는 많지 않다. 이 고민에 정답은 없다. 다만 창업주와 그 가족, 그리고 구성원들 판단이 있고, 그 판단에 따른 결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벤치마킹할 만한 모범사례는 있다. 특히 독일 기업들은 이 분야에 있어 최고 모범사례로 꼽힌다. 후손들이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에까지 뛰어들어 회사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음향기기 전문업체인 젠하이저,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족은 지분을 소유하며 이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사회공헌에만 집중해 `좋은 기업`을 만들어가고 있는 보쉬 등이 대표적이다.
매일경제 MBA팀은 젠하이저 3세 경영인 형제인 안드레아스 젠하이저와 다니엘 젠하이저에 이어 로버트 보쉬 재단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요아킴 로갈 박사와도 인터뷰했다.
젠하이저는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리미엄 음향기기 전문업체지만 그 어떤 업체보다 모바일 환경에 빠르게 대응해 독보적 존재가 됐다. 여기에는 `내 이름을 단 회사`라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등에 진 30대 경영인들이 있었다. 안드레아스 젠하이저와 다니엘 젠하이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철학을 마음속에 담았지만 이 속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다른 업체들이 모바일의 부상을 `프리미엄 업체가 뛰어들 분야가 아니다`고 규정하고 애써 무시했을 때 젠하이저는 오히려 과감하게 이 분야를 공략했고, 젊은 층에 맞는 디자인도 강화했다. 30대 젊은 후손들이 아니었다면 내리기 어려운 의사결정이었다.
작년 7월 1일부로 7인 사장단에서 2인 공동 CEO와 5인 대표 체제로 회사 구조를 바꿔 CEO가 된 이들은 형제 공동 명의로 보내온 이메일 인터뷰 답변에서 "가족경영이기에 고객을 제외하곤 그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장기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으며, 정치적 쇼를 할 필요도 없다. 불경기에 투자를 멈추지 않고 고용을 유지한 것도 가족경영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보쉬 후손들은 정반대로 사회공헌에만 몰두한다. `로버트 보쉬 재단(Robert Bosch Stiftung)`은 `기업 지분 92%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 어떤 의결권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단지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각종 사회공헌과 국가 싱크탱크 기능만을 수행한다.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보쉬하우스에서 독일,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위한 브레인으로 활약하며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연구하고, 성과를 내고 있다.
재단 CEO마저 보쉬 집안 출신이 아니다. 요아킴 로갈 CEO는 1996년 재단에 입사한 학자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로버트 보쉬 재단을 만드는 것 자체가 창업주 유지는 아니었지만 후손들이 그가 실현하려고 했던 `인류를 위한 박애주의`를 계승하려다 보니 현재와 같은 소유와 경영의 완벽한 분리가 이뤄졌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재단은 약 7000만유로(약 1042억원)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 2社 2色 가족기업
우리 이름이 회사 건물에 붙어 있는 것을 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 합류하는 것 자체도 엄청난 부담과 책임으로 다가왔지만 이후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결정이었다. 거기다가 보통 기업에서도 사람들은 실패와 실수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고 배울 수 있지만 오너이자 기업 경영을 맡은 처지는 다르다. 실패나 실수가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 다니엘 젠하이저와 안드레아스 젠하이저 젠하이저 CEO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로버트 보쉬 창업주 유지인 `회사의 지속 가능한 발전, 인류를 위한 박애주의 정신 계승`을 따른 결과다. 애초에 로버트 보쉬가 소유와 경영을 억지로 분리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유언 집행인들이 그의 유지를 잘 실현할 방안을 찾다 보니 현재와 같은 소유ㆍ경영 분리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 요아킴 로갈 로버트보쉬재단 CEO
▶▶ 獨 음향 전문업체 `젠하이저`…3세 경영인 젠하이저 형제
70년간 흔들림없이 혁신·혁신… `고객만 바라보고`
-젠하이저에 합류하기 전엔 어떤 일을 했나.
▶안드레아스=일찌감치 회사에 합류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합류를 결심한 것은 4년 전이다. 박사과정 후 리히텐슈타인에 있는 힐티라는 회사에서 근무했고, 여기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젠하이저에서 경영 효율화와 전략적 공급망 관리를 책임질 수 있게 됐다.
▶다니엘=동생과 달리 나는 젠하이저에 합류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나는 마케팅ㆍ전략 전문가인데, 젠하이저는 엔지니어 중심 회사이고,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드폰 산업에서도 마케팅과 디자인 중요성이 커지게 되면서 내 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P&G와 오길비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했다.
-작년 2인 CEO 체제를 구축하며 공식 후계자가 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7인 사장단 체제였다. 다양한 의견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고,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길어지게 됐을 때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고, 오늘날 세계는 좀 더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한다는 현실을 반영해 CEO 2명과 강력한 이사회 체제로 바꾸게 됐다.
-이 과정에서 어떤 토론이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나.
▶우리 가족은 항상 `가족회의(Family Council)`를 거친다. 회의에는 가족 구성원뿐 아니라 외부 컨설턴트, 회사 경영위원회 등이 참여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CEO로서 준비가 됐는지 등을 몇 년 동안 점검하고 검증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가족 헌장(Family charter)` 형태로 문서화해서 보관하고 있으며, 이 문서는 회사 고위 경영진 모두가 투명하게 공유한다.
-가족기업이 지닌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장점은 고객을 제외한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장기적 전략 수립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기 실적에 얽매이거나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에 보여줄 것을 애써 준비할 필요가 없다. 억지로 정치적인 재무적 실적(Financial politics)을 낼 필요도 없다. 또 불경기에 보통 투자를 멈추는 다른 기업과 달리 우리는 불황에 투자를 계속 진행하는 데 부담이 덜하다. 그 결과 경기 침체 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기술 개발은 긴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에 당장 눈에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강점이 있다.
-70년 역사를 지닌 젠하이저에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은 것은 혁신 지향적인 기업 문화다. 우리는 `최고를 향한 혁신적 기업문화와 열정을 토대로 오디오의 미래를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매일 이 말을 되뇌며 `완벽한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다. 기업 운영적 측면에서는 항상 `번 돈 내에서 쓴다(We only spend money we have earned)`는 원칙을 지킨다. 우리 고유의 독립적 가족기업으로 남기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기업공개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변하지 않는 가치다.
변화한 것이 있다면 더 고객 지향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팟과 다른 휴대용 MP3 시장이 형성됐을 때 엄청난 가능성을 봤다. 우리 핵심 가치인 `더 나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최고 제품 제공`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를 위해 좀 더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디자인과 스타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젠하이저 미래는.
▶궁극적 목표는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회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세대가 주주 책임과 경영 책임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가족기업으로서 우리는 즐거운 오디오 경험을 들려줄 것을 고객들과 오랜 기간 약속해 온 역사가 있다. 그에 맞게 가업승계도 진행될 것이다.
■ Who they are…
다니엘 젠하이저(사진 왼쪽)와 안드레아스 젠하이저(사진 오른쪽)는 창업주인 프리츠 젠하이저 박사의 손자다. 2013년 7월 1일부로 공동 대표(CEO)가 됐다. 30대인 이들은 CEO 임무뿐 아니라 젠하이저 대변인 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다. 다니엘은 마케팅과 전략 전문가로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안드레아스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경영 효율화와 전략적 공급망 관리를 담당한다.
▶▶ 세계최대 부품기업 `보쉬`…자선재단 CEO 요아킴 로갈
지분 92% 갖고도 경영 노터치… `나눔생각만 하고`
-언제부터 로버트 보쉬 재단이라는 독립체가 운영됐나.
▶창업주 유언 집행인들은 그가 사망한 후 먼저 세계 2차대전으로 망가진 기업을 재건하는 작업을 했다. 로버트 보쉬가 사망한 1952년 당시에는 회사 시설 60%가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서 창업주 유지대로 인류를 위한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1964년 보쉬 자산운용사(Vermogensverwaltung)가 생겼고, 여기에서 오로지 자선사업만을 목적으로 한 로버트 보쉬 재단이 설립됐다.
-로버트 보쉬 재단은 70조원이 넘는 매출을 내는 보쉬 지분 92%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경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로버트 보쉬 재단은 보쉬라는 회사의 경영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현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 로버트 보쉬 재단은 보쉬 지분에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자선사업을 진행한다. 이 배당금은 다른 목적을 위해선 전혀 쓰이지 않는다. 지분에는 당연히 의결권이 있지만 재단은 이 의결권을 로버트 보쉬 신탁이 보유하도록 했다. 철저히 기업 경영과 자선사업을 분리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양측 모두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보쉬와 로버트 보쉬 재단이 가진 힘이다. 이 같은 독립적이면서도 투명한 관계 덕분에 회사는 이익을 재투자하며 계속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재단은 재단대로 꾸준히 기존 사회공헌 사업과 프로젝트들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재단이 지난 몇 년간 투자한 금액은 7000만유로에 이른다.
-재단이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
▶우리는 헬스케어, 교육, 트레이닝, 미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아이들에 대한 지원, 국가 간 상호 우호적 관계 등에 관심이 있다. 이는 창업주 로버트 보쉬 유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재단이 거둔 대표적인 성공 프로젝트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독일과 폴란드 관계 개선이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철의 장벽`이 있었을 때 서독과 폴란드 관계는 극도로 나빴다. 당시만 해도 많은 독일인이 `공산주의자`들과 직접 교류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로버트 보쉬 재단은 1974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나서 1990년대 통일하기 전까지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자처했다. 독일과 폴란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간 교류를 도왔고, 상대방 나라에 여행을 가 배울 수 있도록 했으며, 이 숫자만 2만8000여 명에 달했다. 동독의 작위적인 개입 없이도 서독과 폴란드가 교류하고 대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간호서비스(Nursing Care) 정착이다. 늙고 병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을 예측한 재단은 이들을 위한 간호서비스를 전문적인 차원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의학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부가적`이면서 `부차적인` 일로 여겨졌던 간호서비스를 전문 분야로 키워내 별도 학과로 만드는 데 힘썼다. 이미 35년 전부터 치매나 말기 환자들에 대한 호스피스 서비스 등을 정착시킨 것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보쉬 후손은 현재 재단에서 하고 있는 역할이 있나.
▶재단에는 `신탁 이사회`라는 조직이 있다. 여기서 재단 자선활동 범위와 방법 등을 최종 결정한다. 이 조직은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2명이 로버트 보쉬 손자인 크리스토프 보쉬와 마티아스 마델룽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만 72세가 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들 외에 나머지 7명은 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해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 Who he is…
요아킴 로갈 박사(사진 왼쪽)는 작년 4월 1일 로버트 보쉬 재단 CEO로 임명돼 활동하고 있다.
독일 마인츠대학교,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등에서 동유럽 역사와 슬로바키아 철학, 독일사 등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마인츠대학과 헤르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로버트 보쉬 재단에는 1996년 합류했으며 헬스케어와 국제관계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 왔다. 사진 오른쪽은 창업자 로버트 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