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해진 가을 들녘
시월 하순 금요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다녀온 반월 습지 생태공원 코스모스 꽃길이 눈에 선해 시조로 남겨 지기들에게 전했다. “남은 생 덕담 삼아 꽃길만 걸으소서 / 그보다 더 좋은 말 꽃길을 만드소서 / 땀 흘려 가꾸다 보면 건강해져 좋다네 // 신중년 나잇살에 아직은 힘이 넘쳐 / 누군가 손길 닿아 꾸며진 꽃길보다 / 내 손에 꽃을 가꾸어 보여주고 싶다네” ‘꽃길 행보’ 전문.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반송 소하천에는 백로가 먹이를 찾다 놀라 날았고, 냇바닥 고마리는 좁쌀 같은 꽃을 피웠다. 간선 급행버스 정류소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대산 강가 상리로 나가는 30번 버스를 탔다. 등굣길 학생과 출근길 회사원들과 함께 충혼탑과 창원대로를 둘러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갔다.
동읍 용잠삼거리에서 행정복지센터를 거쳐 주남저수지를 비켜 가니 차창 밖 연잎은 시들고 단감은 누렇게 착색되어 수확을 앞둔 때였다. 봉강에서 초등학교 여직원이 내리고 용연에서는 텃밭으로 일을 나가는 아낙이 내리자 승객은 혼자 남았다. 며칠 전 아침에 둘러본 장군바위 설화의 현장 죽동 당산을 거쳐 송정을 지난 일동초등학교 앞에서 내리고 기사는 종점은 향해 나아갔다.
초등학교 교문에는 배움터 지킴이가 근무했는데 아이들은 보이질 않고 출근하는 교직원의 차가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학교 앞 거리에는 노인요양원 문안을 새긴 소형 승용차가 다녔는데 유치원 아이 등원처럼 노인들을 태워 이동시켰다. 아까 지나온 죽동마을에는 유아원이 재가 노인 돌봄센터로 바뀌어 성업 중이라, 건물 바깥 좁은 농로에는 요양사 출퇴근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학교 앞 당리마을에서 들녘으로 드니 사계절 비닐하우스에는 특용작물을 키웠는데 가지와 딸기였다. 보온재 비닐에는 물방울이 서려 내부가 보이지 않아도 바깥으로 곁순을 따 버려두어 무슨 작물인지 짐작되었다. 비닐하우스단지에 주력 작물은 청양고추로 생육기는 현지 농부가 가꾸어도 수확기에는 베트남 여인이나 마산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고령층 부녀 손으로 해결했다.
벼농사를 대신해 논에다 키운 연은 굴삭기로 넓게 뒤집어 놓은 이랑 동남아 청년 셋이 흙을 뒤져 찾은 뿌리를 상자에 담았다. 연근 수확은 진흙에서 하는 작업이라 은근히 힘든 일인 듯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여서 비닐하우스는 보온을 위해 문을 닫아두어 안에 자라는 작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구역 농막 앞 순둥이 견공은 턱을 괴고 사념에 잠겨 있어 피사체로 삼았다.
농로 따라 무념무상 걸었다. 비닐하우스단지 들녘은 넓어 당리에서 수성 앞으로 펼쳐졌는데 마을에서 멀어진 농지일수록 벼를 가꾸었다. 누렇게 익은 벼들은 콤바인으로 탈곡이 시작되었는데 추수 후 농부들은 서둘러 논을 갈아 당근 농사를 지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당근은 계약 재배여서 늦은 봄이면 외지에서 온 업자들이 일꾼을 데려와 뽑아 상자에 채워 어디론가 싣고 갔다.
구산마을이 저만치 바라보인 곳은 학교 운동장보다도 넓은 비닐하우스로 오이 수경재배 단지였다. 지난여름 두 차례 상품성이 처진 하품을 수집해 찬으로 삼고 이웃으로도 보냈다. 대형 막사를 연상하는 비닐하우스에는 외국인 일꾼 숙소와 샤워실도 갖추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시설에 문이 닫혀 주인장이나 베트남 청년은 만나지 못하고 모산마을에서 국도변 따라 가술로 갔다.
가술에 닿으니 점심때가 일렀는데 넓은 공한지 고구마를 캐 간 텃밭에 땅콩을 캐 선별하는 노부부가 있었다. 주인장에게 부산물로 남겨둔 잎줄기를 따가고자 얘기를 건네니 흔쾌히 응답했다. 밭둑 가장자리 아직 싱싱한 고구마 줄기를 따 끄트머리 이파리는 끊어 봉지에 채웠다. 점심은 보리개떡 가게에서 술빵을 사서 삼봉 어린이 공원 쉼터로 와 테이크아웃 커피와 곁들여 한 끼 때웠다. 2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