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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비슬(奴顔婢膝)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말이다.
奴 : 종 노(女/2)
顔 : 낯 안(頁/9)
婢 : 계집종 비(女/8)
膝 : 무릎 슬(肉/11)
출전 :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교제(交際)
노비가 주인을 대하는 것처럼 남자종이 고개를 숙이고 아첨하는 얼굴과 여자종이 무릎을 꿇는 듯한 태도로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알랑거리며 비굴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말한다.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이자 도사인 갈홍(葛洪)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교제(交際)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노비와 같이 비굴한 얼굴 표정과 무릎 꿇는 듯한 태도로 남을 대하는 사람은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다(以奴顔婢膝者, 爲曉解當世)."
종은 예전에 남의 집에 딸려 천한 일을 하던 사람이다. 노예(奴隸)가 남의 소유물이 되어 물건처럼 매매도 가능했던데 비해 하인(下人)처럼 종은 고용에 의한 것이 다르다. 어려운 생활로 죽지 못해 종이 됐더라도 세습제도가 생겨 대대로 부림 받았으니 큰 차이 없게 됐지만 말이다.
종의 비굴한 얼굴(奴顔)과 계집종의 무릎걸음(婢膝)이란 말은 남에게 환심을 사려고 빌붙어 아첨하는 것을 말한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처음부터 씨가 있은 것이 아니듯 종도 태어나서부터 종이 아니니 알랑거리는 것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재산도 지위도 더 누리려고 윗사람에게 살살거리고 뇌물을 쓰는 자들은 따로 있다.
중국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유교와 도교의 비술을 결합하려 한 연단가(煉丹家)로 자신의 호를 딴 대표작 '포박자(抱朴子)'를 남겼다. 당시 어지러운 전란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귀를 탐하며 권세가를 찾았고, 정직한 자들에겐 오히려 시세를 모르고 무능하다고 욕했다.
갈홍은 이러한 세태를 명확히 지적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글을 교제(交際)편에서 이렇게 썼다. "높은 산처럼 우뚝 선 사람은 굼뜨고 부끄러워하며 거칠고 서투르나(以岳峙獨立者 爲澀吝疏拙), 종의 표정과 여종의 곁눈질을 가진 자는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다(以奴顏婢睞者 爲曉解當世)."
당(唐)의 시인 육구몽(陸龜蒙)은 '강호산인가(江湖散人歌)'에서 이렇게 꼬집는다. "남자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 꿇는 태도는 그야말로 거지근성이거늘(奴顏婢膝眞乞丐), 도리어 정직한 사람을 미쳤다고 여긴다(反以正直爲狂癡)."
인격수양의 지침서 '채근담(菜根譚)'에서도 점잖게 타이른다. 거친 음식을 마다않는 사람은 옥같이 맑은 사람이 많다면서 이어진다. "비단옷을 입고 옥 같은 흰쌀밥을 먹는 사람 중에는,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을 달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顏)."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라 했다. 조금의 이익만 있으면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다'는 속담대로 왔다 갔다 한다. 이러니 아첨을 나타내는 말이 수두룩하다. 상관의 수염에 묻은 티끌을 불어주는 불수진(拂鬚塵), 상사의 변을 맛보고 고름을 빨아주는 상분연옹(嘗糞吮癰),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는 슬행마시(膝行馬矢)는 냄새의 극치다.
날 때부터 종이 아니라고 일찍 고려(高麗) 말의 만적(萬積)이나 망이망소이(亡伊亡所伊) 등은 난리를 일으켰다. 실패했더라도 신분 해방의 의지는 뚜렷했는데 종이 아첨의 대명사가 됐으니 억울하겠다.
노안비슬(奴顔婢膝)
남자종의 얼굴과 여자종의 무릎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과 사귈 때 환심을 사려고 남에게 빌붙어 종처럼 지나치게 굽실굽실하고 아부하면서 비굴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몇십년 전에는 대학을 두고 '상아탑(象牙塔)'이니. '지성(知性)의 광장(廣場)'이니 하는 고상한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이 많아져 사회로부터 별 인기가 없다. 대학의 숫자가 많아져 그렇게 되기도 했겠지만. 대학을 구성하는 교수나 학생들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당한 선비의 자세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학의 발전과 그 권위는 재정과 무관할 수가 없다. 재정적으로 아쉬움이 없으면 무한한 발전을 할 수 있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1년 동안 지급하는 연구비 총액이 삼성에서 설립한 연구소 연구비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사립대학의 경우, 설립자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명감을 갖고서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 대대적인 지원을 하면 다행이지만. 설립한 대학을 통해서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그런 대학은 재정상황이 뻔하다.
국립대학의 경우, 교육부의 관리들이 늘 예산이나 연구비를 가지고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이러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는데, "잘 따라오면 예산지원에 우선권을 주겠다", "잘 따르지 않으면 예산상의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 비슷한 명령을 시달하고 있다. 그러니 마치 손에 닭모이를 들고 닭을 부르는 모양과 비슷하다.
현재 어느 국립대학을 막론하고 흡족할 정도의 예산을 얻는 학교가 없다. 그러니 각 대학의 총장들은 발전기금을 거두기 위하여, 연고 있는 기업가나 출향인사(出鄕人士) 등에게 기부금을 얻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가들도 기업을 경영하여 돈 벌기가 어려운데 쉽게 돈을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러면 대학총장들은 기업가에게 매달리게 마련이다. 매달리다 보면, 온갖 비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발전을 위해서, 그러니 대학의 권위나 학문의 권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에 서울대학교 총장 한 분이 취임 직후부터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그룹의 회장을 만나려고 노력했으나, 총장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 회장이 만나 주지 않았다고 한다. 만나면 나올 이야기가 뻔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총장이 기업인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데, 여타 대학 총장이 받는 대접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최근 고려대학교가 삼성그룹의 총수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게 되었고. 그 답례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소요가 있었는데, 고려대학교 총장이나 학교 보직자, 교수, 심지어 학생들까지도 삼성그룹 총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사과하는 비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기부금 앞에 너무나 맥을 못추는 것 같다. 학문의 귄위, 대학의 권위를 상실하고는 학문이 발전할 수 없다. 옛날 추상같이 엄한 주인 앞에서 쩔쩔매는 노비의 얼굴빛과 걸음걸이가 연상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채근담(菜根譚) 前集
11. 부귀를 탐하면 절개를 잃는다
藜口莧腸者(여구현장자)는 多氷淸玉潔(다빙청옥결)하고
명아주를 먹고 비름으로 창자를 채우는 사람 중에는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한 사람이 많지만,
袞衣玉食者(곤의옥식자)는 甘婢膝奴顔(감비슬노안)하나니
비단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 중에는 종처럼 굽실거리고 아첨함도 달게 여긴다.
蓋志以澹泊明(개지이담박명)하고 而節從肥甘喪也(이절종비감상야)니라.
대체로 지조는 담박(澹泊)함으로써 뚜렷해지고, 절개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좇음으로써 잃게 되느니라.
포박자(抱朴子) // 갈홍(葛洪)
저자 신선 갈홍(葛洪)이 가난뱅이 아들에서 대학자가 된 이야기
중국의 도가서(道家書)로, 317년 동진의 갈홍(葛洪)이 내편, 외편, 자서로 나누어 지은 책이다. 내편은 불로장생의 선술(仙術)과 구체적인 이론을 실관적(實觀的) 지식에 의해 논하고, 경전(經典)과 계율(戒律)과 금기(禁忌) 등을 기술하였다. 외편은 유교적 정치론으로 정치와 처세의 이해득실이 논술되어 있다. 총 8권으로 내편 20편, 외편 50편만이 전한다.
갈홍은 누구인가?
갈홍은 중국의 종교-도교에서 배출한 중요 인물로 명저 '포박자(抱朴子)'를 써 도교의 사상을 풍부하게 하여 도교의 경전이 되게 한 사람이다.
갈홍은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항상 한 끼를 먹으면 한 끼를 굶어 얼굴색이 누렇게 뜨고 장작같이 말랐다. 하루는 갈홍이 학당 앞을 지나다가 부잣집 자제들이 모두 학당 안에서 공부하는 모습과 낭랑하게 글 읽는 소리가 때때로 들려오는 것을 보았다. 갈홍은 문틈으로 멍하니 바라보다 너무 부러워 자신도 학당에서 공부를 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얘야, 우리 집은 첫째 돈이 없고, 둘째 그럴 짬이 없는데, 어떻게 너를 학당에 보내겠니?" 갈홍은 아버지가 매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는 아버지에게 공부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갈홍은 마음속으로는 줄곧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고 반드시 공부를 할 것이라고 남몰래 다짐했다. 갈홍은 그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아직 어둑어둑할 때 일어나 대나무 광주리를 등에 메고 큰 칼을 들고 깊은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그의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가시덤불이 자라난 작은 길은 그의 발을 찔러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고통을 개의치 않았다. 한낮이 되고 태양은 이미 높이높이 떠올랐고 햇빛은 산 정상을 가득 비추었다.
이때 갈홍은 대나무 바구니에 가득 담긴 땔나무를 보고, 읍내까지 가려면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읍내에 있는 잡화 상점에 가서 땔나무를 붓 한 자루와 종이 몇 장, 글을 깨우칠 수 있는 책 한 권과 바꾸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갈홍이 문구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물건이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물었다. 갈홍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숨을 쉬며 "가난한 집 아이는 공부를 해도 소용이 없단다"라고 말했다. 갈홍은 실망하지 않고 매일 저녁이 되면 종이와 책과 붓을 꺼내어 식탁 위에 놓고 전심으로 글자를 익혀 애써 독학을 하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갈홍은 독학을 하다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는 선생님이 어디에 계시든 개의치 않고 찾아가 겸허히 가르침을 구했다. 갈홍은 도술(道術)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정은(鄭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방면에 매우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듣고 바로 가르침을 받으러 그를 찾아갔다. 갈홍은 그를 찾기 위해 10여 쌍의 짚신이 다 헤졌고 발은 짚신에 닳아 다 까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르게 갈홍은 성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았으며 도술에 정통하여 마침내 전국에 이름을 떨치는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학문이 높은 갈홍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학문을 연마하고 연구하며 끊임없이 배웠다. 하루는 남해태수(南海太守) 포정(鮑靚)이 도술에 정통하고 점복에 능하다는 것을 듣고 바로 포정을 찾아가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깊이 연구할 것을 결심했다.
갈홍은 책 보따리를 등에 메고 마른 식량을 어깨에 메고 허리에는 짚신 대여섯 켤레를 두르고 고향을 떠나 멀리 포정을 찾아 갔다. 배고프면 차고 딱딱한 마른 식량을 한 입 베어 먹고 목마르면 강물을 두 손에 담아 마시고 힘들면 산림의 바위 위에서 잠시 쉬었다.
하루는 갈홍이 산림의 바위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리떼가 와서 슬그머니 갈홍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흰 털의 이리가 점점 갈홍에게 다가와 길다란 빨간 혓바닥이 갈홍의 얼굴에 막 닿으려 했다. 갈홍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이미 이리에게 포위당했다.
그는 오히려 매우 침착하게 몸을 일으켜 책 보따리를 들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이리떼가 그를 순순히 보내 주겠는가. 일시에 크게 울부짖기 시작하였는데, 이 소리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흰 털의 우두머리 이리는 이미 공격할 자세를 취하여 갈홍은 생명이 위험한 순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입으로 주문을 몇 마디 외우자 우두머리의 흰털 이리는 순순히 말을 듣기 시작하여 개가 주인의 발치를 빙빙 도는 것처럼 갈홍의 발 주위를 빙빙 돌았다. 갈홍이 주문을 몇 마디 더 외우니 흰털 이리가 몇 번 울음소리를 내자 사방의 이리들이 잇달아 모여들어 마치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 같았다.
갈홍은 그가 휴대한 물건들을 등에 메고 조용히 산림을 떠났다. 이리떼는 마치 이별을 아쉬워하는 양 갈홍의 뒤를 따라 한참을 따라가고 나서야 하나 둘 흩어졌다.
갈홍은 남해태수 포정을 찾으러 가는 도중에 천신만고의 고생을 겪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어 포정을 만나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포정은 갈홍이 정성으로 가르침을 구하고 겸허하게 학문을 쫓는 것을 보고 갈홍에게 이미 다년간 전해지지 않았던 점성술과 도술을 전수해 주었다. 갈홍은 스승에게 매우 감격하여 학문을 다 끝마치던 날 스승에게 이마가 깨지도록 절을 하고 또 했다.
스승 포정이 말했다. "도교는 역사가 유구하지만,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총괄하고 도교를 연구한 전문 저서가 부족하여 도술이 유실되었다. 너는 돌아가서 계속 연구하여 전문 저서를 써서 그 동안의 공백을 메워라." "소생이 불민하여 그 임무를 받들기가 어렵습니다." 갈홍은 겸허하게 대답했다.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느니라." 갈홍이 말했다. "소생 반드시 그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갈홍은 스승에게 이별을 구하고 계속하여 도술을 연구하여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루는 재상 왕도(王導)가 사람을 보내어 갈홍이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될 것을 청하였다. 갈홍은 보내온 사람이 적지 않은 금은보화와 능라(綾羅) 주단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단호하게 받지 않으려 하였다. "나는 일개 서생으로 이런 물건을 필요하지 않으니 가지고 가시오."
보내온 사람이 말했다. "이것은 재상께서 보내온 선물입니다." 갈홍이 대답했다. "돌아가서 재상께 전하시오. 나는 어떤 관직에도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학문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이요." 보내온 사람도 어찌할 수가 없어 총총히 떠나갔다. 갈홍은 문을 닫아걸고 방문객을 사절하며 전심으로 그 스승에게 약속한 바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갈홍은 명망 있는 대학자였으므로 재상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몇 번을 사람을 보내어 벼슬할 것을 권했다. 갈홍은 그러한 강요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숨을래야 숨을 수도 없었다. 이때 그는 교지(交趾)라는 곳에서 주사(丹砂)가 많이 난다는 소리를 듣고 교지라는 곳에 가서 하급관리를 하면 전심으로 연단(練丹)할 수 있으니 어찌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갈홍이 보내온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벼슬을 하되, 경성(京城)의 관리가 아니고 교지라는 곳의 하급관리를 하겠소." 재상이 이 일을 황제에게 알리니 황제는 갈홍이 일개 하급관리만을 하길 고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갈홍은 대학자인데 어찌 하급관리를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했다.
갈홍은 황제가 자신이 교지에 가서 관리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계획이 허사가 되어 실지로 가서 연단하지 못하게 되니 어찌 책을 쓰며 어찌 스승의 중대한 부탁을 완성할 것인가를 걱정했다. 이쯤 되니 갈홍은 조급해져 친히 경성으로 가 황제를 배알할 것을 요청했다.
황제는 갈홍이 접견을 희망한다는 것을 듣고 그가 마음이 바뀌어 경성에 남아 벼슬할 것을 결정했다고 생각하고 더욱 신속하게 그를 만났다. "폐하, 제가 교지로 가서 벼슬을 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그곳에서 생산되는 주사를 이용하여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처방에 근거하여 금단(金丹)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 금단이 있으면 사람은 장생불로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든 후에 폐하께서 드시면 늙지 않고 영원히 천하를 다스리실 것 아니겠습니까?"
황제는 갈홍이 먹으면 사람이 장생불로하는 금단을 만들러 간다 하니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좋소, 가서 금단을 만들면 될게 아니오."
황제가 승낙하자마자 갈홍은 행낭을 수습하여 교지로 떠났다. 그는 관리를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나부산(羅浮山) 위에 도착하자 전심으로 연단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천하의 일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갈홍은 연단에 몰두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도 않았다. 그는 주사를 캐어 헹구어 그늘진 곳에서 말리고 다시 각종 화학 시약을 사용하여 테스트하고 옛 처방에 따라 제조하는 법을 연구하였는데, 때로는 증기를 이용하고 반복해서 실천하여 사람이 먹으면 장생불로할 수 있는 알약을 만들어내 인류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신비로운 상상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갈홍은 나부산에서 7년 동안이나 각고의 노력으로 연단에 힘썼는데, 실패하고 또 하고 무수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재차 삼차 시험했다. 물론 갈홍도 인류의 이러한 신비로운 꿈을 완성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희망과 부탁을 실현하여 전문서적인 '포박자(抱朴子)'를 완성하여 역사서에 길이 기록되는 학자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갈홍은 수련하여 신선이 되어 81세에 신비롭게 인간계를 떠났다고 한다. 그 해에 갈홍은 자신의 친구에게 먼 곳으로 스승을 찾아 간다고 편지를 썼다. 친구는 편지를 받은 후 급히 그를 배웅하러 왔다.
이때 갈홍은 단정하게 앉아 움직이지 않고 두 눈은 살짝 감고 마치 앉아서 조는 것 같았다. 친구는 갈홍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의 손을 흔들어 보고는 그가 이미 숨이 끊어진 것을 발견했다.
친구는 갈홍의 시신을 옮겨 관 속에 넣고 즉시 장사지낼 준비를 하고 안장하려 했다. 마침 친구가 시체를 옮기려고 할 때 갑자기 시체가 사라지고 빈 옷만 손에 남아 있었다. 친구는 매우 놀라고 기이하여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한 줄기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서 천천히 떠올라 표연히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친구는 갈홍이 득도하여 승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抱朴子 外篇 交際卷 第十六
16-1
抱朴子曰:余以朋友之交, 不宜浮雜. 面而不心, 揚雄攸譏. 故雖位顯名美, 門齊年敵, 而趨舍異規, 業尙乖互者, 未嘗結焉. 或有矜其先達, 步高視遠, 或遺忽陵遲之舊好, 或簡棄後門之類味, 或取人以官而不論德, 其不遭知己, 零淪丘園者, 雖才深智遠, 操淸節高者, 不可也;其進趨偶合, 位顯官通者, 雖面牆庸瑣, 必及也. 如此之徒, 雖能令壤蟲雲飛, 斥晏鳥戾天, 手捉刀尺, 口爲禍福, 得之則排冰吐華, 失之則當春凋悴, 余代其口止叔口止脊, 恥與共世.
16-2
窮之與達, 不能求也. 然而輕薄之人, 無分之子, 曾無疾非俄然之節, 星言宵征, 守其門廷, 翕然諂笑, 卑辭悅色, 提壺執贄, 時行索媚;勤苦積久, 猶見嫌拒, 乃行因托長者以構合之. 其見受也, 則踴悅過於幽系之遇赦;其不合也, 則懊悴劇於喪病之逮己也. 通塞有命, 道貴正直, 否泰付之自然, 津途何足多咨. 嗟乎細人, 豈不鄙哉! 人情不同, 一何遠邪? 每爲慨然, 助彼羞之.
16-3
昔莊周見惠子從車之多, 而棄其余魚. 余感俗士(或脫“無”)不汲汲於攀及至也. 瞻彼雲雲, 馳騁風塵者, 不懋建德業, 務本求己, 而偏徇高交, 以結朋黨, 謂人理莫比之要, 當世莫此之急也. 以岳峙獨立者, 爲澀吝疏拙;以奴顔婢睞者, 爲曉解當世. 風成俗習, 莫不逐末, 流遁遂往, 可慨者也.
16-4
或有德薄位高, 器盈志溢, 聞財利則驚掉, 見奇士則坐睡. 襤縷杖策, 被褐負笈者, 雖文艶相·雄, 學優融·玄, 同之埃芥, 不加接引. 若夫程鄭·王孫·羅裒之徒, 乘肥衣輕, 懷金挾玉者, 雖筆不集札, 菽麥不分辯, 爲之倒屣, 吐食握發.
16-5
余徒恨不在其位, 有斧無柯, 無以爲國家流穢濁於四裔, 投畀於有北. 彼雖赫奕, 刀尺決乎(有脫文)勢力足以移山拔海, 吹呼能令泥象登雲, 造其門庭, 我則未暇也. 而多有下意怡顔, 匍匐膝進, 求交於若人, 以圖其益. 悲夫! 生民用心之不鈞, 何其遼邈之不肖也哉! 余所以同生聖世而抱困賤, 本後顧而不見者, 今皆追瞻而不及, 豈不有以乎! 然性苟不堪, 各從所好, 以此存亡, 予不能易也.
16-6
或又難曰:“時移世變, 古今別務, 行立乎己, 名成乎人. 金玉經於不測者, 托於輕舟也;靈烏萃於玄霄者, 扶搖之力也;芳蘭之芬烈者, 淸風之功也;屈士起於丘園者, 知己之助也. 今先生所交必淸澄其行業, 所厚必沙汰其心性, 孑然只口止寺, 失棄名輩, 結讎一世, 招怨流俗, 豈合和光以籠物, 同法之高義乎? 若比智而交, 則白屋不降公旦之貴;若鈞才而游, 則尼父必無入室之客矣.”
16-7
抱朴子曰:“吾聞詳交者不失人, 而泛結者多後悔. 故曩哲先擇而後交, 不先交而後擇也. 子之所論, 出人之計也;吾之所守, 退士之志也. 子雲玉浮鳥高, 皆有所因, 誠復別理一家之說也. 吾以爲寧作不載之寶, 不飛之鵬, 不■之蘭, 無黨之士, 亦(何? )損於夜光之質, 垂天之大, 含芳之卉, 不朽之蘭乎? 且夫名多其實, 位過其才, 處之者猶鮮免於禍辱, 交之者何足以爲榮福哉!
16-8
由茲論之, 則交彼而遇者, 雖得達不足貴;芘之而誤者, 譬如蔭朽樹之被笮也. 彼尙不能自止其顚蹶, 亦安能救我之碎首哉! 吾聞大丈夫之自得而外物者, 其於庸人也, 蓋逼迫不獲已而與之形接, 雖以千計, 猶蚤虱之積乎衣, 而贅疣之攢乎體也. 失之雖以萬數, 猶飛塵之去嵩·岱, 鄧林之墮朽條耳. 豈以有之爲益, 無之覺損乎?
16-9
且夫朋友也者, 必取乎直諒多聞, 拾遺斥謬, 生無請言, 死無托辭, 終始一契, 寒暑不渝者. 然而此人良未易得, 而或黙語殊途, 或憎愛異心, 或盛合衰離, 或見利忘信. 其處今也, 璧猶禽魚之結侶, 冰炭之同器, 欲其久合, 安可得哉! 夫父子天性, 好惡宜鈞, 而子政·子駿, 平論異隔;南山·伯奇, 辯訟有無. 面別心殊, 其來尙矣. 總而混之, 不亦難哉!
16-10
世俗之人, 交不論志, 逐名趨勢, 熱來冷去;見過不改, 視迷不救;有利則獨專而不相分, 有害則苟免而不相恤;或事便則先取而不讓, 値機會則賣彼以安此. 凡如是, 則有不如無也.
16-11
天下不爲盡不中交也, 率於爲益者寡而生累者衆. 知人之明, 上聖所難. 而欲力厲近才, 短於鑒物者, 務廣其交, 又欲使悉得, 可與經夷險而不易情, 歷危苦而相負荷者, 吾未見其可多得也. 雖搜琬琰於培土婁之上, 索鸞鳳乎鷦鷯之巢, 未爲難也. 吾亦豈敢謂藍田之陽, 丹穴之中, 爲無此物哉! 亦直言其稀已矣.
16-12
夫操尙不同, 猶金沈羽浮也. 志好之乖次, 猶火升而水降也. 苟不可同, 雖造化之靈, 大塊之匠, 不可使同也, 何可强乎! 余所稟訥馬矣, 加之以天挺篤懶, 諸戱弄之事, 彈棋博弈, 皆所惡見;及飛輕走迅, 游獵傲覽, 咸所不爲, 殊不喜嘲褻. 凡此數者, 皆時世所好, 莫不耽之, 而余悉闕焉, 故親交所以尤遼也. 加以挾直, 好吐忠藎, 藥石所集, 甘心者鮮. 又欲勉之以學問, 諫之以馳競, 止其樗蒲, 節其沈湎, 此又常人所不能悅也.
16-13
毁方瓦合, 違情偶俗, 人之愛力, 甚所不堪, 而欲好日新, 安可得哉! 知其如此而不辯改之, 可不謂之暗於當世, 拙於用大乎? 夫交而不卒, 合而又離, 則兩受不弘之名, 俱失克終之美. 夫厚則親愛生焉, 薄則嫌隙結焉, 自然之理也, 可不詳擇乎! 爲可臨觴者拊背, 執手須臾, 欲多其數而必其全, 吾所懼也.”
16-14
或曰: 然則都可以無交乎?
抱朴子答曰:“何其然哉! 夫畏水者何必廢舟楫, 忌傷者何必棄父斤? 交之爲道, 其來尙矣. 天地不交則不泰, 上下不交卽乖志. 夫不泰則二氣隔幷矣, 志乖則天下無國矣. 然始之甚易, 終之竟難. 患乎所結非其人, 敗於爭小以忘大也. 《易》美多蘭, 《詩》詠百朋, 雖有兄弟, 不如友生. 切思三益, 大聖所嘉, 門人所以增親, 惡言所以不至;管仲所以免誅戮而立霸功, 子元所以去亭長而驅朱軒者, 交之力也.
16-15
單弦不能發《韶》·《夏》之和音, 孑色不能成兗龍之瑋燁, 一味不能合伊鼎之甘, 獨木不能致鄧林之茂. 玄圃極天, 蓋由衆石之積. 南溟浩氵養, 實須群流之赴. 明鏡擧則傾冠見矣, 羲和照則曲影覺矣, 隱木括修則枉刺之疾消矣, 良友結則輔仁之道弘矣.
16-16
達者知其然也, 所企及則必簡乎勝己, 所降結則必料乎同志. 其處也則講道進德, 其出也則齊心比翼. 否則鈞魚釣之業, 泰則協經世之務. 安則有以精義, 危則有以相恤. 恥令譚·靑專面地之篤, 不使王·貢擅彈冠之美. 夫然, 故交道可貴也.
16-17
然實未易知, 勢利生去就, 積毁壞刎頸之契, 漸漬釋膠漆之堅. 於是有忘素情之惆嘆, 或睚眥而不思, 遂令元伯·巨卿之好, 獨著於昔;張耳·陳余之變, 屢構於今. 推往尋來, 良可嘆也. 夫梧禽不與鴟梟同枝, 麟虞不與豺狼連群, 淸源不與濁潦混流, 仁明不與凶暗同處. 何者? 漸染積而移直道, 暴迫則生害也.”
16-18
或人曰: 敢問全交之道可得聞乎?
抱朴子答曰:“君子交絶猶無惡言, 豈肯向所異辭乎? 殺身猶以許友, 豈名位之足競乎? 善交狎而不慢, 和而不同, 見彼有失, 則正色而諫之;告我以過, 則速改而憚. 不以忤彼心而不言, 不以逆我耳而不納, 不以巧辯飾其非, 不以華辭文其失, 不形同而神乖, 不若情而口合, 不面從而背憎, 不疾人之勝己, 護其短而引其長, 隱其失而宣其得, 外無計數之諍, 內遺心競之累. 夫然後《鹿鳴》之好全, 而《伐木》之刺息. 若乃輕合而不重離, 易厚而不難薄, 始如形影, 終爲參辰, 至歡變爲篤恨, 接援化成讎敵, 不詳之悔, 亦無以(原有脫文).
16-19
往者漢季陵遲, 皇轡不振, 在公之義替, 紛競之俗成. 以違時爲淸高, 以救世爲辱身. 尊卑禮壞, 大倫遂亂. 在位之人, 不務盡節, 委本趨末, 背實尋聲. 王事廢者其譽美, 姦過積者其功多. 莫不飛輪兼策, 星言假寐, 冒寒觸暑, 以走權門, 巿虛華之名於秉勢之口, 買非分之位於賣官之家. 或爭所欲, 還相屠滅.
16-20
於是公叔·偉長疾其若彼, 力不能正, 不忍見之, 爾乃發憤著論, 杜門絶交, 斯誠感激有爲而然. 蓋矯枉而過正, 非經常之永訓也. 徒當遠非類之黨, 愼諂黷之源. 何必裸袒以詭彼己, 斷粒以刺玉食哉! 夫交之爲非, 重諫而不止, 遂至大亂. 故禮義之所棄, 可以絶矣.
▶️ 奴(종 노)는 ❶회의문자로 㚢(노)는 고자(古字)이다. 계집 녀(女; 여자)部와 又(우; 손; 일한다)으로 이루어졌다. 노동에 종사하는 여자의 뜻이, 나중에 널리 남에게 부림을 받는 천한 사람을 가리켜 특히 남자 종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奴자는 ‘종’이나 ‘노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奴자는 女(여자 여)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又자는 ‘또’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손을 그린 又자에 女자가 결합한 奴자는 여자 노비를 부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奴자는 ‘여자 노비’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노비’를 뜻하거나 천한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奴(노)는 (1)어떤 명사에 붙어 몹시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2)사내종의 뜻으로 공천(公賤)과 사천(私賤)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종(사내종) ②놈 ③저, 자신을 낮추는 말 ④접미사 ⑤종으로 부리다 ⑥둔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종 례(隷)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종 비(婢)이다. 용례로는 종이나 노비의 계집으로서 남의 첩이 된 사람을 노가(奴家), 종의 이름을 노명(奴名), 사내종을 노복(奴僕), 사내종과 계집종을 노비(奴婢), 여러 종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노속(奴屬), 종 대하듯 멸시함을 노시(奴視), 종의 이름을 적은 장부를 노안(奴案), 하인처럼 굽실거리는 비굴한 얼굴을 노안(奴顔), 사용자의 마음대로 혹사 당하는 일 또는 노예로서 부림을 당하는 일을 노역(奴役), 자유를 구속 당하고 남에게 부림을 받는 사람을 노예(奴隸), 열등한 재주 또는 남자 종을 노재(奴才), 종이 낳은 어린아이를 업신여기어 이르던 말을 노추(奴雛), 노예처럼 천대하여 기름을 노축(奴畜), 자식들이나 놈들의 뜻으로 남을 얕잡는 말을 노배(奴輩), 주인이 종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하던 일을 이르는 말을 노명소지(奴名所志),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말을 노안비슬(奴顔婢膝), 종과 상전의 나뉨이란 뜻으로 매우 거리가 멀어 바꿔 설 수 없는 대인 관계를 이르는 말을 노주지분(奴主之分) 등에 쓰인다.
▶️ 顔(낯 안)은 ❶형성문자로 顏(안)의 속자(俗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彦(언, 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顔자는 '낯'이나 '얼굴', '표정'을 뜻하는 글자이다. 顔자는 彦(선비 언)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彦자는 '선비'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顔자는 '얼굴'이나 '얼굴색'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頁자가 의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顔자는 '체면'이나 '명예', '염치'와 같이 사람의 얼굴에서 연상될 수 있는 다양한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顔(안)은 ①낯, 안면(顔面) ②얼굴 ③이마(앞머리) ④표정(表情) ⑤체면(體面) ⑥명예(名譽) ⑦면목(面目), 염치(廉恥) ⑧색채(色彩), 빛깔 ⑨산(山)이 높은 모양 ⑩나타나다, 드러나다 ⑪앞장서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얼굴 용(容), 낯 면(面)이다. 용례로는 눈 코 입 등이 있는 머리의 앞쪽 또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것을 안면(顔面), 얼굴 빛을 이르는 말을 안색(顔色), 얼굴에 단장으로 바르는 연지나 분 따위를 안료(顔料), 얼굴의 생김새를 안모(顔貌), 뻔뻔스러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안후(顔厚), 붉고 윤색이 나는 얼굴이나 혈색이 좋은 얼굴을 홍안(紅顔), 얼굴을 이르는 말을 용안(容顔), 무표정하거나 굳어 있던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활짝 웃음을 파안(破顔), 어린아이와 같은 얼굴을 동안(童顔), 현명하게 생긴 얼굴을 현안(賢顔), 괴로운 안색이나 불쾌한 안색을 고안(苦顔), 서로 마주보고 대함을 대안(對顔), 얼굴에 가득 차 있음을 만안(滿顔), 아름다운 얼굴 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함을 미안(美顔),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 뵘을 배안(拜顔), 아름답기가 꽃 같은 얼굴을 화안(花顔), 화장하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도안(徒顔), 부끄러워 볼 낯이 없음을 무안(無顔), 위엄이 있어 보이는 얼굴 또는 차가워 인정이 없어 보이는 얼굴을 빙안(氷顔), 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뜻으로 부끄러움을 모름을 강안(强顔), 뻔뻔스러워서 부끄러운 줄을 모름을 후안(厚顔),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말을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찢어지도록 크게 웃는다는 뜻으로 즐거운 표정으로 한바탕 크게 웃음을 이르는 말을 파안대소(破顔大笑), 해가 바뀌도록 오래 만나지 못한 얼굴이라는 뜻으로 오래 만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격세안면(隔歲顔面), 얼굴에 복숭아빛을 띤 예쁜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을 홍안박명(紅顔薄命), 윤이 나는 검은 머리와 고운 얼굴의 뜻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이르는 말을 녹빈홍안(綠鬢紅顔), 하얗게 센 머리에 찬찬한 어린이 얼굴이라는 뜻으로 신선의 얼굴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학발동안(鶴髮童顔) 등에 쓰인다.
▶️ 婢(계집종 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여자 녀(女; 女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身分(신분)이 천하다는 뜻을 가진 卑(비)로 이루어졌다. 천한 여자(女子)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婢자는 '여자 종'이나 '소첩'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婢자는 女(여자 여)자와 卑(낮을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卑자는 큰 부채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낮다'나 '천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큰 부채는 상전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해 하인들이 들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큰 부채를 들고 있는 모습의 卑자는 사람의 신분이 낮다는 뜻이 있다. 낮은 신분을 뜻하는 卑자에 女자가 결합한 婢자는 낮은 신분을 가진 '여자 종'이나 '신분이 낮은 여자'를 뜻한다. 그래서 婢(비)는 ①계집종(종살이를 하는 여자) ②소첩(小妾: 여자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③첩(妾), 여자(女子)를 얕잡아 이르는 말 따위의 뜻이 있다. 반의어로는 奴(종 노)이다. 용례로는 계집종과 사내종을 비복(婢僕), 계집종의 지아비를 비부(婢夫), 종으로 첩이 된 계집을 비첩(婢妾), 계집종 또는 여자가 자신을 낮추어 일컫는 말을 비자(婢子), 사내종과 계집종을 노비(奴婢), 여자종으로 종살이를 하는 여자를 종비(從婢), 곁에 모셔 시중드는 계집종을 시비(侍婢), 고을 원이 사사로이 부리던 여자 종을 아비(衙婢), 옛날 장례 때 곡하며 따라가던 여자 종을 곡비(哭婢), 예전에 반찬을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여자 하인을 찬비(饌婢), 밥 짓는 일을 맡아 보는 계집종을 반비(飯婢), 신분이 천한 여자 종을 천비(賤婢), 남자 종과 여자 종을 이르는 말을 복비(僕婢), 옛날 여종이 자기를 일컬는 말을 소비(小婢), 나이가 젊고 얼굴이 곱게 생긴 계집종을 이르는 말을 홍안비자(紅顔婢子), 역적의 처자를 종으로 만듦을 이르는 말을 위노위비(爲奴爲婢),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말을 노안비슬(奴顔婢膝), 외방에 있는 주인의 농장에서 경작에 종사하는 노비를 이르는 말을 외거노비(外居奴婢), 현재 노비로 있는 사람이 자기가 양민임을 확인하고 그 신분을 회복하여 줄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이르는 말을 노비소량(奴婢訴良), 가산이 적몰된 중죄인이 소유하던 노비 또는 몰수되어 노비가 된 자를 이르는 말을 적산노비(籍産奴婢), 집에서 거느리고 있는 하인을 일컫는 말을 가내노비(家內奴婢) 등에 쓰인다.
▶️ 膝(무릎 슬)은 형성문자로 厀(슬)은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꺾이다의 뜻(折/절)을 나타내는 글자 桼(칠, 슬)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膝(슬)은 몸이 꺾이는 곳, 곧 무릎의 뜻이다. 용례로는 무릎 앞 한가운데 있는 작은 종지 모양의 오목한 뼈로 종지뼈를 슬골(膝骨), 또는 슬명(膝皿),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하여 무릎까지 내려오게 입는 옷 바지 위에 껴 입으며 앞쪽에 끈을 달아 허 리띠에 걸쳐 맴을 슬갑(膝甲), 무릎으로 넓적다리와 정강이의 사이에 있는 관절의 앞부분을 슬두(膝頭), 오금으로 무릎의 구부러지는 오목한 안쪽 부분을 슬괵(膝膕), 무릎을 꿇거나 앉거나 하고 총을 쏨을 슬사(膝射), 무릎 위를 슬상(膝上), 무릎 옆을 슬변(膝邊), 무릎을 꿇은 채 뒤로 물러감을 슬퇴(膝退), 무릎으로 걷는 것을 슬행(膝行), 무릎 아래라는 뜻으로 거느리는 곁이나 품안이라는 의미로 부모의 보호 영역을 이르는 말을 슬하(膝下), 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에 앞에 늘여 무릎을 가리는 헝겊을 폐슬(蔽膝), 무릎을 꿇어 절함을 굴슬(屈膝), 무릎을 침을 격슬(擊膝), 어린아이를 무릎 위에 앉힌다는 뜻으로 어릴 때를 이르는 말을 치슬(置膝), 궤几의 다리 밑바닥에 대는 말발굽같이 생긴 쇳조각을 곡슬(鵠膝), 부모의 슬하를 이르는 말을 자슬(慈膝), 서로 무릎을 가까이 대어서 앉음을 접슬(接膝), 무릎을 안고 깊이 생각함을 옹슬(擁膝), 무릎을 대고 마주 앉음을 촉슬(促膝), 무릎이나 간신히 넣는다는 뜻으로 방이나 장소가 매우 비좁음을 이르는 말을 용슬(容膝),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사닥다리를 굴슬제(屈膝梯), 남의 시문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슬갑도적(膝甲盜賊), 인도의 예법으로 존경하는 뜻을 나타낼 때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예배하는 모양을 우슬착지(右膝着地), 한결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착실하게 하는 공부를 일슬지공(一膝之工), 무릎에 앉혀 귀여워하거나 연못에 빠뜨린다는 뜻으로 사랑과 미움을 기분에 따라 나타냄으로써 그 언행이 예에 벗어남을 이르는 말을 가슬추연(加膝墜淵), 사내종의 얼굴과 계집종의 무릎이란 뜻으로 사내종이 고개를 숙이고, 계집종이 무릎을 끓듯이 남과 교제할 때 지나치게 굽실굽실하며 비굴한 태도로 일관함을 이르는 말을 노안비슬(奴顔婢膝), 무릎을 거두고 옷자락을 바로 하여 단정히 앉음을 이르는 말을 염슬단좌(斂膝端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