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악의 비 가치제>
옛날에 어느 짐꾼이 상인의 짐을 지고 상인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그들은 강가에 앉아 밥을 먹으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느닷없이 까마귀 떼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상인은 까마귀 소리가 흉조라며 몹시 언짢아하고 있는데 짐꾼은 도리어 씩 웃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상인은 짐꾼에게 삯을 주며 물었다.
"아까 까마귀들이 울어댈 때 왜 웃었는가?" 짐꾼이 대답했다. "까마귀들이 저를 유혹하며 말하기를, 저 상인의 짐 속에 값진 보물이 많으니 그를 죽이고 보물을 가지면 자기들은 시체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럴 수가! 그런데 자네는 왜 까마귀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저는 전생(前生)에서 탐욕을 버리지 못한 과보(果報)로 현생에 가난한 짐꾼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새로운 탐욕으로 강도짓을 한다면 그 과보(果報)를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차라리 가난하게 살지언정 무도한 부귀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짐꾼은 조용히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 말을 한 짐꾼은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게 만족하라"는 교훈이 담긴 말이다. 티벳 속담에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말이 있다. 월수입이 1~2백만원인 사람은 "아프면 안돼, 아프면 끝장이야"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월수입이 3백만원인 사람은 자녀들의 학원비를 내고, 건강보험료를 내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
또 월수입이 5백만원인 사람은 주식에 투자하고, 주택융자를 갚으면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월수입이 천만 원인 사람은 자녀의 해외 유학비를 대느라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월수입이 억대인 사람은 그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 월수입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갑부들은 수조 원의 재산 때문에 자식들이 상속 싸움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걱정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걱정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남과 비교하지 말고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라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의 교훈은 두고두고 새겨볼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John Adams)는 "자유, 우정, 그리고 믿음을 지켜라."는 한 마디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또 애덤스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아비게일 아담스(Abigail Adams) 여사는 당시 소녀들을 위한 학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고, 거기다 어린 시절에 종종 아팠기 때문에 가정교육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독학을 했지만 박식하기로 유명했다. 백악관에 거주한 최초의 영부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편에게 1,100여 통의 편지를 써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정치적 조언도 많이 해 “미세스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성인권신장에도 앞장선 선각자였던 그녀는 지독한 남녀 차별로 여성은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18세기 말, 헌법에 남녀평등을 명시하도록 남편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애덤스 대통령의 아내이자 가장 가까운 고문이기도 했던 그런 애비게일 애덤스(Abigail Adams) 여사는 항상 말만 많지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되지 않도록 경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남긴 다음의 한 마디는 유명하다. “거창한 말만 가득하고, 부합하는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We have too many high sounding words, and too few actions that correspond with them.)” 그녀는 스스로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닌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데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었던 애덤스 대통령이 그녀의 간언에 귀를 기울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경제학에는 비가치재(非價値財, demerit goods)라는 재화(財貨)가 있다. 비가치재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 효용과 쾌락은 과대평가 되고, 그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용과 고통은 과소평가 되는 재화나 서비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소비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술, 마약, 담배, 매춘, 도박 등이 대표적인 비가치재다. 모든 국가는 예외없이 이런 비가치제(非價値財)의 생산과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을 편다. 사람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유해한 부작용이 너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런 비가치제 중에서도 최악의 비가치제는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번지르르한 말만 많을 뿐 묵묵히 실천하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란다. 술, 마약, 담배, 매춘, 도박처럼 인간사회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들을 필요악이라 하며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렇게 볼 때 최고의 비가치재인 정치인도 필요악(必要惡)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필요선(必要善)으로 바꿀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선거일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정치인들의 악다구니가 도를 넘고 있다. 필요악은 필연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인간사회의 불변적 법칙이다. 악이 칭찬받았던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나오는 대로 막말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최악의 비가치제요, 필요악“이라는 슬픈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손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