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한 혁신 기업 다이슨 본사 주차장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수직 이착륙 전투기인 해리어 점프 제트기다. 모형이 아닌 진짜 비행기다. 다이슨은 왜 주차장에 실제 전투기를 가져다 놓았을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마인드를 직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설명한다.
해리어 점프 제트기는 이론상 주차장에서 곧바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수직 이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 비행기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는 다이슨 경영철학에 딱 어울린다.
이처럼 남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좌절과 실패는 필연이다. 실패 없이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제품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다이슨은 최근 매일경제 MBA팀과 인터뷰하면서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프로토타입(시제품)만 5127개를 만들었다"며 "성공하려면 먼저 실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제임스 다이슨과 일문일답한 내용.
-청소기를 개발하면서 프로토타입을 5000개 이상 만들 정도로 계속된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오히려 실패와 좌절이 영감을 얻는 원천이라고 했는데.
▶실패는 디자인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실수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 배움을 적용하면 디자인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디자인 분야에서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토머스 에디슨이다. 그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작동하지 않는 1000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이슨에서 반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새로운 기계를 만들 때마다 우리는 수백 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우리는 각 프로토타입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이를 활용해 최종 제품을 만들 때까지 계속 수정하고 개선한다. 다이슨은 실패를 피하지 않는다. 환영하고 포용한다. 실패는 반드시 찾아온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보다 프로토타입 제작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프로토타입을 만드나.
▶아이디어는 항상 스케치에서부터 시작된다. BMC의 소형차 미니(Mini)도 그랬다. 알렉스 몰턴(Alex Moulton)이 프랑스 남부 도시 칸의 한 식당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냅킨 뒷면을 활용해 미니를 디자인했다. 마찬가지로 다이슨 직원은 드로잉(drawing)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동료들에게 설명한다. 그런 다음 재빨리 프로토타입 제작에 들어간다. 멋질 필요는 전혀 없다. 첫 프로토타입은 종종 두꺼운 종이로 만든다. 저렴하고 간단하게 자기 아이디어를 삼차원상에서 구현할 수 있다.
-계속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접근법으로 보인다.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데 몇 달에서 몇 년,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프로토타입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재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사이클론 기술(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로 제품을 출시할 때까지 프로토타입을 5127개나 만들었다.
-새로운 진공청소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내게 기존 진공청소기와 관련한 문제는 명확했다. 사용할수록 흡입력이 떨어졌다. 청소기를 분해해 보니, 먼지가 봉투의 작은 구멍을 막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에 대한 영감은 동네 제재소 지붕 위 사이클론을 보았을 때 찾아왔다. 사이클론이 원심력을 이용해 톱밥을 분리했고 깨끗한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제재소는 톱밥 때문에 공기가 나쁘다. 대형 제재소는 공기 정화를 위해 사이클론 기계를 설치해 사용한다. 다이슨이 제재소를 찾은 건 어느 토요일 밤이었다. 꼭대기까지 기어올라가 작동 원리와 구체적인 크기, 재료 등을 관찰했다. 달빛을 의지해 스케치도 했다. 이튿날 일요일에 다이슨은 철판을 용접해 직접 사이클론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결국 다이슨은 사이클론 원리를 적용해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청소기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 `유레카 모멘트(Eureka momentㆍ직관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을 뜻함)`에서 시작해 실제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지금도 완료된 게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다이슨은 사이클론 기술을 계속 개선해 왔다. 이제는 머리카락보다 200배나 작은 먼지 조각까지 걸러 낼 수 있게 됐다. 진보에는 수많은 프로토타입과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다이슨은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로도 유명하다. 가운데가 뻥 뚫린 동그라미 안에서 바람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선풍기는 지난 125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날개가 돌아가면 바람을 일으킨다. 안전을 위해 덮개도 씌워야 한다. 그러나 다이슨 기술자들은 핸드 드라이어 기술을 적용하면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영감을 떠올렸다. 핸드 드라이어 노즐에서 빠르게 흘러나오는 공기가 주변 공기를 끌어당겨 바람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관찰한 결과였다.
-다이슨 제품은 디자인이 탁월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당신을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당신이 영국 런던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Art in London) 출신이란 점도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여러 제품을 개발한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나는 엔지니어다(다이슨에서 그의 직함은 `최고 엔지니어`다).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 업무가 나를 흥분시킨다. 기계를 만들 때 우리는 기술을 가장 앞에 놓는다. 기술이 디자인보다 우선한다. 무엇인가의 겉모습을 바꾸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인가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것은 혁명적이다.
왕립예술학교 은사인 버나드 마이어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계가 목적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다이슨에서는 디자인과 관련된 결정을 할 때는 항상 실용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따진다.
다만 나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분리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발견한 사실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은 어떤 사람을 채용하나.
▶똑똑하고 열정적인 신입을 찾는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며 실패에 주눅들지 않고 기꺼이 실패를 하려고 하는 순수한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야말로 다이슨 기술자의 완벽한 모습이다. 내 기술자 중에서 누군가가 `실패 없이 처음부터 무엇인가 훌륭한 돌파구를 찾았다`고 한다면 아마 나는 믿지 않을 것 같다.
-경력 직원보다는 갓 학교를 졸업한 신입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왜인가.
▶다이슨은 창업 이래 신입 직원들이 중심 역할을 해왔다. 신입사원이 우리와 함께 성장하며 다음 세대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다이슨은 전 세계에서 디자인ㆍ연구개발 분야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뽑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배웠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신입은 오픈 마인드로 문제에 접근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직원들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직원들에게 온갖 자극을 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연구소에는 몸통 절반이 잘려 나간 소형차 미니를 세워 놓았다. 영국 맘스베리에 있는 본사 주차장에는 해리어 점프 제트기를 설치했다.
또한 다이슨 엔지니어들은 자기 기술을 테스트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도전해야 한다.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가 그런 것이다. 직원들은 기술을 활용한 대담한 복장을 입고 파티에 온다. 지난해 파티 때는 기계 날개를 단 독수리 복장을 한 직원, 날아다니는 돼지가 된 직원, 트랜스포머 로봇처럼 옷을 입은 직원 등이 있었다.
-다이슨에서는 메모나 이메일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항상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을 하는 게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점점 성장하면서 이메일을 포용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원칙은 대면 접촉이다.
-청소기와 에어 멀티플라이어 외에 미래 주력 상품은 어떤 게 있는가.
▶우리에게는 기술 파이프 라인이 25개 있다. 흥분되는 아이디어들도 있다. 그러나 유감이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
-당신은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라. 실수를 하라. 아이디어를 보호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다이슨은 특허를 지키기 위해 여러 차례 소송을 했다.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영국 법원에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기도 했다.
▶나는 기존 기술을 지키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종종 우리는 기존 기술을 보호하는 일도 해야만 한다.
■ who he is…
제임스 다이슨(James Dyson)은 영국 발명가다. 전자회사 다이슨 창업자이며 회장을 지냈다. 현재 직함은 최고기술자(chief engineer)다. 아홉 살이던 1956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늘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갖고 살았다.
이런 느낌이 자기 삶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저서로는 `계속해서 실패하라(Against the Odds) 등이 있다. 순재산이 30억파운드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