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명체 잡아 차리지 말고
‘육법공양’ 제사상부터 차리자
촛불 향 과일 꽃 떡 차 한 잔에
경전 독송하니 얼마나 간편하나
모든 분야에서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껏 가졌던 절대 가치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 좌충우돌하고 있다. 마치 빨리 변화하는 것이 시대를 읽는 힘이라도 되듯 세상이 불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연세 드신 분들에게 특히 눈에 띄는 고민이 있다면 다름 아닌 제사문제이다.
집에서 지내던 명절 차례가 사찰로 이동하는 추세라는 얘기를 했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절의 명절은 참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합동 차례로 바쁜 명절을 보내고 있다. 거기에 절에서 지내는 기제사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모든 것이 간소화되는 이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듯 다소 복잡한 유교의 전통에서 벗어나 제사의 형식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이런 차제에 불자라면 불교적인 제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조 오백년의 유교문화는 제사의식에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자기 정체성을 먼저 드러낸 것이 기독교다. 속사정으로 보면 유교의 흔적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기독교가 자리잡을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유교는 유교일 뿐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굳이 따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어쩜 어정쩡한 불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풍습으로 이어져오는 유교적 전통을 고스란히 따르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문제다.
사실 불교적으로 보면 생명존중이 더 소중하다.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날이야말로 적극적으로 방생해야하는 날이며 절대로 살생하지 말아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다른 생명을 죽여서 제사상을 차리고 왕생극락을 기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절에서 지내듯이 고기나 술을 쓰지 않고 정성스런 상을 차리는 것이 옳다. 그러니까 불자들은 부처님 법을 바탕으로 하는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님 가르침과 현실을 감안한 제안을 한다면 육법공양으로 제사상을 차리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미 조계종 포교원에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불자들의 실천을 유도하고 있지만 오랜 유교적 관습 때문에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불자이면서도 제사만큼은 유교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우리 절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육법공양의 제사를 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어려우면 유언으로라도 유교식 제사를 접고 육법공양의 불교식 제사를 지내라고 설득하고 있다.
육법공양으로 제사상을 차린다는 것은 등(燈)의 의미로 촛불을 켜고, 향, 과일, 꽃, 빵이나 떡에 차를 한잔 준비하면 된다. 촛불이나 꽃은 예쁜 것을 쓰면 된다. 양도 많이 하기보다 정성껏 마음을 표하는 정도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경전을 독송해 드리는 일이다. 짧게는 <반야심경>에서 <아미타경>이나 <금강경> 등 형편에 맞게 가족이 함께 독송하면 된다.
이렇게 조상님의 기일을 맞아 육법공양의 제사상을 차리고 한편의 경전 독송으로 제사를 지내는 풍토가 자리 잡지 않는 한 자식에게 불교를 믿으라는 얘기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하다.
과감하게 집에서 지내는 제사부터 바꾸자. 아미타불.
[불교신문3137호/2015년9월16일자]
첫댓글 육법 공양이 좋은데요. 식구들이 모이기에 먹을것이 조금 모자라는것(부족) 같아서 문제 입니다.
저의 집에서는 법당에서의 제사지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차림은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