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인 모곡리 임도
시월 하순 토요일이다.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따온 고구마 잎줄기를 거실에 놓고 껍질을 까면서 시조를 한 수 다듬었다. “국도변 텃밭 경작 가술리 지나다가 / 고구마 캐던 자리 잎줄기 싱그러워 / 주인장 초면이라도 채집 허락 쉬웠다 // 새벽에 잠이 없어 껍질 까 모았더니 / 버려질 부산물은 친환경 채소 변신 / 끓는 물 삶아 데치면 찬이 되는 재료다” ‘국도변 고구마 줄기’ 전문이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근교 산책을 나섰다. 지난주 다녀온 함안 자양산 중계소 인근 새로 뚫어 놓은 임도를 걸어볼 요량이다. 날이 덜 샌 미명에 마산역 동마산병원 앞으로 나가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가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서마산에서 신당고개를 넘어간 농공단지에서 수동을 지난 대천에서 내렸다. 지난주 아침보다 1시간 더 이르게 운행한 차편을 이용했다.
걸음은 성큼성큼 폭을 크게 걸어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지키지 못하고 느긋했다. 일교차가 큰 아침이어서인지 입곡 저수지 근처는 안개가 끼어 걷혀가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대천마을 동구에서 자양산으로 오르는 임도로 드니 쑥부쟁이가 꽃을 피워 계절감을 드러냈다. 그렇기는 해도 임도 길섶 우거져 자란 활엽수들은 단풍이 물드는 기미가 없이 청청하기만 했다.
서늘한 청량감이 감도는 임도에서 걸음을 천천히 옮겨 비탈을 올라갔다. 임도 가장자리 조경수로 심어 둔 산수유는 가을에 맺는 열매가 올해는 부실했다. 해를 걸러 열리는 ‘해거리’이기보다 지나간 여름에 폭염이 대단해서 수분이 되어 맺어지던 과육이 녹았는지 모를 일이다. 모곡리로 넘는 삼시랑고개에서 자양산 방향으로 오르자 지난주 봐둔 새로 뚫어둔 임도 분기점이 나왔다.
나는 그간 함안 산인 문암산성과 통신회사 중계탑이 선 자양산 정상부를 몇 차례 올라 지형 지세가 훤하다. 분기점 표석은 모곡에서 내인 간 임도라고 해 ‘내인’은 어딘지 알지 못해 그 길이 끝난 곳까지 가 볼 참이다. 임도 개설 공사는 올봄부터 여름에 걸쳐 진행 완공해 지난번 내린 큰비에도 배수가 잘되어 허물어진 데가 없었다. 축대도 차량이 다녀도 될 만큼 견고해 보였다.
비탈이 깎여진 숲은 밖에서보다 더 울창한 산림이었는데 참나무가 주종이고 높이 자란 소나무도 보였다. 임도를 개설한 목적은 산불 발생 시 소방차 접근을 쉽게 함이 우선인 듯했다. 농지가 없고 인가가 있을 리 없는 산중 깊은 골짜기로 새 길을 내기에는 장비나 인력이 상당히 투입된 듯했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내가 앞서 걸어보는 호사를 혼자 누리는 듯해 황송했다.
임도는 막다른 곳에서 더 이상 뻗어가지 않고 숲으로 가로막혔다. 종점에서 개척 산행을 감행해 자양산 허리 한내재에서 가산과 송정으로 넘을 수 있으나 무리하지 않았다. 아까 임도 들머리 표석에 새겨둔 ‘내인’은 대천에서 깊숙한 골짜기를 이르는 지명인 듯했다. 내인에서 발길을 돌려 지나온 임도를 되짚어 나오니 산마루 떠오른 아침 해가 솟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자양산 정상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린 계곡에 손을 담그니 시원함이 더해 앉아 간식을 꺼내 먹었다. 쉼터로 삼은 바위에서 일어나 남은 구간을 마저 걸어 자양산 임도와 합류해 삼시랑고개를 넘어 수동마을로 내려섰다. 모곡리 본동에 딸린 수동은 함안 조씨가 모여 살고 그 너머 고려동에는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고가들이 즐비했다. 그곳은 ‘고려동과 퇴계선생 길’로 명명된 길이었다.
퇴계 선생은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 젊은 날 처가가 의령 가례여서 우리 지역에 머문 적 있었다. 선생은 허씨 아내를 일찍 사별 재취를 두어도 의령과 교류는 이어져 함안 모곡리에 살던 사촌 누이 자형 오씨 집안 선비를 만나 시를 남겼다. 의령 남천에는 백암정이 있고 모곡에는 삼우대를 남겨 자취로 남았다. 고려동 장내 담안이야 언급이 더 필요 없는 절의의 재령 이씨 마을이다. 2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