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남자가 득세하는 사회였다. 여자는 말 그대로 이름도 없이 살다간 경우가 많아서 연암 박지원 선생도 누님의 묘지명에서 누님의 이름을 ”아무“라고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신화 속에서는 높고도 거룩하게 묘사해서 제주도의 설문대할망과 부안 수성당의 개양할미의 전설, 그리고 나라 곳곳에 마고할미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바깥 변산의 국가 명승인 적벽강과 채석강 사이에 있는 수성당(水聖堂)은 대막골 서남쪽, 적병강 해안에 있는 신당으로 당집 밑에는 두 벼랑의 곧은 바위가 둥근 통모양의 굴처럼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 개양할미의 전설 한 편이 남아 있다. 개양 할미는 칠산 바다를 맡아 보는 바다신이다. 아득한 옛날 적벽강 대막골(죽막동) 뒤 ‘여울골’에서 개양 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의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살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개양 할미를 물의 성인으로 높여 수성 할미라 부르며 여울골 위 칠산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벽에 구랑사를 짓고 모셔 오다, 지금은 수성당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 개양 할미는 키가 어찌나 컸던지 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 가자 깊은 곳을 걸어 다녀도 버선조차 젖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곰소의 ‘게란여’에 이르러 발이 빠져 치마까지 젖자, 화가 난 개양 할미가 치마로 돌을 담아다 ‘게란여’를 메웠다고 한다. 지금도 깊은 물을 보면 “곰소 둠병 속같이 깊다.”는 속담이 전해 오고 있는데, 개양 할미는 딸 여덟을 낳아 위도와 영광, 고창, 띠목 등 칠산 바다 곳곳에 두고, 막내딸을 데리고 구랑사에 머물러 서해 바다를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수성당 할머니라고 부르며, 음력 정월 보름이면 죽막 등을 중심으로 한 주변 마을 어민들이 안전과 물고기 풍년을 비는 수성당제를 지낸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키가 가장 큰 여자는 누구일까? 기네스북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제주 설문대할망일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키가 큰 설문대할망은 그 몸집이 얼마나 크고 힘이 얼마나 셌던지 삽으로 흙을 떠서 던지자 그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 한다. 이 할망이 신고 다니던 나막신에서 한 덩이씩 떨어진 흙덩이는 삼백 몇 십 개 에 이르는 ‘오름’이 되었다. 그 오름들 중에 정상이 움푹 패인 것들도 있는데, 그 가 흙을 집어 놓고 보니 너무 많아서 그 봉우리를 탁 차 버려 움푹 파였기 때문 이란다.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안에 깊다는 못들은 자신의 키로 다 재 보았다. 아무리 깊은 못이라도 할망이 들어가 보면 겨우 무릎밖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라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한 다리는 제주 앞바다에 있는 관탈 섬에 올려놓고, 또 다른 다리는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지귀섬이나 대정 앞바다에 있는 마라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성산포 일출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아 빨래를 했다고 한다. 하루는 설문대할망이 제주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기에게 명주로 속옷 한 벌만 지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겠다고 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회의를 했는데, 할머니의 속옷을 만들려면 명주 100동이 필요했다. 한 동이 오십 필이니 백 동이면 명주가 오천 필쯤 되었다. 그래도 제주 사람들은 다리를 놓는 것이 더 나을 것이 라고 여겼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명주를 다 모아 할망의 속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진 명주를 다 모아도 구십구 동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으로 할망의 속옷을 만들려고 했지만 명주가 모자라 만들지 못했고, 결국 제주와 육지 사이에 다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제주도를 삥 둘러가며 바닷가에 불쑥불쑥 뻗어 나온 곶들은 그때 설문대할망이 이 섬을 육지와 이으려고 준비했던 흔적이다.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 해변에 불 쑥 솟아오른 산방산은 할망이 빨래를 하다가 빨랫방망이를 잘못 놀려 한라산의 봉우리를 치는 바람에 그 봉우리가 잘려 떨어져 나온 흔적이라 한다. 설문대 할망은 양쪽 발을 식산봉과 일출봉에 걸치고 앉아서 오줌을 쌌다. 그런데 그 오줌 줄기의 힘이 어찌나 세었던지 육지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현재의 우도가 되었고, 그때 깊이 패인 곳이 바다가 되었다. 그때 오줌이 흘러가던 흔적으로 지금도 이 바다는 조류가 세다. 지나가는 배가 파선하면 그 형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제주 설화 속에서는 거인 설문대할망이 제주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를 때 치마 틈새로 한줌씩 떨어진 흙덩이들이 오름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개양할미와 설문대 할망이 이 땅에 존재하다면,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오금이 저려서 함부로 못할 것인데,
제주에 설문대 할망과 부안의 개양 할미가 우리나라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서 이만큼이나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