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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3,1-6.14-22
나 요한은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1 “사르디스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하느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깨어 있어라. 아직 남아 있지만 죽어 가는 것들을 튼튼하게 만들어라.
나는 네가 한 일들이 나의 하느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4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이고,
내 아버지와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6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14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17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18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19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22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복음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가 희망이 되는 사람인가?
오늘 복음은 자캐오에 관한 내용입니다. 자캐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람을 표현할 때 키가 작고 크고의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키가 작다는 표현은 분명 열등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땅을 정복하며 풀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콤플렉스라고도 합니다. 자캐오는 아마도 돈으로 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마음이 행복이 아니라 고통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번 빠진 집착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희망을 줄 수 없습니다. 영재 발굴단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강요로 고통받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모는 희망을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절망만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겐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 줄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은 분명 돈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자캐오는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 여긴 인물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무 위에까지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집에 들어가 묵으십니다. 자캐오는 예수님 덕분으로 재산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만약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았다면 우리를 찾는 이들은 돈에 대한 욕심, 쾌락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잘 안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돈을 좋아하지 않고 절제를 즐기고 겸손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책으로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찾고 있었습니다. 자캐오가 추구하던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 성물방엔 많은 책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자처럼 사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교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속-육신-마귀를 끊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예수님이 보이고 그분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처음엔 하느님을 받아들였다가 차차 하느님을 멀리하게 된 세 명의 왕들이 나옵니다.
사울은 키가 크고 잘 생겼습니다. 하지만 열등감이 있었고 그것이 권력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하여 제사를 지냅니다. 더 인기가 좋은 다윗을 시기합니다. 그러다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더 길 수도 있었던 짧은 왕의 생을 마감합니다.
다윗도 하느님을 받아들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색에 빠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까지 죽이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그의 집안엔 풍파가 잔잔할 날이 없었습니다. 아들에게서까지 도망치고 아들에게 아내들까지 욕을 보이는 수치를 당합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웠고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하기까지 했지만, 돈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정략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신까지 섬기게 되어 죄를 짓습니다. 돈은 결국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렇게 나라는 둘로 쪼개지게 됩니다.
이러한 예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며 투덜거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세속-육신-마귀에게서 전혀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는 것을 질투하는 것입니다. 변할 마음이 전혀 없어서 예수님을 몰아내며 동시에 자신들에게 오시지 않는다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세 살 때 최혜연 아이는 어머니가 잠깐 가게 일을 하는 사이 사고를 당해 팔꿈치 아래의 팔을 잃습니다. 부모도 지켜주지 못해 고통스럽고 아이도 자신을 팔을 감추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두 살이 된 지금은 다릅니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칩니다. 물론 한쪽 팔은 손가락이 아니라 팔꿈치로 칩니다. 건반을 겹쳐 누르는 일도 없습니다. 그래도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쟁이가 되었습니다.
혜연이의 삶을 바꾸어 준 것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바로 손가락, 네 개로 피아노를 치는 이희아 씨의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책입니다.
이희아 씨는 심한 선천성 사지기형 장애인으로 태어나 양손에 손가락 두 개씩뿐이었습니다. 손가락 힘을 키우기 위해 어머니의 추천으로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하는 부단한 노력 끝에 1993년 전국 장애인예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습니다.
2018년 1월 2일에는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된 각계 인사 240명 앞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한 뒤 아파서 참석 못한 가수 강산에를 대신해 ‘넌 할 수 있어’를 불렀습니다. 이희아 씨의 세례명은 히야친타입니다. 필요한 사람이 되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진 것이 없어도 몸이 고통스러워도 자랑할 것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무 위에 올라와서 나를 찾을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말하고 배가 고파 힘들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무시해서 짜증 난다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먼저 가난하고 절제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합시다. 그리고 행복합시다. 이때 나를 가장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면 됩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남학생에게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와 학교에 있을 때, 계속해서 이 여학생이 생각났고, ‘연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퀸카로 통했고, 자신은 보통 남자아이보다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못생기고 뚱뚱했습니다.
얼마 뒤, 이렇게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던 이 남학생은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글쎄 자기와 제일 친한 친구와 여학생이 서로 사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와 자신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자기보다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한다’라고, ‘사귀자’라고 고백했지.”
생각만으로는 자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정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몇 마디를 못 해서 후회만 남기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말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아직은 아니다.’, ‘내 체면에….’ 등의 말을 하면서 용기 내지 못합니다. 큰 후회를 남길 것입니다.
자캐오는 예리코 세관의 세관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이러한 지위와 재산 상태는 구원받고 못 받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예수님을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구원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 뵈옵기를 원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세관장이며 부자인 그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십시오. 채신머리없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뵈옵기를 바라는 마음에 체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용기 있게 주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캐오는 주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로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약속합니다.
회개의 표시로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하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의 규정보다도 훨씬 더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규정은 자선은 재산의 20%, 부당하게 얻은 재산은 5분의 1일을 배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진심에 구원받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진심으로 주님을 뵈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용기 없이 주님을 뵙지 못하는 이유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모험은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사는 것이다(오프라 윈프리).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첫댓글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어제 복음에서 눈먼이의 외침과 나무위를 올랐던 자캐오의 행동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간절함을 봅니다. 저에게도 주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은총을 허락해주시길 기도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