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하게 빠진 갈치의 은빛 살결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묻고 답하는 소리로 번잡스러운 시장.장이 서는 길목 구석구석마다 색색의 조그마한 보따리들을 옆에 하나씩 차고, 노점을 벌리고 있는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패인 동네 할매들한테 인사를 하며 나는 연신 두리번 거리곤 했다.어린 내게 갖가지 과일이며,채소며 아직 펄떡거리며 물방울을 흩뿌리는 생선 혹은 골골대는 샛노란 병아리들 마저도 신기하기만 하여 엄마를 따라 장에 가는 길은 항상 설레였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15일마다 작은 시장이 서는 동네의 장터로 가기 위해선 골목들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골목에는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밑동만 남은 썩은 고목 색깔의 얼굴에 커다란 혹이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원래의 얼굴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던 그는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맹이들 사이에서 도깨비 아저씨라 불렸다. 정확히는 모르나 그다지 볕이 잘 들지 않는 골목 한 귀퉁이에 살던 그는 햇살이 좋은 날이면 골목길에 의자를 들고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곤 했다. 그 얼굴 생김이 하도 흉측스러워 아이들은 작은 돌을 던져대며 그가 알아서 집으로 도망가기를 바랬다. 무지하여 더욱 잔인한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질에도 그는 결코 화를 내거나 애들을 타이르려 하지 않았다. 의자를 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장에 가는 것은 기다려졌지만 도깨비 아저씨가 있는 그 길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이 나고 가슴이 두근 거려 멀찌감치서부터 엄마 등 뒤에 숨어 주춤거리곤 했다. 매번 애가 왜 이러느냐고 엄마는 야단을 치곤 했지만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두려울 만큼 끔찍한 얼굴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 손을 꽉 붙들고 골목길 사이를 빼꼼이 내다 보는데, 어쩐일인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정말 그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골목을 돌아 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 안도하면서도 한편 의아했다. 집에 돌아오니 집 앞 평상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술 판이 벌어져 있었다. 얼른 아빠 옆에 앉아 오징어 하나를 냉큼 무는 내 귀에 정식이 그 자식 참 안됐제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누군데?
왜,그 시장가는 골목에 늘상 죽치고 있는 혹 달린 아저씨 안있나.니도 알제?
그 아저씨가 왜?
어젯 밤에 골목에 깡패들이 아가씨한테 해코지 할라는거 막다가 칼에
찔렸다카네.참 세상이 우째 될라고 이라나.
늘 아저씨가 앉아있던 골목은 길이 참 좁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깡패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지나가는 애들이나 여자들에게 돈도 뺏고 해코지를 하곤 해 문제가 되곤 했던 곳이 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일터진다며 푸념하듯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 아저씨들을 보며, 도깨비 아저씨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원래 소방관이었던 도깨비 아저씨는 구조활동을 하다 화상을 너무 심하게 입어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어린 애들한테 우범지대나 다름없던 곳에 항상 나와서 지켜주고 있어 어른들은 든든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착한 도깨비 아저씨를 친구들과 나는 괴물 보듯하며 피하고 괴롭히곤 했다고 생각하니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다음 날 일어나 동네 아이들과 모여 편지를 쓰고 도깨비 아저씨한테 전해줄 생각에 철없이 들떠있었다. 이제라도 열심히 인사해야지, 못된 장난도 하지 말아야지 다들 저마다 다짐하면서 착한 아이라도 된듯 뿌듯해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도깨비 아저씨는 사건이 있고 몇일 지나지 않아 결국 사문(死門)으로 향하셨다. 그후로 시장가는 길이 겁나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아저씨 모습을 계속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내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아저씨의 죽음을 통해,죽고나면 더 이상 사과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완전한 끝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나마 알 수 있었다.
첫댓글 [2]감동적인 글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주제의 내용이 더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더 좋은글이 되었을 것 같네요. 수고하셨습니다.
[2]잔잔하고 따스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과제의 주제가 좀 더 잘 부각되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2]좋은 글이네요. 다만 주제의 내용이 함축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2)주제에 공감되는 글이 아닌듯 합니다 하지만 좋은 글이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3] 타인의 죽음이 아니라, 본인의 죽음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