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는 주류인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가 한국측 전문가를 초빙하여 강연을 한다기에 나는 급하고 용감하게 배낭을 꾸렸다. 일본 시마네 현의 마쓰에라는 도시에서였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 연구회의 분위기는 어떠한지 궁금한 데다 무엇보다 이런 공개 발표 기회가 잘 없을 것이라서 무리를 했다.
이 연구회는 지금껏 역사적 자료의 지극히 일본적인 해석을 주된 근거로 해서 영토주장을 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한국측 해석을 들어보겠다고 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보아진다. 이번 초청 강연을 성사시킨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지만 한국측에서는 일본측 주류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한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은 틀림없다. 주최측도 나중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발표회는 이제 학자들 간의 학술 교류로 독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물꼬를 틀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 발표는 완전 공개 발표회가 아니고 학자들과 시마네현 공무원들로 구성된 10명의 연구위원들, 몇몇 관계자 등 제한적인 참가만 허용되었는데 나는 부산에서 장시간 열차를 갈아타며 먼 소도시까지 찾아온 성의가 참작되어 어렵게 참가를 허용 받았다. 참가 인원의 수가 적었던 것에 비하면 취재하는 신문, 방송국 카메라는 참으로 많았다. 주최측의 대 현민 홍보 전략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발표회는 1부는 한국측 학자의 기조 발표와 일본측 학자들의 질문으로 진행되고, 2부는 연구위원들과 초청강사만의 비공개 회의, 3부는 외부에서 초청한 일본인 학자의 발표와 질문으로 이어졌다. 발표는 양국과 독도의 지리적 위치 관계, 각기 다른 연대의 다양한 지도 해설, 조선과 에도 막부 때의 여러 기록들을 따져 들어간, 상당히 학술적이었는데 비해 질문과 답변 시간에는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일본 측은 한국 측의 해석들을 대부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한국측은 일본 논리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좀 더 객관적 자료 제시를 요구했다. 즉 일본학자 중에서도 소수만 이해하는 주장과 해석은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결국 양측의 팽팽한 접전은 역시 자료 해석의 문제라고 보아진다. 3부의 발표자인 일본인 학자 역시 일부의 자료를 근거로 무리한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더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연구할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역사 해석은 어쩌면 완전히 객관적으로 해석한다는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해석 자체의 애매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양국의 국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전인수식의 해석 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영토 분쟁에서는 역사학자들의 깊이 있는 연구가 가장 큰 토대이고 힘이라 생각된다.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고구려 문제 역시 역사학자들의 탄탄한 학술적 성과가 없이는 외교적 노력은 그저 무기력한 항의 수준에 그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학자 양성 상황은 우려되는 바가 크다. 우수한 인재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외면하는 현상은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기대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의 국사 교육 홀대 또한 문제가 많다. 국사 과목을 대입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하여 대부분의 고교생이 아예 공부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있는 교육현실은 교육학계조차도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법, 외무, 행정 고시에도 국사 과목은 폐지되었다. 정부는 좀 더 역사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민에 대한 국사 교육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항이며 그 기본 바탕이 있어야 역량 있는 역사학자가 배출될 것이다.
지난 8월 11일에는 부산에서도 독도 수호에 관한 학술 강연회가 있었다. 안용복장군의 일본에서의 활동기록을 근거로 한, 일본측 교수의 학술 연구발표와 와 고지도와 기록들로 따져 본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룬 한국측 교수의 발표였는데 민간단체에서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어쨌든 학계와 민간단체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상당한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연구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역사적 사료 면에서는 일본 측이 불리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일본학자도 인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무주지 선점론’에 더 비중을 두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나름대로 승산이 있는데도 혹시 정부가 정치적 차원에서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 섣불리 일부 양보 선에서 도장을 찍는 실수를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조선시대에 관리들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여 지금까지 불씨를 남긴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자는 물론 국민들도 흥분 일변도의 대응보다는 차근차근 연구를 해서 근거 있고 당당한 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시마네 성에서 배유안>
첫댓글 <초정리 편지>의 저자가 이번에 뭘 또 취재하러 갔을까...기대가 되네!
씽- 달려가는 모습....뭔가 범상치 않습니다.
대단하신 선배님의 열정에 여우 기절하였습니다 으윽..^^*
초정리 편지 쓸 때도 청주까지 달려간 그 정성! 그런 정성과 섬세한 인품이면 무얼 못하랴!
뭘까? 태동소리가 들려요. 멋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 본보기라 생각합니다.
역사는 나와 나 아닌 것과의 투쟁이라고 단재 선생이 말씀하셨죠. 역사 속으로 외롭게, 하지만 즐겁게 걸어들어가는 유안님의 모습, 대단하십니다. 건필을 기대합니다.
프로냄새가 물씬 나는군요.. 그대의 활발한 행보에 를
열정이 넘치는 모습, 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