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소풍 후기
상강이 지난 시월 넷째 일요일은 초등 동기들과 소풍 가는 날이다. 작년은 전남 무안 천사대교와 목포 유달산을 다녀왔다. “우리네 남은 생애 몇 번을 더 가 볼까 / 해마다 가을이면 정겹게 가는 소풍 / 올해는 속리산 절집 법주사로 떠난다 // 푸르던 나무들에 단풍이 불붙었고 / 신중년 나이여도 아직은 가슴 뛴다 / 앞으로 사는 날까지 이 모습을 그대로” ‘개띠 가을소풍’ 전문이다.
날이 밝아오기 전 현관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용지호수를 거쳐 시청 앞으로 나갔다.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며 시조를 한 수 남겨 친구들에 문자로 전송했다. 지난해 봄 어느 날부터 내가 사진을 곁들여 2연으로 된 시조를 아침마다 몇몇 지기들에게 보내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친구들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시작은 지금은 고인이 된 한 친구의 중환자실 문병을 못 간 대용이었다.
친구는 공직 은퇴 후 이전부터 과음이 원인으로 그때 병은 더 깊어져 병석을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친구로부터 시작된 1일 1수 시조 창작 도전은 해를 넘겼고 내년 봄이면 2년째로 접어들 테다. 생활 속에서 남기는 사진을 한 장 곁들여 ‘디키시’와 같은 형식이라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엮어 매일 남겨간다. 앞으로 그 종료가 언제일지는 나도 모른다.
창원 시청 앞으로 나가 부산 친구들이 거기서 기점 되어 타고 오는 전세버스로 속리산 법주사로 소풍을 가는 날이다. 창원의 친구 몇몇을 만나 부산에서 온 친구들과 창원역과 마산역을 거치면서 마산에 사는 남녀 친구들을 보탰다. 서마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함안 군북에서 내려 남강 솥바위 의령 관문을 통과해 의병탑 앞에서 읍내 친구들과 합류해 음식 상자를 실었다.
예상되기로 올해는 가을에도 늦더위가 계속되어 단풍은 예년보다 늦을 듯해도 속리산은 이번 주말에 산사 가요제와 함께 단풍 축제가 열린다는 얘기가 들렸다. 스물여섯 명이 탄 소풍 버스는 합천 삼가에서 경북 고령으로 가는 국도변에 차를 세워 읍내 친구들이 마련한 아침밥을 먹었다. 폭이 넓은 갓길에서 시락국에 햅쌀로 지은 밥에다 돼지고기 수육과 고구마 줄기 김치가 나왔다.
버스에서 내린 국도변에 쑥부쟁이꽃이 보였는데 식후 승차하던 한 친구는 아카시꽃을 한 송이 따와 역주행하는 계절을 느꼈다. 들떠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거른 아침밥이 해결되고 차내 마이크로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자기소개를 가졌다. 창원은 격월로 얼굴을 봐도 다른 친구들 근황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나간 봄 고향에서 가진 전체 정기 총회에는 나가지 못해 반가움이 더했다.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달려 보은에서 국도로 내려 속리산 법주사로 향했다. 산문 밖에는 단풍철 행락 인파들로 넘쳤다. 사하촌 식당가에 예약된 능이전골로 서울에서 내려온 두 친구와 같이 오붓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운영 친구 아내가 빚어온 도토리묵에 반해 그간 절제한 곡차도 두어 잔 비웠다. 점심 식후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지어 절집에 들어 미륵불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예년 기준 단풍은 철이 일렀고 정이품 소나무를 기려 ‘세조길’로 명명된 숲길 산책로를 더 걷지 못하고 절집 밖으로 나왔다. 서울 친구는 파전에 동동주를 시켜 놓고 짧은 해후를 아쉬워해 마주 앉자 잔을 거들었다. 두 친구는 서울로 올라가고 나머지 친구들은 타고 온 버스에 올랐다. 준비했던 아침밥이 많이 남아 귀로에 먹을 늦은 저녁은 예약을 취소하고 그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매년 그랬듯이 귀갓길 버스는 기사 양반도 익히 알고 체념한 도로교통법을 장시간 어겼다. 조용한 가창이나 떼창이 아닌 좁을 통로로 나와 춤을 추고 놀았다. 열기에 웃통을 벗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몸이 가벼운 한 여학생은 좌석 위로 올라 무대로 여기고 몸을 흔들었다. 싸움소를 키워 우승 전력도 있는 친구가 분위기를 돋운 주범으로 관광버스 기사도 드물게 본 광경이었을 테다. 2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