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 작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
水到船浮(수도선부),
'물이 가득 차야 배가 뜬다'.
즉 자기 수양이 잘 준비돼야 사회에 나가 성공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50 년 9월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율이 5000 분의 1이었습니다.
모든 연합군 참모들이 반대를 했고 북한군도 설마 했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의 믿음은 반드시 밀물 때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인천 상륙작전의 적기는 9월 15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전세는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와 이승만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나 하와이로 망명정부를
세우려 할때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미국의 두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 한 주인공이 워커장군입니다.
워커장군은 절망중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각하 내가 이땅 대한민국에서 죽는한이 있어도 이땅 대한민국을 지켜내겠습니다.'
그리고는 낙동강전투에서 46일간을 소방수 전법, 즉 기동방어전을 쓰면서 낙동강을 지켜냈습니다.
마지막 인천상륙작전 15일전 맥아더 장군이 워커대장에게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워커장군이여!
마지막 15일만 더 버텨주세요!'
이 부탁은 인천앞바다에 반드시 9월15일 밀물이 있을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워커는 낙동강을 지켜내었고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시행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자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낙동강 전투에서 46일간을 지켜내고 방어를 해준 워커장군이 없었다면
인천 상륙작전도 대한민국의 국토 탈환도 안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장군은 워커장군입니다.
6ㆍ25때 워커장군은 그의 외 아둔 샘 워커 대위와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이 사실은 모르고 있는분들이 많습니다.
워커장군의 아들 샘워커 또한 한국전에 전방에서 큰 공훈을 세워 미 국방성에서 훈장을 수여해
주라 하여 아버지 워커대장이 아들 샘워커 대위 부대에 공적을 치하해 주려 직접 차를 운전하고 가던중
1965년 12월23일 도봉역 앞에서 한국군 이등병이 운전하는 군용 트럭이 워커대장의 차량을 추돌하여
6시간만에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순직을 했습니다.
그후 박정희 대통령이 그의 은공을 잊지말자하여 광장동에 미군들의 휴양소를 지어주고 이름을
워커힐이라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커힐 호텔을 이용하면서 그 유래를 모르고 있습니다.
워커힐 호텔 앞 산에 워커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의 전사지 도봉여 앞에 가면 전사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워커장군은 1950년 7월에 대한민국에 한국땅을 밢았고 낙동강을 지켜 주었고 인천상륙 작전을 성공케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이 한국땅에 온지 5개월 만에 순직하신 은인중의 은인입니다.
이글은 맥아더장군과 워커 장군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전쟁에 1950년 인천 앞바다에 밀물이 있었기에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 했듯이 누구에게나 간절히 소망하는 자에게 밀물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밀물때를 놓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옛 말에 기회는 상고머리를 잡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상고머리는 앞머리는 길지만 뒷 머리는 짧게 깍아서 잡히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앞 머리가 손에 닿을 때 잡지 않으면 잡을 수 없드시 밀물때 를 놓치면 썰물 때에는 배를 띄울 수 없습니다.
내게 다가온 밀물때를 놓치지 말고 배를 띄어 목적지 에 상륙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영원히 가슴속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행복하고 평안하며 즐거움이 가득차고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첫댓글 水到船浮(수도선부), '물이 가득 차야 배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