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티켓을 무시한 이승엽 기자:박시정
2002-05-12 오후 3:03:25 조회 : 55453
삼성이 올시즌 상대팀의 눈치를 안보는 지나친 승부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 중 하나가 지난 7일 대구구장에서 발생했습니다.그것도 한국최고의 슬러거라는 이승엽에 의해 일어난 것이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죠.삼성이 지난해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그런 투지를 보여줬더라면 원년이후 간직했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꿈을 실현했을텐데….
6회 1사 1루서 우중월 적시 2루타를 쳐 스코어를 10-3으로 벌린 이승엽은 마해영의 중견수플라이 때 2루 리터치를 한 뒤 3루까지 달린 뒤 2사 3루서 김한수의 3루수앞 내야안타 때 홈까지 밟았습니다.삼성은 6회에 5점을 뽑고 7회에 4점을 보태 15-3으로 승리했습니다.언뜻 보면 이승엽의 투지를 칭찬할 수도 있죠.플레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
7회초 SK 이충순 투수코치는 수비를 하기 위해 1루로 나온 이승엽을 향해 “그러면 네 머리를 맞혀버릴 수도 있다”며 덕아웃에서 화를 냈고,실제로 7회말 삼성 공격 때 SK 윤길현이 진갑용에게 초구를 머리 쪽으로 날렸습니다.빈볼시비가 일어나 그라운드에는 전운이 감돌았습니다.삼성은 이후 “이충순 코치와 윤길현이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며 KBO에 제소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이승엽에게 이충순 코치가 폭언을 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한국을 대표하는 타자가 거드름을 빼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지는 못할 망정 위협적인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이 코치가 SK의 패배가 기정사실화하자 이성을 잃고 난폭한 본성을 드러낸 것일까요.
이 대목에서 거꾸로 뒤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이 코치는 ‘쓰여져 있지 않은 룰(unwritten rule)’을 이승엽이 무시한 데 화가 난 것입니다.승부가 기운 마당에 예의에서 벗어나는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죠.이 코치야말로 이성적인 사람이었고,비신사적인 행동을 한 쪽은 오히려 이승엽과 삼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야구에는 야구만의 에티켓이 있습니다.큰 점수 차로 리드하는 팀은 상대팀을 처참하게 몰아세워 감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쓰여져 있지 않은 룰’의 핵심입니다.
미국야구의 에티켓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라운드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선수들이 만들어낸 묵계로 현재도 그라운드에서 엄격히 지켜지고 있습니다.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선수나 팀에는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죠.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보복을 하는 것도 ‘쓰여지지 않은 룰’ 중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미국야구의 에티켓을 이역만리 한국에서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쓰여지지 않은 룰’은 수많은 세월 동안 선수들이 서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것인 만큼 국내 선수들이 지켜서 나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노히트노런을 눈앞에 두고 있는 투수를 상대로 경기 후반 번트를 대지 말고,큰 점수 차로 리드하는 경기에서 도루를 하거나 볼카운트 0-3에서 스윙을 하지 말며,홈런을 친 후 투수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홈런세리머니를 하지 말라는 것 등이 그라운드의 에티켓입니다.지극히 상식적이죠.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뉴욕 메츠로 옮긴 신조 쓰요시가 귀걸이와 요란한 장식으로 타팀 선수들의 눈을 의심케 한 것으로도 모자라 상대 포수의 사인을 훔쳐보거나 큰 점수차로 리드한 경기에서 볼카운트 0-3에서 방망이를 힘차게 돌리는 돌출행동을 일삼았습니다.당연히 위협구세례를 받았죠.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승엽의 주루플레이는 분명 SK를 자극할 수도 있었습니다.SK의 빈약한 공격력을 고려할 때 분명 승부가 뒤집힐 가능성은 별로 없었죠.그 정도 점수차에서 뒤집히는 경기도 더러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물에 콩나듯 어쩌다 나오는 사건(?)일 뿐이다.이승엽 정도의 내임밸류가 있는 선수라면 뛰지 않는 게 보기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승엽의 팀동료 마해영도 올시즌 과잉 승부욕으로 전 소속팀 롯데를 자극한 적이 있습니다.4월 9일 사직 롯데전에서 5-0으로 앞선 8회초 1사서 중전안타를 치고 출루해 2루를 훔쳤습니다.당시 박흥식 1루코치조차 뛰지 말라고 했는데 2루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 도루에 성공했죠.후속 타자들의 불발로 추가점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롯데 덕아웃은 ‘지난해까지 우리 팀에 몸담았던 사람이 저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 게 자극제가 됐는지 롯데는 8회말 1점을 뽑은 뒤 9회말 김응국의 끝내기 만루홈런 등으로 5점을 뽑아 6-5로 역전승을 따냈습니다.마해영의 도루가 롯데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우는 결과를 가져왔죠.
미국야구의 ‘쓰여지지 않은 룰’은 데드볼시대가 끝나고 타격의 시대가 도래한 30년대에 만들어져 오늘까지 면면히 어어지고 있다.메이저리그에서도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타고투저 현상이 심화돼 ‘쓰여지지 않은 룰’을 과거처럼 엄격하게 적용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큰 틀만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4월 9일 사직 삼성-롯데전처럼 스코어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고,과연 5점차가 안심할 수 있는 점수차였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분명 경기 종반 7∼8점 차 리드를 하고 있는 팀은 상대팀을 배려하는 미덕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너스 와그너나 타이 콥,베이브 루스가 좋다고 생각한 것은 오늘날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나 스즈키 이치로,새미 소사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그 게 야구입니다.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야구는 더 이상 야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첫댓글 이런식으로 우승해놓고 진정한 우승으로 인정받길 바라는지...
0-3에서 스윙하는건 에티켓 까지야.. 찬스로 살릴수 있는기회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