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즐겨 하던 보드게임 ‘Blue Marble’은 사실 잔혹한 게임이었습니다.
‘Blue Marble’ 세상에서는 서울, 뉴욕, 동경 같은 비싼 땅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나중에 도착한 사람은 먼저 땅을 차지한 사람에게 비싼 사용료를 내야만 하고, 땅값이 비싼 도시는 더 많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한 바퀴 돌 때 받는 월급은 20만 원밖에 되지 않는데, 남의 땅에 도착하면 100만 원이나 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월급으로는 땅값을 감당할 수 없는 규칙을 가진 게임입니다. 그래서 주사위 운이 나빠 땅과 건물을 갖지 못하게 된 사람은 곧 파산하고 맙니다.
요즘 세상은 어쩐지 그 Blue Marble 게임처럼 변해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오릅니다. 주사위 운처럼, 운이 좋으면 값이 오르고 그것을 먼저 차지한 사람이 오른 가치를 모두 가져가는 Blue Marble 게임 같은 규칙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국 런던 근교 부촌에는 금싸라기 땅인데도 빈 집이 곳곳에 있습니다. 억만장자인 집 주인들이 임대를 주어 관리를 까다롭게 하느니 그냥 버려두겠다는 심산으로 방치하는 곳들입니다. 일찌감치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진 미국은, 지금 상위 1% 가구가 전체 자산의 30% 이상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자산 가치는 오르고 노동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며, 땅값이 사람값보다 비싸진 세상의 풍경입니다.
반면 Blue Marble과 대조되는 게임도 있습니다. ‘두 개의 세상’이라는 게임입니다.
Blue Marble과 규칙은 비슷한데, ‘공유 세상’이라는 모드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땅값으로 지불한 돈을 먼저 도착한 땅주인이 독차지하는 대신, 모두가 함께 관리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모두가 나누어 갖습니다. 공동 기금도 마련해 두어 파산 위기의 사람을 도와줍니다.
‘쿠오폴리’라는 외국 게임도 있습니다. Blue Marble의 원조인 ‘Monopoly’와 비슷한 게임입니다. 다만 ‘Monopoly’에서는 독점을 잘 하는 사람이 이기는 반면, ‘쿠오폴리’에서는 협력을 잘 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똑같은 게임인데, 규칙을 조금만 바꿔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독점하는 사람과 파산하는 사람이 생기는 대신, 조금씩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협력하고 또 경쟁하며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보드게임에서는 조금만 규칙을 바꾸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세상의 문제도 생각보다 쉽게 풀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세상과 규칙을 조금만 바꾸면 고통 받는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외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귀를 열고, 들을 때입니다. “에파타!”
글 | 이원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LAB2050 대표)